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13] 주민들의 포근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개운산
- 성북구에는 여러 산이 있어 가까이에서 자연을 느끼기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성북구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산이 있는데요, 바로 개운산(開運山)입니다. 개운산은 북한산(835.6m)이나 북악산(342m) 등 성북구의 다른 산들과 비교하면 야트막한 134m 높이를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접근성이 좋아 주민들에게 친근한 공간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오늘의 금도끼에서는 개운산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최익환
- 독립운동가이자 종전평화운동가이다.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을 앞둔 1909년에는 서천군 재무주사로 근무하던 중 망명을 결심하고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공금을 빼돌렸다가 발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대동단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또다시 옥고를 치렀고, 출소 후에는 신간회에 참여하였다. 해방 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피난 가지 않고 성북동 자택(성북동 260번지)에 머무르면서 북한 당국자와 이승만 정부에 종전을 호소했다. 미군의 도움으로 평양까지 가서 종전을 호소했으나 양쪽 정부 모두 제대로 만나주지 않았다. 1950년에 간행된 『대한민국인사록』에는 주소가 돈암동 458-392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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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휴전할 때까지 약 3년간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던 전쟁이다. 북한은 성북구 미아리고개를 통해 서울로 들어왔고 후퇴할 때에도 그곳을 통해 많은 사람을 납치해 갔다. 북한은 전쟁 중에 서울을 점령했다가 후퇴하면서 남한의 많은 사람을 미아리고개를 통해 북으로 강제납치하였고, 그중에는 성북구에 살던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조소앙, 안재홍, 조헌영 등은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인물로 납북 당시 성북구에 거주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과 고통은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재호가 작곡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통해 대중가요로도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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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천 복개공사장 사고
- 1985년 성북천 복개공사장에서 일어난 축대 붕괴 사고이다. 성북천은 1960~1970년대까지 구간을 나눠 복개하였고, 복개한 자리에는 상가아파트를 지었다. 1985년 7월 11일 오후에 성북천 삼선교 상류에서 하천 바닥을 파내는 공사를 하다가, 주택의 축대 밑부분을 깊게 파내는 바람에 축대가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 이 사고로 주택이 붕괴되고 집안에 있던 모녀가 흙더미에 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딸은 숨졌다. 주변의 주택 2채도 심하게 금이 갔으나 다행히 빨리 대피하여 더 이상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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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예술치유허브
- 성북구 회기로3길 17(종암동 28-358)에 있던 문화예술공간이다. 도심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조성하였으며, 2009년까지 이 자리에 위치해 있었던 성북구보건소를 리모델링했다. 2010년 7월 성북예술창작센터로 개관했으며, 2016년 서울예술치유허브로 개칭하였다. 연면적 1,997㎡에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에 이르는 건물로, 예술가 스튜디오, 갤러리, 다목적홀, 주민창작실, 옥상공방 등이 구성되어 있었다. 2022년 9월 서울예술치유허브를 리모델링하여 성북여성취업교육센터를 개관하면서 현재는 운영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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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