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18] 이름으로 남은 다리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름으로 우리 옆에 남아있는 것들이 성북구에도 있습니다. 성북천은 성북동과 안암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흐르는 하천입니다. 특히 북악산에서 시작해 성북동을 지나는 상류 구간은 복개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 성북동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1980년대에 성북천이 복개되며 아이들이 헤엄치던 모습, 아낙네들이 빨래하던 모습과 성북천 주변의 복숭아꽃들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과거의 풍경과 함께 성북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들도 사라졌지만, 그 이름들은 우리 주위에 남아있습니다. 오늘의 금도끼에서는 이름을 남기고 사라진 다리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함께 살펴보면서 과거를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김광섭
- 시인, 언론인, 번역가이다. 일본에서 유학 후 교사 생활과 평론 활동을 하였다. 1933년부터 모교인 중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1940년까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41년 2월 이로 인해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61년 성북동 168-34(현 성북로10길 30)에 집을 마련했지만, 뇌출혈로 쓰러져 오랜 기간 병석에 있었고 그동안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성북동 집에 대한 애착을 잃고 동소문동을 거쳐 미아동으로 이사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병마와 싸우면서 관념적인 시에서 구체적인 체험을 시로 형상화하는 변화를 보인다. 그의 대표작인 「성북동 비둘기」를 비롯한 「겨울산」, 「산」 등은 성북동 집에서 구상하여 미아동에서 완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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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성
- 1912년 대구에서 출생한 서양화가이다.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처음 입선한 후, 수채화와 유화 작품으로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5년까지 다이헤이요미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1934년 9월 7일 동아일보의 실린 이인성의 글 '향토를 찾아서'를 보면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가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하여 서울을 찾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북한산 일대를 돌며 스케치를 했던 그는 현 정릉동의 아리랑고개를 보고 「아리랑고개」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1947년 9월 12일 경향신문 기사를 통해 성북회화연구소 설립 당시 지도교사로 활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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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창
-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3월 6일 조선방송협회 사업부 보수과에 입사하여 기술원으로 근무했다. 1942-1943년 단파수신기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방송된 조선어 방송 등을 청취하였다. 내용은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측이 승리할 것이므로, 연합군이 일본을 공략할 때 조선 동포들도 국내에서 호응하여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방송 내용을 1942년 12월 성북정에 거주하는 조선방송협회 회원 김병욱에게 전달하고, 1943년 2월 20일경에는 성북정에 거주하는 동료 노현중에게 전달하였다. 1943년 7월 4일 체포되어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1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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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 성북구 안암로 145(안암동 5가 1-2) 고려대학교 내에 있는 건축물이다. 1934년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을 짓고, 곧이어 1937년에 본 건물을 완공했다. 설계는 본관과 마찬가지로 박동진이 하였는데, 시공자는 미상이다. 건물의 구조는 화강석을 주재료로 한 L자 모양의 고딕 양식으로, 남서쪽 모서리에 탑 모양의 구조를 세우고 이 곳에 주출입구를 두었다. 특히 동남측 끝단 돌출부에는 네 모서리에 고딕식 튜렛(turret)을 세우고, 남측 창들 사이에는 부축벽(flat buttress)을 세워 기품 있는 고딕양식의 풍취를 더해주고 있다. 오랫동안 도서관으로 사용하다, 중앙도서관을 신축한 후 현재는 대학원동과 교수연구실로 사용하고 있다.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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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