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198] 성북구의 화백 장승업
작성자 김정현

어느덧 매화가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 하는 봄이 왔습니다.
매화는 봄에 피는 꽃으로 사군자에 속하기도 하며 옛날부터 많은 그림 속에 등장했습니다.
홍백매도10폭 병풍 (호암미술관 소장)

홍백매도10폭 병풍 (호암미술관 소장)

위 그림은 매화를 주제로 그린 장승업의「홍백매도10폭 병풍」입니다.
장승업은 조선후기 「방황학산초추강도」·「기명절지도」·「호취도」 등을 그렸으며 김홍도, 안견과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꼽힙니다.
이러한 장승업은 말년, 성북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高羲東) 화백과 문인화가였던 김용진(金庸震) 화백이 젊은 시절 장승업과 자주 어울렸을 때 있던 집으로 성북1동 치안센터 뒤쪽에 있던 초가집에서 지냈다고 하며, 산정 서세옥이 20대였던 시절에는 초가집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초가집은 개발이 시작되면서 기록 되지 못한 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1995년 ‘미술의 해 조직위원회’에서 집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했었지만 현재는 성북 예술 창작터에서 보관 중입니다.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알려진 산정(山丁) 서세옥의 인터뷰에도 성북동 장승업 집터에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하루는 서세옥 화백이 김용진 화백과 삼선교를 올라오던 중 참나무 밭에 있는 초가집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용진 화백은 장승업이 살아있을 당시 여러 차례 이 초가집을 방문했었는데, 장승업의 키가 커서 자는 중에 다리로 벽을 밀어내어 사랑채의 한쪽 벽이 밖으로 튀어나와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

성북1동 치안센터 (2024년 3월 촬영)

성북1동 치안센터 (2024년 3월 촬영)

장승업은 일찍이 부모를 잃고 가난한 삶을 살다가 역관(譯官)인 이응헌(李應憲)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였습니다. 이응헌은 그림을 좋아하며 수집하는 것을 즐겼고, 그로 인해 장승업은 자연스레 많은 작품들을 접하게 되며 그림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던 그는 40대에 다다랐을 무렵, 실력을 인정받아 고종(高宗)의 어명에 의해 그림을 그리기도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그림에 소질이 있던 장승업의 호인 오원(吾園)은 다른 이가 지어준 것이 아닌 단원(檀園) 김홍도와 혜원(蕙園) 신윤복처럼 ‘나도(吾) 화원이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지었다고 합니다.
신선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선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장승업의 그림은 성북구에 있는 간송 미술관에서도 소장중이며 국립중앙박물관, 서울대박물관 등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승업의 그림은 어째서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걸까요?

장승업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화가(大畵家)로서 전통화법의 단점을 극복하며 총 결산했습니다. 잊혀져 가던 북종화법을 탐색하며 당시 최신 유행하던 중국 화법까지 참작하여 자신만의 것으로 승화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산수화나 인물화 등 여러 분야에서 양식을 확립하여 후대에 참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통적 기법을 사용한 산수화에서는 동양적 아름다움을 표현하였으며, 인물화에서는 초월적 인간상을 구현했습니다. 기명절지(器皿折枝, 일종의 정물그림)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호취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취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명절지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명절지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러나 장승업은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궁중화원의 자리를 제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예술을 해 나갔는데 이러한 자유로운 모습은 영화 <취화선>(2002)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취화선’은 세속적인 삶을 초월한 천재화가를 ‘술에 취해 그림을 그리는 신선’이라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1850년대 선비 김병문(안성기)가 청계천 부근을 지나다가 거지패들에게 얻어맞고 있는 어린 장승업(최민식)을 구해줍니다. 그들은 5년 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고, 김병문은 장승업을 역관 이응헌(한명구)에게 소개시켜 주며 그의 집에서 일을 하게 해줍니다. 수장가들의 화첩 등을 훔쳐보며 틈틈이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던 장승업의 재능을 알아본 김병문은 선대의 명화가들처럼 훌륭한 화가가 되라는 뜻에서 오원(吾園)이라는 호를 지어준다는 전개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2022년에는 같은 제목으로 장승업의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가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취화선> 포스터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영화 <취화선> 포스터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이와 같이 장승업의 행적은 여러 미디어에서 다뤄질 만큼 독특하면서도 예술성이 짙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예술을 고집하던 장승업의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느낄 겸 그가 다니던 성북동길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요?


<참고자료>

송지영 외 2인, 2009, 성북동 –잊혀져가는 우리 동네 옛이야기를 찾아서1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문화재청
전통문화포털

관련 마을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