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199] 동시대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성북동의 전시 공간
- 성북구는 예전부터 수많은 문화 예술인들과 인연 맺은 공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동시대 작가들의 활발한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4월을 맞이해 한성대입구역부터 근처 걸어 다니기 좋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공간 세 곳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00의 00 (땡땡의 땡땡)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김영재
- 성북동(현 동소문로 64)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1년 상해로 망명한 뒤 상해한인청년단을 조직하여 그 이사에 선임되었다. 또한 의열단에 가입하여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의열단 동지들과 함께 통합된 민족혁명당에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에는 중국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중국 공군의 기계사 직책으로 대일전에 참가하였다. 1938년 10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창립하자 그는 제3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40년에 광복군 총사령부원으로서 충칭[重慶]에서 요인 경호 및 비서직을 맡았으며, 1945년에는 미군과 합작으로 한국항공대를 창설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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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희
- 석관동에 거주했던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18호 민화장 기능보유자이다. 민화란 일상생활과 풍습을 그린 실용적 그림을 말하며 이런 민화를 그리는 사람을 민화장이라 한다. 민화는 한국인의 사상과 신앙, 생활에 관련되는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화법을 통해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친근한 생활 속의 낙으로 자리잡아 오랫동안 보존되어왔다. 김만희는 1968년부터 민속자료를 수집하고 민화의 작화에 착수한 이래 한국전통미술인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한국 민화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그는 민화장 기능보유자로서 1996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7년 4월 13일에 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성북구 화랑로48길 16번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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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
- 시인이다. 1956년 잡지 『문학예술』에 「갈대」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0여 년간 농촌과 장터를 떠돌며 경험한 것을 시에 담았다. 첫 시집 『농무』(1973)는 1960-70년대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삶을 그린 것이며, 『가난한 사랑노래』(1988)에는 시대의 탄압에 맞서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항하며 만난 민중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1978년 처음 집을 마련하고 길음동에 살다가 4년 뒤, 정릉동으로 이사하였다. 이후 40년 가까이 정릉동에 살면서 『달넘세』(1985), 『가난한 사랑 노래』(1988), 『길』(1990),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 『뿔』(2002), 『낙타』(2008), 『사진관집 이층』(2014) 등 시집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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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숙
- 4.19혁명 때 희생된 민주열사이다. 1946년에 태어나 4.19가 있던 1960년에는 한성여자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의협심이 강했던 진영숙은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시민들의 저항에 함께 분개하고, 마산에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자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4월 19일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를 기다리다 편지를 써놓고 데모에 합류하러 나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고 어머니에게 쓴 편지는 그의 유서가 되었다. 이 무렵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아가 시위 대열에 합류하였고 더러는 죽음을 당하거나 혹은 다치기도 하였다. 모교 한성여자중학교에서는 묘비를 기증하고 동급생이 졸업하는 1962년 2월,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현재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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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