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성북학 학술회의 [금도끼 #208] 반짝이는 성북을 그리다, 제4회 마을기록 전시 [금도끼 #207]국가 무형유산 ‘춤’ 계승의 의미 탐구, 제7회 성북학 학술회의
- 지난 6월 14일 제7회 성북학 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꿈빛극장을 빌려 개최한 성북학 학술회의는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예능보유자 강선영(姜善泳, 1925-2016)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가무형유산 춤 계승의 의미>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이종암
- 종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대구은행의 출납계주임이었는데, 만주를 왕래하며 동지와 함께 조국광복투쟁을 결의하고 은행 금고 속에 있던 만 구백원의 돈을 꺼내 만주로 갔다. 그가 가져온 자금은 의열단의 활동비로 유용하게 쓰여졌고, 그 일부는 동지인 구영필에게 전해져 만주 봉천의 비밀결사인 삼광상회의 설치자본으로 쓰였다고 한다. 1925년 9월 재정상황이 궁핍해지자, 군자금 확충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였다가 잠입중이던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6년 12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2년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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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엽
- 시인, 승려이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신여성으로 여성들의 권익 향상을 주장하고, 스스로 관습에 매이지 않은 삶을 살았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근대 교육을 받고, 일본에 유학하였다. 1920년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소설과 시, 평론을 발표하는 한편 신여성 모임을 이끌어 나가며 여성들의 교육과 의식 개혁을 주장하였다. 몇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굴곡을 겪은 뒤 만공선사 문하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성북동에서 잠시 생활하였으며, 삼산학교 교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말년에 성북동 성라암(星羅庵)을 오가며 지냈는데, 자전 소설 『청춘을 불사르고』를 쓴 곳이 바로 이곳 성라암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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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여자중학교
- 성북구 성북로8길 71(성북동 168-275)에 위치한 사립고등학교이다. 1946년 6월 17일 동구 가정 실수 여학교 설립을 인가받아 개교하였다. 1950년 2월 15일 재단법인 동구학원을 설립하였다. 같은 해인 1950년 4월 동구여자상업중학교와 동구여자 상업고등학교로 개편하였고, 1969년 3월부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하여 운영하였다. 1961년 3월 31일 동대문에서 현재의 성북동 교사로 이전하였다. 교훈은 ‘정심(正心)’이며, ‘인화봉사(人和奉仕), 학문정진(學問精進), 자기발견(自己發見)’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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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통신Ⅰ -조각가 Y씨에게
- 1956년 6월 김환기가 조각가 불제(弗薺) 윤효중(尹孝重)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그는 편지의 서두에서 파리와 성북동이 별반 다를게 없다며 파리에 잘 도착했음을 전한다. 이 편지에는 5월 7일부터 5월 22일까지 있었던 소소한 일상들을 짤막하게 서술하고 있어 당시 김환기의 심경과 행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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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망봉어린이공원
- 성북구 보문사길 30에 위치한 공원이다. 동망봉어린이공원은 2002년 개통된 동망봉터널 위의 ‘e편한세상보문2단지아파트’ 옆에 2005년에 조성되었다. 쾌적하고 환경친화적인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소나무, 감나무, 벚나무 등의 교목과 철쭉, 사철나무 등 관목을 심어놓았고, 금낭화, 벌개미취 등 11종 8,800본에 이르는 야생화 화단을 마련하였다. 또한 정자, 등의자 등의 휴게시설과 어린이놀이터, 족구장, 맨발지압보도, 온몸지압대 등 운동시설도 구비되어 있다. 한편 동망봉에는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 가 있던 단종을 그리워하며 매일 봉우리에 올라 동쪽 영월을 바라보았다는 정순왕후의 전설도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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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