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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와 관련된 사진, 영상, 간행물 등 기록물을 열람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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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에 오천오백호
    기타
    전국에 오천오백호
    내용 : 안암동 45호, 정릉동 325호, 돈암동 73호 등 경인지구에 2,500호 전국 각지에 3,000호 등 일반 후생용 주택을 사회부가 건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문명 : 동아일보 발행 형태: 신문 기사 발행일 : 1953년 09월 16일 수요일
  • 서울후생주택
    기타
    서울후생주택
    내용 : 안암동과 정릉동에 후생주택의 건축이 완료되었고, 그 입주자를 선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문명 : 조선일보 발행 형태: 신문 기사 발행일 : 1954년 01월 10일 일요일
  • 재건주택에 원성
    기타
    재건주택에 원성
    내용 : 흙벽돌로 지은 정릉동 후생주택(재건주택) 의 부실 상황을 알리고, 해당 사태의 피해자와 건설 측 주택영단건축과장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신문명 : 조선일보 발행 형태: 신문 기사 발행일 : 1955년 03월 14일 일요일
  • 희미한 전력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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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전력대책
    내용 : 정릉동 후생주택에 거주하던 필자가 후생주택 일대의 불안정한 전력공급과, 정전사고에 대해서 신문지면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상공부전력과에서 이에대해 해명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신문명 : 경향신문 발행 형태: 신문 기사 발행일 : 1958년 12월 16일 화요일
  • 산촌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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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촌의 봄
    내용 : 정릉에 거주하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강원도로 이주하게 된 필자가 과거 거주하던 정릉의 모습을 묘사한 논단이다. 신문명 : 조선일보 발행 형태: 신문 기사 발행일 : 1958년 04월 30일 수요일
  • 빛나는 독립투쟁의 거성들 (2)...이강 옹
    기타
    빛나는 독립투쟁의 거성들 (2)...이강 옹
    내용 : 정릉동 후생주택에 거주하던 독립운동가 이강 선생을 찾아 그의 1960년 당시 근황을 소개하고 있다. 신문명 : 경향신문 발행 형태: 신문 기사 발행일 : 1960년 10월 02일 일요일
  • 주택난과 건축보 (3) 엉터리공사로 잘무너지는 후생주택
    기타
    주택난과 건축보 (3) 엉터리공사로 잘무너지는 후생주택
    내용 : 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의 지원으로 정릉동 일대에 건설된 후생주택이 시멘트와 흙의 배합을 속이거나, 불량목재를 사용한 부실공사로 하자가 많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문명 : 조선일보 발행 형태: 신문 기사 발행일 : 1957년 09월 07일 토요일
  • 올해도 3.1절은 다가오지만…… 33인 유족 거의 가난과 병고
    기타
    올해도 3.1절은 다가오지만…… 33인 유족 거의 가난과 병고
    내용 : 3.1운동 당시 민족대표33인 유족들의 1962년 당시 거주실태를 알리고 있다. 손병희, 백용성, 권동진, 박희도, 오세창, 한용운, 홍기조 선생의 유족이 성북구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신문명 : 동아일보 발행 형태: 신문 기사 발행일 : 1962년 02월 20일 화요일
  • 국토개발이가져올 70년의 한국 <14> 서울의 미래상 (13) 난계로, 안암로, 종암로
    기타
    국토개발이가져올 70년의 한국 <14> 서울의 미래상 (13) 난계로, 안암로, 종암로
    내용 : 성북구 안암로, 종암로 구간 일대 및 도로의 현황과 향후 개발 계획에 대하여 설명하는 내용이다. 신문명 : 매일경제 발행 형태: 신문 기사 발행일 : 1968년 01월 18일 목요일
  • 미아(彌阿), 동선(東仙), 석관권(石串圈) 상업지역으로 개발추진
    기타
    미아(彌阿), 동선(東仙), 석관권(石串圈) 상업지역으로 개발추진
    내용 : 주거지역 및 준주거지역이었던 미아삼거리, 석관사거리 및 성신여대 입구 일대를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하여 개발하겠다는 내용이다. 신문명 : 연합뉴스 발행 형태: 인터넷 신문 기사 발행일 : 1993년 05월 06일 목요일 오후 6:15(기사입력)
  • 주택난중(住宅難中)의 경성(京城) 4회, 제반시설불비(諸般施設不備)로 교외연장(郊外延長)도 불능(不能)
    기타
    주택난중(住宅難中)의 경성(京城) 4회, 제반시설불비(諸般施設不備)로 교외연장(郊外延長)도 불능(不能)
    내용 : 경성시내 인구가 가득 차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 사대문 밖 청량리, 안감리(안암동), 신당리, 왕십리, 아현, 연희, 마포 등은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 충분하지만, 기반시설이 부족하여 농사를 짓지 않는 도회민들이 이주할 동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기사이다. - 신문명 : 중외일보 - 발행일 : 1929년 11월 11일 월요일 - 기사 위치 : 2면1단
  • 서울시내전기사정완화(市內電氣事情緩和), 일부(一部)에 주간송전(晝間送電)
    기타
    서울시내전기사정완화(市內電氣事情緩和), 일부(一部)에 주간송전(晝間送電)
    내용: 안암동변전소가 신설되어 전력량이 증가해 그동안 주간송전만 이뤄지던 돈암동 등에 야간송전이 가능해졌다는 내용이다. - 신문명: 대한일보 - 발행일: 1947년 12월 31일 수요일 - 기사위치: 2면 4단
  • 북악 골프연습장 운영자 내년선정
    기타
    북악 골프연습장 운영자 내년선정
    내용: 북악골프연습장이 만들어진 배경과 운영권 등에 관해 설명한 기사이다. 신문명: 경향신문 발행일: 1993년 10월 28일 목요일 발행호수: 제14901호 판본: 15판 기사위치: 21면
  • 수선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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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선전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수선전도首善全圖>는 현재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목판 수선전도와 거의 유사한 형태의 목판본 지도이다. '수선首善'이란 『시경詩經』에 '建首善自京師始', 즉 으뜸가는 선善을 건설함은 서울에서 시작된다고 한 데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수선전도首善全圖'는 곧 '서울전도'를 의미한다. 고려대본 수선전도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제작 시기에 관해 여러 의견이 있으나 김정호의 생존 시기를 1800년대에서 1860년대로 보아 고려대본의 제작 시기를 1840년대로 보는 의견이 가장 유력하다. <수선전도>는 목판으로 인쇄한 후에 산과 하천, 주요 궁궐 등을 엷게 채색한 것이다. 또한 고려대본과 달리 상단에는 주기가 하단에는 간기가 기재되어 있다. 지도에 기록된 지명과 좌측 하단의 간기 '갑자甲子'를 토대로 1864년에 다시 판각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설명 인용] 도성 밖 북동쪽에서 성북동, 안암동, 혜화문, 적유현(미아리고개), 신흥사(흥천사), 정릉 등 성북 관련 지명을 찾을 수 있다.
  • 지적도 : 동선동1·3·4가 일대, 1968년
    기타
    지적도 : 동선동1·3·4가 일대, 1968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68년 동선동 일대의 지적도이다. 동선동1·3·4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중앙의 도로는 1964~1966년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실시한 미아로(현 동소문로)이다. 서울과 외곽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이었지만 8~10m 정도로 폭이 좁았던 미아로는 이때의 공사로 구간에 따라 23~35m까지 넓게 확장되었고 미아리고개의 경사도 완만해졌다. (구)돈암동 지역의 중심이 된 미아로 대로변에 점집이 하나씩 들어서면서 역학촌이 형성되었다. 미아리 역학촌은 1970~80년대에 호황을 누리다가 현재는 일부만 남았다. 미아로 확장공사 완료 후에 작성된 본 지적도의 축척은 1/600이며, 1990년 3월 31일부로 폐쇄되었다.
  • 지적도 : 돈암동 흥천사 일대,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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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도 : 돈암동 흥천사 일대, 1969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69년 돈암동 흥천사 일대 지적도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경치가 좋고 도심과도 가까운 흥천사 주변에 연회장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서울의 대표적인 연회 장소로 크게 번성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의 잔치 문화가 변화하고 돈암동에 아파트가 개발되면서 흥천사 주변 연회장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도성 밖 신도시, 돈암』(2022), 384-393쪽 내용 참고 본 지적도에서 좌측에 떨어져 있는 594 및 595번지가 흥천사이고, 주변 동쪽 필지들이 연회장인데, 오늘날 이 자리에는 돈암2동 주민센터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 지적도 : 길음동 1276 일대, 1997년
    기타
    지적도 : 길음동 1276 일대, 1997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97년 길음동 1276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동일 지역(옛 미아리)의 일제강점기 지적도에는 표기되었던 정릉천이 복개되어 그 흔적이 사라지고 필지가 빽빽하게 구획된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1276번지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으며 복개된 정릉천 위로 내부순환로가 지나간다. 본 지적도의 축척은 1/1200이며, 2010년 11월 1일부로 폐쇄되었다.
  • 지적도 : 옛 미아리  533-10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기타
    지적도 : 옛 미아리 533-10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일제강점기 미아리 533-10번지(현 길음동) 일대의 지적도이다. 1914년 경기도로 편입되어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아리, 하월곡리, 돈암리의 경계면 쪽에 표기된 '천(川)'은 정릉천이다. 예전부터 이 지역은 ‘기리묵골’ 또는 ‘기레미골’로 불렸는데, 정릉천이 흐르는 물소리가 맑고 고와서 좋은 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으로 이를 한자화하여 길음동(吉音洞)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 후반 정릉천 복개공사가 시작되어 현재는 하천이 아닌 길음역, 내부순환로, 아파트 단지 등을 볼 수 있다. 본 지적도는 1962년 폐쇄되었다.
  • 지적도 : 구 길음동 603-2 일대, 1962년
    기타
    지적도 : 구 길음동 603-2 일대, 1962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62년 구 길음동 603-2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중앙과 좌측 하단이 연결되어 '천(川)'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북한산 줄기에서 발원하여 길음동을 거쳐 정릉천에 합류했던 개천, 즉 인수천이다. 천변을 따라 노점이 형성되어 길음시장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복개공사가 시작되어 지금은 도로(길음로)로 사용되고 있다. 지번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빽빽하게 구획된 모습인데 2000년대 들어 이 일대는 뉴타운으로 재개발되고 2016년에는 계성고등학교가 이전하였다.
  • 지적도 등본 : 한국예술종합학교 및 의릉 일대, 2022년 현재
    기타
    지적도 등본 : 한국예술종합학교 및 의릉 일대, 2022년 현재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2022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및 의릉 일대의 지적도 등본이다. 천장산의 일부를 포함하는 석관동 409번지가 지목(地目)이 '묘'로 등록된 333-1과 333-2를 둘러싼 형태이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왕릉을 끼고 있어 넓은 부지가 확보되었던 409번지는 1962~1995년 중앙정보부 본청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들어섰다. 333-1은 조선 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무덤인 의릉의 매표소 및 관리소, 비각, 정자각 등의 지번이며, 333-2가 봉분 지번이다.
  • 지적도 : 돈암동 173-1 (성신여대) 일대, 1968년 폐쇄
    기타
    지적도 : 돈암동 173-1 (성신여대) 일대, 1968년 폐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돈암동 173-1 일대의 1968년 폐쇄지적도이다. 1920년대 산7-13 임야로 등록되었던 이곳은 1930년 지금의 지번으로 등록전환되었다. 1944년 성신여학교(현 성신여자대학교)가 이 자리로 이전하면서 변화를 맞이하는데, 본 지적도에서는 북동쪽에 표기된 필지이다.
  • 임야도 : 구 돈암동 산7-13 일대, 1924년
    기타
    임야도 : 구 돈암동 산7-13 일대, 1924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24년 구 돈암동 산7-13 일대의 임야도이다. 1920년대 임야로 등록되었던 이곳은 1930년 돈암동 173-1번지로 등록전환되었고 1944년 성신여학교(현 성신여자대학교)가 이 자리로 이전하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 지적도 : 장위동 66-107번지 일대, 1978년
    기타
    지적도 : 장위동 66-107번지 일대, 1978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78년 장위동 66-107 일대의 지적도이다. 1962~1964년에 국민주택단지가 들어선 지역으로 국민주택은 단독형(8평형, 10평형, 15평형, 17평형 / 필지 50제곱미터)으로 지어졌다. 인근에 조성된 재건주택, 부흥주택에 비해 필지와 건물면적이 더 컸다. 국민주택은 대부분 1980년대 이후 재건축되어 2022년 현재 극히 일부만 남아있다. 과거 상월곡동에 속했던 이 지역은 1978년 장위동에 편입되어 본 지적도는 1978년 10월 10일에 재작성되었다.
  • 지적도 : 구 상월곡동 7-33번지 일대, 1969년
    기타
    지적도 : 구 상월곡동 7-33번지 일대, 1969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69년 구 상월곡동 7-33 일대의 지적도이다. 1962~1964년에 국민주택단지가 들어선 지역으로 국민주택은 단독형(8평형, 10평형, 15평형, 17평형 / 필지 50제곱미터)으로 지어졌다. 1958년 장위동에 조성된 재건주택, 부흥주택에 비해 필지와 건물면적이 더 컸다. 당시 상월곡동에 속했던 이 지역은 1978년 장위동에 편입되어 본 지적도는 1978년 10월 10일부로 폐쇄되었다.
  • 지적도 : 장위동 230-49번지 일대, 1968년
    기타
    지적도 : 장위동 230-49번지 일대, 1968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68년 장위동 230-49 일대의 지적도이다. 230-49번지는 일명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의 지번으로, 1966년 동방생명보험 주식회사(현 삼성생명)가 장위동에 분양한 동방주택단지에 지어졌다. 1938년 임야도에 등록되었던 이 지역은 본 지적도에서는 작은 택지로 분할되어 주택이 들어설 수 있는 땅으로의 변화가 일어났다. 『동방생명 10년사』(1967)에 따르면 장위동 동방주택단지의 총면적이 162,170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 임야도 :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1938년 (2)
    기타
    임야도 :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1938년 (2)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38년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임야도의 왼쪽 페이지다.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장위리'가 기재되었다. 임야로 등록되었던 이 일대는 1960년대 동방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단독주택이 대거 지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동일 지역의 1968년 지적도와 비교해 볼 수 있다.
  • 임야도 :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1938년 (1)
    기타
    임야도 :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1938년 (1)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38년 구 장위동 산3번지 일대 임야도의 오른쪽 페이지다.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장위리'가 기재되었다. 임야로 등록되었던 이 일대는 1960년대 동방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단독주택이 대거 지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동일 지역의 1968년 지적도와 비교해 볼 수 있다.
  • 지적도 : 구 돈암동 606번지 일대, 1960년대
    기타
    지적도 : 구 돈암동 606번지 일대, 1960년대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60년대 구 돈암동 606 일대의 지적도이다. 당시 이 지역은 산비탈에 불량주택이 우후죽순 지어진 산동네였는데 지적도에 기재한 지번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밀집도가 높다. 본 지적도는 1968년 폐쇄되었고 1990년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대단지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 지적도 : 동소문동6가,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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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도 : 동소문동6가, 1960년대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60년대 동소문동6가 일대의 지적도이다. 기존 돈암동에서 동소문동6가로 지번 정리가 완료된 1961년 이후 생산된 문서로, 폐쇄 시기는 1968년이다. 축척은 1/600이며 동소문동6가를 중심으로 동소문동 4·5가의 일부가 담겼다. 북서쪽 넓은 필지는 1944년 개교한 돈암초등학교 부지이다. 이 지역은 1936~1941년 돈암지구 개발 이후 동일한 형태의 도시한옥들이 들어선 주거지였다. 2022년 현재는 한옥의 형태를 살린 카페, 식당과 주택이 혼재되어 있다.
  • 지적도 : 옛 돈암동 294-1번지 일대,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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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도 : 옛 돈암동 294-1번지 일대, 1924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24년 옛 돈암동 294-1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좌측 하단에 작성한 '대정13년'을 통해 발행 시기를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돈암지구가 조성되어 다시 수도로 편입되기 이전이므로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로 기재되어 있다. 294-1번지 및 그 주변이 '밭(田)'으로 표기되고 필지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 이후 주거지가 계획적으로 조성된 모습은 동일 지역인 동소문동6가의 1960년대 지적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 지적도 : 구 길음동 964번지 일대, 1996년 폐쇄
    기타
    지적도 : 구 길음동 964번지 일대, 1996년 폐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구 길음동 964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축척은 1/600, 폐쇄 일자는 1996년 2월 9일이다. 2022년 1월, 길음2동 재개발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그에 따라 지번도 변경·정리되었다.
  • 지적도 : 안암동 1·2가, 1950~60년대 (1968년 폐쇄)
    기타
    지적도 : 안암동 1·2가, 1950~60년대 (1968년 폐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50~60년대 안암동1가 및 2가 일대의 지적도이다. 안암동1가와 2가의 경계인 점선 아래 넓은 필지는 1956년 3월 설립 인가를 받고 1960년 개교한 안암초등학교 부지(안암동2가 93)이다. 이 지역은 1936~1941년에 시행된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으로 도시형 한옥이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던 곳이다. 일종의 도시계획으로 조성된 주거지이기에 필지의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고 반듯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지적도가 유효했던 1960년대에도 한옥밀집지역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멸실되었다. 본 지적도의 축척은 1/600, 폐쇄 시기는 1968년이다.
  • 지적도 : 옛 신설리 216-1번지 일대, 1936년 이전
    기타
    지적도 : 옛 신설리 216-1번지 일대, 1936년 이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일제강점기 신설리 216-1 일대(현 보문동6가)의 지적도이다. '경성시가지계획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된 1936년 이전의 문서로, 아직 필지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이후 구획정리를 완료하고 계획적으로 주거지가 조성된 모습은 동일 지역인 보문동6가의 1975년 지적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 지적도 : 보문동6가, 1975년
    기타
    지적도 : 보문동6가, 1975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1975년 보문동6가 지적도이다. 이곳은 1930년대 후반 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도시형 한옥이 대거 지어진 '보문동 한옥밀집지역'으로, 1970년대에도 한옥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주거 문화가 급변하여 상당수의 한옥을 허물고 필지를 합병하기도 했으나,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전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한, 1975년 보문동이 동대문구에서 성북구로 편입된 사실이 반영되었다. 축척은 1/1200, 폐쇄 일자는 1990년 3월 31일이다.
  • 지적도 : 동선동1·3가 일대, 1968년
    기타
    지적도 : 동선동1·3가 일대, 1968년
    성북구청 지적과로부터 수집한 동선동1가 및 3가의 지적도이다. 전차가 폐선된 이후인 1968년 12월에 생산한 문서로 기존에 종점 사무소가 있던 114번지 일대(좌측 상단) 토지구획의 변화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일 지역의 1968년 폐쇄 지적도에서는 하나의 필지였던 85번지(좌측~중앙 하단)가 본 지적도에서는 여러 지번으로 구획되었다. 현재 동선동1가 85번지 일대는 성신여대 등 인근 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한 하나로거리이다. 축척은 1/600, 폐쇄 일자는 1990년 3월 31일이다.
  • 지적도 : 동선동1·3가 일대, 1960년대 (1968년 폐쇄)
    기타
    지적도 : 동선동1·3가 일대, 1960년대 (1968년 폐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1960년대 동선동1가 및 3가 일대의 지적도이다. 동선동1가 114-1에 경전전차 돈암동 종점 사무소가 있고 전차가 다니던 시기이다. 1936년 이전의 동일 지역(옛 돈암동 101-32 일대) 지적도와 비교하면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의 결과를 파악할 수 있다. 우측 상단에 한자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선동'이 기재되었는데 동선동은 1949년 성북구 신설 이후 돈암동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중앙에 표기된 점선은 동선동1가와 3가의 경계인데 이것은 2022년 현재에도 해당된다. 본 지적도의 축척은 1/600이며 1968년 폐쇄되었다.
  • 지적도 : 옛 돈암동 101-32번지 일대, 1936년 이전
    기타
    지적도 : 옛 돈암동 101-32번지 일대, 1936년 이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옛 돈암동 101-32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高陽郡 崇仁面 敦岩里)가 우측 상단에 기재된 것으로 보아, 돈암지구가 조성되어 이 지역이 다시 수도로 편입된 1936년 이전에 작성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본 지적도는 '경성시가지계획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이 지역은 이후 시가지 및 주거지가 조성되고 1949년 돈암동에서 동선동으로 분리된 지금의 성신여대입구역 인근이다.
  • 지적도 : 옛 신설리 380-50번지 일대, 1936년 이전
    기타
    지적도 : 옛 신설리 380-50번지 일대, 1936년 이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일제강점기 신설리 380-50번지 일대(현 보문동)의 지적도이다. 고양군 숭인면 신설리(高陽郡 崇仁面 新設里)가 우측 상단에 기재된 것으로 보아, 돈암지구가 조성되어 이 지역이 다시 수도로 편입된 1936년 이전에 작성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아직 대로(현 보문로)를 비롯하여 시가지 계획이 진행되기 이전의 모습이다.
  • 지적도 : 보문동1·2가 일대, 1964년
    기타
    지적도 : 보문동1·2가 일대, 1964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1964년 보문동1가 및 2가 일대의 지적도이다. 우측 상단에 동대문구 보문동으로 행정구역이 기재되어 있는데, 보문동은 1955년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분리되었고, 1975년에는 성북구 관할이 되었다. 중앙에 큰길, 즉 보문로를 경계로 보문동1가와 2가로 나뉘어 2000년에는 그 중심에 지하철 보문역이 들어섰다. 본 지적도는 1990년 3월 31일부로 폐쇄되었으며, 축척은 1/600이다.
  • 지적도 : 동소문동2가 일대, 1999년
    기타
    지적도 : 동소문동2가 일대, 1999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1999년 동소문동2가 일대의 축척 1/600 지적도이다. 과거에는 돈암동에 속했지만 1961년 구획정리 이후 현재까지 행정동으로는 삼선동, 법정동으로는 동소문동2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1962년에 폐쇄된 동일 지역(돈암동 458-585 일대) 지적도와 비교하면 구획정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 지적도 : 옛 돈암동 458-585번지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기타
    지적도 : 옛 돈암동 458-585번지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옛 돈암동 458-585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우측 상단에 한자로 경성(京城),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高陽郡 崇仁面 敦岩里)로 표기했다가 정정한 흔적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적도에 수정 작업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좌측 상단에 붉은 글씨로 작성한 폐쇄 시기를 통해 1962년 3월까지 유효했던 문서임을 파악할 수 있다. 좌측 상단에 '천(川)'이 표기되었는데 이 일대는 훗날 성북천이 복개되어 삼선상가아파트 등이 건설되고 2000년대 들어 다시 복원된 지역이다. 이 지적도가 만들어진 시기에는 돈암동에 속했으나 1961년 구획정리 이후 현재까지 행정동으로는 삼선동, 법정동으로는 동소문동2가에 해당한다.
  • 지적도 : 성북동 246번지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기타
    지적도 : 성북동 246번지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성북동 246번지 일대의 축척 1/1200 지적도이다. 우측 상단에 한자로 경성(京城),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高陽郡 崇仁面 城北里)로 표기했다가 정정한 흔적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적도에 수정 작업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좌측 상단에 붉은 글씨로 작성한 폐쇄 시기를 통해 1962년 3월까지 유효했던 문서임을 파악할 수 있다. 246번지 앞에 '천(川)'이 기재되어 이 일대에 성북천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중앙에 '산(山)'으로 표기된 땅은 아직 226번지 일대에 북정마을이 조성되기 이전임을 말해준다.
  • 지적도 : 성북동 246번지 일대, 1990년대
    기타
    지적도 : 성북동 246번지 일대, 1990년대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1990년대 성북동 246번지 일대의 축척 1/1200 지적도이다. 우측 상단에 굵은 글씨로 '천'이 기재되어 아직 성북천 복개가 완료되지 않은 시기에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61년에 폐쇄된 동일 지번의 지적도에는 '산(山)'으로 표기되었던 넓은 면적의 땅이 본 지적도에서는 촘촘하게 구획된 것을 볼 수 있는데, 226번지 일대의 이 지역이 바로 북정마을이다. 현재 성북동 246에는 성북구립미술관이 들어섰으며 복개된 성북로 주변으로 간송미술관, 성북선잠박물관, 성북역사문화센터 등 문화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본 지적도는 2010년 부로 폐쇄되었다.
  • 지적도 : 하월곡동 23-1 일대, 1966년
    기타
    지적도 : 하월곡동 23-1 일대, 1966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1966~1976년 하월곡동 23-1번지 일대의 지적도이다. 과거 하월곡동 산2-12의 임야로 등록되었던 이 지역은 1963년에 하월곡동 23-1, 즉 현재의 지번으로 등록전환되었고 1967년 3월 동덕여자대학교가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 지적도는 1976년 폐쇄되었다.
  • 임야도 : 하월곡동 산2-12 일대, 1963년 이전
    기타
    임야도 : 하월곡동 산2-12 일대, 1963년 이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옛 하월곡동 산2-12번지 일대의 임야도이다. 임야로 등록되었던 이 지역은 1963년에 하월곡동 23-1, 즉 현재의 지번으로 등록전환되었고 1967년 동덕여자대학교가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임야도 : 정릉동 산1-150 일대, 1938년
    기타
    임야도 : 정릉동 산1-150 일대, 1938년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1938년 정릉동 산1-150번지 일대의 임야도이다. 당시에는 북한산 자락의 임야로 등록되었지만, 1971년 9월 국민대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1972년 정릉동 861-1번지로 등록전환되었다.
  • 지적도 : 장위동 189-3 일대, 일제강점기
    기타
    지적도 : 장위동 189-3 일대, 일제강점기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일제강점기 장위동 189-3 일대의 지적도이다. 1914년 경기도로 편입되어 우측 상단에 고양군 숭인면 장위리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장위뉴타운'이 조성된 지역으로 2022년 하반기, 지적 정리가 예정된 곳이다.
  • 지적도 등본 : 돈암동 633번지, 2022년 현재
    기타
    지적도 등본 : 돈암동 633번지, 2022년 현재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2022년 현재, 돈암동 633번지의 지적도 등본이다. 과거 서라벌중·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의 부지였던 돈암동 7번지 일대가 2003년 토지개발사업으로 총 540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633번지로 지번이 변경되었다.
  • 지적도 : 돈암동 7번지 일대, 1960년대
    기타
    지적도 : 돈암동 7번지 일대, 1960년대
    성북구청 지적과를 통해 입수한 1960년대 지적도로, 돈암동 7번지 일대에 서라벌 중·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이 존재하던 시기이다. 본 지적도는 1968년 폐쇄되었다.
  • 4호선 정거장 지적승인: 삼선역(현 한성대입구역) 위치도
    기타
    4호선 정거장 지적승인: 삼선역(현 한성대입구역) 위치도
    서울특별시 교통국 운수제1과가 1981년에 생산한 문서로, 지하철 4호선이 정차할 각 정거장의 위치를 지적도(地籍圖) 형식으로 작성하였다. 본 위치도에서 말하는 삼선역은 현재의 한성대입구역으로, 1985년 10월 당시 삼선동 부지에 확장·이전을 준비 중이었던 대학 명칭을 따라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하고 '삼선교역'은 부역명으로 병기하였다. * 서울기록원 홈페이지에서는 본 지적승인 문서를 PDF 형식의 원문으로 제공하되, 이용조건에 제한을 두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성북마을아카이브는 본 기록물의 지도로서의 성격을 잘 보여주기 위해 이미지 파일(PNG)로 변환 및 부분 편집하여 공개함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