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193] 안암동 궁말
작성자 김정현
‘궁말’은 옛날 안암동 3가에 위치했던 마을의 이름입니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과 그의 아들인 영순군 일가가 살았던 곳이자 정조의 후궁인 원빈 홍씨의 묘소 인명원(仁明園)이 위치해 있었던 곳입니다.
이곳은 조선왕조 때 일어났던 사건인 무인정사가 얽혀있는 장소기도 합니다.
안암동 3가 주택가 (출처: 성북문화원)

안암동 3가 주택가 (출처: 성북문화원)

인명원 터 표지석 (출처: 성북문화원)

인명원 터 표지석 (출처: 성북문화원)

궁말은 광평대군 일가의 사당이 있어 사당말로 불리기도 했으며 궁리(宮里) 혹은 중리(中里)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궁말은 광평대군의 세거지였을 뿐 아니라 태조의 일곱째 아들인 무안군(撫安君)과 그 부인 왕씨, 광평대군과 그 부인 신씨, 광평대군의 아들 영순군과 그 부인 최씨 등 3세대를 봉사하는 사당이 있어 유명했습니다.
경성 및 인천지방 지도(측도연도 1915)에 표기된 안암동 궁리(宮里)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경성 및 인천지방 지도(측도연도 1915)에 표기된 안암동 궁리(宮里)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 사당의 중요 인물 중 한 명인 무안군의 이름은 방번으로, 세자 방석의 형입니다. 태조는 여덟 아들을 두었었는데 여섯 아들은 첫째 왕비인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이었으며 방번, 방석과 경순공주 3남매는 제2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이었습니다.

태조가 조선왕조를 개창할 때 신의왕후는 세상을 뜬 상태였고 마침 방번과 방석의 어머니였던 신덕왕후가 개국에 공을 기여한 덕분에 태조의 신임을 받게 됩니다. 그로 인해 첫째 왕비의 자손이 아닌 둘째 왕비의 자손이자 막내였던 방석이 세자에 책봉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장자(長子) 혹은 개국 과정에 가장 공이 많은 자를 책봉하는 등의 원칙을 분명히 세우지 않았기에 개국 과정에서 가장 공이 많았던 신의왕후의 왕자들, 특히 이방원이 가장 큰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1398년 8월, 정안군 등을 중심으로 하는 왕자들과 하륜·이숙번 등의 일파가 세자를 옹호하는 정도전 등의 일파들이 반란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대신들을 습격하여 살해하며 세자를 내쫓습니다. 이 사건을 ‘무인정사’(戊寅定社) 또는 ‘왕자의 난’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에서 세자 방석이 귀양을 가던 도중 살해당하고, 방번도 함께 숨을 거둡니다. 동복 누이인 경순공주의 남편도 살해당하며 태조는 이러한 참해를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태조가 경순공주의 머리를 직접 깎아 비구니로 출가시켰다는 기록이나 두 아들이 일찍 죽은 것을 슬퍼하여 여러 차례 절에서 불공을 드렸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훗날 세종대왕이 1437년에 하교하여 후사가 없었던 방번과 방석 형제를 위해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을 방번의 후사로,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을 방석의 후사로 정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했습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1437년 7월에 왕이 동교로 나가 농사 현황을 구경하고 수레를 보제원 북쪽 안암동에 있는 광평대군의 새 집에 멈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는 광평대군이 13세 때의 일이며 후사가 된 해이기도 합니다.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그렇게 광평대군은 그 해 안암동 궁말에 무안군의 사당을 지어 살다가 1444년 12월, 천연두를 앓아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이 후에도 후손들은 무안군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며 대대손손 거주했다 합니다.

지금도 안암동에서는 광평대군 일가의 주택과 사당이 있던 마을을 중심으로 윗쪽의 마을을 웃말, 아래쪽의 마을을 아래말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후사를 정해주고 사당을 지어준 인심이 아직도 마을에 남아있는 듯합니다.
이와 같은 조선왕조실록 속 성북구의 이야기는 어쩐지 평소 봐오던 동네가 이질적이게 느껴지며 동시에 한 편의 역사를 살아가는 기분이 들게 해줍니다.
이상으로 이번 금도끼를 마치겠습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향토성북 제2호
우리역사넷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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