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171] 하늘에 가장 가까운 동네, 길음동
작성자 장지희
조선시대에 성 밖 마을이 형성되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던 성북구는 차츰 외부에서 유입된 이주민들이 늘어나며 주거 형태가 발전되어 왔습니다. 6·25전쟁 이후 정부의 계획에 따라 곳곳에 주택들이 들어섰고, 1960년대에는 돈암동, 안암동 등에 아파트가 처음으로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대단지 아파트가 생겨나면서 기존의 노후 주택들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성북구 곳곳은 이처럼 지속적으로, 그러나 급격하게 주거의 형태가 발전되었는데요. 그중에서도 개발 전후의 경관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은 길음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에서 2000년대 초, 종합적인 도시계획사업으로 뉴타운 사업을 시행하였는데, 앞서 말씀드린 길음동은 대표적인 뉴타운 사업시행지 중 한 곳이었습니다. 길음뉴타운은 노후 주거지 밀집 지역을 재구조화하는 ‘주거중심형 타운’으로 개발되었기에 사업 시행 이후 길음동 일대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완전히 탈바꿈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는 고층 아파트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뉴타운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 길음동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미아리 난민 정착지 전경(1958)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미아리 난민 정착지 전경(1958)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길음뉴타운 전경 (출처: 서울연구원)

길음뉴타운 전경 (출처: 서울연구원)

길음동은 일제강점기까지 농지와 임야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공간을 활용하여 공동묘지를 조성하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미아리 공동묘지입니다. 1913년, 「묘지규칙」에 따라 조성된 이곳은 약 69,000평 정도로 추정될 정도로 그 규모가 매우 컸습니다. 이렇게 길음동에 자리하고 있던 공동묘지는 성묘로 인파가 몰리는 풍경을 이루기도 했는데요. 1950년대 후반, 서울 각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이 부근으로 모여들어 계속해서 판자촌을 형성하자 정부는 이곳에 정착촌을 만들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따라 공동묘지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미아리 난민 정착지(1958)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미아리 난민 정착지(1958)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공동묘지가 옮겨가자 길음동은 주거지로의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그러면서 지대가 높은 길음동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라는 별명을 얻은 서울의 대표적인 산동네가 되었습니다. 많은 이주민이 길음동으로 이주해왔고, 동네 곳곳에 무허가 주택을 많이 짓고 자리를 잡자 정부에서는 1962년, 공동묘지 부지에 백호주택이라는 공영주택을 조성하였습니다. 정식명칭은 미아리 공영주택이지만 분양 가구가 100호였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서울시는 올해 주택건설계획의 하나로 성북구 미아동(彌阿洞)에 새로이 공영주택 일 백호를 세우기로 되었는데 오는 십팔일까지 입주희망자의 신청을 받는다.
대충자금 일억사천이백여만원으로 세워지는 이 주택은 매호마다 오십평안팎의 대지에 십이평 벽돌기와집이며 건축비가 십사만이천오백원, 대지가격이 십여만원인데 입주자는 먼저 대지대를 납부하고 건축비는 이십오년간 상환키로 되어있다.

「公營住宅(공영주택) 또 百戶(백호)」 , 『조선일보』, 1962.07.06.
1962년 미아리 공영주택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1962년 미아리 공영주택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백호주택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백호주택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주택의 위치는 같은 해 개교한 미아초등학교 바로 앞이었습니다. 호당 50평 안팎의 대지에 12평짜리 벽돌 기와집이었던 이곳은 정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분양하였고, 입주를 원하는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주택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백호주택 일대는 1990년대에 들어서 빌라로 새로 지어진 곳이 많아 현재는 몇 채만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요. 이곳은 길음뉴타운 사업에서 빠진 존치구역으로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을 통해 지난 2012년, 저층 주거지 마을인 소리마을로 거듭났습니다. 2013년에는 커뮤니티시설인 소리마을센터도 조성되어 현재까지 다양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리마을 골목 (성북문화원 촬영)

소리마을 골목 (성북문화원 촬영)

소리마을센터 (성북문화원 촬영)

소리마을센터 (성북문화원 촬영)

백호주택이 들어선 1962년에는 길음동에 또 하나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길음시장이 개설된 것입니다. 1950년대부터 상인들이 모여 노점이 형성되었던 것이 이 시기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인데요. 주택지로 개발되기 전 길음동 주민들은 직접 밭농사를 지어 배추, 무, 호박, 미나리 등을 시장에 팔기도 했다는 사실을 통해 시장은 주민들에게 중요한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주택과 노점들로 들어차 있던 이곳은 길음뉴타운 개발로 현재 아파트 숲으로 변모하였고 시장의 규모는 축소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길음시장 노점 (출처: 성북구청)

길음시장 노점 (출처: 성북구청)

시장과 함께 지금의 길음뉴타운 자리에는 상징적인 장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래 소설의 한 대목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방금 오르막길을 헐떡이며 기어 오른 낡은 마을버스가 차머리를 반대쪽으로 돌려놓느라 앞으로 밀고 뒤로 빼고 하며 일그러진 배기통으로 시커먼 매연을 토해냈다. 현경은 얼른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돌산이 병풍처럼 막아서 있었다. 그 절벽 아래 원래는 채석장 터였던 곳에는 돌산 정상과 이마를 맞대어 있는 고층 아파트 세 채가 들어서 있었다. 왼쪽으로는 폐타이어가 줄줄이 쌓여 있는 초등학교 담벼락을 에둘러 후문 쪽으로 구불구불 길이 뻗어 있었고 뒤쪽으로는 반대편 산동네로 가파르게 넘어가는 좁은 골목길 어귀가 보였다.

김소진, 「신풍근배커리 약사」, 1996

길음동에 거주했던 소설가 김소진의 「신풍근배커리 약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길음동에는 돌산이라고 불리는 채석장이 있었는데요. 돌산은 길음동 주민들의 기억 속에 중요하게 남아있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미아리 공동묘지가 있던 시절부터 길음동 사람들은 채석장에서 돌을 캐서 비석을 만드는 채석공으로 일하기도 하였으며 계단을 만들 때 사용되는 대리석 등을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큰 돌산 남아있는 부분 있죠. 신안아파트 있는데. 작은 돌산은 대림아파트. 지금 대림아파트 자리인데 대림아파트 거기 보면 길음초등학교라고 있어요. 길음초등학교 여기 지금 대림아파트 자리가 작은 돌산이에요. 작은 돌산은 실질적으로 채석장을 하기에는 타산이 안 맞지. 왜 산 자체가 낮았으니까 산 자체가 아주 낮았고 그 다음에 큰 돌산은 계속 채석장으로 이용을 했죠. (김태수, 남, 19587년생, 2009.06.19.)

서울역사박물관, 『길음동』, 서울역사박물관, 2010, 120쪽

하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던 돌산 역시 개발이 진행되어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1988년, 주로 채석장으로 이용했던 큰 돌산이 있던 자리에 신안아파트가 들어섰고, 비교적 높이가 낮았던 작은 돌산 자리 역시 2000년대 이후 아파트로 개발되었습니다. 돌산은 이제 길음동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로 사라지고, 그 자리는 또 다른 의미로 채워진 것입니다.
신안아파트와 돌산 (성북문화원 촬영)

신안아파트와 돌산 (성북문화원 촬영)

신안아파트 (성북문화원 촬영)

신안아파트 (성북문화원 촬영)

옛 동네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는 길음역 부근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길음역 8번출구 앞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건물을 지나다 보면 마치 탑처럼 보이는 높은 건물을 만날 수 있는데요. 이것은 예전 정릉소방파출소가 이곳에 있을 때 설치되었던 소방망루입니다. 현재는 고층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기에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망루를 통해 길음동의 도시개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음동 소방망루 (최호진 촬영)

길음동 소방망루 (최호진 촬영)

길음동의 재개발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많은 아파트와 함께 주민들을 위한 여러 편의시설이 들어왔고, 길음역 바로 앞 많은 상가와 주택이 모여 있던 길음역세권 재개발구역은 내년 4월 준공을 앞두고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새로운 변화를 앞둔 곳들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길음역세권 상가 철거 전(2019) (성북문화원 촬영)

길음역세권 상가 철거 전(2019) (성북문화원 촬영)

길음역세권 재개발구역 (출처: 네이버 로드뷰)

길음역세권 재개발구역 (출처: 네이버 로드뷰)

우리가 사는, 혹은 생활하는 동네는 매일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길음동이 불과 몇십 년 사이에 많은 변화를 겪었듯이, 매일의 사소한 순간들은 겹겹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들고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변화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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