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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와 관련된 사진, 영상, 간행물 등 기록물을 열람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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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택난중(住宅難中)의 경성(京城) 4회, 제반시설불비(諸般施設不備)로 교외연장(郊外延長)도 불능(不能)
    기타
    주택난중(住宅難中)의 경성(京城) 4회, 제반시설불비(諸般施設不備)로 교외연장(郊外延長)도 불능(不能)
    내용 : 경성시내 인구가 가득 차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 사대문 밖 청량리, 안감리(안암동), 신당리, 왕십리, 아현, 연희, 마포 등은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 충분하지만, 기반시설이 부족하여 농사를 짓지 않는 도회민들이 이주할 동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기사이다. - 신문명 : 중외일보 - 발행일 : 1929년 11월 11일 월요일 - 기사 위치 : 2면1단
  • 家庭太平記 - 한글을硏究하시는李克魯氏家庭
    문서류
    家庭太平記 - 한글을硏究하시는李克魯氏家庭
    1937년 출판된 잡지 『여성』2권 2호에 실린 이극로에 대한 인터뷰 기사이다. 당시 이극로가 살았던 집의 대략적 위치, 이극로의 결혼생활, 한글 연구에 대한 열의 등을 알 수 있다.
  • 지적도 : 옛 미아리  533-10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기타
    지적도 : 옛 미아리 533-10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일제강점기 미아리 533-10번지(현 길음동) 일대의 지적도이다. 1914년 경기도로 편입되어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아리, 하월곡리, 돈암리의 경계면 쪽에 표기된 '천(川)'은 정릉천이다. 예전부터 이 지역은 ‘기리묵골’ 또는 ‘기레미골’로 불렸는데, 정릉천이 흐르는 물소리가 맑고 고와서 좋은 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으로 이를 한자화하여 길음동(吉音洞)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 후반 정릉천 복개공사가 시작되어 현재는 하천이 아닌 길음역, 내부순환로, 아파트 단지 등을 볼 수 있다. 본 지적도는 1962년 폐쇄되었다.
  • 임야도 : 구 돈암동 산7-13 일대, 1924년
    기타
    임야도 : 구 돈암동 산7-13 일대, 1924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24년 구 돈암동 산7-13 일대의 임야도이다. 1920년대 임야로 등록되었던 이곳은 1930년 돈암동 173-1번지로 등록전환되었고 1944년 성신여학교(현 성신여자대학교)가 이 자리로 이전하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 임야도 :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1938년 (2)
    기타
    임야도 :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1938년 (2)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38년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임야도의 왼쪽 페이지다.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장위리'가 기재되었다. 임야로 등록되었던 이 일대는 1960년대 동방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단독주택이 대거 지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동일 지역의 1968년 지적도와 비교해 볼 수 있다.
  • 임야도 :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1938년 (1)
    기타
    임야도 :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1938년 (1)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38년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임야도의 오른쪽 페이지다.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장위리'가 기재되었다. 임야로 등록되었던 이 일대는 1960년대 동방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단독주택이 대거 지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동일 지역의 1968년 지적도와 비교해 볼 수 있다.
  • 지적도 : 옛 돈암동 294-1번지 일대, 1924년
    기타
    지적도 : 옛 돈암동 294-1번지 일대, 1924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24년 옛 돈암동 294-1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좌측 하단에 작성한 '대정13년'을 통해 발행 시기를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돈암지구가 조성되어 다시 수도로 편입되기 이전이므로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로 기재되어 있다. 294-1번지 및 그 주변이 '밭(田)'으로 표기되고 필지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 이후 주거지가 계획적으로 조성된 모습은 동일 지역인 동소문동6가의 1960년대 지적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 지적도 : 옛 신설리 216-1번지 일대, 1936년 이전
    기타
    지적도 : 옛 신설리 216-1번지 일대, 1936년 이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일제강점기 신설리 216-1 일대(현 보문동6가)의 지적도이다. '경성시가지계획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된 1936년 이전의 문서로, 아직 필지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이후 구획정리를 완료하고 계획적으로 주거지가 조성된 모습은 동일 지역인 보문동6가의 1975년 지적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 지적도 : 옛 돈암동 101-32번지 일대, 1936년 이전
    기타
    지적도 : 옛 돈암동 101-32번지 일대, 1936년 이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옛 돈암동 101-32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高陽郡 崇仁面 敦岩里)가 우측 상단에 기재된 것으로 보아, 돈암지구가 조성되어 이 지역이 다시 수도로 편입된 1936년 이전에 작성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본 지적도는 '경성시가지계획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이 지역은 이후 시가지 및 주거지가 조성되고 1949년 돈암동에서 동선동으로 분리된 지금의 성신여대입구역 인근이다.
  • 지적도 : 옛 신설리 380-50번지 일대, 1936년 이전
    기타
    지적도 : 옛 신설리 380-50번지 일대, 1936년 이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일제강점기 신설리 380-50번지 일대(현 보문동)의 지적도이다. 고양군 숭인면 신설리(高陽郡 崇仁面 新設里)가 우측 상단에 기재된 것으로 보아, 돈암지구가 조성되어 이 지역이 다시 수도로 편입된 1936년 이전에 작성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아직 대로(현 보문로)를 비롯하여 시가지 계획이 진행되기 이전의 모습이다.
  • 지적도 : 옛 돈암동 458-585번지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기타
    지적도 : 옛 돈암동 458-585번지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옛 돈암동 458-585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우측 상단에 한자로 경성(京城),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高陽郡 崇仁面 敦岩里)로 표기했다가 정정한 흔적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적도에 수정 작업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좌측 상단에 붉은 글씨로 작성한 폐쇄 시기를 통해 1962년 3월까지 유효했던 문서임을 파악할 수 있다. 좌측 상단에 '천(川)'이 표기되었는데 이 일대는 훗날 성북천이 복개되어 삼선상가아파트 등이 건설되고 2000년대 들어 다시 복원된 지역이다. 이 지적도가 만들어진 시기에는 돈암동에 속했으나 1961년 구획정리 이후 현재까지 행정동으로는 삼선동, 법정동으로는 동소문동2가에 해당한다.
  • 지적도 : 성북동 246번지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기타
    지적도 : 성북동 246번지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성북동 246번지 일대의 축척 1/1200 지적도이다. 우측 상단에 한자로 경성(京城),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高陽郡 崇仁面 城北里)로 표기했다가 정정한 흔적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적도에 수정 작업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좌측 상단에 붉은 글씨로 작성한 폐쇄 시기를 통해 1962년 3월까지 유효했던 문서임을 파악할 수 있다. 246번지 앞에 '천(川)'이 기재되어 이 일대에 성북천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중앙에 '산(山)'으로 표기된 땅은 아직 226번지 일대에 북정마을이 조성되기 이전임을 말해준다.
  • 임야도 : 정릉동 산1-150 일대, 1938년
    기타
    임야도 : 정릉동 산1-150 일대, 1938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1938년 정릉동 산1-150번지 일대의 임야도이다. 당시에는 북한산 자락의 임야로 등록되었지만, 1971년 9월 국민대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1972년 정릉동 861-1번지로 등록전환되었다.
  • 지적도 : 장위동 189-3 일대, 일제강점기
    기타
    지적도 : 장위동 189-3 일대, 일제강점기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일제강점기 장위동 189-3 일대의 지적도이다. 1914년 경기도로 편입되어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장위리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장위뉴타운'이 조성된 지역으로 2022년 하반기, 지적 정리가 예정된 곳이다.
  • 「시가지계획 돈암 토지구획정리 계획평면도」, 『경성부 영등포 및 돈암 토지구획정리비 기채의 건』, 1938
    기타
    「시가지계획 돈암 토지구획정리 계획평면도」, 『경성부 영등포 및 돈암 토지구획정리비 기채의 건』, 1938
    1938년에 작성된 『경성부 영등포 및 돈암 토지구획정리비 기채의 건』 문서에 실린, 「시가지계획 돈암 토지구획정리 계획평면도」이다. 돈암지구에 주거지뿐 아니라 학교, 공원, 시장, 관사 등 근대적인 도시기반시설을 조성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본 문서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다.
  • 원덕문, 기장 지장암 <칠성도>, 1934
    시청각류
    원덕문, 기장 지장암 <칠성도>, 1934
    기장 지장암 칠성도(機張 地藏庵 七星圖)는 치성광불을 중심으로 한 칠성여래와 칠원성군을 상하 2단의 병렬형식으로 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도상 구성은 조선 말기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칠성도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화면을 상하로 구분한 이단구조형식이나 칠원성군의 비중이 확대된 점, 각 도상과 천공의 채운 표현 등은 19세기 말 근대불화의 일반적인 형식을 계승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 활동했던 월주 덕문의 작품에서 확인되는 특징이다. 또한 반원형의 방광 표현은 경상도 지역의 불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으로 범어사와 복천사를 근거지로 불화소를 만든 완호의 칠성도나 그의 제자인 월주 덕문의 칠성도에서 일부 변용되어 나타나는 양상이다. 이 불화는 10여년 전 배접 당시 현재 화기의 일부분을 유실하였지만 2004년 성보문화재연구원의 조사기록이 문헌으로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1934년 조성된 월주 덕문의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월주 덕문은 1925년(13세)에 범어사 소속 복천암에 행자승으로 들어간 후 1927년(15세) 출가하였고, 완호 낙현으로 부터 불화를 사사받아 그의 계보를 이어 불화 작업을 하였다. 기장 지장암 칠성도는 1931년 완호 입적 이후 독립적으로 제작한 불화로, 현재 알려진 월주 덕문의 불화 가운데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불화는 20세기 전반 칠성도의 도상 연구는 물론 금어 월주 덕문의 초기 화풍을 파악하는 자료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 인용] 돈암동 흥천사(신흥사)에 주석했던 승려이자 국가무형문화재 단청장 초대 기능보유자인 원덕문이 그린 불화이다.
  • 경성안내, 1944
    기타
    경성안내, 1944
    1944년, 76X54cm, 지성당 발행 1940년대 전반의 서울을 알 수 있는 지도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성벽, 산악, 구(區)의 범위, 각급학교, 사원과 신사, 경찰서의 위치가 명료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철도와 전차, 버스 노선을 표시하여 당시 교통수단과 운행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서울 시내의 도로망, 행정경계, 외곽 경계, 토지이용 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자료설명 인용] 돈암지구 정비사업이 완료된 이후에 제작된 지도로, 현재의 돈암·안암·보문동 일대로 경성부가 확장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성북정(城北町), 돈암정(敦岩町), 안암정(安岩町), 신설정(新設町, 현재 보문동 포함) 등의 일본식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 경성부관내도, 1940
    기타
    경성부관내도, 1940
    1940년, 85X66cm 1/25,000 축척의 행정용 서울지도로 간행되었다. 이 지도에 서울의 범위는 한강 이북, 북악산 이남, 김포 이동, 중랑천 이서 지역이다. 시가지나 부락은 갈색으로 표현하고, 주변의 산지는 황색으로 채색했다. 사찰과 신사, 교회, 학교, 우편국, 경찰서가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를 통해 당시 서울의 행정과 지명,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자료설명 인용] 돈암지구 정비사업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던 시기에 제작된 지도라 도로망이나 주거지 조성 상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경성시가지계획평면도, 1937
    기타
    경성시가지계획평면도, 1937
    1937년, 103X139cm, 조선인쇄주식회사 경성도시계획연구회에 의해 만들어진 1/15,000 축척의 서울 시가지 계획지도이다. 1930년대 후반 서울의 도시계획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지도에는 서울의 시가지 계획과 관련하여 강북을 중심으로 시가지계획지구, 토지구획정비지구, 넓은 도로, 대로, 중로, 광장, 거주불가능지경계선, 철로 등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자료설명 인용] 지도 우측 상단에서 지금의 돈암동, 동선동,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 일대에 해당하는 '돈암지구'에 대한 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 경성부 시가지 계획 가로망도, 1930년대
    기타
    경성부 시가지 계획 가로망도, 1930년대
    1930년대, 83.5X65.5cm 1920년대 경성에 관한 도시계획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1934년 6월 20일, 조선총독부는 "조선시가지계획령"(총독부령 제18호)을 발포하고, 경성에 대한 도시계획에 착수하였다. 도시계획의 주된 내용은 도심부의 도로를 개수하고, 시역(市域)을 확장하며, 확장된 시역에 대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지도를 보면 경복궁을 중심으로 남서쪽과 북동쪽으로 도시가 확장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도로가 개설되고 행정구역이 개편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자료설명 인용] 지도에서 노란색으로 채색된 지역은 토지구획정리지구이며 그 중 경복궁 북동쪽이 지금의 성북구 돈암동, 동선동,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 일대에 해당하는 '돈암지구'이다.
  • 경성(京城)에 성북(城北), 마포(麻浦) 양서(兩署) 신설(新設)
    기타
    경성(京城)에 성북(城北), 마포(麻浦) 양서(兩署) 신설(新設)
    내용: 경성 확장 이후 시급한 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대문 경찰서 관리 지역을 분할하여 성북 경찰서를 신설한다는 기사이다. 새 경찰서의 관할 구역 등의 정보를 담고 있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44년 7월 16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3면
  • 고가도로(高架道路)에 착공(着工)
    기타
    고가도로(高架道路)에 착공(着工)
    내용: 동대문에서 안암정까지의 시가 도로 개수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기사이다. 공사 현황과 완료 예정이 포함 되어있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43년 3월 9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2면
  • 교사(校舍) 신축(新築)에 근로(勤勞) 작업(作業)
    기타
    교사(校舍) 신축(新築)에 근로(勤勞) 작업(作業)
    내용: 경성여자기예학교의 전교생 백여 명이 안암정 10-15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기 위해서 근로 작업에 동원되었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42년 11월 16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3면
  • 동경성(東京城) 3천(三千) 토막민(土幕民)
    기타
    동경성(東京城) 3천(三千) 토막민(土幕民)
    내용: 안암정을 비롯한 동부 경성에 위치한 토막을 경성부 도시계획과에서 강제로 철거하는 중이며, 이에 대해 안암정 이백여 호의 토막민들이 경성부 사회과에 진정한다는 기사이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41년 7월 18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2면
  • 봉은사(奉恩寺) 총력연맹(總力聯盟) 결성(結成)
    기타
    봉은사(奉恩寺) 총력연맹(總力聯盟) 결성(結成)
    내용: 1941년 4월 6일 오전 10시 안암정 개운사에서 국민 총력 봉은사 본말사 연맹 결성식을 거행한다는 기사이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41년 4월 3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3면
  • 미나미 지로(南) 총독(總督) 총감하(總監下)에 전문(專門), 대학생(大學生) 대연습(大演習)
    기타
    미나미 지로(南) 총독(總督) 총감하(總監下)에 전문(專門), 대학생(大學生) 대연습(大演習)
    내용: 미나미 지로 총독의 감독 아래 전문학교의 연합 군사 연습이 실시되었다는 기사. 돈암정과 안암정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39년 10월 1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3면
  • 돈암(敦岩)·안암(安岩)·신설(新設) 3정(三町) 주택지(住宅地) 분양(分讓) 개시(開始)
    기타
    돈암(敦岩)·안암(安岩)·신설(新設) 3정(三町) 주택지(住宅地) 분양(分讓) 개시(開始)
    내용: 경성부 편입으로 인구가 증가한 안암정에 주택난이 심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주들이 주택지 분양 조합을 조직해 일반 부민에게 주택지를 분양한다는 기사이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39년 4월 11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3면
  • 15조(十五條)의 시가(市街)·간선(幹線) 확장(擴張)
    기타
    15조(十五條)의 시가(市街)·간선(幹線) 확장(擴張)
    내용: 쇼와 13년도(1938년도) 시가지 계획 사업으로 동대문에서 안암정까지 시가 도로가 개수될 것이라는 기사이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38년 3월 15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3면
  • 대경성(大京城)의 행정구역(行政區域) 4구(四區)로 분할(分割) 결정(決定)
    기타
    대경성(大京城)의 행정구역(行政區域) 4구(四區)로 분할(分割) 결정(決定)
    내용: 1936년 4월 1일부로 실시되는 도시계획령에 따라 안암리가 경성부로 편입된다는 기사이다. 추가로 면사무소와 읍사무소 직원이동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신문명: 조선중앙일보사 발행일: 1936년 1월 18일 발행구분: 석간 기사위치: 2면 1단
  • 시외(市外) 안암리(安岩里) 신교사(新校舍)로 보성전문교(普成專門校) 이전(移轉)
    기타
    시외(市外) 안암리(安岩里) 신교사(新校舍)로 보성전문교(普成專門校) 이전(移轉)
    내용: 1934년 9월 29일 경성부 송현동에서 경기도 숭인면 안암리로 보성전문학교가 이전했다는 기사이다. 일시와 이전할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34년 9월 29일 발행구분: 석간 기사위치: 7면
  • 보전교(普專校) 신축지(新築地) 안암리(安岩里)로 결정(決定)
    기타
    보전교(普專校) 신축지(新築地) 안암리(安岩里)로 결정(決定)
    내용: 경성부 송현동에 위치했던 보성전문학교의 신교사 위치가 경기도 숭인면 안암리로 확정되었다는 기사이다. 신교사 평수 등 부지에 대한 설명도 담고 있다. 신문명: 매일신보사 발행일: 1933년 5월 14일 기사위치: 2면 1단
  • 안암리(安岩里) 주재소(駐在所)에 부랑자(浮浪者) 취체(取締) 엄중(嚴重)
    기타
    안암리(安岩里) 주재소(駐在所)에 부랑자(浮浪者) 취체(取締) 엄중(嚴重)
    내용: 영도사(현 개운사) 근처 불량배들이 많이 출몰하자 영도사 입구인 안암리에 경관 주재소를 증설하여 불량배들에 대한 엄중한 제재를 실시한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신문명: 중외일보 발행일: 1929년 10월 12일 발행구분: 석간 기사위치: 2면
  • 躍進途上(약진도상)의普專(보전) 石造圖書舘竣工(석조도서관준공)
    기타
    躍進途上(약진도상)의普專(보전) 石造圖書舘竣工(석조도서관준공)
    내용: 보성전문학교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석조도서관을 준공된 것과 개관식을 한 것에 대한 기사이다. 도서관의 특징과 공사비를 다룬 내용을 추가로 담고 있다. 신문명: 동아일보 발행일: 1937년 9월 3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2면
  • 武運長久祈願(무운장구기원) 明夜(명야),時局講演(시국강연)도開催(개최)
    기타
    武運長久祈願(무운장구기원) 明夜(명야),時局講演(시국강연)도開催(개최)
    내용: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무운장구를 기원해 개운사에서 기원회를 실시할 것과 부내 부민관에서 시국강연회를 개최할 것을 알리는 기사이다. 신문명: 동아일보 발행일: 1937년 8월 5일 발행구분: 석간 기사위치: 2면
  • 坊坊谷谷(방방곡곡)에서聲援(성원) 자라가는大普專(대보전)
    기타
    坊坊谷谷(방방곡곡)에서聲援(성원) 자라가는大普專(대보전)
    내용: 보성전문학교의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기념 도서관과 대강당 등을 건축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이다. 건축하는 데 도움을 준 후원자들과 기부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신문명: 동아일보 발행일: 1936년 7월 30일 발행구분: 석간 기사위치: 2면
  • 東南(동남)에縱橫貫通(종횡관통)될 五條(오조)의大幹線路(대간선로)
    기타
    東南(동남)에縱橫貫通(종횡관통)될 五條(오조)의大幹線路(대간선로)
    내용: 경성부의 1차적 도로망 실현 공사 착수에 관한 기사이다. 토목사업에 대한 내용으로 돈암정에서 안암정에 이르는 도로를 공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문명: 동아일보 발행일: 1936년 7월 5일 발행구분: 석간 기사위치: 2면
  • 구매표교환조건(購賣票交換條件)으로 수개월정회비강징(數個月町會費强徵)
    기타
    구매표교환조건(購賣票交換條件)으로 수개월정회비강징(數個月町會費强徵)
    내용: 정회에서 면직물을 판매할 때 발행하는 구매표에 대한 문제점을 시사한 기사이다. 구매표가 필요한 것을 이용해 수개월치 정회비를 받고 구매표를 내주는 등 강제적인 행위를 하는 폐단이 이어지자 이에 대한 문제점을 담고 있다. 신문명: 조선일보 발행일: 1940년 7월 31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2면
  • 금후신설(今後新設)할소교기지(小校基地) 전년도(前年度)에예매방침(豫買方針)
    기타
    금후신설(今後新設)할소교기지(小校基地) 전년도(前年度)에예매방침(豫買方針)
    내용: 경성부의 ‘초등교육확충계획’으로 매년 소학교 3개교를 짓는 데 있어서 몇 년 동안 지주들이 협조하지 않고 땅값을 올리는 등에 대한 행동을 설명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지침을 소개한 기사이다. 경성부에서는 기존 올해 개교할 소학교의 부지만 구매했지만 내년에 개교할 부지까지 함께 산다는 것과 지주들이 과도하게 가격을 올릴 경우 수용령을 적용하여 단호하게 땅을 이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 구매 예정에 '안암소학'이 포함되어 있다. 신문명: 조선일보 발행일: 1940년 5월 11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2면
  • 명년신설교(明年新設校) 전농(典農) 당산(堂山) 안암(安岩)
    기타
    명년신설교(明年新設校) 전농(典農) 당산(堂山) 안암(安岩)
    내용: 경성부에서 주관하는 '초등교육단기확충계획'에 따라 매년 소학교가 3개교씩 신설되는데 올해는 마장, 북아현, 공덕에 신설된 것과 내년은 전농, 당산, 안암으로 결정되었다는 기사이다. 신문명: 조선일보 발행일: 1940년 1월 25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2면
  • 새정회(町会)새기염순청기(氣焰巡聽記) 헐려진토막(土幕)우에 완성(完成)될탄탄대로(坦坦大路)
    기타
    새정회(町会)새기염순청기(氣焰巡聽記) 헐려진토막(土幕)우에 완성(完成)될탄탄대로(坦坦大路)
    내용: 경성부의 구역 정리로 이전에 낙후되었던 안암과 종암이 '안암종암연합정회'로 합쳐져 개발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이다. 이전에 낙후된 안암과 종암의 모습들이 묘사되어 있고 이후 제반 작업과 여러 공사를 통해 공원과 명승지를 만들 계획을 담고 있다. 신문명: 조선일보 발행일: 1938년년 10월 9일 발행구분: 조간 기사위치: 3면
  • 보전주최(普專主催)의 중등축구(中等蹴球)
    기타
    보전주최(普專主催)의 중등축구(中等蹴球)
    내용: 보성전문학교가 주최하는 제10회 조선중등학교 축구대회 참가 신청 시기, 방법과 축구대회가 언제 열리는지에 대해 보도한 기사이다. 신문명: 조선일보 발행일: 1937년 5월 4일일 발행구분: 석간 기사위치: 2면
  • 역사(歷史)기픈구사석별(舊舍惜別) "대보성(大普成)"금일이반(今日移搬)
    기타
    역사(歷史)기픈구사석별(舊舍惜別) "대보성(大普成)"금일이반(今日移搬)
    내용: 보성전문학교가 1934년 9월 28일 새 건물로 이전하여 이전식을 진행하고 10월 2일부터 새교사에서 수업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이다. 신문명: 조선일보 발행일: 1934년 9월 29일 발행구분: 석간 기사위치: 2면
  • 안암주민팔십여(安岩住民八十餘) 대지사수동맹(垈地死守同盟)
    기타
    안암주민팔십여(安岩住民八十餘) 대지사수동맹(垈地死守同盟)
    내용: 대지 소유주로부터 대지 사수를 위한 80여명의 안암동민이 모여 동맹을 만들어 소유주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갈등한 내용을 다룬 기사. 신문명: 조선일보 발행일: 1929년 1월 23일 발행구분: 석간 기사위치: 2면
  • 敦岩學院(돈암학원)□□
    기타
    敦岩學院(돈암학원)□□
    내용: 돈암감리교에서 돈암학원을 설립했다는 기사 신문명: 조선일보 발행일: 1931년 12월 31일 목요일 발행호수: 제3956호 발행구분: 30일석간 기사위치: 3면
  • 종연방적주식회사 동대문공장
    시청각류
    종연방적주식회사 동대문공장
    서울역사아카이브에서 수집한 종연방적주식회사 동대문공장 광고에 포함된 공장 전경 사진이다.
  • 함대정, <정릉골짜기>, 1940
    시청각류
    함대정, <정릉골짜기>, 1940
    국립현대미술관이 제공한 함대정(1920-1959)의 <정릉골짜기> 이미지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에 해당하며, 1950년대에는 입체주의적, 추상적 경향의 그림들을 제작한다. 작품 정보 : 함대정, <정릉골짜기>, 1940년, 캔버스에 유채, 59x7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부외(府外) 우이동(牛耳洞)에 표백장신설(漂白場新設) 어듸지던지 그를 누르러 포목상조합측직영(布木商組合側直營)
    기타
    부외(府外) 우이동(牛耳洞)에 표백장신설(漂白場新設) 어듸지던지 그를 누르러 포목상조합측직영(布木商組合側直營)
    내용: 표백료 감하문제 이후 숭인면, 한지면, 은평면, 연희면 등지에서 누임은 소수에 불과하고 우이동에 표백하는 일기 많다는 내용의 기사. 신문명: 매일신보 발행일: 1932년 06월 19일 일요일 발행 호수: 제8891호 기사 위치: 2면 7단
  • 표백료과중(漂泊料過重)은 소비자(消費者)의 부담(負擔) 손임을 위하야 할수 업다고 포목상(布木商) 김윤수씨(金潤秀氏) 담(談)
    기타
    표백료과중(漂泊料過重)은 소비자(消費者)의 부담(負擔) 손임을 위하야 할수 업다고 포목상(布木商) 김윤수씨(金潤秀氏) 담(談)
    내용: 표백료 감하 문제에 대해 경성포목상조합 김윤수씨가 과중한 표백료를 내면 포목값을 인상할 수 밖에 없어 손님을 위해 표백료를 감하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힌 기사. 신문명: 매일신보 발행일: 1932년 06월 19일 일요일 발행 호수: 제8891호 기사 위치: 2면 4단
  • 공동생활목적(共同生活目的) 조합(組合)에 가맹(加盟) 료금을 절대로 내릴수 업서 직물조합(織物組合) 김덕창씨(金德昌氏) 담(談)
    기타
    공동생활목적(共同生活目的) 조합(組合)에 가맹(加盟) 료금을 절대로 내릴수 업서 직물조합(織物組合) 김덕창씨(金德昌氏) 담(談)
    내용: 표백료 감하 문제에 대해 직물조합의 김덕창씨가 요금을 절대 내릴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기사. 신문명: 매일신보 발행일: 1932년 06월 19일 일요일 발행 호수: 제8891호 기사 위치: 2면 4단
  • 포목상요구(布木商要求)는 탄압적수단(彈壓的手段) 표백료인하는 포면의 리유 직물조합가담배척(織物組合加擔排斥)
    기타
    포목상요구(布木商要求)는 탄압적수단(彈壓的手段) 표백료인하는 포면의 리유 직물조합가담배척(織物組合加擔排斥)
    내용: 표백료 감하 문제를 둘러싼 경성포목조합측과 표백업자 간의 갈등은 표면적 이유이고, 그 이면에는 대우문제에 관한 감정관계가 더 큰 이유로 작용하였다는 내용의 기사. 신문명: 매일신보 발행일: 1932년 06월 19일 일요일 발행 호수: 제8891호 기사 위치: 2면 2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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