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208] 국가 무형유산 ‘춤’ 계승의 의미 탐구, 제7회 성북학 학술회의
- 지난 6월 14일 제7회 성북학 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꿈빛극장을 빌려 개최한 성북학 학술회의는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예능보유자 강선영(姜善泳, 1925-2016)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가무형유산 춤 계승의 의미>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한용운
- 성북동에서 거주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승려이다. 본명은 정옥, 법호는 만해이며 용운은 법명이다. 1905년 백담사에서 출가하였고, 불경 번역과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였다.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경성지회장을 맡았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진상을 폭로하는 민중대회 사건으로 일제에 피감되었다.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이사하였다. 1938년에는 불교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 배후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성북동 심우장에서 만년을 보내다 1944년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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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성
- 동양화가이다. 193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연구단체인 ‘후소회(後素會)’를 김기창 등과 함께 만들었고, 이후 잇따라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해방 이후 삼선교 언덕배기에 살다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이 설립되면서 동양화 교수가 되어 서울대 관사로 들어갔다. 1963년 미국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를 설립하고 동양미술을 가르쳤으며 이듬해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1966년 귀국하여 삼선동 4가 45번지에 ㅁ자 구조의 단층집을 마련하여 살다가, 1971년 지역개발로 인해 이사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이충무공 영정」, 「성모자상」, 「김유신장군 초상화」, 「백두산 천지」 등이 있다. 시(詩)·서(書)·화(畵)를 온전히 갖춘 현대화단의 마지막 문인화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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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여자중학교
- 성북구 성북로8길 71(성북동 168-275)에 위치한 사립고등학교이다. 1946년 6월 17일 동구 가정 실수 여학교 설립을 인가받아 개교하였다. 1950년 2월 15일 재단법인 동구학원을 설립하였다. 같은 해인 1950년 4월 동구여자상업중학교와 동구여자 상업고등학교로 개편하였고, 1969년 3월부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하여 운영하였다. 1961년 3월 31일 동대문에서 현재의 성북동 교사로 이전하였다. 교훈은 ‘정심(正心)’이며, ‘인화봉사(人和奉仕), 학문정진(學問精進), 자기발견(自己發見)’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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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