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빌리고 싶을 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점을 봅니다. 요즘은 타로나 사주카페, 혹은 온라인 점집이 많이 등장했지만, 옛날에는 역학촌에 가 미래를 점쳐보곤 했습니다. 1970~80년대에 성북구의 미아리고개 역학촌은 미래를 엿보고 싶은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곳이었습니다.
미아리 점성촌의 모습(1990) ⓒ성북구청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자녀가 시각장애인이 되면 부모는 아이가 역학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점복을 업으로 삼아 생계를 이었다고 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점복업에 종사하는 것은 한국과 중국 전통시대의 공통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한국의 시각장애인 점복사들만이 행하던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주 국가나 왕실의 명령을 받아 행하기도 했는데요, 바로 ‘독경(讀經)’입니다.
판수경닉는모양 ⓒ국립민속박물관
서울맹인독경 ⓒ국가유산청
맹인들의 독경은 여러 경문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병을 낫게 해주거나, 액을 막아주는 등의 목적으로 하는 전통 신앙 의례입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아주 일부에서만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경은 ‘서울맹인독경’이라는 이름으로 2017년 1월 5일에 서울특별시 무형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채수옥(1940-2022)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가 단체로서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는 한국 시각장애인 역학사들을 주축으로 미아리고개 역학촌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단체입니다. 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에서는 1978년, 정릉 앞에 ‘북악당’이라는 이름의 경당을 설치하여 매년 말 의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연 1회 정기공연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지난 11월 6일 수요일에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서 서울맹인독경 정기공연이 있었습니다.
제5회 서울맹인독경 정기공연 리플릿과 점자가 쓰여진 정기공연 식순 안내문
이날 했던 독경은 가내가 평안하기를 바라며 진행하는 안택경이었습니다. 안택경은 ‘분향주-고향게-축원-부정풀-천수대다라니-배청-창사성-각집게-명당경-도액경-언별-연수경-성주대잡이-성주선경-자음성-제석선경-용허경-산물진언’ 등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공연에서는 약 90분이라는 시간에 모두 끝나도록 본래보다는 짧게 경을 했습니다.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당주와 고수의 분향주로 시작해서, 당주의 독창, 독경 또는 독경인 전원이 함께 합송하거나 당주의 선창, 독경인 후창 등의 다양한 순서와 방법으로 독경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독경의식을 진행하는 내내 당주와 고수, 독경인이 모두 함께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주 혼자 북을 치며 행하거나, 당주와 성주대를 잡는 대잡이가 함께 하는 의식,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서서 외는 경문(선경)도 있어 공연의 재미가 더해졌습니다.
당주가 혼자 북을 치며 행하는 자음성
당주와 대잡이가 함께 진행하는 성주대잡이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서서 하는 제석선경
독경 소리에 자세히 귀 기울이면 대한민국 서울에, 이곳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액을 막고 복을 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우리의 전통이지만 그 내용만큼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잘 전해집니다. 때로는 작게, 때로는 북, 종소리와 함께 공간을 가득 채우는 독경 소리는 금방이라도 화가 물러나고 큰 복이 들어올 것만 같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에게도 독경의 힘이 함께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금도끼를 마치겠습니다.
[참고자료] 박수진 외 5인, 2014, 『미아리고개』, 성북문화원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역사문화재과, 2020, 『서울맹인독경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 서울특별시 성북마을아카이브, 서울맹인독경, https://archive.sb.go.kr/isbcc/home/u/story/view/33.do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서울맹인독경,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Kdcd=22&ccbaAsno=00480000&ccbaCtcd=11&pageNo=1_1_1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