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37] 여름의 문턱, 성북에서 되살아나는 단오의 기억
작성자 오진아
유난히 서늘했던 봄날이 무색하게 여름의 문턱에 선 요즘 날로 뜨거워지는 햇빛이 다가올 더위를 실감하게 합니다. 내일은 음력 5월 5일 단오입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단오를 1년 중 양기가 가장 성한 날이라 여기며 여름의 대표적인 명절로 삼아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1849)에는 “서울 풍속에 묘소에 올라가 제사를 올리는 날은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네 명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단오는 이날을 기념하며 먹는 절식(節食)이나 풍속, 놀이 등이 유독 풍부하게 전해지는 명절입니다. 이는 단오가 조상을 기리는 의례 중심의 명절이라기 보다는,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모두가 즐기던 명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단오가 되면 조정에서는 왕이 재상에게 부채를 하사하고, 아이들은 창포 달인 물로 씻고 단오빔을 입었습니다. 또 수리취떡, 앵두화채 등을 나눠 먹고, 씨름, 그네뛰기 같은 놀이를 성대하게 열렸는데, 이날만큼은 신분이나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 먹고 즐기는 날이었습니다.
신윤복, 〈단오풍정〉 ⓒ국사유산청

신윤복, 〈단오풍정〉 ⓒ국사유산청

이렇게 한해의 중요한 세시였던 단오는 도시화가 진행되는 경성에서는 점차 도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지역축제로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동아일보』 1923년 6월 1일자와 18일자 기사에 따르면 안암동에서는 노동회 주최로 산 위에서 씨름대회가 열렸고, 지금의 명륜동에서 동소문에 이르는 지역에 앵두밭이 있어 앵두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동소문 안 송동¹으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동아일보』 1923. 6. 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23. 6. 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23. 6. 1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23. 6. 1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이러한 변화는 1930년대 들어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주민운동과 맞물리며, 단오가 지역 사회의 결속력을 다지는 장이 되도록 했습니다. 성북동 삼산학교(현 성북초등학교) 교사였던 이신구가 성북구 구장을 지내는 동안, 성북리에는 여러 주민 운동이 펼쳐졌고, 1931년과 1932년에 단오를 맞아 ‘단오원유회’, ‘단오위안회’라는 이름으로 마을축제가 열렸습니다. 이 축제에서는 가무, 영화상영, 소인극(素人劇)² 등이 함께 진행되어 주민들, 특히 여성들을 위로하기 위한 잔치로 마련되었습니다.
『매일신보』1931. 6. 19ⓒ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매일신보』1931. 6. 19ⓒ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동아일보』1932. 6. 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1932. 6. 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이처럼 지역 공동체 중심의 마을축제로 명맥을 이어가던 단오는 1930년대 이후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더욱 강화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총독부의 허가 없이는 대규모 모임 자체가 어려워졌고, 태양력과 주일제가 도입되면서 도시 사람들은 전통 명절의 시간 감각을 유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조선인을 억압하는 황민화 정책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세시풍속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비록 명절로서의 단오는 점차 그 명맥이 끊겼지만, 시민들의 화합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은 이어졌습니다. 1976년 서울에서는 단오를 기념해 효창운동장에서 농악, 화관무, 씨름, 줄다리기 등이 펼쳐지는 시민 체육대회가 열렸고, 성북구를 포함한 여러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같은 해 5월, 성북구 정릉에서는 본 대회를 앞두고 구민 단오잔치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1988년에는 성북·도봉·노원 주민들이 함께 단오대잔치를 열며, 단오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976년 6월 2일 효창운동장에서 진행된 단오잔치 모습 ⓒ서울기록원

1976년 6월 2일 효창운동장에서 진행된 단오잔치 모습 ⓒ서울기록원

1976년 6월 2일 효창운동장에서 진행된 단오잔치 모습 ⓒ서울기록원

1976년 6월 2일 효창운동장에서 진행된 단오잔치 모습 ⓒ서울기록원

1976년 5월 15일 정릉에서 진행된 성북구 고유민속예술제(구민단오잔치 예선대회) ⓒ서울기록원

1976년 5월 15일 정릉에서 진행된 성북구 고유민속예술제(구민단오잔치 예선대회) ⓒ서울기록원

그리고 내일, 단오를 새롭게 재해석한 문화축제, 〈2025 성북단오제〉가 처음으로 열립니다. 발탈 공연과 여성국극을 시작으로, 풍물과 연희 공연, 수리취떡이나 복쑥떡을 만드는 체험,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치장하던 풍속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페이스페인팅, 네일아트 등 세대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단오가 지녔던 놀이와 음식, 그리고 공동체의 정을 나누며, 잊혀졌던 우리 고유의 세시풍속이 다시금 살아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주>
1. 송동: 종로구 명륜동1가・명륜동2가・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
2. 소인극: 전문적인 배우가 아닌 사람들이 하는 연극

[참고자료]
KTV아카이브, 〈대한뉴스 제1085호-서울시민 단오잔치〉[영상], 유튜브, 2016. 12. 8., http://youtu.be/N5YzVqM1aMI?si=FcxP2zo5K53BSObs.
국가유산청, 「국가무형유산 단오(端午)」,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sngl=Y&ccbaCpno=127ZZ01520000 (2025. 5. 30. 접속).
김영미, 「일제시기 도시문제와 지역주민운동-京城지역 성북동의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28, 2006.
강정원, 「일제 강점기 단오의 변화-서울을 중심으로-」, 『한국민속학』 47, 2008.
안주영, 「일제강점기 지역축제로서의 단오(端午)의 지속과 변화 - 서울[京城]을 중심으로 -」, 『동아시아고대학』 50, 2018.
국립민속박물관, 『조선대세시기 3, 경도잡지·열양세시기·동국세시기』, 국립민속박물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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