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04] 길음역세권 재개발구역의 변화
- 길음역 7번 출구로 나와 길음시장 방면으로 고개를 들면 높은 건물이 눈에 띕니다. 바로 올해 4월 길음역세권 재개발구역에 완공된 신축 주상복합 아파트입니다. 총 35층에 달하는 고층에 세대 수는 395세대이며 총 2개 동으로 이루어진 이 아파트는 길음뉴타운의 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길음역 앞 대로변에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상가와 세대들이 입주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 전, 이곳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유우석
-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유관순의 오빠, 조화벽의 남편이다. 3.1운동 때 공주의 영명학교에 재학중이었는데 1919년 4월 1일 공주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다른 학생대표들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장터에 나가 시위 군중에게 나누어주고 그 선두에 서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에 체포되어 같은 해 8월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혐의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7년에는 원산청년회를 조직,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4년형을 구형받았다. 성북구 정릉동에 거주하였고, 1968년 5월 28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유우석의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이야기 더보기
- 김광섭
- 시인, 언론인, 번역가이다. 일본에서 유학 후 교사 생활과 평론 활동을 하였다. 1933년부터 모교인 중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1940년까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41년 2월 이로 인해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61년 성북동 168-34(현 성북로10길 30)에 집을 마련했지만, 뇌출혈로 쓰러져 오랜 기간 병석에 있었고 그동안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성북동 집에 대한 애착을 잃고 동소문동을 거쳐 미아동으로 이사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병마와 싸우면서 관념적인 시에서 구체적인 체험을 시로 형상화하는 변화를 보인다. 그의 대표작인 「성북동 비둘기」를 비롯한 「겨울산」, 「산」 등은 성북동 집에서 구상하여 미아동에서 완성한 것이다.
- 이야기 더보기
- 박고석
- 화가이다. 일본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하였다. 1955년 정릉동에 자리 잡고 서라벌예대와 홍익대에 출강하였다. 박경리, 천승세 등 작가들의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돈암동 전차 종점 근처에 작업실을 두고 북한산, 도봉산, 설악산, 지리산을 다니며 산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하여 ‘산의 화가’라고도 불리웠다. 1978년 정릉동에서 동소문동으로 이사하고, 1983년에는 처남인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하여 지은 명륜동 집 아틀리에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작품으로는 〈범일동 풍경〉(1951), 〈가족〉(1953), 〈외설악〉(1981) 등이 있다.
- 이야기 더보기
- 권진규
- 조각가이다. 1943년 춘천공립중학교 졸업 후 미술연구소에 들어가지만 곧 비행기 부품공장에 징용된다. 다음 해 공장을 도망쳐 귀국하였다. 1947년 성북회화연구소에서 회화 수업을 받았다. 1949년 9월, 무사시노미술학교(武藏野美術學校)에 입학하여 부르델의 계보를 잇는 시미즈 다카시를 사사하였다. 1959년 귀국 후 성북구 동선동에 작업실을 짓고 197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다. 삼국시대 토우에 뿌리를 둔 테라코타와 건칠(乾漆) 기법을 새롭게 연구·발굴한 그는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의 세계를 정립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익대 조각과와 서울대 건축과,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주요작품으로는 「자각상」, 「지원의 얼굴」, 「애자」, 「땋은 머리」 등 테라코타 흉상 작품이 있다.
- 이야기 더보기
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