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184] 벽화로 보는 성북구
작성자 김정현
10월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높은 하늘 덕에 평소와 다를 게 없는 거리도 유난히 넓고 공활해 보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일상 속 거리의 한 벽화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3.10.23. 촬영)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3.10.23. 촬영)



동구고 정류장 앞에는 1999년 6월 19일부터 23일까지 ‘전통문화의 거리’ 조성을 위해 한성대학교 교수와 학생들이 그린 담장 벽화가 있습니다. 이 벽화에는 옛 성북구의 여러 모습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북천이 흐르던 모습, 간송 전형필과 태평무 기능보유자인 강선영 , 혜화문의 풍경, 과거 상영했던 영화 포스터 등 다양한 성북구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3.10.23. 촬영)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3.10.23. 촬영)


왼쪽에서부터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옛 성북천 그림입니다.
성북동에 길이 놓이기 전 성북천이 흐르던 모습을 담아내고 있으며

“성북동길로 복개되기 전에는 물이 맑아 물고기도 살았고 큰 다리도 놓여있었음”

이라는 설명 문구도 적혀있습니다.

성북천은 조선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생업의 수단인 마전터, 아낙네들의 빨래터, 아이들의 놀이터 등으로 이용된 성북동 사람들의 중심 생활공간이었으며 이태준, 조지훈 등 근현대 예술인들이 성북동 개천 주변에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그들의 집터를 찾아가보면 성북천의 모습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지만 집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어떤 인물이 거주했었는지, 어떤 예술작품을 남겼는지 등의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성북천 사진 (성북문화원)

성북천 사진 (성북문화원)



1960년대 말 삼선교~성북경찰서 뒤편 총 1,300m를 복개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청계천 합류지역에서부터 보문동 1가 성암교회까지의 구간을 제외한 상류지역을 모두 복개하였는데요, 2002년 성북천 복원·정비공사가 착공되면서 현재는 성북동 성북아파트부터 한성대입구역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원되어 성북천의 물길을 볼 수 있습니다.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1.01.26. 촬영)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1.01.26. 촬영)



두 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벽화는 간송미술관입니다.
간송미술관은 성북구 성북로 102-11(성북동 97-1)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입니다.


간송미술관 전경 (성북문화원)

간송미술관 전경 (성북문화원)




간송미술관을 설립한 간송 전형필은 1906년 종로의 거상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시절 민족문화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한 뒤 오세창의 도움을 받아 문화재의 수집과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고,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고 연구할 장소를 물색하다 현재 성북구 간송미술관 자리에 대지를 마련하였습니다. 오세창은 그곳에 ‘북단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후 1938년, ‘북단장’에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뜻의 보화각이라는 건물을 세우게 되는데 이 보화각이 바로 현재의 간송미술관입니다.

간송미술관이라는 이름은 1962년 전형필이 사망한 후 공백기를 지나 정비과정을 거쳐 1966년 전형필의 호를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후 1971년부터 전시를 시작하여 <훈민정음(국보 70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을 비롯한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다수의 문화재 뿐만 아니라 서화와 도자기 등의 많은 작품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3.10.23. 촬영)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3.10.23. 촬영)

그 옆으로는 성북구의 옛 일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당시 거리를 산책하던 여자와 유모차를 끌고 가는 남자, 그 시절 유행하던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풍선과 인형을 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아이의 신발을 정리해 주는 사람과 그 옆에서 구슬치기를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옛 풍경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해 당시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바로 우측으로는 성북동에 자리 잡고 있던 옛날 식당가의 모습이 이어집니다.
얼음을 판매하는 가게, 여러 안주와 술을 파는 식당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소소하지만 포근한 동네의 일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게 옆 벽에는 당시 상영하던 영화의 포스터가 우체부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1968년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1966년의 영화 <하숙생>의 포스터입니다.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1.01.26. 촬영)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1.01.26. 촬영)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3.10.23. 촬영)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3.10.23. 촬영)


영화 포스터의 다음으로는 혜화문 거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한양도성의 사소문중 하나인 동북의 혜화문.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함”

이라는 설명글도 적혀있습니다.
혜화문 (성북문화원)

혜화문 (성북문화원)


도성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소문으로 불렀는데 1483년(성종 14)에 창경궁을 새로 건립하면서 동문(東門)을 홍화문이라고 명명하자 동소문과 혼동되므로 1511년(중종 6)에 동소문을 혜화문이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기찻길을 내면서 헐렸었지만 1994년 10월에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1.01.26. 촬영)

성북동주민센터.동구고 정류장 벽화 (2021.01.26. 촬영)


가장 우측에 그려진 마지막 그림은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기능보유자인 강선영 입니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춤입니다. 다른 춤 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며 그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절제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돈암동과 성북동에서 활동한 강선영은 ‘강선영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초혼」, 「수로부인」 등 창작무용을 발표하였으며 170여 개국에서 전통 무용을 알렸습니다.
1960년대에는 돈암동에 자리를 잡고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긴 뒤 전수소를 열어 제자들과 일반인들에게 전통춤을 가르쳤으며 1988년 12월 1일 주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 (문화재청)


언제나 지나쳤던 익숙한 거리의 낡은 벽화 안에 담긴 옛 성북구
그 시대를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림 속 풍경은 어째서인지 실제 그 시대를 살았었던 느낌을 줍니다.

보문동 성북천 산책로에도 본문의 벽화와 비슷하게 과거의 모습을 기록한 벽화가 있습니다.
보문동의 3.1만세운동 기념벽화는 1919년 3.1운동 당시 돈암리과 안암리에 살던 주민들이 청량리로 향하던 전차에 투석을 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의지를 담은 격문을 배포하였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북구에는 3.1만세운동 기념벽화, 박경리 가옥 담장 벽화 등 과거를 담은 벽화가 여러 장소에 그려져 있어 거리 박물관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성북마을아카이브에서 성북구의 또 다른 벽화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상으로 금도끼를 마치겠습니다.

3.1만세운동 기념벽화 (성북문화원)

3.1만세운동 기념벽화 (성북문화원)

박경리 가옥 담장 벽화(서울미래유산)

박경리 가옥 담장 벽화(서울미래유산)


참고문헌

『동아일보』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박수진 외 6인, 2015, 『성북동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손정목 외 13인, 1993, 『城北區誌』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성북마을아카이브(https://archive.sb.go.kr/)

관련 마을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