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162] 양잠 농사의 풍요를 빌다, 선잠제와 선잠단지
작성자 장지희
한낮에 내리쬐는 따끈따끈한 햇살이 여름을 재촉하는 요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봄이 되면 한해 농사의 풍요를 비는 제례를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하곤 했는데요. 특히 음력 3월에는 누에를 사육하여 고치를 생산하는 일인 양잠(養蠶) 농사의 풍요를 비는 ‘선잠제(先蠶祭)’를 드렸습니다.

“계춘(季春)의 길일(吉日)인 사일(巳日)에 지낸다.” (『국조오례의』)

선잠제는 양잠을 위하여 잠신(蠶神)으로 알려진 중국 황제의 비 서릉씨에게 드렸던 국가 제사로, 그 시기는 음력 3월의 길한 ‘뱀날’로 규정되어 있는 것을 『국조오례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 권62 「예지(禮志)」4 길례중사(吉禮中祀) 선잠조(先蠶條)에 그 제향 절차가 수록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2016년 선잠제향(2016.05.22.)

2016년 선잠제향(2016.05.22.)

이러한 선잠제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이와 관련된 기록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말하기를, “바야흐로 지금 물건을 갖추고 예문(禮文)을 다하는 때에 적전(籍田)과 선잠(先蠶)의 두 제사에만 악장(樂章)이 없으니, 대단히 불가합니다. 원컨대 유사(攸司)로 하여금 짓게 하소서.”하여, 임금이 모두 윤허하였다.
- 『태종실록』 2권, 태종 1년 12월 21일 을해 1번째 기사 1401년

종재(宗宰) 1품 이상과 의정부(議政府)·의빈부(儀賓府)·육조(六曹)의 당상(堂上)과 단(壇) 쌓는 일을 감독한 선공감(繕工監)의 제조(提調)·낭관(郞官)과 선잠제(先蠶祭)의 헌관(獻官)·집사(執事)와 예조(禮曹)의 낭관과 궐내(闕內)에 입직(入直)한 관원들에게 인정전(仁政殿) 뜰에서 술과 음악을 내렸다.
- 『중종실록』 65권, 중종 24년 3월 27일 임술 4번째 기사 1529년

임금이 연화문(延和門)에 나아가 선잠제(先蠶祭)에 쓸 향(香)을 지영(祗迎)하였다. 하교하기를,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는 것은 국가의 중대한 일인데, 늘그막에 그 마음이 해이해지는 듯하여 근년에는 친경(親耕)하고 친잠(親蠶)하여 바로 백성들에게 우러러 보도록 하였으니, 내가 어찌하여 이와 같이 하였겠는가? 선농단(先農壇)의 향을 받는데도 이미 지영하였으며, 선잠단(先蠶壇)에도 역시 지영하니, 뜻이 대체로 깊다. 임금은 백성을 의지하고 백성은 농사 짓고 누에 치는 것에 의지하니, 그 중대한 것을 우선하는 것이 마땅하다. 수령 칠사(守令七事)를 비국(備局)으로 하여금 제도(諸道)에 신칙하게 하여 그 부지런하고 태만함을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하겠다.” 하였다.
- 『영조실록』 116권, 영조 47년 3월 3일 갑진 1번째기사 1771년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제단이 있어야 하는데요. 그 흔적을 이곳 성북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잠제를 위한 제단인 선잠단은 바로 이곳 성북구 성북동 64-1번지에 마련되어 있었기에 성북구는 선잠제와 깊은 연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선잠단지 모습(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일제강점기 선잠단지 모습(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선잠단지에서 흰 삼베를 건조하는 사람(출처: 『근대 한국인의 삶과 독립운동』, 독립기념관)

선잠단지에서 흰 삼베를 건조하는 사람(출처: 『근대 한국인의 삶과 독립운동』, 독립기념관)

선잠제는 국왕이 주관하도록 되어있지만, 왕이 직접 선잠단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지는 않았고 관원을 보내어 대신 지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제자(主祭者)는 국왕이므로 제사 하루 전, 선잠에서 처음으로 술을 따라 올리는 초헌관(初獻官)을 불러 축판과 향을 직접 전하였다고 합니다.

친히 선잠제(先蠶祭)에 쓸 향과 축문을 전하였다.
- 『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 3월 4일 경진 2번째기사 1424년

관리를 보내어 선잠제(先蠶祭)를 행하였다.
- 『현종실록』 16권, 현종 10년 3월 12일 을사 1번째기사 1669년

정1품 관원이 담당하는 초헌관이 선잠단에서 주관하는 제사와 백성에서 양잠을 권장하기 위해 왕비가 채상단(採桑壇)에서 거행하던 친잠례(親蠶禮), 선잠제는 이렇게 2단계로 구성되었습니다. 친잠례는 왕비가 내명부와 외명부를 거느리고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는 의례로 여성이 주체가 되는데요. 이는 남성들이 주가 되는 다른 국가 제사들과 다른, 선잠제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잠제의 진행 방식은 유교식 제사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향을 피워 서릉씨의 혼을 맞이하고, 각 헌관이 초헌, 아헌, 종헌의 순서로 술을 올리고 음복합니다. 그리고 제기(祭器)를 옮겨 물리고 혼을 보낸 후에 축문을 태우는 것으로 제례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자세한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관세례 – 점촉 – 개독 – 천조례 – 분향 – 전폐례 – 초헌례 – 독축 – 아헌례 – 종헌례 – 음복례 – 철변두 – 폐독 – 망료례 – 예필 – 봉축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던 선잠제는 1908년에 중단되었습니다. 고종 39년인 1902년까지도 시행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시기 선잠단의 홍살문이 쓰러져 이를 수리하였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지만, 1908년 일제가 제사제도 칙령을 발표한 이후 단과 제향이 철폐되며 선잠단은 원형을 상실하였고, 선잠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1990년 선잠단지(출처: 성북구청)

1990년 선잠단지(출처: 성북구청)

선잠단지 표석을 설치하는 모습(출처: 성북구청)

선잠단지 표석을 설치하는 모습(출처: 성북구청)

우리 선조들이 누에치기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선시대 이후 실시해오던 선잠(先蠶)제례의식이 잊혀진지 85년 만에 재현된다.
선잠제란 조선시대 역대 왕비가 누에를 길러 명주를 생산하기 위해 잠신으로 알려진 고대중국 서릉씨(徐陵氏)의 신위를 모시고 단을 쌓아 올리던 제례의식.
양잠과 관련된 의식으로는 왕비가 궁중에서 직접 뽕나무 잎을 따다가 누에를 치기 전에 드리는 친잠례와 그후 관원을 보내 잠신(蠶神)을 기리는 선잠단에서 드리는 선잠제 등이 있었다.
서울 성북구청은 정도(定都) 6백년 기념사업으로 융희 2년(1908년) 7월에 선농단과 함께 선잠단의 신위를 사직단에 옮겨 놓은 뒤 잊혀져버린 선잠제례의식을 재현, 무형문화재 56호 李殷杓(이은표)씨(79)의 주관으로 오는 16일에 다시 펼쳐 보이게 한다.

동아일보, <朝鮮(조선)시대「누에치기」장려 儀式(의식) 「先蠶祭(선잠제)」85년만에 재현>, 1993. 05. 12.

하지만 1993년 5월 16일, 누에 농사를 위해 제사를 지냈던 선조들의 뜻을 다시 새기기 위해 85년 만에 선잠제를 재현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이후 매년 제례를 행하였습니다. 제사의 전반적인 진행은 ‘성북동 선잠제 보존위원회’에서 맡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선잠제 행사 복원을 위해 조직되었으며 대부분 성북동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우리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자원하여 나선 여러 손길 덕분에 선잠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북마을아카이브 유튜브 채널에서 예전의 선잠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4ilpGYmLnZ4eTcK63SFSHttWs6cISqxI
2021년 선잠제(2021.05.20.)

2021년 선잠제(2021.05.20.)

2021년 선잠제(2021.05.20.)

2021년 선잠제(2021.05.20.)

2021년 선잠제(2021.05.20.)

2021년 선잠제(2021.05.20.)

2022년 선잠제(2022.09.30.)

2022년 선잠제(2022.09.30.)

2022년 선잠제(2022.09.30.)

2022년 선잠제(2022.09.30.)

2022년 선잠제(2022.09.30.)

2022년 선잠제(2022.09.30.)

선잠단은 현재 그 터만 남아 선잠단지로 일컬어집니다. 이곳은 1963년,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사적 제83호로 지정되었으며 2016년 시행한 정밀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유구를 기초로 하여 2017년부터 정비 및 복원 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공사는 2020년 마무리되어, 현재는 성북동을 지나는 누구나 선잠단지의 재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록 오래전 그 원형을 잃었지만, 지금의 모습을 통해 조금이나마 당시 역사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선잠단지 공사 모습(2020.09.03.)

선잠단지 공사 모습(2020.09.03.)

선잠단지 공사 모습(2020.09.03.)

선잠단지 공사 모습(2020.09.03.)

공사를 마친 선잠단지(2021.04.07.)

공사를 마친 선잠단지(2021.04.07.)

공사를 마친 선잠단지(2021.04.07.)

공사를 마친 선잠단지(2021.04.07.)

선잠제는 올해도 진행됩니다. 돌아오는 21일, 1993년 재현된 이후로 27번째를 맞이하는 선잠제가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성북동 선잠단지에 방문하셔서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경험해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참고 문헌>
여성문화유산연구회, 『선잠단과 길쌈이야기』, 성북문화원, 2010
박수진 외 4인,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성북문화원, 2015
국립민속박물관,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4234
성북마을아카이브, https://archive.sb.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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