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40] 선잠단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현대적 공간으로, ‘카페 선잠’
작성자 민문기
최근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여러 상품이나 콘텐츠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0원 주화에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이 그려져 있음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경주 십원빵’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지역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십원빵은 현재 대표적인 지역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전국 각지에 십원빵을 판매하는 매장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일본에도 유사상품인 ‘십엔빵’이 생겨날 정도로요.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음식으로 재탄생시킨 사례는 성북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양도성 낙산구간에 위치한 카페 369마실에는 한양도성 성곽의 돌과 비슷하게 생긴 ‘삼육구 돌과자’가 있고, 선잠단지 부근에 위치한 빵집 오보록에는 뽕나무의 열매 오디 생크림을 넣은 ‘선잠빵’이 있지요. 이들은 지역의 문화자원을 ‘맛’을 통해 간접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시도들은 일부 메뉴에 한정되어 있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역 문화자원에 담긴 이야기를 보다 깊이 있게 해석하고 이를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주목할 만한 공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성북동에 위치한 ‘카페 선잠’입니다.
삼육구 돌과자 (출처: 369마실 인스타그램)

삼육구 돌과자 (출처: 369마실 인스타그램)

선잠빵 (출처: 성북동 빵집 오보록 네이버 블로그)

선잠빵 (출처: 성북동 빵집 오보록 네이버 블로그)

카페 선잠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성북동의 대표 문화유산인 ‘선잠단지(사적)’를 모티브로 하여 기획된 공간입니다. 선잠단지는 잠신(蠶神)으로 알려진 중국 신화 속 황제(黃帝)의 황후 서릉씨(西陵氏)에게 양잠농사의 풍요를 비는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선잠제를 종묘대제·사직대제에 버금가는 국가적 행사로 여겨 중대사가 발생하지 않는 한 매년 빠짐없이 시행하였지요. 이러한 선잠단지와 선잠제, 그리고 이와 관련된 친잠례나 누에의 삶, 그리고 고치에서 실을 수확하여 하나의 옷감으로 탄생시키는 우리네 의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 바로 카페 선잠입니다.
카페 선잠 전경(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카페 선잠 전경(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명주실을 두른 카페 선잠의 출입문 손잡이

명주실을 두른 카페 선잠의 출입문 손잡이

우리의 의생활과 관련된 선잠단지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승화시켜서인지 카페 선잠은 그 입구부터 여느 공간과는 남다른 인상을 줍니다. 출입문 손잡이에는 누에고치에서 얻는 명주실을 둘렀고, 출입문을 지나 카페로 들어가는 통로 ‘홍살문[紅箭門]’은 수없이 많은 붉은 실로 꾸며 두어 마치 바깥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이는 예부터 홍살문이 가진 일반 지역과 능·원·묘 같은 신성한 영역을 나누는 전통적 역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지요.
카페 선잠의 홍살문(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카페 선잠의 홍살문(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일반적인 카페는 내부를 하나의 탁 트인 공간으로 만드는 반면, 카페 선잠은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 두었습니다. 각 공간은 선잠단에 관한 이야기에서 착안하여 각각의 이름과 의미를 담아 냈지요. 누에를 기르던 방인 ‘잠실(蠶室)’이 이름 붙여진 공간은 하얗고 둥근 누에고치의 이야기가 의자와 탁자 형태로 구현되어 있고, 명주실로 짠 옷감이라는 뜻의 ‘견직(絹織)’ 공간은 베틀을 형상화한 조명이 우리 의생활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누에가 자라며 세 번의 긴 잠을 자는 ‘삼유(三幼)’ 공간은 외부의 빛과 소리를 차단한 암실과도 같은 곳으로 마치 누에고치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게다가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은은한 소리는 귀를 즐겁게 해주기도 하지요.
누에를 기르던 방을 나타낸 ‘잠실(蠶室)’ 공간

누에를 기르던 방을 나타낸 ‘잠실(蠶室)’ 공간

베틀 형상의 조명이 설치된 ‘견직(絹織)’ 공간 (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베틀 형상의 조명이 설치된 ‘견직(絹織)’ 공간 (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삼유(三幼)’ 공간

‘삼유(三幼)’ 공간

이밖에도 누에나방이 아름다운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3만 개의 실로 표현한 공간 ‘천잠(天蠶)’, 누에가 자라나는 풍요로운 뽕나무 숲을 표현한 공간 ‘상림(桑林)’, 구름에 닿을 듯한 느낌으로 조성된 공간 ‘선운(先雲)’ 등 여러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음식을 통한 맛과 향뿐만 아니라 눈과 귀가, 또 감촉의 오감으로써 ‘선잠’을 경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천잠(天蠶)' 공간(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천잠(天蠶)' 공간(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선운(先雲)’ 공간

‘선운(先雲)’ 공간

작년 이맘때 문을 연 카페 선잠은 성북동에 위치한 공간 디자인 전문업체 ‘논스페이스(NONE SPACE)’가 만들었습니다. 논스페이스는 지역이나 브랜드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방문객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업체로, 그들이 주신당, 웅녀의 신전, 섬세이 테라리움, 교촌필방 등을 조성하며 쌓아 온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조성한 것이 바로 카페 선잠인 셈입니다.
카페 선잠의 기획자이자 논스페이스의 신중배 대표의 말에 따르면 원래 카페 선잠은 단순히 부족해진 사무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사무실 확장 과정에서 예상보다 넓은 공간이 생기면서, 평소 애정을 갖고 지켜보던 성북동이라는 지역, 특히 선잠단이 간직한 역사와 문화를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라고요.
주문 공간에는 투명한 나방들이 달려있는데 창으로 들어온 햇빛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띤다. (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주문 공간에는 투명한 나방들이 달려있는데 창으로 들어온 햇빛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띤다. (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뽕잎과 오디를 활용한 카페 선잠의 메뉴들. (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뽕잎과 오디를 활용한 카페 선잠의 메뉴들. (출처: NONE SPACE 홈페이지)

카페 선잠을 기획하고 실제로 구현하기까지 많은 공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다른 공간의 경우 의뢰인이 따로 존재하고 그에 맞게 공간을 만들곤 하지만 카페 선잠은 오롯이 논스페이스만의 것이었기에 보다 많이 고민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공간은 보통 2~3개월 정도의 기간에 작업을 마무리하지만, 카페 선잠은 꼬박 반 년 이상 걸렸다고 하네요.
특히 카페 선잠이라는 공간의 모든 것이 ‘선잠단’의 이야기와 이어지도록 하는 데 많은 힘을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카페 선잠이라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어느 것 하나 선잠의 이야기에서 벗어남이 없는 듯 합니다. 견직물인 삼베를 씌운 뒤 그 위에 여러 번 옻칠을 하여 손수 제작한 탁자나, 지역의 도예가와의 협업으로 누에고치의 형상을 띄도록 만든 도기까지요. 메뉴 또한 뽕잎과 오디를 활용한 다양한 음료와 먹거리를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카페 선잠을 방문한 이들은 지역의 이야기가 담긴 물리적 공간에서 ‘오감’을 충족시키는 감각적 체험을 통해 지역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갖게 되겠지요.
평범한 탁자에 삼베를 씌우고 직원들이 직접 수차례 옻칠을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평범한 탁자에 삼베를 씌우고 직원들이 직접 수차례 옻칠을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지역 도예가와 협업을 통해 만든 누에고치, 실타래를 닮은 음료컵.

지역 도예가와 협업을 통해 만든 누에고치, 실타래를 닮은 음료컵.

다만 카페 선잠을 둘러보며 몇 가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먼저 ‘마당에 뽕나무 한 그루 정도 있다면‘,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이 뽕나무였다면‘ 따위의 것이었는데요, 신중배 대표도 카페 선잠을 만들 당시 꼭 뽕나무를 심고 싶었지만 여러 난관이 있어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해 아쉬웠다고 합니다. 또한 다소 고가의 음식값도 마음에 걸렸는데요, 아무래도 카페 선잠의 위치 등 어른의 사정 탓에 일정 수준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성북동 지역 주민들에게는 일정 비율 할인을 해주고 있다고 하니, 어렴풋이 지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카페 선잠 전경

카페 선잠 전경

오늘 금도끼에서는 성북동에 위치한 카페 선잠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카페 선잠은 예부터 내려온 우리의 전통이자 성북의 대표 문화자원인 ’선잠단지‘에 담긴 이야기를 현대적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성북 지역의 문화유산을 공간 전반에 녹여낸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카페 선잠은 지역의 문화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이 무궁무진함을 깨닫게 합니다. 특히 지역 문화자원 기반의 스토리텔링을 통하여 사람들이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게 하는 것을 넘어, 이야기 속에 머물게 하는 모범적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카페 선잠‘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기를, 또 각각의 방식으로 성북의 문화자원이 현대적 공간으로 재탄생하여 제2의, 제3의 ’카페 선잠‘이 생겨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고 자료>
성북마을아카이브 (https://archive.sb.go.kr)
논스페이스(https://none-space.com)
선잠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seonjam_seoul)
369 마실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369_masil)
성북동 오보록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oborok_)

관련 마을아카이브

  • 선잠단지
    이야깃거리
    선잠단지
    분류: 장소
    시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