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161] 고개를 들면 초록 물결: 성북구의 가로수
작성자 오진아
성북동 가로수(출처: 성북문화원)

성북동 가로수(출처: 성북문화원)

봄이 찾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길을 걷다 보면 바람에 초록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는 흔히 도시를 회색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도시는 생각보다 많은 자연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길가의 가로수입니다. 이 가로수들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단조로운 도시풍경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오늘 금도끼는 성북구의 가로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로수는 ‘거리의 미관과 국민 보건 따위를 위하여 길을 따라 줄지어 심은 나무’를 말합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고문헌을 살펴보면 길가에 나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나무들의 정확한 용도나 종류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좀 더 자세한 기록은 조선시대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세종 23년(1441)의 기록을 보면 역로(驛路)에 일정한 거리마다 나무를 심어 마을 간 거리와 방향을 가늠하게 하고,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풍습은 고대 주(周)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단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단종 1년(1453) 의정부에서 가로수를 재정비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때의 근거가 주나라 때 나무를 세워 도로를 표시하였으니 이를 본받아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을 가로수로 심자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다른 기록들도 살펴보면 가로수는 왕의 행차나 한양 출입의 주요 도로, 수해에 따른 도로 보호와 표식 등을 위해 심어졌다고 합니다.

개항 이후에는 점차 근대적인 식재 개념이 등장하는데요. 1896년 8월 11일 『독립신문』의 「논설」을 보면 위생에 해로운 공기를 나무들이 빨아들이고 위생에 도움이 되는 공기는 내보내 전염병이 없어진다며 가로수 식재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일제의 식수계획이 진행되면서 외래종이 많이 심어졌고, 1940년대에는 우리가 흔히 플라타너스라 부르는 버즘나무와 양버즘나무가 새로운 가로수 품종으로 소개됩니다.

플라타너스는 1950~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식재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로수가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되어서 조지훈이 글을 남겼는데요. 1956년 조지훈은 『신태양』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에 “이승만의 치적 중에 가장 큰 성과를 올린 것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이 플라타너스 문화정책이 유일한 것이라 믿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통해 플라타너스가 집중적으로 심어진 이유가 이승만의 문화정책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 성북구의 가로수 중 가장 많이 심어진 나무는 무엇일까요? 가장 최근에 조사된 2021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성북구에는 약 8천여 그루의 가로수가 있는데요. 이중 가장 많은 것이 은행나무이고, 왕벚나무, 이팝나무, 양버즘나무가 그다음으로 많은 나무입니다. 특히 종암동 성북천변 근처 고려대로를 따라 주욱 심어진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장관을 이룹니다. 성북천변과 북악산로, 길음로 역시 벚나무가 줄지어 있어 봄철 벚꽃 명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서울시 가로수 현황 중 성북구 가로수 통계 현황(출처: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

서울시 가로수 현황 중 성북구 가로수 통계 현황(출처: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

고려대로 은행나무길(출처: 성북구청 문화체육과(편). (2009). 『성북100경』.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고려대로 은행나무길(출처: 성북구청 문화체육과(편). (2009). 『성북100경』.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천 벚나무(출처: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성북천 벚나무(출처: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이렇게 우리 생활 속 가까이에 있는 가로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이유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해마다 구청에서는 말라 죽었거나, 썩어서 부러질 위험이 있거나, 병충해 등의 문제가 있는 가로수들을 조사하여 제거합니다. 주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진 빈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몇 해 전 성북동 주민들은 오랫동안 동네를 지키고 있던 가로수를 지키기 위해 구청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2016년 8월 구청은 한성대입구역 사거리 성북동 초입 도로의 좌회전 유턴 차선을 늘려 차량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가로 분리대 역할을 하는 플라타너스를 자르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주민들이 나무가 잘리는 것을 저지하면서 제거하기로 했던 세 그루 중 한 그루는 잘리지 않았지만 두 그루는 잘려 나가 2m 남짓한 밑동만 남게 되었습니다. 공사는 잠정 중단되었고 주민토론회가 열려 구청 관계자와 주민들의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가로수 벌목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거는 주민(출처: 성북문화재단 https://www.youtube.com/watch?v=0kY2xZ64uwk)

가로수 벌목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거는 주민(출처: 성북문화재단 https://www.youtube.com/watch?v=0kY2xZ64uwk)

토론회에서 구청 관계자는 교통체증을 해소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교통체증의 원인은 골목에서 무리하게 진입하는 차량과 인근 상가 앞에 주정차하는 차량에 있다며, 70년 된 거목을 자르는 결정을 하기에 앞서 교통신호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구청과 주민들의 갈등이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은 휑하니 남아있는 잘린 밑동에 직접 만든 종이꽃을 붙이며, 나무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몇 차례의 토론회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들은 구청은 결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세 그루의 나무를 모두 존치하기로 하고 잘린 두 나무에 상처 치료제를 발라주었습니다. 주민들의 보살핌 속에 몽당연필처럼 짧아진 두 그루의 나무가 피워낸 새싹과 힘차게 뻗어나가는 가지는 자연의 강인함과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오래된 가로수를 수호하는 과정은 〈우리는 성북동 나무와 닯았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었죠.
새 가지가 자란 플라나터스 (출처: 성북문화재단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0kY2xZ64uwk)

새 가지가 자란 플라나터스 (출처: 성북문화재단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0kY2xZ64uwk)

이 이야기의 끝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지만 주민들이 지켜냈던 몽당 플라타너스 두 그루는 작년에 완전히 베어지게 됩니다. 2022년 8월 강풍으로 인해 가로수가 쓰러져 일가족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구청이 관내 가로수를 점검해 문제가 있는 가로수를 벌목한 것입니다. 이때 몽당 플라타너스를 비롯한 31그루의 나무가 벌목되었습니다. 주민들은 공론화 과정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베어져 나간 나무의 빈자리를 보며 허탈해하기도, 구청에 항의하기도 하였습니다.
벌목되고 있는 성북로 가로분리대의 가로수(출처: 성북문화원)

벌목되고 있는 성북로 가로분리대의 가로수(출처: 성북문화원)

벌목되고 있는 성북로 가로분리대의 가로수(출처: 성북문화원)

벌목되고 있는 성북로 가로분리대의 가로수(출처: 성북문화원)

벌목되고 있는 성북로 가로분리대의 가로수(출처: 성북문화원)

벌목되고 있는 성북로 가로분리대의 가로수(출처: 성북문화원)

사실 성북동의 플라타너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많이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자연에서 플라타너스의 수명은 400년이라고 하지만 도심 플라타너스의 수명은 50~60년 남짓입니다. 플라타너스는 뿌리가 넓게 발달하고 성장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인데요. 도시의 플라타너스는 도로공사 과정에서 뿌리가 상하거나 배전 선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살아있는 가지가 억지로 가지치기 당하면서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갑니다. 이 때문에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갑자기 쓰러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플라타너스가 있던 가로 분리대(출처: 성북문화원)

플라타너스가 있던 가로 분리대(출처: 성북문화원)

주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구청의 입장도,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나무를 소중히 하는 주민들의 마음도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플라타너스의 빈자리는 이제 곧 새로운 어린나무로 대체되겠지만 다시 큰 나무로 자라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나무들이 자라는 동안 아쉬움이 남는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 곁에 가로수가 먼 훗날 미래의 우리 동네의 풍경에서도 그 자리에 남아있도록 세심한 관찰과 보살핌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2023년 5월 촬영한 잘린 플라타너스 밑동(출처: 성북문화원)

2023년 5월 촬영한 잘린 플라타너스 밑동(출처: 성북문화원)

참고문헌

『세종실록』

『단종실록』

성북구청 문화체육과(편). (2009). 『성북100경』.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송석호. 김민경. (2020). 서울시 가로수 역사와 수목 고찰. 한국전통조경학회지 38(4).

서울특별시 푸른도시여가국 조경과. (2021. 7. 5). 서울시 가로수 현황. 서울열린데이터광장. http://data.seoul.go.kr/dataList/367/S/2/datasetView.do

논설. (1896. 8. 11). 독립신문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324801&categoryId=51328&cid=51327

이선. (2022. 5. 24.). 이승만과 양버즘나무.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5240300065

이예린. (2022. 9. 15). 가로수 30여 그루 ‘싹둑’…성북구에 무슨 일이.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56098

서울경기케이블TV뉴스.[우리동네 우리방송]. (2016. 8. 12). 잘린 나무 두 그루, "성북동이 화났다“[영상]. 유튜브. https://youtu.be/4Tb5jc_B1CU

서울경기케이블TV뉴스.[우리동네 우리방송]. (2016. 8. 12). '차'가 먼저냐, '나무'가 먼저냐[영상].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d6A4lckEkzU

성북예술동[성북문화재단]. (2018. 6. 28).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성북예술동4' - "우리는 성북동 나무와 닮았다"[영상].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0kY2xZ64uwk


이정규. (2021. 5. 23). 나무 함부로 치지 마라. 한겨레21.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03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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