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01] 나무로 조각된 탱화, 경국사 목각탱
- 성북구에는 미타사, 보문사, 흥천사, 개운사, 봉국사, 경국사와 같은 많은 전통사찰이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다양한 불교 유물이 성북구 안에 위치해 있기도 하죠. 여러분은 불교와 관련된 유물로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시나요? 탑이나 불상, 경전에서부터 비롯하여 여러 종류가 있지만 탱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미타사 아미타후불도
- 미타사에 봉안되어있는 불화로 1873년 신중도 및 지장시왕도와 동시에 한 조로 조성된 것이다. 아미타후불도는 극락보전, 아미타전, 무량수전에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불화는 대웅전에 후불도로 모셔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 불화는 아미타불좌상을 중심으로 8대 보살, 10대 제자, 사천왕, 금강역사 등이 배치된 아미타불의 법회모임을 표현하고 있다. 신중도, 지장보살도와 일습으로 상단탱화로 조성된 이 아미타후불도 중 평상에 앉은 사천왕상의 등장은 경상북도 예천군 서악사의 석가모니후불탱(1770)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그 예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2014년 7월 3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35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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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남옥
- 영화감독이다. 광복 후 서울로 올라와 조선영화사 광희동 촬영소에 들어가 편집을 배웠다. 1940년대 돈암동에 거주하며 주변에 살던 영화인들과 교류했고, 1953년 극작가 이보라와 결혼하고 이듬해 남편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미망인』을 촬영했다. 제작비 부족 등으로 어렵게 완성하여 개봉하였으나 흥행을 거두진 못했다. 1960년 도쿄에서 열린 제7회 영화제에 참가했다. 1997년 제1회 서울 여성영화제가 『미망인』을 상영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의 존재가 알려졌고, 2008년 여성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박남옥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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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
- 시인이다. 1956년 잡지 『문학예술』에 「갈대」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0여 년간 농촌과 장터를 떠돌며 경험한 것을 시에 담았다. 첫 시집 『농무』(1973)는 1960-70년대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삶을 그린 것이며, 『가난한 사랑노래』(1988)에는 시대의 탄압에 맞서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항하며 만난 민중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1978년 처음 집을 마련하고 길음동에 살다가 4년 뒤, 정릉동으로 이사하였다. 이후 40년 가까이 정릉동에 살면서 『달넘세』(1985), 『가난한 사랑 노래』(1988), 『길』(1990),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 『뿔』(2002), 『낙타』(2008), 『사진관집 이층』(2014) 등 시집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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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훈
- 소설가이다. 최인훈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는데,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목포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대를 중퇴하였다.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60년 「가면고」, 「광장」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적 명성을 굳혔다. 4.19혁명이 있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에 발표한 「광장」은 당대까지 금기시되었던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파헤친 대표작으로 발표 직후 문단 안팎에 파란을 일으켰다. 한편 「소설과 구보씨의 일일」과 「화두」(1994)에서 성북동을 주된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였으며, 특히 「화두」는 이태준의 집을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하여 실제로 이태준의 집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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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숙
- 4.19혁명 때 희생된 민주열사이다. 1946년에 태어나 4.19가 있던 1960년에는 한성여자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의협심이 강했던 진영숙은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시민들의 저항에 함께 분개하고, 마산에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자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4월 19일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를 기다리다 편지를 써놓고 데모에 합류하러 나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고 어머니에게 쓴 편지는 그의 유서가 되었다. 이 무렵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아가 시위 대열에 합류하였고 더러는 죽음을 당하거나 혹은 다치기도 하였다. 모교 한성여자중학교에서는 묘비를 기증하고 동급생이 졸업하는 1962년 2월,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현재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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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