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의 주인공은 통영에서 태어나 서울로 온 뒤, 성북에서 오래도록 미용 생활을 이어 나가고 계신 미용사 한정숙 님의 이야기입니다.
한정숙 님, 2020, 성종윤 촬영 ⓒ성북문화원
한정숙 님은 삼선동의 희미용실에 일류미용사로 일하게 된 이래로 52년간(발간 당시 2020년 기준) 성북구에서 미용 생활을 이어오셨습니다. 1945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난 한정숙 님은 어린 시절 오래 아팠던 탓에 다리를 절게 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교육하고, 활발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셨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미술대학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입시결과가 좋지 않았고, 대안으로 미용학교에 진학하게 되셨습니다.
“우리 이모도 조언을 해주셨어요. 몸이 아프니까 기술이 있는 편이 더 좋겠다, 그림이나 디자인도 좋지만 실질적인 기술을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정화(정화미용고등기술학교)로 간 거예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다양한 기술을 열정으로 지도하였습니다. 한정숙 님은 많은 연습과 배움 끝에 학교를 졸업하며 미용사 자격증을 획득했습니다. 비로소 미용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을지로6가와 금호동에서 보조로 일하다가 삼선교의 희미용실, 보문동에 있는 지연미용실로 옮겨가며 수련 생활을 했습니다. 지연미용실 사장님이 가게를 내놓자 인수한 뒤 미국에서 생활하던 큰 오빠의 추천으로 ‘바니’를 넣어 바니미용실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지연미용실로 하니까 손님이 좀 없는 거 같애. 그 이후로 계속 바니헤어 이름으로 하고 있어요. 중간에 ‘룩인헤어’라는 이름도 썼고요. 성북구에서는 바니미용실이 나의 렛테루(레테르 혹은 상표), 나의 분신같이 되었어요.”
보문동5가 252-1 바니미용연구실 앞에서 지인과 함께 찍은 사진, 한정숙 제공
2020년 당시 바니미용실 내부 모습 ⓒ성북문화원
한정숙 님은 보문동과 돈암동을 옮겨가며 바니미용실을 꾸려오셨습니다. 바니미용실을 꾸려왔던 여러 동네 중에서 보문동5가에서 가장 기억이 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바니미용실의 위치를 지도로 그린 그림, 조성윤 그림
“제일 애착이 가는 거는 동네 주민들하고 같이 더불어서 생활하면서 재미있게 지낸 그게 제일 기억에 남지. 보문동5가에서 할 때가 손님도 많았지만은 주로 가정적이고 동네 분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미용을 하는 그런 재미가 있었어요. 그때는 동네 분들이 다 언니 같고, 동생 같고, 부모 같고.”
한정숙 님이 추억하는 손님들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서로 근황을 나누는 아주머니들부터, 동네 유지 사모님, 버스회사 사장님의 부인, 교수의 부인 같은 사모님들, 요정에 출근하는 아가씨들, 연예인 백설희 씨, 임예진 씨가 바니미용실에 들러 한정숙 님의 손에 머리를 맡겼습니다. 소개를 받고 오는 손님들은 단골이 되고, 몇몇 분은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바니미용실을 찾아왔습니다.
“보통으로 한 40년 넘게 한 사람들이 지금 몇몇 있어요. 오래된 단골손님들이…. 그분들 머리는 다른 사람이 못 만져요. 왜냐면 쇠로 갖고 하는 쇠고데. 지금은 다 전기 고데로 하잖아요? 근데 그 쇠고데로 하는 그 기술은 젊은 사람들은 못해요”
오랜 시간 성북에서 미용사로 활동하신 한정숙 님의 자녀분들 또한 성북에서 성장했습니다. 심지어 모두 한정숙 님과 같이 미용 일을 하고 계십니다. 비달사순(헤어스타일링 브랜드로 헤어디자인 교육과정을 운영한다.)에서 공부한 따님은 메이크업 일을, 골프 공부를 하다 그만둔 아드님이 미용 공부를 하며 현재는 미용과 교수로 재직 중인 것이 모두 자신의 영향이 있었으리라 설명하십니다. 또, 오래 운영한 바니미용실은 며느님이 물려받아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현재는 김민정헤어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대한미용사회 성북구지회 86년도 정기총회 모습이 담긴 사진, 한정숙 제공
대한미용사회 성북구지회 1987년도 시무식 모습이 담긴 사진, 한정숙 제공
한정숙 님은 미용사로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동시에 대한미용사회 활동까지 미용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갔습니다. 보문동이 동대문구였을 시절부터 구역장, 이후에도 성북구 지회장, 상임이사, 이사를 맡으며 미용사의 권익과 보호에 힘썼습니다.
“보문동 식구들이 나를 잘 따라줬어요. 그니까 단합이 잘 된 거지요. 그래서 재밌게 잘 지낸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때부터 미장원 원장들을 잘 통솔하며 친목을 도모하곤 했어요.”
52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북에서 미용계에 이바지한 한정숙 님의 삶 사이로 함께 살아온 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그 밖에도 국내외 미용대회에 출전하거나, 강사로 활동하며 교육하는 등 한정숙 님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성북마을아카이브에서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