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18] 이름으로 남은 다리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름으로 우리 옆에 남아있는 것들이 성북구에도 있습니다. 성북천은 성북동과 안암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흐르는 하천입니다. 특히 북악산에서 시작해 성북동을 지나는 상류 구간은 복개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 성북동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1980년대에 성북천이 복개되며 아이들이 헤엄치던 모습, 아낙네들이 빨래하던 모습과 성북천 주변의 복숭아꽃들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과거의 풍경과 함께 성북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들도 사라졌지만, 그 이름들은 우리 주위에 남아있습니다. 오늘의 금도끼에서는 이름을 남기고 사라진 다리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함께 살펴보면서 과거를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계용묵
- 소설가, 출판인이다. 1925년 『조선문단』에 단편소설 「상환」과 시 「봄이 왔네」로 등단하였다. 문장과 구성, 내용에서 정확하고 세밀한 기교를 중요시했지만 문단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935년 『조선문단』에 실린 「백치 아다다」가 평단의 관심을 끌고, 실감나는 심리묘사, 간결한 문장과 짜임새로 뛰어난 단편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집으로는 『병풍에 그린 닭이』(1944), 『별을 헨다』(1950), 『상아탑』(1955) 등이 있다. 종합잡지인 『신문화』(1952)와 동인지 『흑산호』(1953) 발간을 주도하고, 최정희, 김동리, 조연현, 정비석 등과 교류하였다. 1954년부터 정릉 입구에 있는 재건주택 85호에 거주하다가 1961년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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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 한국 시각장애인 역학사들을 주축으로 미아리 역학촌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단체이다. 고려시대에는 시각장애인 역학사들을 맹승(盲僧)이라고 불렀으며 수도에 이들의 동업조합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명통사(明通寺), 맹청(盲廳)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 초기 명맥이 잠시 끊겼다가 1925년 조선맹인역리대성교 맹인조합이라는 단체로 부활하였다. 1971년 사단법인 대한맹인역리학회라는 명칭으로 법인설립 인가를 받았고, 1989년 7월 성북구 동선동 현재의 자리로 중앙회 회관을 이전하였다. 미아리 역학촌은 한국의 대표적 역학촌으로만 아니라 한국 시각장애인 점복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나가는 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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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국
-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일제의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로 궐기하여 농성시위를 주도했다. 그 후 1945년 5월 여러 동지들과 함께 서울 관수동 유만수의 집에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 해 7월 24일 저녁에는 친일매국대회가 개최되는 경성 부민관(현재 서울시의회)에 잠입하여 장치해 둔 2개의 폭탄을 터뜨려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거사는 일제 말기 한민족의 민족적 의열투쟁의 대미를 장식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성북 정릉 16-29(현 정릉로40길 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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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환
- 만화가, 화가이다. 1955년부터 신문에서 4컷 시사만화인 〈고바우영감〉을 연재하면서 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담아낸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한국전쟁 때 정릉동 집 다락에 석 달 가까이 숨어 지내며 전쟁의 참상을 스케치했고, 인물캐릭터 200여개를 만들었다. 〈고바우영감〉은 1950년부터 『사병만화』·『만화신문』 등의 기관지와 『월간희망』 등에 수록하다가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서 장기연재하였다. 이후 『조선일보』·『문화일보』 등을 거치며 자리를 옮기다 2000년 9월 끝맺는다. 〈고바우영감〉은 14,139회에 걸쳐 연재한 한국 최장수의 시사만화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생존작가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원화가 등록문화재 제538호로 지정됐다. 박수근 화백, 박고석 화백을 이웃으로 두고 명동 모나리자 다방에서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정릉 입구 오두막 선술집에서 들러 목을 축이곤 했다는 것이 그의 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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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