[금도끼 #143] 청룡암 이야기
작성자 배인지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신년을 맞아 평안한 한 해를 기원하기 위해 사찰에 다녀오곤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금도끼에서 소개해드릴 곳은 바로 성북구 동소문로3길 32에 위치한 사찰 ‘청룡암’입니다. 원래 위치는 성북동 삼청각 근처였으나, 1969년 산지개발계획에 밀려 토지를 매각하고 동소문동의 현재 위치로 도량을 옮겼습니다. 『동명연혁고』에 따르면 조선후기 세도가였던 김좌근(金左根,1797-1869)이 1853년(철종4년)에 청룡암을 창건하였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청룡암의 주지는 원영스님으로 BBS불교방송에서 ‘원영스님의 불교대백과’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청룡암 외관(출처:성북문화원)

청룡암 외관(출처:성북문화원)

청룡암 현판(출처:성북문화원)

청룡암 현판(출처:성북문화원)

한편 일제강점기에 많은 문인과 학자들은 청룡암에서 글을 쓰거나 휴양하며 머물렀습니다. 1934년 8월 30일 국어학자 이윤재(李允宰,1888-1943)가 쓴 기사에 따르면 청룡암은 비구니 승방으로 당시 박묘상(朴妙相)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3~4인의 상좌를 거느리고 절 살림을 맡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또한 서울의 지척에 있지만 인적이 드물고 소란스럽지 않아 속세를 벗어난 별유천지(別有天地)의 경관이 빼어나므로 풍류를 즐기는 인사들이 종종 들러 놀다 가고, 정양차 기숙하는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여성』 1936년 5월호에 실린 김용준의 산문 「겨울달밤성북동」에서도 청룡암이 언급되었습니다. 성북천이 복개되기 전, 천변을 따라 놓여있는 길의 정취와 더불어 김용준이 그 길을 통해 청룡암까지 자주 왕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청동 막바지를 빠져나와, 꼬불꼬불한 산길로 하야 다 헐어지고 옛터만 남아 잇는 숙청문(북대문)에 이르러 땀을 거치고 그 등성이를 넘어 나려다 보이는 골자기로 향하야 청간을 연하야 우거진 송림 사이로 나려서니, 여기가 곧 청룡암이다. 이 절은 성북동 한 구석 응봉록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로 서울의 지척에 있지만 인적이 드물고···(중략)···정양차로 기숙하는 이가 있을 뿐이다.
이 절은 모두 여승으로만 있는 승방이다.
이윤재, 「성북청룡암에서 (中)」, 동아일보, 1934.08.30

석양이 내 정원에 비낄 때면 피로한 신경을 이끌고 발길이 문을 나선다. 석교(石橋)를 건너 서면 들국화 가냘프게 피어 늘어진 조붓한 길이 청룡암(靑龍庵)으로 향한다.
김용준, 「겨울달밤성북동」, 『여성』 1936.5월호

어머님 산소로 갈까하다가 성북동으로 넘어왔다. 산길에는 눈이 아직 그냥 깔려있었다.
청룡암 절을 찾아 올라왔다. 멀리 옛성이 구불구불 산마루를 둘렀다.
이태준, 「딸 삼형제 (118)」, 동아일보, 1939.06.27
이외에도 이태준의 소설 『딸 삼형제』에 등장하기도 하였으며, 1934~1935년 무렵에는 춘원 이광수(李光洙,1892-1950)가 이 절에 머물면서 소설 『그 여자의 일생』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과 인연을 맺은 청룡암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청룡암 현판과 대문의 모습(출처: 성북문화원)

청룡암 현판과 대문의 모습(출처: 성북문화원)

사찰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현판과 연꽃이 그려진 대문의 아름다운 모습은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데요. 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법당과 석탑을 마주하게 됩니다. 법당 내부에는 본존불과 그 옆으로 지장보살이 있답니다.
청룡암 법당 내부(출처: 성북문화원)

청룡암 법당 내부(출처: 성북문화원)

특히 앞서 언급했던 국어학자 이윤재는 1934년 8월 31일에 작성한 기사에 법당 왼편에 있는 석탑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탑을 칠층으로 되어, 고가 십칠척 광폭이 사척 오촌이며, 제이층에는 연화를 새기엇고, 제삼층에는 불상을 새기엇고, 제사층에는 그 속에 다보보살의 상을 간직하고, 제오층에는 헌물 및 묘상 수서의 발원물을 간직하였다.
이윤재, 「성북청룡암에서 (下)」, 동아일보, 1934.08.31
청룡암의 칠층석탑(출처: 성북문화원)

청룡암의 칠층석탑(출처: 성북문화원)

좌: 석탑에 새겨진 연화(출처: 성북문화원)

좌: 석탑에 새겨진 연화(출처: 성북문화원)

우: 석탑에 새겨진 불상(출처: 성북문화원)

우: 석탑에 새겨진 불상(출처: 성북문화원)

약 90년 전의 기사이지만, 글에 묘사된 탑의 특징을 지금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청룡암은 백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데요. 여러분도 새해를 맞아 청룡암의 멋스러운 풍경을 눈에 담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상으로 143번째 금도끼를 마치겠습니다.


※ 참고문헌
송지영 외 2인, 2009, 『성북동 -잊혀져가는 우리동네 옛이야기를 찾아서1』
송지영, 심지혜, 2011, 『성북동 -잊혀져가는 우리동네 옛이야기를 찾아서3』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김용준, 「겨울달밤성북동」, 『여성』 1936.5월호
이윤재, 「성북청룡암에서 (中)」, 동아일보, 1934.08.30
이윤재, 「성북청룡암에서 (下)」, 동아일보, 1934.08.31
이태준, 「딸 삼형제 (118)」, 동아일보, 1939.06.27
성북마을아카이브, https://archive.sb.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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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룡암
    이야깃거리
    청룡암
    분류: 장소
    시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