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01] 나무로 조각된 탱화, 경국사 목각탱
- 성북구에는 미타사, 보문사, 흥천사, 개운사, 봉국사, 경국사와 같은 많은 전통사찰이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다양한 불교 유물이 성북구 안에 위치해 있기도 하죠. 여러분은 불교와 관련된 유물로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시나요? 탑이나 불상, 경전에서부터 비롯하여 여러 종류가 있지만 탱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이강
-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04년 미국에서 안창호, 정재관 등과 함께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하고 1905년 기관지 『공립신문』을 창간해 주필이 되었다. 1907년 귀국하여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서 정재관과 함께 신민회 블라디보스토크지회를 설립하였다. 이밖에도 『대동공보』 편집책임을 맡아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1919년에는 강우규의 폭탄 투척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상해로 탈출하여 임시정부에 참여, 의정원 의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안창호가 중심이 된 흥사단 운동에도 참가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1964년 10월 13일 자택인 정릉동 재건주택 88호(현 정릉동 16-7)에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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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전문학교
-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고려대학교의 옛 이름이다. 보성전문학교는 1905년 4월 이용익이 설립하였는데, 아어학교(러시아어학교, 현 종로구 수송동) 건물에서 개교하였다. 1907년 이용익이 해외 망명 중 죽은 후에는 손자 이종호가 운영을 맡았는데 역시 안중근의 의거에 연루되어 구금되자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천도교에서 학교를 인수했으나 손병희가 체포당하자 또다시 어려움에 빠졌고, 1921년 김병로 등이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였는데 총독부의 간섭은 심했고 재정의 어려움도 여전하였다. 1932년 경성방직을 설립한 사업가 김성수가 인수하여 안암동(현 고려대학교)으로 학교를 옮기고 운영하였다. 해방 후 1946년 중앙학원으로 흡수하고, 종합대학으로 인가를 받으며 고려대학교로 이름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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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리 공동묘지
- 일제강점기 미아리 일대(현 길음동)에 설치된 공동묘지이다. 1912년 「묘지규칙」이 발표되면서 묘지로 설정된 지역은 19곳이었다. 그중 1번은 미아리 오패산 일대, 2번 묘지는 숭인면 미아리 일대였다. 국가기록원 소장 토지조사부에 의하면 미아리 산25번지와 산34번지 일대가 경성부와 숭인면 공동묘지로 이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길음동에 위치한 2번 미아리 묘지는 약 69,000평 정도로 추정된다. 이후 공동묘지가 기피시설로 인식되면서 1958년대 후반에 이전이 완료되었고, 그 자리는 무허가 건물 철거민 이주단지 등으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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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삼
- 시인이다. 도쿄에서 출생하여 1936년 어머니의 고향인 삼천포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1953년 시 「강물에서」가 모윤숙의 추천을 받았고, 1955년 『현대문학』에서 서정주와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본격적인 문단생활을 시작했다. 첫 시집 『춘향이 마음』(1962) 이후 20여 권에 이르는 시집과 시선집을 간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연이은 투병 생활로 인해 삶과 죽음에 대한 연민과 애상의 주제가 반복되고, 달관적·허무주의적인 색채가 작품에 드러난다. 1967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에는 정릉에서 건강을 회복하면서 「정릉 살면서」라는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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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
- 성북구 성북로14가길 23(성북동 151)에 위치한 사립고등학교이다. 1931년 6월 이기윤(李基潤)이 세운 외국어 교육기관인 경성외국어학원에서 출발하여, 1939년 3월 현재의 위치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1943년 9월 일본이 영어 교육을 강제 폐쇄시키면서 성북중학원(城北中學園)으로 변경하였다가 12월에 경북중학원(京北中學園)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해방 후 잠시 휴원되었다가 1949년 9월 성북중학원으로 다시 개원하였고, 1954년 4월 재단법인 계원학원을 설립하여 성북중학교와 성북고등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1970년 계원학원을 학교법인 홍익학원에서 흡수·합병하고, 1972년 6월 교명을 홍익고등학교로 변경하였다. 1977년 3월 교명을 다시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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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