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27] 선잠단지 지킴이 30년 이만규 님의 이야기
작성자 오진아
성북문화원은 지역 연구의 성과를 정리하는 다양한 책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이 중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는 성북문화원의 대표적인 간행물입니다. 2020년부터 매년 선보이고 있는 이 시리즈는 성북구 주민기록단과 함께 제작하는 책으로 성북구에 오랫동안 거주하신 어르신의 삶과 지역의 역사를 그분의 입을 통해 듣고 채록함으로써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특히 그 과정을 주민기록단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는 공동체아카이브를 지향하는 성북마을아카이브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보물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앞으로 10회에 걸쳐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를 한 권 한 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소개해 드릴 분은 성북동의 이만규 님입니다
1979년 성북동에 정착하여 47년째 거주하고 계시는 이만규 님은 선잠단지 지킴이와 선잠제보존위원회 활동을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키는 데 일조하셨습니다. 1950년 충남 서천군에서 태어난 이만규 님은 1960년대 후반, 아직 스물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일을 찾아 고향을 떠나 도착한 서울에서의 첫날 밤을 이렇게 회상하십니다
이만규 님

이만규 님

“서울에 어두워져서 도착했을 거예요. 저 돈암동 미아리고개, 그 산동네를 걸어서 올라 가지고 하룻저녁인가 이틀 저녁 자고 다른 곳으로 갔었죠. 울었어요, 첫날은. 미아리고개 딱 그 산꼭대기서 보니까 참 고향이 그립고, 부모가 당장 보고 싶고 그립더라고요. 뭐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지죠.”
1960년대 미아리고개(Ⓒ서울기록원)

1960년대 미아리고개(Ⓒ서울기록원)

1960년대 미아리고개(Ⓒ서울기록원)

1960년대 미아리고개(Ⓒ서울기록원)

이후 액자 틀을 만드는 공장에 취업한 이만규 님은 그 이후 줄곧 이 계통으로만 외길을 달려왔다고 하시는데요. 공장 작업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성실히 일하셨고, 결혼 후에는 미아리고개에 신혼집 옆 작은 공장을 마련해 직접 액자를 만들어 팔며 살림을 꾸려나가셨다고 합니다.

“월급이 우리 쪽이 약했어요. 와이프한테 그걸 갖다주는 게 조금 미안하고 쑥스러운 거야. 그래서 이제 그 뒤편에 집 옆에 공간이 있어서 거기서 내가 기술이 있으니까 액자 만드는 공장을 시작했어요.”

1979년 성북동으로 이사와 함께 차린 가게를 아직도 운영하고 계시는데 액자를 만들어 팔다 표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습니다.
이만규 님이 운영 중인 제일사 외관

이만규 님이 운영 중인 제일사 외관

가게 내부에 있는 액자들

가게 내부에 있는 액자들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

“액자를 하다 보니까 손님들이 와서 (표구를) 해달라고 그래요. 그러면 우리 집에 맡긴 일을 다시 맡아서 해주는 집이 있었어요. 조금 저렴하게. 그러면 우리는 거기다 좀 붙여서 손님한테 받는 거죠. … 그걸 갖다주고서 이러고 너머로 쳐다보고, 또 이러고 쳐다보다가 표구도 배웠어요. 그래서 내가 하는 거예요. … 그리고 또 모르는 거는 공장에 일 갖다주면서 어깨너머로 보면서 ‘야 저거 어떻게 해야 되지’하고 보고 와서 내가 실험해 보고, 실습해 보고 해서 한 거예요. 표구는 원래는 못 했는데 그런 식으로 배웠어요. 그냥 어깨너머로 액자 일 하는 데서 점원 생활을 하면서 이제 자동으로 습득하는 거죠.”

제조·표구 분야의 직업인으로써 오랫동안 종사하고 계시는 이만규 님이 선잠단지와 연을 맺게 된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 당시 선잠단지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마찬가지로 수선 가게를 하며 선잠단지 지킴이를 하시던 할아버지께 지킴이일을 물려받으며 시작된 것입니다.
2014년 선잠단지(Ⓒ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2014년 선잠단지(Ⓒ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2014년 선잠단지(Ⓒ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2014년 선잠단지(Ⓒ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그리고 옛날에는 지킴이가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그 할아버지가 하시다가 연세가 많으니까, 저보고 “자네가 전주 이가라니까 자네가 하게.”, 그 양반도 전주 이씨였거든요. … 그 말씀도 맞더라고요.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던 거 뒤에서 협조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윗분들 이어서. 그래서 하게 된 거예요.

선잠단지 지킴이를 후손 된 도리로 선조 뜻을 이어받는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처럼, 선잠제보존위원회에 참여하고 선잠제를 복원시킨 것도 특별한 역사적 사명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 동네 분으로 했었죠. 거의 동네에서 가게 하고, 동네에 있던 분들이에요. 그리고 이런 모임에 뜻을 갖는 사람들이지. … 옛날에는 동네잔치였어요. 오면은 국수 한 그릇씩하고, 막걸리 한 사발로 먹고 갔으니까.”
1998년 선잠제향

1998년 선잠제향

2009년 선잠제향 행렬

2009년 선잠제향 행렬

이만규 님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킴이와 선잠제 보존위원회로 활동해 오신 것 외에도 성북동에서 향우회, 청소년 육성회, 새마을운동중앙회 등 다양한 지역 단체와 친목회에 참여하셨는데요. 이만규 님에게 이렇게 꾸준히 지역 활동을 이어나가는 이유를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객지 나와서 모임이라는 거는 그러니까 타지역 사람과 이제 교류 하는 거잖아요. 업종이 달라도 얘기도 듣고 교류도 하니까 객지 나와서 객지 친구를 만나고 그런 게 좋았던 것 같아요. 한 번은 딱 이런 게 있었어요. 우리 서천군 사람이 새마을에 네 명이 있었어요. 그게 참 힘든 건데, 한 1, 2년인가는 네 명도 있었어요. … 그런 게 반갑고 좋은 거죠.”
2022년 수상한 새마을기념장증

2022년 수상한 새마을기념장증

 2024년 선잠제 봉행 당시

2024년 선잠제 봉행 당시

이만규 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는 힘이 동네 대소사를 위해 내 힘을 보태겠다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역 사람들의 삶을 듣는 일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공동체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게 합니다. 책에는 아직 소개해 드리지 못한 에피소드들이 많은데요. 그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면 성북마을아카이브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만규 님의 이야기가 담긴 책은 1월 중으로 성북마을아카이브에서 공개될 예정입니다.

관련 마을아카이브

  • 선잠단지
    이야깃거리
    선잠단지
    분류: 장소
    시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