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197] 정릉동의 아름다운 나무들
- ‘나무’는 우리 인류에게 많은 것을 줍니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산소를 공급합니다. 또 미세먼지와 같은 공기 중의 오염물질을 흡수하여 공기를 정화하기도 하고,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그늘을 제공하거나 갑작스런 소나기를 피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합니다. 또한 현대 도시인들의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감소시켜주는 등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식물들에게는 생활 터전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성북구는 2004년 ‘아름다운 나무’ 지정과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습니다.(서울특별시성북구조례 제603호, 2004. 12. 6., 제정) 조례에서 ‘아름다운 나무’란 “수형이 아름답거나, 노목, 거목, 희귀목, 고사목으로서 보호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제13조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름다운 나무 지정위원회로부터 지정된 나무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례를 제정하여 많은 나무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여겨지는 것들을 체계적으로 지정・관리하고자 한 것이죠. ‘아름다운 나무’ 지정과 관리를 위하여 조례까지 제정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전국에서 성북구가 최초였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임규
-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참여한 핵심 인사 48인 중 한 사람으로 일본 정부와 귀족원·중의원에 조선독립에 관한 의견서와 통고문 및 선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3월 1일에 일본 도쿄에 도착하여 일본수상과 의회에 문서를 전달하고 3월 9일 귀국 도중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압송되었다. 미결수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이듬해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의 판결을 받아 출옥하였다. 말년에 성북동 미륵당(현 성북로28길 60)이라는 암자에서 약 10년간 거주했는데, 그곳에서 한시집 『북산산고』를 탈고했다. 미륵당에서 기거하며 한용운을 비롯해 오세창, 정인보 등과 시류를 논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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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홍
-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사학자, 언론인이다. 그는 1910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1911년 9월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하였고, 10월 조선인유학생 학우회를 조직하였다. 1914년 여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비밀결사인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임시정부의 연통부 역할을 수행하였다. 귀국 후 『시대일보』 와 『조선일보』에서 약 10년 동안 언론인 생활을 하였다. 해방 후 돈암동 산 11-152번지에서 거주하였다. 미군정기에 민정장관을 역임하였고,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어 1965년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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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교회
- 성북구 성북로 127(성북동 243-5)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덕수교회는 1946년 고 최거덕 목사와 안동교회 교인 7세대가 모여 정동에서 출발하였다. 1984년에는 성북동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본당 건물은 1984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 교회 건물로 사용중인 일관정(성북동 이종석 별장)은 서울시 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는데, 개화기의 개량 한옥으로 넘어가는 건축양식이 독특하고 주변의 경관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덕수교회는 오랫동안 성북동에 터를 잡고, 교역자와 교인들이 화목한 신앙공동체 형성에 힘쓰며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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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관동
- 성북구 동쪽에 위치한 동의 이름이다. 북쪽으로는 화랑로가 경계이고 동쪽으로는 중랑천을 끼고 있다. 천장산의 동쪽 줄기가 돌을 겹겹이 꿰어놓은 듯하다고 하여 동네 이름을 돌곶이라고 불렀고 그것을 한자로 돌 석(石)자와 꿸 관(串)자를 사용하여 석관이라 한 것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장위리 혹은 석관리로 불렸고, 일제강점기에는 경기도로 편입되어 고양군 숭인면 석관리가 되었다. 해방 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편입되어 1950년 석관동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 행정동제 실시로 행정동은 장석동, 법정동은 장위, 석관동으로 이원화되었다가 1963년 장석동을 장위동과 석관동으로 분동하였다. 1975년 석관 1, 2동으로 분할되었다가 2007년 다시 석관동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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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