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22] 만남의 장, 성북구의 축제
- 가을이 되면 성북구 곳곳에서 축제가 열립니다. 이 중에는 동축제도 있습니다. 2020년에는 이런 동축제를 모아서 금도끼 #33 10월 동축제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https://archive.sb.go.kr/isbcc/home/u/gold/view/33.do?page=32). 글에도 있지만 삼선동에는 <선녀 축제>, 정릉동에는 <버들잎 축제>, 종암동에는 <북바위 청포도 문화제>, 장위동에는 <부마 축제>, 석관동에는 <의릉문화 축제>가 열립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오세덕
- 안암동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127번지(현 성북구 안암로9가길 57, 49, 59)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과 철원애국단에서 활동했으며 애국단 대표로 상하이에 파견되었다. 1923년 이른바 '김시현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폭탄밀반입시도로 김시현이 경찰에 쫓기고 있을 때 그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었다. 같은 해 한성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의열단원 구여순(具汝淳)의 한성은행 자금 탈취를 도와주려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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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기
- 화가이다. 1911년 서울에서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중국 화단의 거장 제백석(齊白石)을 사사하고 북경 보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등단한 이래, 문인화적 필치에 현대적인 기법을 더하여 한국적 수묵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특히 ‘동양화’ 대신 '한국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조선미술사』(1948), 『동양미술사』(1971), 『동양미술론』(1980) 등을 저술하여 미술이론가로도 활동했으며, 이화여대 홍익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돈암동 전차종점 인근 주택에 거주한 바 있으며 기와집이 어우러지는 돈암동 풍경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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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연현
- 문학평론가이자 출판인이다. 1933년 중동중학교에 편입하여 김광섭 시인을 담임으로 만난다. 1938년 한글동인지 『아(芽)』, 1939년 『시림』을 만들고, 이를 계기로 문학의 길을 걷는다. 1942년 창씨명으로 「동양에 대한 향수」를 발표하였고, 몇 편의 친일 관련 글을 남겼다.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과 교류하며 1946년 청년문학가협회를 만들어 문단 활동을 함께 하였고, 1949년 『예술부락』을 주재하면서 본격적인 비평활동을 전개했다. 1955년에는 순수 문예지인 『현대문학』의 주간을 맡는다. 1972년 정릉동에 이층 양옥을 마련해 이사하였다. 1981년 해외여행 도중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조연현문학상’을 제작하여 신진작가들을 양성하고 지원한 그의 뜻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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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연방직주식회사
- 일제 강점기 보문동 인근에 있던 방직회사이다. 일본 미쓰이 그룹의 계열사로, 1887년 자본금 100엔으로 설립된 종연방직은 러일전쟁 이후 면방적 및 견방적 관계회사를 흡수하여 일본의 대 방적업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25년 경성에 제사공장(製絲工場)을 동대문 밖 신설리에 세우면서 조선에 진출하였으며, 1930년대까지 종연방적의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종연방직 제사공장은 여성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은 곳으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운동도 활발했던 곳이다. 1933년 9월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대우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단행하였으나 일제 경찰과 회사 측은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파업을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신설리 여성노동자 파업은 열악했던 여성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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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