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230] 월곡동에서 50년, 박두순 이야기
작성자 민문기
금도끼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 이번 주 소개해 드릴 분은 월곡동에서 50년을 거주하며 지역의 변화를 직접 겪으신 박두순 님입니다.
1951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태어나 농부의 아들로 자란 박두순 님은 군 복무를 마친 직후인 1975년 상경하여 월곡동에 정착하였습니다. 고향을 제외하면 연고지가 전혀 없었기에 당시 처형이 살고 있던 월곡동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박두순 님 (Ⓒ 성북문화원)

박두순 님 (Ⓒ 성북문화원)

“우리 처형도 월곡동 산동네에 집을 지어서 살았거든요. … 산동네에 줄을 쳐놓고 터를 닦아놓고. (그러면) 그 당시에는 내 땅이라고 하면 자기 땅이니까요. 그렇게 정해놓고 벽돌을 날라서 집을 지어서 그렇게 살았던 거죠. 우리가 오기 한 몇 년 전부터 이미 와서 살았어요.”
박두순 님이 처음 자리 잡을 당시 월곡동은 산동네로 주거 환경이 열악했으나 가족과 함께 적응해나가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였습니다.

“(처음 월곡동에 왔을 때에는) 전세방에 들어갔는데, … 방 한 칸에 신발 벗고 올라가는 곳인데 신발도 그냥 밑에다 대충 넣고 올라가는 그런 집이었죠. 거기에 연탄아궁이가 있어서 거기다가 냄비 놓고 밥해 먹고요, 두꺼비집이라고 해서 이렇게 동그란 거 덮어놓는 거. 그게 불길이 방으로 들어가거든요. 그런 집에 살았죠.”
“그 당시 개천(월곡천)이 바로 옆에 있어서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역류(逆流)가 돼가지고 막 물난리가 나고 그랬죠. 그 당시는 물이 좋은 물이 아니었어요. 하수 처리가 잘 안되고 뭐 우수(雨水)와 가정집 하수였죠.”
1990년대 월곡동 전경(Ⓒ 김홍윤)

1990년대 월곡동 전경(Ⓒ 김홍윤)

상경한 박두순 님은 이후 피혁 관련 업체에 취업하여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월곡 홈플러스(화랑로 76) 부근에 있던 성우통상과 월곡영광교회(오패산로10길 27) 앞에 있던 조광피혁에서 가죽을 재단하고 다리미 작업을 맡아하였습니다. 조광피혁이 있었던 위치를, 그리고 그 부근에 대하여 박두순 님은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조광피혁은) 1공장은 지금 신동신아파트(오패산로3길 17) 자리에 있었고, 2공장은 영광프라자(오패산로10길 30) 쪽에 있었죠. 공장이 한 개가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그만큼 규모가 컸다는 거죠. 저 신동신아파트 자리에 같이 있었던 게 이제 대근염직이라고 염색공장이 있었어요. 구동신아파트(오패산로 47) 자리에 해외섬유라고도 있었고요. 그쪽에 아예 공장이 다 모여있었다고 생각하면 되죠.”
이러한 박두순 님 생애에서 중요한 부분은 월곡동을 위해 헌신한 점입니다. 그는 1990년 경 월곡4동(2007년 재개발 이후 월곡1동으로 통합) 13통 통장에 취임하여 재개발될 때까지 20년 가까이 월곡4동 동네를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특히 통장으로서 주민들의 불편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으며, 새마을협의회와 방재단 활동 등을 통하여 동네 환경 개선 및 자연재해 대비 활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장마철에 빗물받이에 담배꽁초 같은 거 긁어서 파내고 비 오면 냄새난다고 뚜껑 덮어 놓은 거 물 빠지라고 빼기도 하고 그런 활동들을 했죠. 말 그대로 마을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하죠. 지금도. 그리고 옛날 새마을협의회에서도 수해 난 지역 가서 직접 수해민들 돕기도 하고 그런 봉사들을 해요.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도 돕는 활동을 하고 그래요.”
월곡4동 동사무소. 위치는 오패산로10길 19로. 현재 성북구육아종합지원센터 월곡이 자리잡고 있다.  (1996년 촬영, Ⓒ 성북구청)

월곡4동 동사무소. 위치는 오패산로10길 19로. 현재 성북구육아종합지원센터 월곡이 자리잡고 있다. (1996년 촬영, Ⓒ 성북구청)

박두순 님 통장 위촉장(Ⓒ 박두순)

박두순 님 통장 위촉장(Ⓒ 박두순)

박두순 님은 언제나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살다 보니까 동네를 위해서 하는 거죠”라는 말과 함께 봉사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월곡동이라는 동네를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삶의 터전이자 공동체로 여겼으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게 다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 거죠. … 동네를 위해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 같은 것도 다 여기서 나오는 거죠. 사람들과 만나고 거기서 봉사정신으로 같이 봉사도 하고 뭔가를 한다는 게 하나의 행복이기도 하고. 이제는 늙어서 그게 참 힘들지만요.(웃음)”
청소년유해환경 척결 운동사진(Ⓒ 박두순)

청소년유해환경 척결 운동사진(Ⓒ 박두순)

월곡동 친목회 단체사진(Ⓒ 박두순)

월곡동 친목회 단체사진(Ⓒ 박두순)

박두순 님이 살아온 50년 동안 월곡동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작은 집들이 가득하였던, 이른바 산동네로 불렸던 월곡동 일대는 1990년대 이후 재개발이 진행되며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오늘날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 월곡동에 대해 박두순 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이 좋아졌다. 진짜로 월곡동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진짜 그 산동네가 재개발이 돼서, 그러니까 2단, 3단으로 깎아내고 해서 아파트가 생긴 거니까. 아파트 살면서 같은 단지 내에 살고 있는 옛날 원주민분들께서 행복한 모습을 볼 때면 저도 정말 행복합니다.”
재개발 전 월곡4동의 모습(Ⓒ 김홍윤)

재개발 전 월곡4동의 모습(Ⓒ 김홍윤)

월곡동, 그리고 이웃 사람들에 대한 애정 하나로 꾸준히 동네를 위해 활동하신 박두순 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월곡 지역의 변화가 눈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책에는 이외에도 소개해드리지 못한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성북마을아카이브 홈페이지 '박두순'님 페이지를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s://archive.sb.go.kr/isbcc/home/u/item/view/16395.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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