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198] 성북구의 화백 장승업
- 어느덧 매화가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 하는 봄이 왔습니다. 매화는 봄에 피는 꽃으로 사군자에 속하기도 하며 옛날부터 많은 그림 속에 등장했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윤중식
- 서양화가이다. 1931년 숭실중학교 재학 당시 제2회 녹향회(綠鄕會) 공모전과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에 진출하였다. 일본 도쿄제국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1941년에 귀국하여 평북 선천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한 이래 서양화단의 중진으로 자리잡아갔고 1970년부터 1977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한국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잃은 뒤 평생 고향을 상징하는 소재인 저녁노을, 비둘기, 돛단배, 시골풍경을 작품에 담았다. 1963년 성북동으로 이사하여 마을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화실에서 〈교회와 비둘기〉, 〈귀로〉, 〈성북동 풍경〉 등의 작품을 창작했다. 성북구립미술관에서 100세 기념전을 연 뒤 같은 해 성북동 집에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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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관동
- 성북구 동쪽에 위치한 동의 이름이다. 북쪽으로는 화랑로가 경계이고 동쪽으로는 중랑천을 끼고 있다. 천장산의 동쪽 줄기가 돌을 겹겹이 꿰어놓은 듯하다고 하여 동네 이름을 돌곶이라고 불렀고 그것을 한자로 돌 석(石)자와 꿸 관(串)자를 사용하여 석관이라 한 것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장위리 혹은 석관리로 불렸고, 일제강점기에는 경기도로 편입되어 고양군 숭인면 석관리가 되었다. 해방 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편입되어 1950년 석관동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 행정동제 실시로 행정동은 장석동, 법정동은 장위, 석관동으로 이원화되었다가 1963년 장석동을 장위동과 석관동으로 분동하였다. 1975년 석관 1, 2동으로 분할되었다가 2007년 다시 석관동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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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다원학교
- 성북구 성북로31길 5-15(성북동 226-220)에 위치한 특수학교이다. 1968년에 최경순이 설립한 서울명수학교는 정신지체아 교육을 위한 특수학교로 지능이 낮아 일반학교에서 수학이 어렵고, 사회적응능력이 낮은 어린이들을 헌신적인 사랑과 교육을 통해 이들의 잠재능력을 최대로 신장시켜 사회에 복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하였다. 설립 당시에는 3학급 45명으로 출발하였으나, 이후 학급 증설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졌다. 2015년에 사립 서울명수학교를 공립으로 전환하여 서울다원학교로 재개교하였다. 효과적인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통합된 형태로 운영하고 있으며, 2019년 현재 91명이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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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잔디유치원
- 성북구 솔샘로 4길 20-8(정릉동 683-1)에 있었던 어린이 교육·보육시설이다. 작곡가 금수현과 피아니스트 전혜금 부부가 1968년 설립하여 개원한 유치원으로, 2016년까지 50년 가까이 운영하였다. 부부가 모두 음악가이고, 아이들 교육에 헌신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보니, 유치원의 운영도 특별한 면이 있었다. 금수현은 유치원의 원가를 짓고, 어머니들을 위한 노래도 만들어 함께 불렀다. 전혜금은 어머니회를 중심으로 부부동반 모임까지 만들어 이웃과 화합하고 문화와 예절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또한 음악이 있는 연극 공연까지 하여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을 주었다. 2016년에 문을 닫았고 2020년 현재 그 자리에는 금잔디 유치원의 이름을 딴 금잔디빌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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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의 귀여운 악마들
- 중학생 대상 학습지인 『봄봄주니어』 1997년 3월호에 실린 산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제제와 비교하며 술회하였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라 경어체로 쉽게 서술된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김소진은 육체적 성장과 함께 정신적 성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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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