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163] 돈암2동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건립과 공공미술
작성자 김지훈
1.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제막

2023년 5월 11일 목요일, 평소에는 차들이 분주하게 교차하던 아리랑고개 사거리 일신건영아파트 상가 옆 공터가 많은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공터에는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빛바랜 청년의 사진으로 된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또한 흰 천으로 덮어놓은 사람 키 만한 조형물도 있습니다. 곧 행사는 시작되었고, 내빈들의 축사와 축하공연이 끝난 뒤 흰 천으로 덮어놓은 조형물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바로 민족지도자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 1891-1965) 선생의 동상이었습니다.
성북구청이 주최하고, 우리문화원이 주관한 ‘성북구 돈암2동 민세 안재홍 선생 제막식’ 은 많은 취재진과 지역주민들의 호응 속에서 열렸습니다. 특히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 관계자와 민세 안재홍 선생의 유족 대표 안영돈, 안영운, 안혜초, 안순희 님 등 10여 명도 이날 현장을 찾아 동상 건립을 축하했습니다. 이번 163번째 금도끼는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건립과 관련하여 이모저모 알아보겠습니다.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제막식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제막식

2. 민세 안재홍은 누구인가?

민세 안재홍 선생은 경기도 평택(平澤) 출신으로 1913년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에 재학 중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가 독립단체인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했고, 1914년 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했습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담해 서울에서 청년들을 규합하여 청년외교단의 총무로 활동하다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또한 조선일보의 주필로 재직하고 있을 때 신간회(新幹會)의 총무간사에 임명되어 강령을 발표하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였고, 각 지방의 창립총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강연 등을 실시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습니다. 1928년에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와 협동하여 조선민중대회를 열고 일제의 민족차별적인 처우를 규탄하다가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선생은 1942년 조선어학회에서 착수한 조선어사전편찬사업에 연관되어, 또 다시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미군정기에 민정장관을 역임했고, 정부수립 후 평택에서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돈암2동에 선생의 동상이 건립된 이유는 1941년부터 돈암동 산 11-152번지에서 거주한 인연 때문입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돈암동 자택에서 납북되었고, 이후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했습니다.
행사 전 모습

행사 전 모습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공개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공개

3. 동상 건립 과정

이미 언급했듯이 평택 출신인 민세 안재홍 선생을 기념하는 동상이 서울시 성북구 돈암2동에 세워졌습니다. 사실 선생이 돈암동에서 거주한 사실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선생의 동상 건립은 성북구 돈암2동 주민의 노력으로 세워졌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민세 안재홍 선생을 주목하고, 선생의 동상을 건립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돈암2동 주민자치회가 ‘주민참여예산’ 을 통하여 아리랑고개 사거리에 지역의 상징물을 설치하고자 했고, 우리문화원의 자문과 검증을 거쳐 선생이 1941년부터 돈암동 산11-152번지에서 거주했음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이후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건립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고, 주민들의 투표를 통해서 당당히 선생의 동상 건립이 추진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선생의 동상 디자인과 제작은 조각가로 활동 중인 윤진섭 한국미술협회 성북지부장님이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동상 제작을 맡아주셨습니다. 협회장님은 민세 선생의 30대 중반을 염두에 두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시대적 아픔을 담아 인물 동상으로는 드물게 어두운 톤으로 제작했으며, 일부는 생략해 선생의 희생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선생이 쥐고 있는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는 항일운동을 하면서 선생이 직접 쓴 여러형태의 독립을 장려하는 글을 표현한 것입니다.
건립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들은 많았지만, 그중에서 작년 말 ‘성북구 공공미술 심의위원회’ 를 통과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성북구 내에 설치하는 공공미술은 성북구 공공미술 심의위원회 심의 회의를 거쳐야 합니다. 따라서 선생의 동상 건립을 위해서 추진사항과 세부 디자인 계획 등을 심의받았고, 이후 조치계획서 및 수정안을 제출하여 심의를 통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의 동상 건립의 가치와 의의는 다양하겠지만, 여기서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 에 관한 조례[시행2020.12.31.]의 ‘제6조 설치대상 선정기준’ 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관계자 단체 사진

관계자 단체 사진

4. 공공미술로서의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첫째, 공공의 가치를 구현하는 공공미술
돈암동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역사·문화적 인물이 없는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지역의 독립운동가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우리의 생활 현장 안에서 구현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성북구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공공미술
동상 건립을 통해 주민들은 일상 속에서 선열들의 숨결과 독립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으며, 관은 학생·일반인을 중심으로 역사문화탐방을 실시해 교육과 역사문화관광 자료로 적극 활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국난극복 및 국권수호에 대한 공헌도
민세 안재홍 선생은 언론인으로서 신간회 창립을 주도했습니다. 1927년부터 신간회 총무간사로 활동하며 1929년 광주학생운동민중대회를 주도하다가 옥고를 겪었고, 꾸준히 독립운동을 펼치며 9차례에 걸쳐 총 7년여 동안 투옥 생활을 했습니다.
넷째,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진흥·발전에 대한 기여도
1941년부터 납북되는 1950년까지 돈암동 산11-152번지에서 거주하였고, 미군정기에 민정장관,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돈암동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사학자 언론인으로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공공미술 심의위원회를 위시한 선정 기준들은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공공미술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위함일 것입니다. 또한 쾌적하고 아름다운 도시공간 조성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민세 안재홍 선생 동상

민세 안재홍 선생의 일관되고 지조있는 활동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동상 건립을 계기로 다양한 활용사업을 통해 돈암2동의 역사·문화적 가치에 대한 위상을 정립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돈암2동의 사례처럼, 주민들이 지역의 역사인물을 기리기 위하여 스스로 사업을 제안하고 건립했다는 점은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지역의 역사문화적 인물이 궁금하시다면, 성북마을아카이브를 방문해주세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인물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 참고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조선일보
평택시사신문
성북마을아카이브(https://archive.sb.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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