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07] 반짝이는 성북을 그리다, 제4회 마을기록 전시
- 어느덧 추운 바람이 물러가고 뜨거운 햇살이 공기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와 창문에 반사되는 햇빛 덕분에 온 동네가 반짝이는 듯합니다. 이렇듯 반짝이는 순간들을 담은 주민 참여형 전시 <반짝이는 순간들: 성북 다시쓰기>가 지난 2024년 6월 6일부터 10일까지 열렸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차미리사
-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차미리사는 조국의 자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교육 구국운동이 시급하며, 특히 여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실천한 근대 민족교육운동가이다. 1900년대 초 외국 유학을 떠난 신여성으로, 미국에서 대동교육회, 대동보국회 활동을 하였다. 1917년 선교사로 귀국한 후 배화학교 사감으로 있었다. 3.1운동 이후에는 여성 교육과 생활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여자교육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근화여학교를 설립, 교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에는 덕성여자초급대학(현 덕성여자대학교)을 설립하였다.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를 통해 '돈암동 117-1'번지에 거주하였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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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엽
- 시인, 승려이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신여성으로 여성들의 권익 향상을 주장하고, 스스로 관습에 매이지 않은 삶을 살았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근대 교육을 받고, 일본에 유학하였다. 1920년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소설과 시, 평론을 발표하는 한편 신여성 모임을 이끌어 나가며 여성들의 교육과 의식 개혁을 주장하였다. 몇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굴곡을 겪은 뒤 만공선사 문하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성북동에서 잠시 생활하였으며, 삼산학교 교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말년에 성북동 성라암(星羅庵)을 오가며 지냈는데, 자전 소설 『청춘을 불사르고』를 쓴 곳이 바로 이곳 성라암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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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성
- 동양화가이다. 193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연구단체인 ‘후소회(後素會)’를 김기창 등과 함께 만들었고, 이후 잇따라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해방 이후 삼선교 언덕배기에 살다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이 설립되면서 동양화 교수가 되어 서울대 관사로 들어갔다. 1963년 미국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를 설립하고 동양미술을 가르쳤으며 이듬해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1966년 귀국하여 삼선동 4가 45번지에 ㅁ자 구조의 단층집을 마련하여 살다가, 1971년 지역개발로 인해 이사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이충무공 영정」, 「성모자상」, 「김유신장군 초상화」, 「백두산 천지」 등이 있다. 시(詩)·서(書)·화(畵)를 온전히 갖춘 현대화단의 마지막 문인화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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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전화 종합사회복지관
- 성북구 오패산로 21(하월곡동 96-113)에 위치한 복지 시설이다. ‘생명의 전화 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주체는 ‘사회복지법인 생명의 전화’인데, 1976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상담전화를 통한 복지사업을 시작하였고, 1986년에 현재의 위치에 종합사회복지관을 개관하였다. 이 시설에서는 전화상담 뿐만 아니라, 어린이보육, 장애인 및 장·노년층 지원, 직업 및 취미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성북구 자살예방센터 등 주변 여러 기관과의 협조 아래 다양한 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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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