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골짜기에 위치한 작은 사찰이다. 이 사찰은 근대 실경산수화의 대가 변관식(1899~1976)이 1974년 마지막 작품전을 준비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변관식은 조선시대 화단의 마지막 세대이자 남종화의 대가였던 조석진의 외손자이다. 그는 겸재 정선이 개척한 민족적 산수화풍을 근대에 계승한 실경산수화의 최고 대가로 평가받는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로 1974년 대성사에서 작품을 그리던 변관식이 자신의 그림 속 노인을 가리키며 “나를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며 쓸쓸히 웃었고, “내 작품은 죽은 뒤에야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포대화상은 중국의 승려, 본명은 계차(契此)이다. 몸집이 뚱뚱하며, 이마는 찡그리고,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양을 하였으며, 말이 일정치 않고, 아무데서나 눕고 자고 하였다. 언제나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 넣어 가지고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의 길흉 화복이나, 날씨 등을 미리 말하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 한다.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