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12] 성북구의 의류제조업
작성자 오진아
의식주,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를 꼽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옷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많은 옷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요? 우리나라의 의류제조업은 인력의 고령화, 인건비의 상승으로 인해 2000년대 이후 많이 쇠퇴했는데요. 하지만 아직 서울에는 많은 의류 봉제업체가 남아 있고, 이 중 3분의 1은 서울의 동북권인 동대문구, 중랑구, 성북구에 몰려있습니다.¹ 서울의 의류제조업이 이러한 양상을 띠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 갑니다. 6.25 전쟁 이후 광장시장에는 부산 등지에서 구호품으로 들어오던 옷을 파는 의류 도매 상가가 성행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판자촌이었던 청계천변의 판잣집들 2층에는 수많은 의류제조업체가 들어섰습니다. 1960년대 동대문 평화시장이 옷 도매 시장으로 정착하고, 당시 수출산업과 맞물려 의류제조업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동대문 평화시장은 19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이자 의류제조업의 중심지가 됩니다.
1976년 동대문 평화시장(ⓒ 국가기록원)

1976년 동대문 평화시장(ⓒ 국가기록원)

2013년 동대문 평화시장(ⓒ 서울시 미래유산)

2013년 동대문 평화시장(ⓒ 서울시 미래유산)

이 과정에서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의류 봉제 업체들의 밀집도는 계속 높아졌고, 점차 평화시장과 교통이 편리한 가까운 주변 지역으로 영세한 하청 업체들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성북구 보문동, 장위동, 석관동, 종암동을 중심으로 소규모의 봉제업체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장위동에 50년 넘게 거주하신 박순자 님은 1970-80년대 장위동에 봉제공장들이 들어오던 때와 지금 남아 있는 봉제업체에 대해 이렇게 구술해 주셨습니다.


● 봉제공장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가요?
“공장들이 그전에부터 있었는데, 한 80년도 지하 파고부터 더 많이 생겼어요. 지금은 우리나라도 살기가 좋아져서 지하에 잘 안 살려고 하잖아요. 그럼 그런 데에 봉제공장이 들어가는 거예요. 지금도 많아요. 지하는 전부 봉제 업체예요. 어디 몰려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니다 보면 누구 집이고 간에 지하 있는 집은 다 봉제예요. 또 공장이 큰 곳은 무슨 홀이나 옛날 목욕탕으로 쓰던 곳에 크게 차리기도 해요.” -김미경 외 5인. 2023. 『내 좋은 게 다 좋은 거야: 장위동 효부 박순자의 삶』. 성북문화원 -
2020년 기준 보문동 159개, 장위2동 150개, 석관동 149개, 종암동 136개 업체가 있다. (ⓒ성북 공공데이터플랫폼)

2020년 기준 보문동 159개, 장위2동 150개, 석관동 149개, 종암동 136개 업체가 있다. (ⓒ성북 공공데이터플랫폼)

1980년대 형성된 장위동 봉제공장단지는 2002년 월드컵 때 온 국민이 입고 응원했던 ‘Be the Reds’ 티셔츠를 제작하며 크게 활기를 띠기도 했는데요. 티셔츠 원단인 저지를 전문으로 취급하던 장위동 봉제공장들은 질 좋은 티셔츠를 대량으로 만들었고, 밀려드는 주문에 밤낮으로 재봉틀을 돌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호황이 계속되면 좋았겠지만, 월드컵이 끝난 후 점차 제작비 경쟁에서 중국에 밀리고, 주택 재개발로 인해 크고 작은 봉제업체들이 원래 자리를 떠나면서 예전만큼 위용을 뽐내진 못하고 있습니다.
2017년  장위동 봉제공장 지도 (ⓒ 서울시 미래유산 봉제양명) 2024년 현재 장위4·10구역 일대 봉제공장 상당수는 이전하거나 사라졌다.

2017년 장위동 봉제공장 지도 (ⓒ 서울시 미래유산 봉제양명) 2024년 현재 장위4·10구역 일대 봉제공장 상당수는 이전하거나 사라졌다.

2019년 촬영한 봉제공장 사원 모집 전단(ⓒ성북마을아카이브)

2019년 촬영한 봉제공장 사원 모집 전단(ⓒ성북마을아카이브)

성북구 장위로 102에 있는 소규모 봉제공장 입구(ⓒ성북마을아카이브)

성북구 장위로 102에 있는 소규모 봉제공장 입구(ⓒ성북마을아카이브)

하지만 의류제조업은 여전히 성북구 제조업 분야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의 대표 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북구는 산업 인력의 고령화와 열악한 작업환경 같은 의류봉제산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봉제업장들이 밀집된 보문동에 봉제상공인을 지원하는 센터를 설립합니다. 2018년 패션봉제지원센터(청년패션창업큐브)을 시작으로 2021년 성북 스마트패션산업센터를 개관, 센터를 통한 최신 장비 임대, 교육 지원, 성북구 패션봉제공동브랜드 런칭 등의 노력은 글로벌 유통 판로의 개척과 청년 기업의 성장으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패션봉제지원센터 개관식(ⓒ성북구청)

패션봉제지원센터 개관식(ⓒ성북구청)

성북스마트패션산업센터(ⓒ성북구청)

성북스마트패션산업센터(ⓒ성북구청)

긴 세월 봉제공장에 불을 밝힌 자들이 쌓아온 노동의 가치를 따사로운 시선으로 노래한 김태정 시인의 「해창물산 경자언니에게」를 소개하며 시대의 변화 속에 꺼져가던 의류제조업이 꾸준한 관심과 지원 속에 다시 살아나길 기대해 봅니다.


개천 건너엔 여직 환한 공장의 불빛/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실밥을 따고 아이롱을 달구는 당신/ 늦게 나온 별처럼 깜빡깜빡/ 고단한 두 눈이 졸음으로 이울고/ 숨차게 돌아가는 미싱 소리에 이 밤은/ 끝도 없을 것 같아도 (중략)

보세요 당신/ 그 거친 손에서 달구어진 아이롱처럼/ 이밤사 순결하게 달아오른 별들을/ 따버린 실밥들이 하나 둘 쌓여갈 때마다/ 활발해지는 이 어둠의 풍화작용을/ 보세요, 땀방울 하나 헛되이 쓰지 않는 당신/ 누구의 땀과 폐활량으로 오늘밤/ 하늘의 사막에 별이 뜨는지


미주
1. 2019년 기준으로 서울에는 2,519개의 봉제업체가 있고 이중 동대문구(13.6%), 중랑구(11.1%), 성북구(8.9%), 종로구(7.8%), 중구(6.5%) 순으로 봉제업체가 몰려있다.(정재우. 2022. 「국내의류봉제업체의 현황 연구: 성북구 장위지역을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 연구』 30. 222쪽.)


참고 자료
강제훈 외 4인. 2018. 『성북구 3. 보문동 안암동 종암동』. 서울역사편찬위원회
김미경 외 5인. 2023. 『내 좋은 게 다 좋은 거야: 장위동 효부 박순자의 삶』. 성북문화원
성북구. 2024. 『2024 민선8기 2주년 성북백서』. 성북구청

주은선. 1999. 「평화시장 근처의 의류 생산 네트워크와 지역 노동자의 경제생활 변천에 관한 연구 : 1970년대부터 1998년까지」. 『서울학연구』 13.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정재우. 2022. 「국내의류봉제업체의 현황 연구: 성북구 장위지역을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 연구』 30. 세명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성북 공공데이터 플랫폼(https://sbdata.sb.go.kr/seongbuk/)
봉제양명(https://bongjaeyangmyeong.modoo.at/)
서울미래유산(https://futureheritage.seoul.go.kr)
성북구청 공식 블로그(https://blog.naver.com/storysb/222641301488?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서정민. '2002 월드컵' 티셔츠 만들었던 장위동 봉제공장을 아시나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639077(중앙일보. 2019.11.22.)
정수현·이종호·차현진. 'Be the Reds' 낳은 서울 장위동...뉴타운 이슈만 '15년째' 언제쯤 재개발될까?. https://www.sedaily.com/NewsView/1Z5E1QLDGX(서울경제, 20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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