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35] 삼선동 토박이, 이재환 님의 이야기
-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 이번 주 소개해 드릴 분은 일생동안 삼선동에 거주하며 삼선동의 변화를 지켜본 이재환 님입니다. 이재환 님은 IT 전문강사로 전성기를 맞이한 후, 현재는 펜 드로잉, 트럼펫 연주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956년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에서 태어난 이재환 님은 어릴 적 삼선동의 풍경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시절, 통금을 알리기 위해 ‘딱딱이’를 치며 거리를 돌아다니던 사람, 개천가 근처에 자리 잡고 운영됐던 동도극장 등 삼선동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줬습니다. 그러고는 성북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1960년대까지 삼선교를 지나는 성북천 물은 맑았습니다. 개천가에는 복숭아나무가 많았고, 냇가에서 빨래하고 친구들과 고기도 잡으며 놀았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1967년쯤까지 수영하고 놀았다면 이해되실까요?” “그런데 60년대 말쯤부터 갑자기 물이 더러워졌어요. 삼선교 성북천을 복개하고 건물이 들어서면서부터였죠. 아마 1968년일 겁니다. 복개를 시작한 해가. 그리고 그 위에 아파트 건물을 지었습니다. 1층은 상가이고 2, 3, 4층은 시민아파트였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조지훈
- 시인이자 학자, 교육가이다. 1939년 『문장』에 시 「고풍의상」과 「승무」, 1940년에 「봉황수」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해방 후 성북동에 한옥을 마련하여 ‘방우산장’이라는 당호를 붙이고, 근처에 살고 있던 김기창, 김환기, 윤이상 등과 교류했다. 그는 방우산장에서 박목월, 박두진과 모여 의견을 나누며 『청록집』을 간행하였는데 이 책의 장정은 김용준이 맡았다. 그의 작품은 민족정서와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활동 후기에는 혼란한 현실 정치를 비판하며 『지조론』(1962)과 같은 산문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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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기
- 성북동에서 거주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중동학교 재학 중이던 1940년 7월, 성북정 전태현의 집에서 함께 살던 손용우에게 '조선인은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같은 달 같은 곳에서 전태현과 손용우에게 일본은 패전할 것이므로 기회를 잃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1940년 9월에는 중동학교 교실에서 중일전쟁을 계기로 조선독립이 실현될 것이라 말했고, 지원병제도를 반대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후 가혹한 신문과 조사를 받다가 판결이 나기 전인 1942년 5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경성부 성북정 133-60(현 성북로 53-2)에서 전태현, 손용우와 함께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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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광세
-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재학 중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조선 독립의 가능성을 의식하면서 영국, 미국에 종속되는 독립을 할 바에는 조선인 스스로 독립운동을 하여 조선인의 실력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경기도 포천의 깊은 산속에 본거지를 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는 한편, 미국으로 하여금 B-29폭격기를 통해 무기를 산속으로 공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광세는 1944년 10월 포천의 아지트로 입산하려던 도중 체포되어 1945년 6월 기소유예로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동대문(東大門) 돈암(敦岩) 29-55(현 돈암동 29-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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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