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149] 돈암시장의 변천사
작성자 우성진
시장은 흔히 그 지역의 인심(人心)을 알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집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시장이 생기는 만큼, 그 지역의 인심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장소가 되는 것이죠. 요즘에야 마트와 인터넷 쇼핑과 같이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생겨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지만, 여전히 시장은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입니다. [금도끼 #115]에서 다룬 정릉시장이나 [금도끼# 83]의 길음시장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돈암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북구의 대표 시장 중 하나인 돈암시장은 시장의 인심과 그만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돈암시장 입구의 모습

돈암시장 입구의 모습

돈암시장의 뿌리를 찾아보자면, 토지구획정리가 완료된 1939년 이후, 삼선교에서 돈암교에 이르는 도로 양측에 2층 한옥상가가 생기면서 시장이 형성된 것을 시작으로 총독부 내무부의 계획으로 동소문동 5가 120번지의 대지에 1944년 공설시장이 설립된 것을 돈암시장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 근처의 인구가 늘게 되자 상권이 커지게 되고 돈암시장은 건물 주변으로 무허가 점포가 들어서 혼잡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1959년의 신문기사에서는 돈암시장을 ‘돈암노점시장’이라고 이야기하며 청계천·북아현시장 등과 함께 사회문제로 언급될 정도였습니다.

"서울시는 시내에 난립한 무허가시장을 「큰 골칫덩어리」라고 말하면서 『무허가시장은 없애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으나 정작 무허가시장에 대한 취체는 소홀히 하고 있어서 근대적인 설비를 갖춘 공인시장의 발전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

『조선일보』 1959년 3월 22일자, 「난립하는 무허가 시장」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2년, 구청에서는 돈암시장의 무허가 점포 257동을 철거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충돌이 있기도 했습니다.

"29일 아침 『이렇게 추운데 어디로 가라느냐』는 주민들의 아우성 속에 서울 돈암시장 무허가 점포 257동이 성북구청 인부들의 손으로 헐렸다. … 헐리는 무허가건물은 대개가 영세상인들로 구청에서 지정해 준 점포로 들어가고 싶어도 당장 돈이 없다고 울상들이었다."

『조선일보』 1962년 11월 30일자, 「무허가점포 257동 철거 돈암시장」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1968년 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신축을 시행하여 방화구조로 된 건축물을 지었는데, 기존의 무허가 점포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에게 구청은 점포를 지정해 주어 입주하게 하였지만 상인들은 입주할 돈이 없어 갈등을 빚는 사건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1944년에 지어진 돈암시장 건물이 돈암시장의 일부로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처음 시장은 이 한 블록이었으나, 돈암지구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상권이 확대되었고 시장 안 밖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생기면서 안시장과 바깥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되어 불리며 돈암시장과 합쳐지게 된 것입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이 구역이 재개발되었고, 2003년에 이르러서는 재래시장을 활성화한다면서 주상복합아파트 공사를 시행하였는데, 이로 인해 기존 돈암시장의 안시장은 사라지게 되어 사라진 안시장 대신에 지금의 돈암시장으로 중심 상가가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돈암시장(1995)

돈암시장(1995)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이 근처에 있는 만큼 접근성이 뛰어나고 멀지 않은 곳에 주거지와 상권들이 집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활성화가 잘 되어 있는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공설시장이 지어진 이후 시장의 확장과 재개발을 겪으며 돈암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지만 주변 주민들이 이용하는 상가로서의 정체성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돈암시장 내부(2019)

돈암시장 내부(2019)

한때 재래시장이 번창했을 때 돈암시장은 개천과 나란히 삼선교 까지 뻗어 있었다. …… 시장은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로 붐볐다. 주부들은 그물처럼 생긴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거닐었고, 극장에 갈 때도 핸드백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갔다.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흥정하는 모습을 쉬이 볼 수 있었고, 흥정이 빗나가서 주부와 장사꾼 사이에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 좁인 시장길이지만 자전거는 용케 사람들을 피해 다니면서 딸랑딸랑 경적을 냈다. 이상하게 시장에선 화재가 빈번했다. 불이 난 까닭은 대부분 밤새 켜놓은 알전구가 과열로 터지면서 불길이 전선을 타고 천장에 옮아 붙었기 때문이었다.

고원영 作 『골목길 카프카』 中

돈암시장이 외적인 모습만 변화를 겪은 것은 아닙니다. 시장만의 전통적인 모습을 지키면서도 변화하는 소비자들에 맞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곳이 바로 돈암시장입니다. 블로그를 통해 홍보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장에서는 현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제로페이 시스템을 도입하고, 집에서도 장을 볼 수 있도록 온라인 장보기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시장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보완하고 경쟁력 있는 모습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돈암시장 온라인 장보기 페이지

돈암시장 온라인 장보기 페이지

또한 돈암시장은 삼선동 선녀축제와 같은 지역축제와 연계하여 시장을 알리고자 하고 지역 문화에 녹아들고자 하는 노력도 겸하고 있습니다. 옥녀봉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선이 선녀와 놀았다는 설화를 벽화와 마스코트로 만들어 돈암시장만의 개성으로 살리고 있기도 합니다.
돈암시장 내부 선녀 벽화(2020)

돈암시장 내부 선녀 벽화(2020)

삼선동 선녀축제(2015)

삼선동 선녀축제(2015)

돈암동 시장 어귀
매일 아침 파를 다듬는
할머니가 길 모퉁이에 있었다 일 년 내내
고개를 들지도 않고
파를 다듬는 할머니는
오직 파를 다듬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매일 아침
채소 가게 어귀에 나와 앉아
머리가 하얀
파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한 번도 고개를 들어 행인을 보지 않고
언제나 구부린 자세로
파를 다듬기만 하던 할머니가
어느 날,
꽃샘바람 지나가는
시장 어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다듬은 파처럼 단정하게 머리칼을
흙 묻은 손으로 쓸어올리는
파 할머니 얼굴에서 흘낏
돌보다 강인한
우리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최동호 作 「돈암동 파 할머니」

시간이 지나며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존재합니다. 시장에만 존재하는 정과 사람과의 만남 같은 소중한 것들입니다. 최동호 시인의 시 「돈암동 파 할머니」에서도 그런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시장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시장과 사람들에 대한 뭉클한 감정이 들게 합니다. 앞으로도 돈암시장의 전통이 지켜지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성북마을아카이브 방문하여 성북구의 다양한 역사문화자원과 축적된 ‘금도끼콘텐츠’를 살펴보세요! (https://archive.sb.go.kr/isbcc/home/u/gold/list.do)

<참고자료>
성북마을아카이브 (https://archive.sb.go.kr/isbcc/home/u/index.do)
서울역사박물관 『도성 밖 신도시 돈암』
네이버 장보기 ‘돈암시장’
고원영 作 『골목길 카프카』
최동호 作 「돈암동 파 할머니」

관련 마을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