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199] 동시대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성북동의 전시 공간
- 성북구는 예전부터 수많은 문화 예술인들과 인연 맺은 공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동시대 작가들의 활발한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4월을 맞이해 한성대입구역부터 근처 걸어 다니기 좋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공간 세 곳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00의 00 (땡땡의 땡땡)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미타사 신중도
- 미타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이다. 신중도는 부처의 정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것으로, 미타사의 신중도는 1873년 4월 경선당 응석이 출초하였다. 가로로 긴 화면은 2단으로 나뉘어져 상단에는 범천과 제석천 및 천부중, 하단에는 위태천과 천룡팔부가 배치되었고, 하단의 중앙부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창과 칼 등으로 무장한 천부 팔부중 무리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 경기지역에서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이 초본을 바탕으로 한 신중도가 크게 유행하여 현재 여러 점의 작품이 남아있다. 섬세한 필치와 원만한 인물형태, 안정적인 색채 등에서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 신중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2014년 7월 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0호로 지정되었다.
- 이야기 더보기
- 박남옥
- 영화감독이다. 광복 후 서울로 올라와 조선영화사 광희동 촬영소에 들어가 편집을 배웠다. 1940년대 돈암동에 거주하며 주변에 살던 영화인들과 교류했고, 1953년 극작가 이보라와 결혼하고 이듬해 남편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미망인』을 촬영했다. 제작비 부족 등으로 어렵게 완성하여 개봉하였으나 흥행을 거두진 못했다. 1960년 도쿄에서 열린 제7회 영화제에 참가했다. 1997년 제1회 서울 여성영화제가 『미망인』을 상영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의 존재가 알려졌고, 2008년 여성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박남옥상'이 제정되었다.
- 이야기 더보기
- 최인훈
- 소설가이다. 최인훈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는데,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목포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대를 중퇴하였다.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60년 「가면고」, 「광장」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적 명성을 굳혔다. 4.19혁명이 있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에 발표한 「광장」은 당대까지 금기시되었던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파헤친 대표작으로 발표 직후 문단 안팎에 파란을 일으켰다. 한편 「소설과 구보씨의 일일」과 「화두」(1994)에서 성북동을 주된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였으며, 특히 「화두」는 이태준의 집을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하여 실제로 이태준의 집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이야기 더보기
- 서울숭인초등학교
- 성북구 오패산로16길 37(하월곡동 225-3)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이다. 1937년 4월 1일 경기도 숭인공립 보통학교로 개교하였고, 1949년 8월 14일 서울특별시로 편입하였다. 1960~1970년대에는 동양에서 가장 학생 수가 가장 많다고 하여 '콩나물학교'라고도 불렸으나 1972년 숭곡국민학교(현 숭곡초등학교)가 신설되면서 학생 수가 분산되었다. 원래는 하월곡동 87-1에 있었으나 2009년 3월 현재의 신축교사로 이전하였고, 같은 해 11월 4일 이전식을 개최하였다. 교훈은 '슬기롭고, 예절바르고, 튼튼하게'이다. 2017년 제76회 졸업식을 기준으로 누적 졸업생 41,243명을 배출하였다.
- 이야기 더보기
- 항아리
- 1963년 4월에 쓴 것으로 김환기의 항아리 사랑이 드러나는 글이다. 그는 한때 집안이 온통 항아리로 가득 찰 정도로 청춘기를 항아리열(熱)에 바쳤다고 말한다. 행여 항아리가 혹시 망가질까 노심초사하던 그가 이 취미를 그만 둔 계기는 피난살이를 마치고 올라온 때라 한다. 그는 성북동 집 뜰 속 수많은 항아리 파편들을 보고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재난으로 항아리들이 없어진 것에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으며 아직도 항아리를 조형미의 극치로 생각한다. 김환기는 그의 미에 대한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하며 항아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글을 마무리 한다.
- 이야기 더보기
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