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 8번째 주인공인 성북구 성북동 북정마을에서 토박이로 살아오신 이승규 님의 이야기입니다.
이승규 님, 2021, 남윤중 촬영 ⓒ성북문화원
이승규 님은 북정마을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어린 시절 초가집에서 가족들과 초가집에서 사셨습니다. 집안에 식구가 많았기 때문에 좁게 살아야 했죠.
“집에 방이 세 칸인데 방 한 칸을 세줬어요. 집이 18평인데 마당이 작게 있었지만, 집이 좁았어요. 부엌 위 다락에서도 살고 지하방에서도 살고 그랬죠.”
이승규 님의 집, ⓒ이승규
힘든 시기를 보낸 이승규님. 하지만 현재는 북정마을에서 보낸 추억들이 머릿속에 소중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주로 ‘숨바꼭질’을 많이 했었어요. 왜냐하면 동네에 큰 도로가 없었고 골목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숨기에도 좋았어요. 다음으로는 ‘말까기’, ‘깡통놀이’, ‘썰매’, ‘대나무 스키타기’, ‘방구방구 다방구’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했죠.”
어렸을 적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이승규
동네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이승규
북정마을에서 ‘양씨네 가게’, ‘병대네 가게’라고 불리는 구멍가게가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병대네 가게에 가면 주인인 할머니가 어린 이승규 님을 정겹게 반겨주셨다고 합니다. 주인 할머니는 가게에 오시면 이승규 님의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이야기에 따르면 이승규 님의 할머니는 엄청나게 깔끔하셨다고 하십니다. 항상 마루를 많이 닦으셔서 마룻바닥이 빛날 정도였다고 하죠. 이러한 성향을 이승규 님의 아버님이 물려받아서 ‘깔끔이 모자’라고 불릴 정도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어느 정도 깔끔했냐면, 저랑 같이 목욕탕을 가면 엄청 아프게 때를 밀어요. 목욕탕에 가서 씻은 다음에 집에 가잖아요? 보통 목욕탕에 갔다가, 집에 도착하면 그냥 들어가는 것 아닌가요. 근데 아버지는 항상 손발을 씻고 들어가세요. 할머니는 항상 마루를 많이 닦으시고 해서 마룻바닥이 빛날 정도였어요.”
이 밖에도 북정마을에 대한 기억을 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승규 님이 태어나기 전에 북정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어머니가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하죠. 어머님은 시집오고 북정마을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성북초등학교 부근에 ‘마전터’라는 곳에서 베를 삶고 염색을 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부촌이지만, 예전에는 공터였다는 것이죠. 어렸을 적에 이승규 님은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가재를 잡으면서 또 다른 놀거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우정의 공원’ 밑으로는 도로로 복개되어 물줄기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죠.
“초등학교 다닐 때 잠자리 잡고, 밑으로 내려와 개울에서 수영하면서 놀고, 위쪽으로 올라가 가재 잡고 옛날에는 그렇게 놀러다니고 그랬어요.”
과거에도 지금처럼 산신제와 농악과 같은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크게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하네요. 또한 예전에는 수도시설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빨래하러 명수학교를 가거나, 물을 길어 약수터까지 갔다고 하십니다. 생활에 불편함이 이어져서, 이승규 님의 어머니께서는 수도시설 설치를 위해서 동사무소까지 매일 찾아가셨습니다. 다행히 이승규 님이 초등학생 시절 수도시설이 확충되어서, 생활의 불편함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빨래하러 전부 다 명수학교(현 서울다원학교)까지 가서 빨래하고 그랬었어요. 물 긷고, 사람들이 약수터가고 그랬었죠. 그렇게 살았으니까 다들 어렵게 살았죠. 근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울다원학교, 2019, ⓒ성북문화원
이후 이승규 님은 초, 중, 고,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북정마을에 쭉 사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쭉 성북구에 거주하면서 보문동, 동소문동, 동선동으로 옮기면서 성북구에 계속 거주하면서 ‘성북구 토박이’라는 호칭을 유지하셨습니다.
현재 이승규 님은 전농동에서 닭발집을 운영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게를 열기 전에 보문동 50플러스센터에서 많은 강좌를 들으면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하시고,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공예와 꽃차 등 여러 수업을 들으면서 자기계발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꿈을 내비쳤는데요. 바로 과거 북정마을에 성행했던 된장 담그기와 마전터에서 염색하는 걸 성북구와 연합해서 복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북동 북정마을에는 된장 담글 때 북적북적해서 북정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거든요. 그리고 된장을 담그면서 새로운 세대들과 기존 세대들이 융합되는 좋은 기회가 만들어질 것 같아요.”
“성북초등학교 운동장의 마전터에서 빨랫줄을 길게 늘어 염색하는 걸 재연해도 좋을 것 같아요. 마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한테 알릴 수도 있고, 염색한 천 같은 것으로 성북역사문화센터에서 주관하여 체험학습을 만들어도 되고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사실 북정마을은 서울에 몇 안 되는 달동네인지라, 이런 곳이 보존되어서 60~70년대 향수를 달랠 수 있는 명소로 남길 바라고 있어요.”
북정마을 지도, 2021, 남윤중 촬영 ⓒ성북문화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북정마을, 2021, 남윤중 촬영 ⓒ성북문화원
이러한 생각을 내비치면서, 북정마을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셨습니다. 북정마을의 과거를 보존해서, 과거 서울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희망하신 이승규 님이었습니다.
이승규 님, 2021, 남윤중 촬영 ⓒ성북문화원
성북구에서 평생을 생활하고 계신 이승규 님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 속에는 북정마을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이야기 외에도, 성북구 토박이 이승규 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성북마을아카이브를 방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