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05] 서울미래유산〈돈암동 성당〉의 유래와 문화적 가치
작성자 김지훈
대학교 주변 풍경이 그러하듯, 성신여자대학교 정문에서부터 성신여대입구역까지 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모여있습니다. 상권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돈암시장이 자리하고 있어서 젊은이들의 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젊은이들의 거리와 돈암시장 일대 아래쪽으로 성북천이 흐르면서 상권과 주거지역을 구분해 줍니다. 복잡한 상권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고풍스러운 고딕양식의 건물이 나타납니다. 이번 금도끼의 주제인 돈암동 성당입니다.
돈암동 성당은 성북구 지역의 천주교 신앙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성북구에 천주교 신앙이 전파된 시기는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늦은 편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930년대 후반에서야 미아리 지역에 처음으로 신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까지 미아리 일대의 신앙중심지는 1927년 10월에 설립된 혜화동 본당(당시 相洞本堂)이었으며, 이 지역의 신자들도 혜화동 본당의 사목(司牧) 관할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에 미아리 신자들은 혜화동 본당으로 다니면서 미사에 참례하고, 새로 이주해 오는 신자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지켜나갔습니다. 이 무렵 혜화동 본당에는 파리외방전교회 출신의 싱거(Singer, 成載德) 신부가 제4대 주임신부로 있었는데, 가끔 미아리 일대의 신자들을 방문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아리 신자들은 공소의 성립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성당 전경(2022년)

성당 전경(2022년)

성당 내부

성당 내부

그러나 공소 설립은 단박에 되지 않다가, 1942년에 이르러 공소에 적당한 집이 매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싱거 신부는 본당 설립을 위해 모아 두었던 기금으로 그 집을 매입한 뒤 공소로 설정했습니다. 미아리의 신자들은 공소 설립 후 본격적으로 신앙전파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미아리 일대는 물론 정릉·월곡·장위지역에서 멀리는 수유·우이까지 신앙이 전파되었고, 당시 서울교구의 교구장으로 재임하던 노기남(盧基南, 바오로)주교는 1945년 5월에 신학교(정식명칭: 경성천주공교신학교) 교장으로 있던 신인식(申仁植, 바오로)신부를 미아리 공소로 전임시켜 주었습니다. 이는 미아리 본당(지금의 길음동 본당)의 설립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아리 본당은 지역의 신앙중심지가 되었으나, 초기에는 제대로 된 성당 건물도 없었습니다. 새 성당 건립은 6·25전쟁을 겪고 난 뒤 1957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년 만에 성당을 완공하게 됩니다. 이후 성북구의 주민 수가 증가하면서 천주교 신자들도 여러 곳에 산재하게 되었고, 또 하나의 본당 신설이 요구되었습니다. 그 결과 돈암동 본당의 설립이 이루어졌습니다. 돈암동 성당은 1955년 10월 18일에 혜화동 본당(母本堂)의 세 번째 자본당(子本堂)으로 분가하여 탄생했습니다. 설립 당시 돈암동 성당은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과 돈암동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인계받았습니다.
성당 외부(성북구청, 1993)

성당 외부(성북구청, 1993)

이후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소설 속 배경으로 알려진 돈암동 성당은 1950년대 석조성당을 대표하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이는 6·25전쟁 이후 건축물의 견고성에 역점을 두어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강암을 외벽에 붙인 결과였습니다. 건물의 디자인은 준고딕 양식으로 석조건물에 성곽과 같은 높은 종탑을 세우고 아치형의 문이 안과 밖을 연결하게 했습니다. 또한 성곽 형태의 종탑, 버팀벽, 뾰족아치 등 외관은 고딕양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건물 내부는 강당 형태로 자유스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성모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 성모상은 전통 미감을 계승하고 현대화해 가장 한국적인 종교조각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는 최종태 작가의 작품입니다. 그는 법정스님과의 인연으로 성북동 길상사에 관음보살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돈암동 성당 성모상

돈암동 성당 성모상

돈암동 성당 종탑 앞면

돈암동 성당 종탑 앞면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돈암동 성당은 우리나라 성당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숱한 위기와 난관에 굴복하지 않고 교세를 확장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종교의 힘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맑은 물의 안감내가 복개되었다 다시 개천으로 바뀌어 온 시간만큼 돈암동 성당의 모습도 조금씩 변화되었지만, 외관의 크기, 형태, 재료, 디테일 등 1955년 건립 당시의 모습이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어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돈암동 성당은 건축사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집단과 역사·문학의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재창조될 수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참고문헌
돈암동성당 홈페이지(https://donam.org/)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s://futureheritage.seoul.go.kr/)
성북구청, 『성북구지』, 예문사, 1993.
성북마을아카이브(https://archive.sb.go.kr/)
천주교서울대교구, 『교구총현(敎區總賢)』, 가톨릭출판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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