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05] 서울미래유산〈돈암동 성당〉의 유래와 문화적 가치
- 대학교 주변 풍경이 그러하듯, 성신여자대학교 정문에서부터 성신여대입구역까지 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모여있습니다. 상권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돈암시장이 자리하고 있어서 젊은이들의 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젊은이들의 거리와 돈암시장 일대 아래쪽으로 성북천이 흐르면서 상권과 주거지역을 구분해 줍니다. 복잡한 상권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고풍스러운 고딕양식의 건물이 나타납니다. 이번 금도끼의 주제인 돈암동 성당입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김영기
- 화가이다. 1911년 서울에서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중국 화단의 거장 제백석(齊白石)을 사사하고 북경 보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등단한 이래, 문인화적 필치에 현대적인 기법을 더하여 한국적 수묵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특히 ‘동양화’ 대신 '한국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조선미술사』(1948), 『동양미술사』(1971), 『동양미술론』(1980) 등을 저술하여 미술이론가로도 활동했으며, 이화여대 홍익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돈암동 전차종점 인근 주택에 거주한 바 있으며 기와집이 어우러지는 돈암동 풍경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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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
- 시인이자 학자, 교육가이다. 1939년 『문장』에 시 「고풍의상」과 「승무」, 1940년에 「봉황수」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해방 후 성북동에 한옥을 마련하여 ‘방우산장’이라는 당호를 붙이고, 근처에 살고 있던 김기창, 김환기, 윤이상 등과 교류했다. 그는 방우산장에서 박목월, 박두진과 모여 의견을 나누며 『청록집』을 간행하였는데 이 책의 장정은 김용준이 맡았다. 그의 작품은 민족정서와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활동 후기에는 혼란한 현실 정치를 비판하며 『지조론』(1962)과 같은 산문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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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기
- 성북동에서 거주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중동학교 재학 중이던 1940년 7월, 성북정 전태현의 집에서 함께 살던 손용우에게 '조선인은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같은 달 같은 곳에서 전태현과 손용우에게 일본은 패전할 것이므로 기회를 잃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1940년 9월에는 중동학교 교실에서 중일전쟁을 계기로 조선독립이 실현될 것이라 말했고, 지원병제도를 반대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후 가혹한 신문과 조사를 받다가 판결이 나기 전인 1942년 5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경성부 성북정 133-60(현 성북로 53-2)에서 전태현, 손용우와 함께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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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