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19] “여성국극,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어”, 여성국극과 임춘앵
- 여러분은 ‘여성국극’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여성국극이란 전통연희자들이 무대 위에서 역할을 나누어 연기, 춤, 소리를 펼치는 공연인 창극의 일종으로 모든 배역을 여성이 담당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국극은 195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끌었지만, 짧은 전성기 이후 급격한 쇠퇴기 맞이하면서 우리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요즘 웹툰 <정년이>가 창극,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로 변주되면서 이야기의 주요 소재인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조소앙
- 돈암동에서 거주하고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공부한 후 경신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3년 중국에 망명하여 항일단체 대동당을 조직하였다. 1918년 무오독립선언서를 기초하여, 독립운동 지도급 인사 39인의 공동성명으로 발표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민주공화제헌법의 기초를 비롯한 임정의 이론정립 등 전반에 걸쳐 주역을 맡았고, 해방 후에는 임시정부의 정통성 고수를 주장하였다. 성북구 돈암동에 거주하면서 1950년 5.30 총선에 사회당으로 서울 성북구에서 출마하였다. 선거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조병옥을 꺾고 당선되어 제2대 국회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1958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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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 한국 시각장애인 역학사들을 주축으로 미아리 역학촌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단체이다. 고려시대에는 시각장애인 역학사들을 맹승(盲僧)이라고 불렀으며 수도에 이들의 동업조합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명통사(明通寺), 맹청(盲廳)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 초기 명맥이 잠시 끊겼다가 1925년 조선맹인역리대성교 맹인조합이라는 단체로 부활하였다. 1971년 사단법인 대한맹인역리학회라는 명칭으로 법인설립 인가를 받았고, 1989년 7월 성북구 동선동 현재의 자리로 중앙회 회관을 이전하였다. 미아리 역학촌은 한국의 대표적 역학촌으로만 아니라 한국 시각장애인 점복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나가는 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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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우미술관
- 성북구 선잠로 12-11(성북동 55-1)에 있던 미술관이다. 운보 김기창(1913~2002)과 그의 부인 우향 박래현(1920~1976)의 호에서 ‘운우’라는 미술관의 이름을 지었다. 이 미술관은 김기창과 박래현이 살던 집이었다. 부부는 1954년 무렵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박래현의 노력으로 한옥을 장만했다. 1976년 김기창은 성북동 한옥을 헐고 아내를 위해 미술관을 건립하였지만, 불행히도 미술관이 완공되기 전에 박래현은 세상을 떠났다. 김기창은 이곳에서 1984년까지 홀로 살며 작품활동을 하다가 어머니의 고향인 청원으로 화실을 옮겼다. 2001년 9월 27일 서울시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고 2002년 3월 개관하였으나 미술관 대표가 운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폐관신청을 하면서 2015년 11월 10일 폐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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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