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198] 성북구의 화백 장승업
- 어느덧 매화가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 하는 봄이 왔습니다. 매화는 봄에 피는 꽃으로 사군자에 속하기도 하며 옛날부터 많은 그림 속에 등장했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이규창
-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과 이은숙 여사의 장남으로 1913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도왔으며, 남화한인청년동맹, 흑색공포단 등에서 활약하였다. 1935년에는 정화암, 엄형순과 함께 친일파 이용로를 사살하고 도피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징역 1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9년 8월 감옥에서의 옥중투쟁으로 다시 가형을 받았다가 해방으로 출옥하였다. 1955년에는 체신부에 들어가 공직활동을 했고, 1974년 정년퇴직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0~1993년에는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독립운동사 기술에 도움을 주었다. 1961년 정릉에 정착하여 어머니 이은숙 여사를 모시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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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운동
- 1919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전국적인 독립만세 운동이다. 성북구에서도 안암천 주변과 돈암동 등지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3일 밤 10시경 안감천(성북천 안암동 구간)에서 피한봉 등 500명이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했고, 3월 26일에는 안감천에서 2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3월 27일에는 안감천 부근에서 500명이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돈암리(돈암동)에서는 3월 23일 돈암리시장에서 100명이 시위를 전개했고, 3월 24일 성북리(성북동)에서 60명이 시위를 전개했다. 3월 27에는 돈암리의 산(개운산으로 추정) 위에서 50명이 횃불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밖에도 성북구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종로나 미아동 일대로 나가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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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생강
- 성북구에 거주하는 국악인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이다. 대금산조의 명인 한주환을 사사했고, 대금, 태평소, 단소 등 부는 악기의 명인들에게 남도, 서도, 경기지역 음악을 모두 전수받았다. 재즈나 팝송 등 다른 장르와 서양악기와 협연하고, 앨범을 내는 한편 대금과 단소 교본 발간, 제자 양성, 국내외 공연 등 국악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1997년 혜화문 건너편 삼선교에 4층 건물을 짓고, 종로구 와룡동에 있던 대금전수소를 집 근처에 마련하였다. 집을 다시 돈암동으로 옮기고, 전수소는 성북동으로 이사하였다. 1996년 12월 10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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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잔디유치원
- 성북구 솔샘로 4길 20-8(정릉동 683-1)에 있었던 어린이 교육·보육시설이다. 작곡가 금수현과 피아니스트 전혜금 부부가 1968년 설립하여 개원한 유치원으로, 2016년까지 50년 가까이 운영하였다. 부부가 모두 음악가이고, 아이들 교육에 헌신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보니, 유치원의 운영도 특별한 면이 있었다. 금수현은 유치원의 원가를 짓고, 어머니들을 위한 노래도 만들어 함께 불렀다. 전혜금은 어머니회를 중심으로 부부동반 모임까지 만들어 이웃과 화합하고 문화와 예절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또한 음악이 있는 연극 공연까지 하여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을 주었다. 2016년에 문을 닫았고 2020년 현재 그 자리에는 금잔디 유치원의 이름을 딴 금잔디빌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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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