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196] 지역의 빛과 소금이 되어 - 종암동 성당 -
작성자 김지훈
주지하듯이 성북구의 종교 시설은 지역성과 역사성을 보여주는 곳이 많습니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뿐만 아니라 민속신앙도 조화롭게 공존합니다. 각 종교는 불우이웃돕기, 자원봉사 등 종교와 사회 간의 유대를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성북구의 종교에 대해서 간단히 개괄해 보면, 개신교는 1908년 미아리교회(현 돈암감리교회)의 설립을 시작으로 해방 이후 늘어났으며, 도성과 가까운 지역인 안암동, 동선동, 성북동, 정릉동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불교는 예로부터 도성과 가까워 왕실의 원찰을 비롯한 많은 사찰을 건립했으며, 현재 도심과 가까운 개운사, 보문사, 길상사 등 주민들의 접근이 쉽습니다. 민속신앙은 성북구 전체 면적의 70%가 산과 구릉지로 이루진 만큼 산신신앙의 전통이 강합니다.
종암동 성당 모습

종암동 성당 모습

마지막으로 천주교는 다른 지역보다 신앙 전파가 늦은 편이지만 각 동별로 성당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번 금도끼 주제인 ‘종암동 성당’ 은 2002년 3월 월곡동성당에서 약 1,700명의 신자가 분리되어 설립했습니다. 2002년 4월 초대 주임신부가 부임했고, 그해 7월 첫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상가건물을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에 임시로 제대(祭臺)를 꾸며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그 후 지속적인 환경 개선 작업을 시작하여 12월 새롭게 단장을 마치고 성전에서 성탄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2003년 4월 본당 첫 세례성사가 있었으며, 39명의 신자가 새 가족으로 탄생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종암동성당은 2003년 9월 14일에 봉헌된 새 건물입니다. 새 성당 봉헌식에는 당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2006년부터 추기경) 주례로 거행했습니다. 새 성당은 대지 165평 연건평 392.6평의 지하 1층 지상 4층 철근 콘크리트조로 4층 대성당을 비롯해 지하 1층 식당과 회합실, 1층 주차장, 2층 회합실과 사무실, 3층 강의실과 사제관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성당 정면 좌측에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인물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면서 나무지팡이를 쥐고 있는 인물은, 바로 종암동본당의 주보(主保, 수호성인)인 땀의 순교자 최양업(崔良業, 1821-1861) 토마스 신부님입니다.

최 신부님은 한국 가톨릭 두 번째 사제로서 마카오에서 신학과 서구사상을 배운 유학생이었습니다. 1849년 중국 상하이(上海) 강남교구에서 마레스카(Maresca) 주교님께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2월 요동(遼東)에서 극적으로 귀국했습니다. 이후 충청북도 진천군 배티성지를 기반으로 천안 이남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삼남지방의 127곳에 달하는 공소(公所)를 모두 도보로 걸어 다녔는데, 한 해 동안 7,000리(약 2,800km)를 걷는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이런 치열한 활동은 과로로 이어졌고, 결국 1861년 과로에 식중독이 겹쳐 선종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가톨릭 신앙을 뿌리내리는데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가톨릭은 모진 박해 속에서도 복음전파의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종암동성당은 가톨릭 서울대교구 중서울지역에서 제4지구인 성북지구에 속합니다. 성북지구는 길음동, 돈암동, 보문동, 석관동, 성북동, 월곡동, 장위1동, 장위동, 정릉4동, 정릉동 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린 종암동까지 11개 성당이 있습니다. 종암동성당을 비롯한 10개의 성당은 성북마을아카이브를 방문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가톨릭신문 제2365호 <서울 종암동본당> 2003년 9월 21일
- 서울주보 제2243호 2019년 8월 15일
- 성북마을아카이브(https://archive.sb.go.kr/)
- 천주교 서울대교구 홈페이지(https://ao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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