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14] 우리 곁에 남아있는 오목사우나
작성자 김지훈
목욕탕은 입학과 졸업, 설과 추석 등 특별한 날을 앞두고 연례적으로 가는 곳이었습니다. 멀리 주택가 지붕 틈새로 높게 솟아있는 목욕탕 굴뚝을 보면 하루의 고단함이 온탕 속에 녹아버릴 것 같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오래된 작은 냉장고 안에는 우유와 이온음료 등이 우리를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목욕탕은 대형 사우나의 보급과 집집마다 설치된 욕실의 발달로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즉 1990년대 아파트가 대량 보급되어 집 안에서도 간단히 목욕이 가능해졌고 동네 목욕탕이 사라지는 대신 고급 사우나와 대형 찜질방이 수요를 흡수했던 것이지요.
오목사우나

오목사우나

2020년 코로나 확산 이후에는 목욕탕발 코로나 감염이 늘면서 수요가 더욱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비말차단 장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같은 공간에서 목욕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질병 감염 최적의 조건이었던 셈입니다. 방역을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생각했고 목욕탕 출입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2022년에는 방역 규제가 풀려 목욕탕의 회복을 기대했지만, 금리상승과 난방비 폭등으로 인해 코로나 당시만큼 어려운 위기에 처한 상황입니다. 손님이 줄어든다고 관리 비용이 줄어드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영업을 할수록 손해가 쌓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암동 골목에는 아직 불을 켜고 사람들을 맞는 목욕탕이 있습니다. 바로 오목사우나입니다. 코로나 이후 가장 타격을 받은 업종 중 하나가 동네 목욕탕이지만, 오목사우나는 당당히 세워진 굴뚝과 함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오목사우나는 1971년 10월 30일에 개업을 했으나 지금 사장님이 2002년에 목욕탕을 인수하여 지금까지 영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북구청에서 보문역 방향으로 성북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천 맞은편으로 굴뚝이 높이 솟아있어 단박에 목욕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오목사우나 건너편으로 재개발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굴뚝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견뎌 온 이곳은 보문역을 중심으로 안암동·보문동 일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욕탕인데요, 종종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라 나름 알려진 곳입니다. 2003년도 개봉작〈조폭마누라2〉에 등장했고, 2020년 하반기 드라마〈펜트하우스〉도 촬영한 곳입니다. 이처럼 오목사우나는 단순히 오래된 목욕탕을 넘어, 정겨운 이야기와 특별함이 있습니다. 최근 목욕탕이 많이 폐업하거나 대형화된 현시점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오목사우나 전경

오목사우나 전경

오목사우나 전경

오목사우나 전경

이미 언급했듯이, 인구 감소로 수요가 줄고, 고급 사우나에 밀려난 데다, 코로나까지 덮쳐 동네 목욕탕이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행정안전부의 전국 목욕장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대중목욕탕 수는 2004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2004년 3월 기준 9,970곳이던 목욕탕은 2023년 1월 5,991곳만 남았습니다. 이는 공동탕, 사우나가 합쳐진 찜질방, 관광호텔사우나, 한증막 등 행안부가 목욕장업으로 분류한 모든 형태의 목욕탕을 합한 수치입니다. 코로나 확산세가 심했던 서울에서는 2019년 940곳에서 2년 만에 768곳으로 줄었습니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은 어떠할까요? 대부분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았지만, 부산의 소막마을은 재개발 사업으로 마을 목욕탕 3곳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소막마을은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정착해 생겨난 마을이라, 최근까지도 샤워시설이나 온수장비를 갖추지 못한 집이 많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씻는 문제를 넘어 주민들의 위생과 주민 복지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목사우나 입구

오목사우나 입구

오목사우나 카운터

오목사우나 카운터

수도꼭지만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오는 아파트와 달리, 목욕을 위해 물을 데우는 노력이 필요한 집도 있습니다. 물론 목욕탕은 위생뿐만 아니라, 휴식 제공과 지역공동체의 소통 장소로서의 역할도 했습니다. 목욕탕은 언젠가 사라질까요? 아니면 고급 사우나와 대형 찜질방으로 재편될까요? 최근 1인 세신샵이 늘어나는 등 이런저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곁에는 오목사우나처럼 새벽 5시부터 문을 여는 목욕탕이 존재합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 목욕탕이 있다면, 목욕탕은 꽤 오랫동안 온기를 축적 해가며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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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이인혜,『목욕탕: 목욕에 대한 한국의 생활문화』, 국립민속박물관, 2019.
구정숙,「주민기록단 활동기록」안암동 오목사우나, 2022.10.21.
더해진,『본때를 보여 줘, 우리가 사랑한 목욕탕』, 청주문화도시조성사업, 2022.
조선일보,「사라지는 목욕탕, 원정 떠나는 사람들...아픈 다리 원없이 담가봤으면」, 2022.2.12.
조선일보,「2030은 거들떠도 안보는데... 찜질방 먹여 살리는 새 손님은」, 202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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