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국가 무형유산 ‘춤’ 계승의 의미 탐구, 제7회 성북학 학술회의
- 지난 6월 14일 제7회 성북학 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꿈빛극장을 빌려 개최한 성북학 학술회의는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예능보유자 강선영(姜善泳, 1925-2016)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가무형유산 춤 계승의 의미>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한용운
- 성북동에서 거주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승려이다. 본명은 정옥, 법호는 만해이며 용운은 법명이다. 1905년 백담사에서 출가하였고, 불경 번역과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였다.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경성지회장을 맡았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진상을 폭로하는 민중대회 사건으로 일제에 피감되었다.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이사하였다. 1938년에는 불교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 배후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성북동 심우장에서 만년을 보내다 1944년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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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삼
- 시인이다. 도쿄에서 출생하여 1936년 어머니의 고향인 삼천포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1953년 시 「강물에서」가 모윤숙의 추천을 받았고, 1955년 『현대문학』에서 서정주와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본격적인 문단생활을 시작했다. 첫 시집 『춘향이 마음』(1962) 이후 20여 권에 이르는 시집과 시선집을 간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연이은 투병 생활로 인해 삶과 죽음에 대한 연민과 애상의 주제가 반복되고, 달관적·허무주의적인 색채가 작품에 드러난다. 1967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에는 정릉에서 건강을 회복하면서 「정릉 살면서」라는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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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여자중학교
- 성북구 성북로8길 71(성북동 168-275)에 위치한 사립고등학교이다. 1946년 6월 17일 동구 가정 실수 여학교 설립을 인가받아 개교하였다. 1950년 2월 15일 재단법인 동구학원을 설립하였다. 같은 해인 1950년 4월 동구여자상업중학교와 동구여자 상업고등학교로 개편하였고, 1969년 3월부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하여 운영하였다. 1961년 3월 31일 동대문에서 현재의 성북동 교사로 이전하였다. 교훈은 ‘정심(正心)’이며, ‘인화봉사(人和奉仕), 학문정진(學問精進), 자기발견(自己發見)’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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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문학
- 1956년 창간되었던 월간문예잡지이다. 1956년 6월 자유문학자협회의 기관지로 창간되었으며, 기관지이면서도 범문단적인 문예지 구실을 하였다. 4.19혁명을 계기로 자유문협이 자체해체를 결의하면서 김광섭이 『자유문학』의 판권을 인계받고 주간이 되었다. 1963년 8월 71권을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광섭은 자신의 자서전 『시와 인생에 대하여』에서 1964년 통권 76호를 마지막으로 휴간하였고, 경영난으로 인해 폐간하게 된 셈이라고 기술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알려진 『자유문학』의 폐간 시점과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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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전화 종합사회복지관
- 성북구 오패산로 21(하월곡동 96-113)에 위치한 복지 시설이다. ‘생명의 전화 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주체는 ‘사회복지법인 생명의 전화’인데, 1976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상담전화를 통한 복지사업을 시작하였고, 1986년에 현재의 위치에 종합사회복지관을 개관하였다. 이 시설에서는 전화상담 뿐만 아니라, 어린이보육, 장애인 및 장·노년층 지원, 직업 및 취미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성북구 자살예방센터 등 주변 여러 기관과의 협조 아래 다양한 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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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