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183] 성북학과 성북학 학술회의
작성자 박수진
지역학. 낯선 이름입니다. 하지만 직관적이기도 합니다. 지역을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그 지역이라는 것이 상대적이라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국제관계학에서 지역은 꽤 넓은 범위를 다룹니다. 동아시아, 중동, 동남아시아 등이 지역에 범주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보다 좁게 국가 정도의 단위를 지역이라는 시각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국가를 단위로 하다보면 ‘객관적’ 시선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 금도끼에서 다룰 지역학은 우리가 사는 보다 좁은 지역, 기초자치단체를 단위로 하는 학문입니다.

지역학은 지역 안에 모든 것을 다룹니다. 보통은 역사를 중심으로 연구되기는 하지만, 사회문제, 경제문제, 인종문제, 교육문제 등 모든 것이 지역학의 주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학은 역사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교육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을 다루는 복잡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다만 여전히 한국에서 지역학은 역사학이 중심이 되어 연구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지역학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시작하였는데, 이제는 모든 지역에서 각자의 지역 명을 달아 놓은 지역학을 하고 있습니다. 용인학, 수원학, 춘천학 등등은 모두 지역학의 다른 이름입니다. 물론 우리 성북구에서도 ‘성북학’이라는 이름으로 성북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성북문화원은 일찍부터 성북학 연구에 선두에 있었는데요,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성북학 학술회의’입니다.

사실 성북문화원의 지역학 학술회의는 꽤 오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2013년 「근·현대 성북지역의 독립정신과 호국활동」을 시작으로 2014년 「만해의 심우장 시대」와 「선잠제향의 어제와 오늘」, 2015년에는 「성북 4.19혁명의 북을 울리다」와 「6.25 전쟁과 미아리고개」. 2016년에는 「4월 혁명과 문화의 새로운 모색」, 2018년에는 「4.19 혁명과 제2공화국」과 「정전에서 종전으로, 그리고 평화로」가 진행되었습니다. 2013년에서 2018년까지 총 8회가 진행되었으니 매년 1회 이상은 진행한 샘입니다. 주제도 4월 혁명부터, 한국전쟁, 선잠제향, 한용운, 종전까지 다양했습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된 학술회의 포스터 ⓒ성북마을아카이브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된 학술회의 포스터 ⓒ성북마을아카이브

이렇게 진행되던 학술회의에 ‘성북학’의 이름이 붙은 것은 2019년 하반기였습니다. 「조선시대 성북지역의 삶·공간·문화」를 주제로 진행된 학술회의 였는데요, 이것은 성북지역의 조선시대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번째 학술회의였습니다. 2020년도에는 코로나19로 학술회의가 잠시 중단되었지만, 2021년에는 「1930~40년대 성북지역의 문화지형도」라는 주제로 제2회 성북학 학술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일제강점기 성북구 지역의 개발과 함께 지식인들의 이주와 그로 인해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분석했죠. 같은 해에는 또 「기록의 넓이」라는 제3회 성북학 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마을아카이브 사업을 진행하는 성북문화원에서는 건축과 문학, 노래 등 다양한 분야가 어떻게 모두 기록이 되는가를 조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1회~제3회 성북학학술회의 포스터 ⓒ성북마을아카이브

제1회~제3회 성북학학술회의 포스터 ⓒ성북마을아카이브

2022년도에는 새로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함께 「지역학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제4회 학술회의를 진행한 것인데요, 기존까지 성북학 연구가 다른 지역의 지역학과 같이 역사학을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이 학술회의에서 처음으로 지역학의 주제를 다양화했기 때문이죠. ‘지역 박물관과 도서관의 역할’, ‘사회적 경제’ ‘혁신교육지구와 지역학’ 등 다양한 분야로 지역학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일종의 공공역사에서 교육과 경제까지 범위를 넓혀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학문의 관점에서 현재 지역학의 위상을 검토해보기도 했죠.
제4회 성북학학술회의 ‘지역학의 현황과 과제’ 포스터(좌)와 종합토론 사진(우) ⓒ성북마을아카이브

제4회 성북학학술회의 ‘지역학의 현황과 과제’ 포스터(좌)와 종합토론 사진(우) ⓒ성북마을아카이브

제5회 성북학 학술회의는 ‘성북구의 도시개발과 주민 이야기’였습니다. 이 학술회의에서는 지금까지 학자들이 독점해왔던 학술회의에 주민들이 참여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이 조사했던 도시개발 이야기를 조사하고 발표했던 것이죠. 이 역시 지역학의 범주를 넓히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2023년에 제6회 지역학학술회의에서는 지역학의 범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제6회 지역학학술회의의 주제는 ‘경계를 넘어-지역학의 교류와 성장’이었습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성대학교 역사문화학부, 인문과학연구소와 함께 진행했는데요, 특히 교토부립대학 연구자들이 참여해주셔서 국제학술회의로 진행되었습니다. 발표가 다들 흥미로웠지만, 일본 교토부에서 고분을 활용하여 지역활성화를 하려는 노력 등은 지역소멸 위기를 맞이하는 한국사회에 큰 시사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일본에서도 지역학에 대한 연구가 콘텐츠로 전환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이 밖에 한국의 문화유산 활용사례, 성북지역에 대한 새로운 연구, 유럽 지역학의 사례 등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제6회 성북학학술회의 ‘경계를 넘어 – 지역학의 교류와 성장’ 진행 모습

제6회 성북학학술회의 ‘경계를 넘어 – 지역학의 교류와 성장’ 진행 모습

제6회 성북학학술회의 ‘경계를 넘어 – 지역학의 교류와 성장’ 기념사진

제6회 성북학학술회의 ‘경계를 넘어 – 지역학의 교류와 성장’ 기념사진

또한 이번 학술회의에서도 제4회 학술회의와 같이 ‘마을미디어 속 지역학’ ‘지역학 활용, 축제와 사람들’이라는 소주제 발표가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지역학이 활용되는 모습은 여러모로 흥미로웠는데요, 마을미디어 관련 발표에서는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최전선에서 듣는 것의 중요성과 고단함을, 축제관련 발표에서는 지역축제가 갖는 의미와 그 의미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지역학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니 성북문화원은 ‘성북학 학술회의’라는 타이틀로 6번, 그 이전에 8번 해서 지난 10년간 14번의 학술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학술회의는 단순하게 학술적인 연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4년에 열린 「선잠제향의 어제와 오늘」은 선잠단지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했고, 이는 선잠단지의 발굴로 이어져 현재의 선잠단지 정비와 선잠박물관 건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몇 년간 계속 이어진 4.19 학술회의는 4.19의 성북구가 4.19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임을 새로이 인식하는 계기가 됨은 물론 그 속에서 일어난 성북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 사이에 성북학이 무엇인가라는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공간적 범주입니다. 성북이라는 기초지방자치단체는 1948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계속해서 공간의 범위도 바뀌어 왔습니다. 기초자치단체는 탄생하고 그 범위도 변하지만, 지역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결국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현재의 행정구역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접 지방자치단체와의 공동연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조선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 공간적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도시 개발, 이주와 정주 등 다양한 삶의 변화 속에서 전통의 계승과 단절, 새로운 전통의 탄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지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변화가 어떻게 상호 과정을 거쳤는지도 추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 역시 학술회의가 남긴 유산이겠죠.

물론 학술회의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자료를 발굴할 수 있고, 이 발굴은 향후 다양한 모습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어떤 자료가 아직 남아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활용될지 아직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학술회의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학술회의를 통해 새로운 의제들이 발굴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제들은 ‘학술’이라는 장 안에서 다양하게 토론되면서 보다 좋은 의견으로 정제되어 정책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지역학이 다양한 분야가 복합된 학문이니만큼 다루는 주제와 내용도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주제들이 많습니다.

성북학. 여전히 가야할 길이 먼 학문입니다. 하나의 학문체계로서 지역학이 존재할 수 있느냐도 여전히 논쟁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학문을 종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지역학의 어려운 점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현재의 성북학도 여러 학문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성북문화원이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북문화원은 앞으로 성북학 연구에 보다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북학. 여전히 낯선 이름이지만 이 글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지역학에 대해 이해하고, 조금은 재미 없을 수 있는 학문의 영역의 중요성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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