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학 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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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자료
    장소성 기반의 도시재생 건축 설계 방법에 대한 연구 : 서울시 정릉동 정릉10길 일대 적용을 중심으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은 건축과 공간의 집합일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공유하고 사용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정신적, 인문적, 사회적 요소들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세계적으로 도시개발과 국제주의 건축을 표방하여 무분별한 건축을 반목하였고 이는 자생적인 건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우리나라의 건축 또한 지역과 장소성의 부재로 이어졌고, 이것은 건축이 물질의 논리와 상업적인 시각으로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도시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최근 도시의 패러다임은 더 나은 도시 환경을 위하여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개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시도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각 지자체에서는 낙후되거나 정체된 지역들을 대상으로 도시의 정체성 확립과 공동체구축,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활성화를 위한 개념들을 적용하여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내의 도시재생 사업 진행 시 장소성은 도시 정체성 확립 및 도시의 차별성 구축 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이지만 개별적인 특색이 드러나지 못하고 국·내외의 성공적 사례들을 단순히 답습하였으며 각각의 장소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있어 명확한 방법에 대한 제시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도시에서의 장소성의 개념과 구성요소에 대하여 알아보고 또한 도시 정체성과 장소성, 도시재생과 장소성의 상호관계성을 고찰한다. 또한, 현재 국내 도시재생의 일환인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들을 통하여 문제점과 장소성의 연관성을 도출하고 이를 중심으로 국 · 내외의 우수 도시재생 사례분석을 통하여 낙후된 지역의 도시재생에 있어 장소성이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도출한다. 도출된 지표로 대상지인 정릉3동 배밭골 일대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장소성의 요소들에 대해 알아보고, 대상지에 맞는 활성화 계획을 제안하기 위한 기초자료와 새로운 계획안 및 마스터플랜을 제안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한다. 도시에서의 도시 정체성과 그에 따른 장소성은 필연적으로 생겨나며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소이다. 서울형 도시재생은 도시재생이라는 명목하에 각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에 소극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장소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도시에서의 장소성의 구성요소 4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국·내외의 우수 도시재생 사례를 분석하여 보았을 때 도시에서의 장소성의 요소 4가지와 장소성의 구성요소인 물리적 요소, 행태적 요소, 의미적 요소가 고려되어야 하며 이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장소성이라는 개념은 변화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연구와 고찰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도시재생의 개념 안에서 장소성의 관점 인식의 필요성과 도시재생 및 마스터플랜 계획 시 고려되어야 할 장소성의 요소에 대한 건축 설계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학술자료
    대학 캠퍼스 확장에 의한 캠퍼스 타운 연계 연구 및 설계 : 국민대학교와 정릉3동 일대를 중심으로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국민대학교는 기반지역인 정릉 3동 배밭골과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와 지역의 상생관계 구축은 지역적 관점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관계는 보통 대학로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표적으로는 혜화동의 대학로나, 홍익대학교, 건국대학교 등의 대학 명칭으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대학로 등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국민대학교 역시 지역과의 관계 강화 및 체험·문화·상업 등의 커뮤니티 확장을 위한 캠퍼스 타운 및 대학로의 형성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캠퍼스와 커뮤니티의 설계 기본사항에 대해 파악하기 위하여 캠퍼스마스터플랜과 커뮤니티의 이론적 고찰을 선행한 후 대상지 분석을 진행하였다. 대상지 분석에서는 거시적 관점의 도시 분석과 대상지의 현황에 대한 미시적 관점의 분석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분석 항목은 교통과 인프라 입지에 대한 거시분석을 선행한 후 대상지 인근의 건축물, 경사, 자연요소, 휴게 및 보행 환경, 지역 인프라 분석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대상지의 물리적 특성은 북한산과 북악산이 형성하는 구릉지형에 위치하고 있어 경사가 심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조건이 불리하다. 이와 동시에 오래된 건축물과 낡은 도시 외부 환경, 침체된 상권 등 전제적으로 도시침체가 유지되며, 대학 캠퍼스와의 상생관계 구축이 어려운 것으로 분석결과를 종합해 볼 수 있다. 분석 내용을 토대로 설계 전략을 7가지의 항목으로 수립하였고 첫 번째로 지역주민을 위한 캠퍼스 개방공간, 두 번째로 보행구간 사이 낙후된 휴게 공간 정비 및 확보, 세 번째 유연한 대지경사 극복, 네 번째 대학 강의, 동아리, 연구실의 분배, 다섯 번째 지하연결을 통한 확장성 및 동선 유연성 확보, 여섯 번째 대학 인근 문화 및 상권형성, 일곱 번째 국민대의 정문으로서의 상징성 강화의 항목으로 설정하였다. 설계는 국민대학교에 부재한 중앙광장 형성을 중심으로 지하로는 캠퍼스 연결, 자상으로는 매스의 확장성을 예측하여 계획되었으며, 기존 캠퍼스의 마감계획과 경사에 순응하는 매스계획을 통해 기존 캠퍼스와의 통일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정릉 3동 일대 부지는 대학 캠퍼스 타운과 국민대학교의 대학로의 시작점으로서 계획되었으며, 여기에는 상업 및 문화, 운동시설과 창업지원 등의 학생지원시설이 일부 배치되었다. 공통적으로 지하공간은 주차장이 주요 프로그램으로 설정되었고, 기존에 부족한 교내 주차공간을 확보함에 목적을 가진다. 본 연구는 정릉권역 종합발전계획 수립 용역 보고서를 기초자료로 활용하여 진행되었으며, 실제 캠퍼스를 이용하는 교직원 및 학생들의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한계점이 존재함에 따라, 추가적 데이터 보완 및 확보가 요구된다.
  • 학술자료
    흥천사 扁額(편액)·懸板(현판) 연구
    본 논문은 서울 성북구(城北區)에 위치한 흥천사(興天寺)에 소장된 편액과 현판의 전반적인 현황을 검토하고 편액 글씨의 서예사적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우선 서울의 전통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편액·현판을 보유한 흥천사는 기존 궁궐 건축의 편액 위계 상, 모든 전각의 편액이 형식상 가장 높은 위계를 표시하는 사변형 현판으로 조성되어 왕실 원찰로서의 사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흥천사가 신덕왕후(神德王后) 정릉(貞陵)의 능사로서 현재의 위치에서 중창한 이후에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같은 왕실인사와 세도가들의 원찰(願刹)로서 위상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편액 사례 중에서도 드문 세로로 긴 붉은 색 복판에 테두리 끝에 용두형(龍頭形) 봉으로 장식한 명부전(冥府殿) 편액은 유교식 장례에서 사용하는 명정(銘旌)의 형식을 차용한 사례로 보았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인근 봉국사(奉國寺) 명부전 편액도 붉은 색의 세로형 복판에 유사한 형식으로 조성되어 당시 이 지역에서 유행한 형식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흥천사 명부전 편액의 용두형 봉 장식이 시왕(十王)의 어좌 장식과 유사한 도상과 방향으로 조성되어 있는 사실에 착안하여, 조선 후기 사변형 편액의 봉 장식 기원에 대해 규명하였다. 즉 고려부터 조선 전기의 편액이 중국 현판의 형식적 특징을 그대로 수용하여 조성된 반면, 조선 후기의 편액은 판재형 테두리 끝에 목각 봉 장식을 붙인 간소화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후기 편액 형식의 기원으로는 임란 이후 소실된 궁궐과 주요 건축을 대규모로 중건하는 과정에 많은 물량의 편액을 조성하면서 어좌(御座)나 교의(交椅) 같은 의자의 권두형 장식을 차용하여 간소화하였다고 추정하였다. 마지막으로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모연(募捐)하여 1869년 조성된 흥천사 대방(大房)에 그가 쓴 예서 편액이 게시된 사실에 주목하였다.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집권 이전부터 불교의 원력에 의지하였던 그가 집권 이후에도 흥천사를 비롯, 화계사(華溪寺), 운수암(雲水庵), 흥국사(興國寺) 등 근기(近畿) 지역 사찰에 중창을 주도하면서 대방 건축을 조성하고 스승인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영향을 받은 고예체(古隷體) 편액을 게시한 사실은 스승과의 서예적 사승(師承)을 뚜렷이 하고 자신의 집권을 알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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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전기 능침사의 설치와 변화 - 서울 지역 능침사를 중심으로
    본 논문은 조선전기에 설치된 능침사 가운데 오늘날 서울 지역에 소재한 능침사의 현황과 특징, 변화상을 분석한 연구이다. 서울에 소재한 조선전기 능침사는 정릉(貞陵) 의 흥천사, 경릉(敬陵)과 창릉(昌陵)의 정인사(수국사), 선정릉(宣靖陵)의 봉은사 등 총 3곳이다. 조선전기 서울 지역 능침사의 특징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서울의 세 능침사는 왕실의 대표적인 추복도량이었을 뿐만 아니라 왕실의 정치 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서울 지역 능침사들이 도성과 인접한 곳에 위치해 왕실 불사의 설행이 용이했고, 불교행사를 통한 민심 결집에도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왕 실의 정치적 기구로 활용될 수 있었다. 둘째, 서울 지역의 능침사 건립을 주도한 인물들은 당대 최고의 권력층이었다. 도성 인근에 대규모 가람이 설치되었던 것은 상당한 자금과 막강한 정치력이 요구되는 사안이 었다. 이 사찰들은 왕실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아 조성되었고, 왕의 사액을 받음으로써 명실상부한 왕실사찰로 자리매김했다. 셋째, 서울 지역의 능침사는 왕실불교의 거점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유학자들의 표 적이 되었다. 정동의 흥천사는 유생들의 두 번의 방화에 의해 결국 폐사되었고, 정인사는 부녀자들의 음란하고 부도덕한 불사의 장소라는 지탄을 받았다. 봉은사는 왕릉과 너무 가까워 불경소리가 들린다는 이유로 연산군대에 능역 밖으로 이전하였고, 명종대에는 부도덕한 대비와 요승 보우로 인해 국가기강을 흩트리고 민심을 어지럽힌다는 등의 갖가 지 비판을 받았다. 서울 지역의 능침사는 유학자들의 비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조선말까지 서울 지역의 불교문화를 주도하는 사찰로 명맥을 이어갔다. 여기에는 왕실의 정치경제적 지원과 더불 어 조선전기부터 구축된 공고한 종교적 기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능침사의 제사 기능이 사라진 조선후기에도 세 사찰의 승려들이 능침 관리와 산릉 제사 준비에 적극 협력하면서 불교의 존립 기반을 스스로 확대하였다. 능침사가 수행하던 불교식 추천의례 과 내세추복신앙은 조선시대 서울의 불교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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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경과 한양의 사찰 – 도성사찰의 역할과 의미
    이 논문은 고려시대 개경과 조선시대 한양에서의 사찰 조성 계기와 변화 그리고 위상을 살펴보고 비교해 봄으로써 조선초 신왕조의 도읍인 한양에서의 사찰 건립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고려시대 개경의 사찰은 919년 개경 건립과 함께 조성되어 신앙의 구심점이자 궁궐, 관청 등과 함께 공적인 공간으로서 왕도 개경을 장엄하며 고려 문화와 사상의 중추가 되었고,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공간이었다. 개경의 사찰운영에는 불교가 국가를 운영하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던 고려사회의 관념이 반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에는 1394년 한양 천도가 결정된 이후 궁궐, 성곽, 종묘 등 주요 시설과 함께 한양 도성 안에 사찰을 세우거나 혹은 사찰 건립에 대해 고려했던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 불교를 비판하며 건국한 신왕조의 도성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1396년 정릉(貞陵)과 함께 그 능침사로 태조가 흥천사(興天寺)를 지으면서 한양 도성 안에 처음으로 절이 들어섰다. 흥천사는 애초 도성 계획에는 없었던 것으로 고려말 이래의 왕릉 제도의 영향을 받아 정릉의 부속시설로 조성된 것이었지만 이후 태조가 도성안에 사찰을 짓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전기 국왕이 세운 사찰이 도성에 운영되던 시발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과도기적 현상이자 구시대의 유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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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광 좋은 명소이자 수많은 예술인이 살던 서울 정릉동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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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지역 장소성의 물리적 요소에 대한 연구 -서울시 정릉동 정릉10길 일대 활성화를 중심으로
    (연구배경 및 목적) 오늘날의 도시는 빠르게 변화하며 ‘장소’라는 개념이 점점 약화되어가고 있다. 또한,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 정릉 10길 배밭골 일대는 주변 대학의 유동인구와 문화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이러한 장소적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정릉3동 배밭골 일대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장소성의 물리적 요소들에 대해 알아보고, 대상지에 맞는 활성화 계획을 제안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구축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한다. (연구방법)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론적 고찰로써 장소성의 개념들과 선행연구들을 분석한 후, 국 ·내외의 사례들을 선정하여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장소성의 물리적 요소들의 특성을 도출한다. 그리고 대상지의 선정과 분석을 진행하고 도출한 특성들을 대상지에 적용 가능한 요소들과 방향성을 제시한다. (결과) 이에 본연구에서는 사례분석을 통하여 지역 활성화를 위한 물리적 요소들을 도출할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대상지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들과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로체계의 정비와 경사를 고려한 합리적인 교통체계를 확립하여야 하며 대상지 주변의 대학자원, 자연자원 활용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구릉지를 고려한 보행환경 조성과 입체 보행로와 경사 극복을 위한 레벨 계획이 필요하다. 셋째, 블록의 구획과 건물들의 배치는 정비가 필요하며 주변환경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다양한 용도의 프로그램이 배치되어야 한다. 넷째, 구릉지에 적합한 주거단지 계획이 필요하다. 또한, 기존의 골목의 활용방안과 포켓 공원 또는 인공지반을 통한 데크공원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본 연구는 활성화되지 못했던 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에 대하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도시지역의 장소성의 물리적 요소에 관하여 마스터플랜 조성 시 필요한 요소의 선정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성북구 정릉3동 정릉 10길 일대의 지역 활성화에 필요한 요소들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정릉동 배밭골에 한정하여 모든 대상지에 객관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추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대상지에 적용 가능한 실질적인 마스터플랜과 건축계획에 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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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유산 조선왕릉 입구공간의 조성 양상
    본 연구는 방문자 편의를 위한 주차장, 매·수표소, 화장실, 전시관, 안내판, 휴게시설 등이 배치된 조선왕릉 입구공간의 조성 양상을 고찰하여 개선 방향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진행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시대의 능역(陵域)이 좁아져 기존 제례동선을 온전하게 수용하지 못하는 현재의 왕릉에서 입구공간의 입지는 당시 여건에서 최소한의 편의 기능을 수용하도록 결정되었다. 다수의 왕릉 입구공간은 그동안 세계유산으로서 완전성을 갖추고, 동선의 합리적 배치와 공간적 효용을 도모하며 위치가 이동되거나 정비되었다. 둘째, 입구공간의 규모는 서울 정릉 1,000 부터 남양주 홍릉과 유릉 16,000 에 이르며, 연간이용자수는 양주 온릉 1.2만명부터 서울 선릉과 정릉 41만명까지 크게 차이가 난다. 왕릉 16개소의 여건을 고찰하여 입구공간은 이용자 유입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 토지이용과 접근성, 능역의 규모, 피장자(被葬者)의 인지도와 선호도 등을 반영하여 적절한 규모로 제공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셋째, 조선왕릉 입구공간에서 주차장의 위치, 매·수표소를 경계로 하는 외부 마당과 내부 마당의 유무와 역사문화관의 위치로 결정되는 공간구성 양상을 고찰하였다. 넷째, 왕릉마다 입구공간에 필수적인 주차, 통제, 안내, 편의 기능과 지원, 전시, 통로, 휴게 기능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때 관리사무소는 지원 기능, 역사문화관은 전시 기능을 담당한다. 통로는 진입감을 제공하는 전략이 될 수 있으며, 현재 왕릉 4개소에만 도입된 휴게공간은 적절한 위치 선정과 경관적 접근이 필요함을 제안하였다. 다섯째, 입구공간의 경관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주차장의 이격 배치와 친화적 포장디자인, 전이공간의 식생경관, 매·수표소 내부 역사문화관 주변 오픈스페이스, 이질적 안내판들의 영역화 전략을 도출하였다.
  • 학술자료
    도시화 과정에서 서울 지역 마을 공동체의 지속 요인과 변화 양상 – 성북구 정릉공청회를 중심으로
    본 논문에서는 서울시 성북구 정릉2동이라는 구체적인 지역 사례를 들어 일제 강점기 정친회(정릉친목회)에서 시작하여 해방 후 재산 형성과 재정립 과정을 거친 정릉공청회, 도시화 속에서 공적 체계인 노인회를 수용하고 이주민의 유입에 대처하여 외연을 확장한 정릉대동친목회, 그리고 지방 자치제 실시 후 전통성을 그 특징으로 내세우는 정릉공청친목회를 통하여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지속되어 온 정릉2동 마을공동체의 지속 전략과 변화 양상, 그리고 공동 재산과의 관련성을 살펴보았다. 정친회, 즉 정릉친목회는 정릉지역 유지들의 친목계로 일제 강점기인 1915년 9월 2일에 창건되었으나 1930년에 공청을 짓고 점차 정릉리 마을공동체 성격으로 변모한다. 해방 후 한국전쟁으로 전소된 공청을 새롭게 짓고 공청이 세워진 토지를 불하받아 기본 재산을 형성한 정릉공청회는 회칙과 규약을 새롭게 제정하면서 정릉공청회의 재건 작업을 시작한다. 비록 정릉공청회 회칙과 규약에서 회원 자격을 ‘유지’에서 ‘동민’으로 확대하였으나 이 당시 정릉공청회 구성원 자체는 이미 본토 주민, 즉 토박이 위주의 정예 회원으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정릉공청회 기본 재산에 대한 재산권을 가지는데 이는 향후 정릉공청회 발전 과정에서 이주민과의 ‘구별짓기’를 형성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주민들의 대량 유입은 전통 마을공동체 조직인 정릉공청회의 변화를 요구했다. 정릉공청회는 경비 절감을 위하여 공적 체계인 노인회를 수용하였고, 노인회와 같이 공청을 사용하면서 이주민 일부를 수용하여 외연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정릉대동친목회를 재정립하여 공동체 조직의 존립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정릉대동친목회라고 하더라도 내부에 기본 재산에 대한 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정릉공청회 회원, 즉 토박이들과 이주민이 함께 존재하는 한 토박이와 이주민의 차별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었다. 2001년 이후 지역 전통문화에 대한 성북구청의 지원 속에서, 또 2018년을 기점으로 정릉대동친목회 운영진이 세대교체 되면서 정릉대동친목회는 또 한 번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즉 ‘정릉공청대동회’라고 하는 명칭에서부터 예전 정릉공청회의 연속성을 강조하려고 하였고, 회칙과 운영 규칙에 산신제를 추가하거나 별도의 ‘봉제회 회칙’을 만들어 정릉공청대동회의 전통성을 강조하고 노인회에 넘어갔던 산신제 주도권을 다시 찾아와 전통을 바로잡으려고 하였다. 정릉공청대동회의 전통성 강조는 회칙뿐만 아니라 산신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는데, 이는 정릉공청대동회가 마을의례를 지속하고 이를 제도권에 포함시키기 위한 시도로 이어졌다. 그러나 재개발 논의를 앞두고 공청의 처분 논의에 이르자 회원 내부의 토박이와 이주민 갈등은 표면화되었다. 토박이에 대한 기준도 1959년 공청 준공기를 기준으로 나뉘어 그 이후 들어온 사람들은 아무리 정릉2동 지역에 40년 이상 거주하였다 하더라도 이주민으로 취급되었다. 이는 재산권의 유무와 관련된 것으로 마을공동체에서 공동 재산의 의미가 마을공동체가 지속하게 된 요인으로도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측면에서는 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별을 만들어 내어 마을공동체 구성원들 내부에 토박이와 이주민의 ‘구별짓기’를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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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정릉리 주민들의 6·25전쟁 경험-김성칠의 일기자료 『역사 앞에서』를 중심으로
    이 연구는 서울 성북구 정릉리(현 정릉동) 주민들의 6・25전쟁 경험을 다룬 것이다. 기본 자료는 김성칠이라는 인물이 남긴 일기자료이다. 이외에 추가로 지역 주민의 구술자료를 활용하였다. 김성칠은 역사학자이자 서울대학교 교수였다. 그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서 1947년부터 1950년까지 거주하였다. 1950년 12월에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으며 1952년 가을에 사망하였다. 해방 이후부터 사망 직전까지 작성된 그의 일기는 유명하다. 그렇지만 마을 연구 자료로 활용된 적은 없다. 이 연구는 김성칠이 거주했던 정릉리 손가장 마을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작성된 일기를 면밀하게 검토한 것이다. 그리고 인민군 통치 하의 서울지역 마을 주민사회의 경험을 미시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밝히고 있다. 첫째, 정릉리는 6・25전쟁 발발 당시 인민군의 서울 진입로서 개전 초기부터 인민군에 의해서 점령되었다. 미아리고개뿐만 아니라 북한산이 인민군의 이동로가 되었고 일제시기 이곳으로 이전된 경신학교 건물이 인민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둘째, 인공은 점령 직후부터 일사분란하게 마을에서 통제력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통치의 효율성을 보장했던 것은 일제시기 생활공간에 구축된 동회・애국반이라는 주민동원・통제조직이었다. 셋째, 인공의 점령은 마을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변화시켰다. 인공은 마을 내의 협력자들로 마을 권력을 재구성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인민공화국 백성 되기가 추진되었으며 의용군 입대가 강요되었다. 넷째, 인공 점령 하 마을 민심의 향배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 것은 식량문제였다. 인공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복종은 정보에 대한 기만이나 공포감의 조성과 함께 식량문제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식량위기는 정릉리 주민사회의 민심이 이반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다섯째, 수복은 정릉리 주민사회에 새로운 이념대립 구조를 만들었다. 잔류한 주민들은 잠재적 ‘빨갱이’로 취급되었으며, 정부와 함께 피난을 떠났다 돌아온 소수의 도강파 주민들은 마을 내의 가장 도덕적인 집단이 되었다. 정릉리 주민들의 전쟁 경험은 한국전쟁 시기 사회변동과 관련해서 중요한 내용들을 말해주고 있다. 첫째, 막연하게 이야기되었지만 구체적으로 전쟁이 정릉리의 주민구성을 변화시킨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전쟁은 마을을 對共투쟁의 장으로 변화시켰다. 셋째, 전쟁 경험은 정릉리 주민들에게 ‘나라’에 대해 극도의 냉소주의와 피해의식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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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정체성 함양을 위한 시각정보디자인 프로그램 연구 : 정릉동을 중심으로
    본 연구의 목표는 정릉동을 중심으로 지역정체성을 함양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지역정체성의 함양을 위해 정릉동의 지역정체성 형성 과정과 지역의 축제를 사례 조사 하였다. 이를 토대로 정릉동에 거주하는 7명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시각 정보 디자인 프로그램을 실행하였다. 연구 도구는 지역정체성 함양을 알아보기 위한 사전·사후 설문지, 자기평가지, 집단인터뷰로 구성하여 결과를 도출하였다. 그리고 집단 인터뷰를 통해 지역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알아보았다. 사전·사후 설문지의 결과는 지역정체성의 요소인 지역관심도, 지역애착도, 지역자긍심의 평균이 모두 상승하였다. 자기평가지의 결과는 학습자들의 지역정체성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집단 인터뷰의 결과는 지역관심도와 지역애착도가 주로 상승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집단 인터뷰는 분석을 하기 위해 지역정체성의 형성 과정에서 자료 수집 방법으로 검색을 통한 자료수집방법, 경험적 지식,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자료 수집으로 나누었다. 인터뷰의 분석 결과는 자료 수집의 방법들이 각기 다른 영향을 주고 있다. 검색을 통한 자료 수집은 학습자들의 객관적인 지역정체성의 발전, 강화 및 축소에 영향력을 주는 인지를 만들어 주었다. 반면, 경험적 지식은 주관적인 지역정체성의 형성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검색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적 지식은 소통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었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자료조사는 앞선 검색을 통한 자료수집과 경험의 지식을 바탕으로 학습자들이 상호 소통을 하면서 주관적인 지역정체성과 객관적인 지역정체성이 모두 함양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학습자들은 수업 환경에서 지역에 대한 원활한 소통을 통해 지역정체성을 형성하였으며, 본 프로그램은 학습자들에게 지역정체성을 함양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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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임대주택으로서 “예술인 주택”의 등장과 확장 : 2015~2020년에 설립된 “예술인 주택”을 중심으로
    “예술인 주택”은 문화·예술인이 집단으로 모여 거주하는 주택으로, 자생적으로 형성되거나, 공공의 지원을 받아 조성된다. 본 논문은 공공의 주도로 조성되는 공공임대주택으로서, 확인 가능한 “예술인 주택” 32채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중략) “예술인 주택”은 각 지역의 주거복지 수요를 충족하고,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의 성과를 드러낼 수 있는 전략으로서, 도시 종합계획 내 문화를 중요한 축으로 삼은 도봉구와 성북구를 중심으로 확대재생산 되었다. 도봉구는 문화관광과에서 ‘문화 예술인마을 운영’사업을 2015년 10월 이래로 지속해왔으며, 도봉구 ‘민선 6기 구정발전 4개년 계획(2015~2018)’의 세부 사업인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은 이후 예술인 주택과 연계되었다. 도봉구는 ‘만화인 주택’ 및 ‘문화예술인 주택’ 7채를 ‘둘리뮤지엄’과 ‘둘리테마거리’와 인접한 지역에 설립하여, 예술인 주택과 만화콘텐츠를 연결한 지역 활성화를 계획한 바 있다. 성북구는 민선 6기 전략과제 중 하나로 ‘창조문화 역사도시’를 계획하였고, 세부 사업으로 ‘예술인의 마을’을 추진하였다. 도봉구와 성북구의 예술인 주택은 민선 6기 구정발전 계획 및 전략과제에 포함되어 추진되었고, 문화를 위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관심과 노력을 보여주는 성과물로서 드러났다. “예술인 주택”이 공공주도의 도시 성장 전략으로 활용될수록, 공공기관과 예술인은 관료제 중심의 복지체제적관계로 흡수되어 분배자와 수혜자 또는 지원자와 지원 대상자의 틀로 재편되었다. 자원, 공동체, 그리고 일련의 사회적 규약을 포괄하는 공유의 개념에 기반하여 ‘수요자 맞춤형 공동체 주택’사업으로 공급되는 “예술인 주택”은 예술인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입주자 간 관계와 공동체 공간 활용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인 주택”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과정은 예술인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을 곤궁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하는 딜레마를 내재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성북구의 “예술인 주택” 3채에 거주하는 5인과의 인터뷰는 두 가지 논의를 드러낸다. 첫째, “예술인 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의 공급과 예술 생산의 요소를 결합하여 공급되고 있으나, “예술인 주택”의 공간은 주거와 예술 생산을 연결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건설형 임대주택’의 경우, 예술인의 필요에 따라 공간을 설계하여 공동체 공간에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매입형 임대주택’의 경우 예술 활동에 적합한 외부의 공간으로 나가야 했다. 둘째, 예술인에 대한 공공기관의 지원은 ‘지원을 받는 예술인’과 ‘그렇지 않은 예술인’을 구분하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이는 “예술인 주택”의 공공기관과 예술인을 자원을 분배하는 공공기관과 수동적 의존자로서 예술인의 관계로 재편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주체적 의지와 태도를 축소하여, “예술인 주택”이 주창하는 협동과 공유의 가치를 형성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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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 교수단지의 정원가꾸기를 통한 커뮤니티 의식 형성 연구
    노후 주거지의 환경개선을 위한 재건축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소송과 법적공방은 주민들의 주거권과 재산권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키며 그 과정에서 정신적, 경제적 피해와 손실을 일으키기도 한다. 재건축 진행 여부가 확정되기까지 주민들은 노후 주택의 보수와 관리 시점을 미루게 되고, 주거로 인한 행복을 현재가 아닌 미래 시점으로 유예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궁극적으로 주민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이러한 배경에서 새로운 도시재생의 패러다임은 거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커뮤니티와 지속 가능한 마을에 대한 논의를 형성했다. 커뮤니티의 발굴과 유지를 통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정원 가꾸기’가 활용되기도 한다(박재민 외, 2016). 정원을 통해 발생하는 사회적 활동과 접촉, 이웃과의 상호작용은 개인의 만족과 삶의 질을 높이며 궁극적으로는 공동의 연대와 커뮤니티 의식을 형성하게 하는 기초가 된다. 서울시 성북구 소재의 단독주택지인 정릉 교수단지 주민들은 재건축이라는 공동의 문제를 바탕으로‘마을과 커뮤니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바람에서 정원이라는 환경요소를 활용하였다. 재건축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대문에 내걸었던 화분이 정원을 가꾸는 행위로 확장되고, 이웃과 함께 소통하는 마을 정원으로, 주기적인 축제로 확대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러한 정원 가꾸기 활동은 환경개선의 측면 뿐 아니라 주체들의 인식과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경험하게 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개인 정원과 마을 정원에 물리적 변화가 생기게 된 계기와 과정, 주체적으로 정원 활동에 참여한 주민들의 인식과 사회적 교류의 변화를 고찰한다. 이로써 지속적인 정원 가꾸기가 개인과 가족 단위의 미시적 관계 변화로부터 이웃과 근린에 대한 애착을 형성하고 유대를 강화해온 커뮤니티 의식의 형성 과정을 정리하였다. 시간적 범위는 재건축이 논의되어 마을 커뮤니티가 생기기 시작한 2008년부터 2020년 12월까지를 다룬다. 연구 흐름은 첫째, 단독주택지에서 발생하는 커뮤니티 활동의 양상과 정원 활동을 통한 사회적 효용을 이론적으로 고찰하고 커뮤니티 의식을 파악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설정한다. 둘째, 현장답사를 통해 개인 정원과 마을 정원의 물리적 변화를 파악한다. 셋째, 개인 정원을 개방하고 마을 정원을 적극적으로 가꾸는 연구 참여자를 선정하여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수집된 인터뷰 자료를 분석하여 정원 가꾸기를 통한 주체들의 인식과 관계 변화를 바탕으로 한 커뮤니티 의식을 고찰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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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역문화공동체 사업 활성화 방안 : 성북문화재단 예술마을만들기 사업을 중심으로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공동체가 해체된 오늘날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한 지역문화 공동체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여러 지자체에서는 지역발전 전략으로 문화예술과 공동체의 가치를 활용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실 행하고 있으며, 이는 지역을 기본단위로 해체된 문화공동체를 문화예술을 통해 복원하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문화공동체 사업은 기본적으로 문화민주주의 이념에 맥락을 두는 만큼, 지역주민과 예술가의 자발적 참여와 함께 지역별 문화재단이나 행정단위와의 거버넌스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대부분의 지역사업에서 거버넌스를 통한 지속가능성과 문화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본 논문은 지역의 문화공동체 사업에서 주민과 지역 예술가, 지역문화재단과 행정 단위들이 어떻게 생태계적 구조를 갖도록 노력하는지를 밝힘에 따라, 지역의 문화 진흥과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는 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특별히 성북문화재단 지역문화공동체 사업의 예술마을만들기를 대상으로 하여 사업의 활성화 방안을 도출하였다. 연구방법은 학술연구 논문을 비롯하여 각종 자료집 등을 통한 문헌연구와 사례연구로 진행하였다. 그 결과 국내외 사례의 경우 무엇보다도 주민과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사업의 방향을 잡아갔고, 행정단위와의 거버넌스를 실천하면서 창작-향유-시장에 준하는 선순환적 구도를 유지함에 따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문화예술 공동체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시장성이란 본격적인 문화산업 구도는 아니며, 오히려 사회적 경제 개 념이거나 작은 단위의 지속가능성을 실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본 연구의 대상인 성북문화재단 예술마을만들기 사업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기본적으로 성북구는 문화, 교육, 복지의 통합적인 정책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주민의 참여에 따른 공동체 형성에 주력해 왔다. 특히 문화정책 과제 구상과 실행체계를 혁신적인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면서 지역의 문화예술생태계 재구성과 새로운 주체 형성에 집중해 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역주민과 예술가, 행정단위에서의 주체들이 생산자-지지자/소비자-매개자의 역할로 지역문화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성북 문화예술생태계를 창작-향유-시장의 선순환 환경으로 조성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부족한 사업예산과 양적 위주의 운영은 사업 활성화 측면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성북의 강점인 문화 거버넌스를 더욱 확장하여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자발성을 높일 수 있는 매개활동을 활성화 하고 공동체를 조직화하여, 사회자본이 형성되는 관점에서 사업의 질적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생태계의 핵심주체인 지역주민을 잠재적 소비자의 중요한 주체로 인식하여 예술의 후원 등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문화예술의 향유주체로 성장시키는 환경의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향후 삶과 공동체를 둘러싼 지역 문화예술생태계 가치와 관계를 능동적으로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과 사업이 개선·실행되어 문화예술 생태계가 창의적으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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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소문 밖의 사람들― 미아리일대의 역사ㆍ공간ㆍ삶
    이 글은 20세기 도시의 역사를 저장하고 있는 미아리 일대의 역사적 시간과 공간의 변화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가 도시공간구조 속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타자화 되어 왔는지를 규명하는데서 출발하고자 한다. 조선시대까지 미아리 지역은 한성부의 성저십리에 속하는 지역으로 국왕 호위와 도성보호의 역할을 한 도심의 허파와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공동묘지로 지정되면서 지역의 명암은 바뀌어 갔고 미아리 고개 넘어 지역은 산자의 공간 보다는 죽은 자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민과 전재민들은 공동묘지 근처에 살기 시작했고 1950년대 후반부터 정부는 4대문 안의 간선도로변 판잣집 강제철거를 시작으로 수재민 화재민들을 이주정착지라는 이름으로 도심 외곽으로 집단이주정책을 펼쳤다. 첫 번째 대상지역이 미아리 지역이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달 동네가 형성되게 되었다. 1960년대 시작된 미아리 지역개발은 이 지역 경관에 새로운 변화의 상징이었다. 길음교와 미아로 확장공사 정릉천 복개구조물 공사로 인하여 정릉천과 월곡천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뒤덮게 되었다. 이 공간의 한쪽에 속칭'미아리텍사스촌'도 자리를 잡게 됐다. 1990년대 재개발로 들어선 아파트는 길음동 미아동 하월곡동일대를 주거지로 만들어 놓았으며 조망권이 높아질수록 속칭'미아리텍사스촌'의 재개발문제와 더불어 환경공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2002년 시작된 뉴타운 사업의 확대로 근현대시기 동안 미아리 지역을 살아온 서민들의 역사 공간 문화들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도심재생사업의 본격화로 인해 원주민과 도시 빈민들은 더 열악한 곳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또한 수십 년 동안 가부장제와 공모하여 성문화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온 속칭'미아리텍사스촌' 재개발 논쟁이 본격화되면서 성북구와 강북구는 미아리라는 지명을 강제말소 함으로써 균형 잡힌 도시의 역사와 도시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미아리공동묘지 원조 달동네 미아리텍사스촌이라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삶의 흔적이 된 채 도시화의 상처로 남아있다. 그러나 미아리는 근현대시기 동안 도시가 만들어낸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터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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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교동 한규설 가옥 : 정밀실측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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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정비사업 예정지의 방기부동산에서 나타나는 문화예술인의 일시적 공간 활용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 : 정릉 3동 정릉골을 사례로
    도시 내 특정 산업지구의 쇠퇴, 구도심 공동화와 같은 현상은 도시 내에 방기된 공간을 만들어내고,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을 지역 재생이나 지역 개발을 위한 자산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은 방기된 공간 활용에 대한 정책적 구상에만 초점을 두고 있고, 실제 방기된 공간을 활용하는 개인들과 이러한 개인들의 활동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공간의 변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정릉골과 그곳에 이주한 예술가들의 사례를 통해 방기된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하는 일시적 공간 활용의 방식이 공간적, 시간적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나아가서 이러한 시도들이 지역 재생 담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술가들의 이주 초기 일시적 공간 활용은 재개발 예정지인 정릉골의 빈집을 예술가들의 주거지이자 작업장으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황폐해진 공간을 예술가들이 작업장으로 만들면서 정릉골의 빈집들은 새롭게 활력을 찾게 되었다. 둘째, 예술가들의 활동은 점차 확장되어 예술가와 주민, 그리고 지역 외부의 행위주체들이 함께 연대하고 참여하는 활동으로 발전한다. 빈집을 임대하여 공동 작업장을 꾸미고, 주민 참여할 수 있는 마을 환경 정비사업과 마을 잔치를 기획하여 활동의 범위를 예술가 내부에서 지역사회 전체로 확장시켰다. 나아가 지역 정부의 재정적 지원 및 외부 활동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셋째, 재개발 사업의 시행이 지연되는 상황 속에서 정릉골 예술가들의 활동은 지속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주민들의 참여, 지역 외부 활동가와의 연대, 지역 정부의 지원 등이 계속 이어지면서 정릉골 지역 사회내부에서는, 기존의 전면 재개발 방식을 추진해 나가던 주민협의체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의 재개발 방식을 주장하는 주민의견과 대안적 지역 재생 전략을 추진하고자 하는 주민의 의견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본 연구결과는 방기된 공간을 사용하는 개인의 일시적 공간 활용 행위가 확장되어 지역 개발 및 지역 재생 논의에 대해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일시적 공간 사용은 단순히 방기된 공간을 임시로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안적 공간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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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서울 정릉동의 도시한옥에 관한 연구
    도시한옥이란 전통주거유형인 한옥이 도시화와 근대화라는 사회적 변화에 적응한 주거유형이다. 이런 도시한옥은 근대 이후의 급격한 변화속에서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 유형의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경제개발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갖는 시기에 지어진 60년대의 도시한옥은 이전 시기의 도시한옥이 보편적인 주거유형으로 도시에서 보급되었던 것과 다르게 적응하였다. 본 연구는 정릉동 372-20번지일대 도시한옥주거지를 중심으로 1960년대의 도시한옥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서울은 1914년 이후 1936년, 1949년, 1963년에 행정구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이 중에서 1949, 1963년 확장된 행정구역은 1960년대 도시계획을 통해서 주거지로 개발 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주거지에는 주로 민간건설업자들이 단독주택을 지어 보급하였다. 1960년대의 도시한옥은 확장된 주거지에 지어지던 단독주택의 한 유형으로 새로운 주거유형과 경쟁속에서 지어졌다. 60년대의 정부 정책과 건축산업, 제도는 목구조가 주구조체인 도시한옥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첫번째 민간건설을 지원하는 융자지원제도에서는 내화구조나 방화구조가 아닌 목조건축물이 배제되었다. 두 번째 부동산투기억제책의 일환으로 제시된 건물시가기준표준안은 목조건축물의 가치를 낮추었다. 세 번째 당시에 산림녹화사업으로 인해서 벌채가 억제되어 대부분의 목재 공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목재의 단가는 다른 건축 재료에 비해서 두 배 가까이 상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한옥의 건설량은 전체 주택의 건설량 증가와 함께 증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60년대의 주거생활방식이 좌식생활, 기능의 미분리, 유교적 의례, 작업공간인 외부 공간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주거생활방식이 유지되고 있었고 도시한옥은 이런 1960년대의 주거생활방식을 수용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의 도시한옥과 같이 보편적으로 보급되기에는 경쟁력이 부족하였고 집을 구매할 때 자신이 선호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도시한옥은 특화된 주거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정릉동은 1960년대 대표적인 도시한옥 밀집지역 이었다. 정릉동은 1949년에 서울의 행정구역 안으로 편입된 지역으로 대부분의 지역은 토지구획정리사업과 같은 택지개발사업 없이 택지 개발부터 주택 건설까지 모두 민간에 의해 개발된 지역이다. 본 연구의 대상지역인 정릉동 372-20번지일대의 도시한옥주거지는 경신학교가 1954년 정릉동에서 혜화동으로 이전하면서 남겨진 공지에 1967~68년에 민간건설업자에 의해서 계획적인 격자형 주거지로 필지가 분할되고 도시한옥이 건설, 분양되었다 주거지구조는 80x90m의 폭 6m의 접근로에 둘러싸인 장방형의 블록을 폭4m의 진입로가 관통하여 6열의 필지를 2열 분할 방식으로 나누고 있다. 이런 주거지구조는 모든 주호가 차량접근성이 확보되고 주거환경이 균일하다는 장점이 있어 1960~70년대에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인 화양지구, 영동지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필지의 규모에 있어서도 정릉동 도시한옥주거지의 필지가 9.2~12x14m로 128~169㎡의 면적을 갖는다. 돈암지구를 비롯한 도시한옥주거지나 60년대의 면목 지구 등 대부분의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에는 필지 면적 100㎡내외로 소형 필지로 대상지역의 필지가 비교적 큰 필지임을 알 수 있다. 대상지역과 유사한 필지규모는 196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루진 지역 중 동남부 권역의 중심지역으로 대규모로 사업이 이루어진 지역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 준수한 주거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정릉동의 도시한옥은 6열의 필지에 38채가 지어졌다. 모든 주호는 진입방식과 필지의 규모의 차이가 없어 동일한 구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 구성은 ㅡ자의 문간채와 ㄱ자의 안채가 결합된 ㄷ자형 도시한옥을 바탕으로 1960년대의 주거생활방식을 반영하여 과시적인 경향과 기능을 중요시하는 평면계획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도시한옥의 의장부재는 가로와 마당에 면한 부분을 중심으로 과시적으로 사용되었다. 전통한옥에서 사용되던 관습적인 부재의 위계보다는 대청과 마당 그리고 가로를 비롯한 외부에서 보여지는 시각적 위계를 중요시한다. 이런 과시적인 경향으로 굴도리, 원주, 장식적인 기단의 위치를 문간채의 바깥 면 그리고 안채의 마당에서 보이는 면에만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로 관습적인 채 간의 위계질서에 의해서 안채와 문간채가 구조적인 분리가 이루어지고 차가(借家)와 주거생활이라는 문간채와 안채의 기능 차이에 의해서 두 채가 영역이 분리되며 문간채의 계획에서 관습적인 안채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문간채의 면적을 확장하는 계획을 보인다. 이는 문간채가 안채의 부속채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차가의 기능을 가진 독립된 채로 분리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새로운 계획의 요소들이 도입된다. 문간방과 부엌의 면적을 늘려 기능적으로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고 이렇게 화보된 공간에는 문간방의 앞에 현관과 부엌과 안방을 연결하기 위한 복도를 두어 채의 기능을 개선하고자하는 노력을 보인다. 이런 동선은 새로운 주거유형에서 나타나는 동선체계로 도시한옥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이를 수용한 것이다. 정릉동 도시한옥은 단순 필지 구획의 개발방식에어서 벗어나 계획적인 개발방식이 적용되어 대형 블록 안에 공지와 주거지를 함께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평면의 계획에서 전통적인 주거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새로운 계획요소를 수용함으로서 더 나은 주거환경을 만들었다. 이런 정릉동의 도시한옥주거지의 주거지 구조, 공간의 구성은 1960년대의 도시한옥이 기존의 보편적인 도시주거유형에서 벗어나 구매자들에게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기존의 도시한옥이나 당시에 지어지던 단독주택에 비해서 더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고급 주거지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한식목구조가 가지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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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한국 영화산업과 미국의 원조 : 아시아재단의 정릉 촬영소 조성을 중심으로
    미국의 민간원조 기구인 아시아재단은 1953년부터 한국 영화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찰스 태너(Charles Tanner)는 1953년과 1954년에 각각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아시아재단의 지원 계획안을 작성했으며, 1955년에는 아시아재단 도쿄 사무소에서 영화를 담당하고 있던 존 밀러(John Miller)가 한국을 방문하여 산업의 현황을 조사하고 계획안을 제출했다. 찰스 태너와 존 밀러는 전후 한국의 영화산업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첫째, 영화를 제작할 물적 기반의 파괴, 둘째, 영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배를 지적한다. 이와 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아시아재단은 민간의 비영리, 비정치 조직으로서 한국영화문화협회를 설립했다. 아시아재단이 총 50,000달러를 들여 마련한 영화 제작 장비를 맡아 운영하면서 한국영화문화협회는 1950년대 말 한국 영화산업이 활성화되는 데는 기여하였다. 하지만 정부가 영화를 지배하는 상황을 타개한다는 아시아재단의 애초 목표는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는 공보와 선전의 수단으로 영화를 중시했던 한국 정부에 대규모의 원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글에서는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 인스티튜션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는 아시아재단의 영화 프로그램 관련 파일들을 검토하여 한국영화문화협회의 설립과 활동 과정을 재구성함으로써 전후 한국의 상황과 영화에 미친 미국의 구조적인 영향을 밝히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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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8구역 주민참여형 주택재개발 구역지정 공공계획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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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사회 자연재난 리질리언스에 관한 연구 : 성북천과 정릉천 사례를 중심으로
    본 논문은 지역사회 하천의 리질리언스에 미치는 영향요인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사례연구 방법을 통하여 미시적 분석을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성북구 관내에 흐르는 성북천과 정릉천 사례를 분석하여, 두 하천이 리질리언스를 높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어떤 변화와 개선을 했는지를 논의하였다. 오랫동안 하천은 우리 일상에서 필수적이고 친숙한 생활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따라서 지역하천의 리질리언스를 높이기 위한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방법은 먼저 기존의 문헌검토, 사업보고서, 관련자료 등을 수집하여 하천 리질리언스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모델을 구축하였으며, 더 나아가 하천 개보수 과정에 대한 자료 및 현장답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두 하천을 이용하는 사람과 지역의 대표성 있는 상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여 보다 심층적 분석이 되도록 하였다. 연구의 시간적 범주는 2002년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의 기간으로 즉, 복개하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한 기간을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연구 내용 분석은 자연적/물리적 시스템, 사회/문화적 시스템, 경제적 시스템, 제도적 시스템, 인적 시스템 등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4Rs(내구성, 자원부존성, 신속성, 가외성) 개념을 적용하여 실시하였다. 구체적으로 복개하천을 복원하였을 경우 나타나는 하천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의 삶의 질, 환경변화, 생태계의 회복 등을 리질리언스(resilience) 4Rs 시각에서 내구성, 자원부존성, 신속성, 가외성 등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이를 통해 성북천과 정릉천의 자연천 복원 과정에서 어떻게 하천 리질리언스를 제고시켰으며, 또한 주민들의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 어떠한 변화를 모색하였는지 분석하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북천과 정릉천은 모두 자연적/물리적 하부 시스템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서 수질개선, 제방 및 배수펌프장 등을 새롭게 만들었다. 또한 장비가동체계를 개선하여 자원부존성을 높였으며, 재난안전본부 지휘체계에서 신속성을 높였다. 인적 측면에서 볼 때 성북구청 내에 재난관리조직을 확대하고 민방위 및 학생 등의 가용자원을 파악하여 가외성을 동시에 높였다. 또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정릉천과 성북천에 체력단련과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여 지역사회 주민들의 건강증진과 공동체 활동을 강화시켜서 지역사회의 리질리언스는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고 분석되었다. 지역하천의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은 지역하천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지역사회 단위에서 지역하천의 리질리언스와 삶의 질 제고를 위한 노력들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시각에서 체계적인 연구를 지속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많은 한계점을 가진 연구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시도를 해보았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가 갖는 한계점들은 후속연구들에서 발전적으로 보완되어 후속 연구들이 체계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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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태조비 神德王后 貞陵의 조성과 封陵 고찰
    본 논문은 신덕왕후 정릉을 중심으로 조선초기~후기에 이르는 산릉제도의 형성과 변화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아울러 정릉의 실질적인 능제로서의 승격과정을 담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통해 왕실 원 · 묘제와의 관련성, 조선후기 산릉역사에 있어 추봉릉으로서 정릉이 갖는 위상을 함께 파악하고자 하였다. 정릉은 조선이 개국한 후 가장 먼저 건설된 능인만큼 고려 말 공민왕릉[玄陵 · 正陵]에서 유래한 초기 왕릉 산릉제도의 기원뿐 아니라 17세기 封陵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통해 산릉제도의 변화와 그 배경요인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409년 태종에 의해 민묘로 강등되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조선초기 왕릉조영과 관련한 논고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어 왔을 뿐, 후대 신덕왕후의 위상 변화에 따른 조선후기 능제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1397년 처음 조성 당시의 정릉 체제는 고려 말 공민왕릉에서 유래한 산릉제도에 기초하여 건설되었다. 이는 공민왕릉 공사를 담당했던 金師幸이 정릉 공역의 책임자였단 사실과 이성계가 등극 후 실시한 함경도 지역에 조성된 4대조 무덤의 능역 공사를 공민왕릉 형식을 따라 진행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을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릉의 최초 모습은 함경도 4대조 왕릉이나 태조 계비 신의왕후 齊陵처럼 공민왕릉을 충실하게 계승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1409년 태종에 의해 遷葬된 후 원형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후 1669년 현종에 의해 왕후의 지위가 복권되고 묘소 역시 封陵되면서 조선후기 추봉릉 제도라는 아주 새로운 기준에 의해 정비되었다. 이로써 정릉은 덕종 敬陵의 선례를 따라 추봉릉 제도로 조성된 최초의 왕후릉이자 이후 조성된 단경왕후 온릉, 단의왕후 혜릉 등에 영향을 주면서 조선후기 추봉릉 상설제도의 선구적인 예시가 되었다. 이처럼 정릉은 조선 개국 후 가장 먼저 조성된 능으로서 조선초기 능제 형성의 경향이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후기 추존 陵園의 조영에 있어 중요한 범본이 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산릉제도의 형성과 변화를 동시에 담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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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천의 물리화학적 수질 변화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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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전통시장 환경개선디자인 연구 -성북구 정릉시장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과거 전통시장은 다양한 상품들이 한곳에 모이는 상업의 중심지이자 지역의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 최대의 소통의 장소였다. 오늘날 대형 유통업체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전통시장은 구태의연한 곳이 되어버렸다. 고객들로 하여금 전통시장을 찾을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이다.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단순히 시설을 현대화하고 겉모습만 꾸미기에 앞서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발견하고 제대로 해석하는 연구가 선행 되어야 한다. 본 논문은 서울시의 ‘서울형 신(新)시장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9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진행한 성북구 정릉시장의 환경개선 프로젝트 사례연구로, 전통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지역의 특성을 살린 독창성 있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한 디자인 개선 전략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지속적인 지역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산학협력플랫폼을 구축하고 산학동반성장형 프로그램 운영, 스토리 텔링형 문화콘텐츠 개발, 참여형 조직 구성과 같은 3가지 핵심전략을 구상했다. 특화 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한 활성화를 위해 먼저 지역의 사람과 환경, 생활, 산업의 역사와 현재 등 지역문화 특성을 개관하고 정릉시장만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현재 정릉시장 디자인의 문제점을 현황 분석하였으며, 3가지 전략을 바탕으로 디자인 개선 방향을 제안하고 실증적 디자인을 예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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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만들기 추진과정의 성과 및 한계에 관한 연구 - ‘성북구 2011 제2기 도시아카데미’의 교육대상지(정릉1동)를 중심으로
    본 연구는 ‘성북구 2011 제2기 도시아카데미’의 교육대상지 중에서 정릉1동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의 효과와 마을만들기 사업추진과정의 성과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한계점을 모색하여 마을만들기 사업의 개선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마을만들기 사업 및 주민교육프로그램에 관한 이론고찰을 하였고, 도시아카데미 교육프로그램의 효과와 마을만들기의 사업추진과정에 대한 성과 및 한계를 분석하기 위한 틀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도시아카데미의 교육과정과 결과물을 중심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분석하였고, 교육관계자를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실시하여 교육프로그램의 효과와 사업추진과정의 성과 및 한계를 분석하여 마을만들기 사업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본 연구를 진행하였다. 마을만들기는 시범사업을 통해 물리적인 성과품을 단기간에 완성해 내는 일회적인 행정정책이 아니라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역 주민이 스스로 고쳐나가는 지역사회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에 ‘성북구 도시아카데미’는 그 지역에 적합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거듭나고, 지방자치단체는 지속적인 마을 만들기의 주젒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지원체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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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공동체 활동 참여와 근린환경 만족도의 관계 : 서울시 성북구 삼덕마을의 사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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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서울의 구릉지 저소득층 공동주택에 관한 연구 - 시민아파트와 정릉 스카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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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릉지 공동주택_정릉3동 재개발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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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208호 서울 정릉 내 수라청 복원공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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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노후아파트 계획에 관한 연구 : 정릉동 스카이 아파트 오픈 광장의 내부화 계획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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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천 상류 활용 계획안 : 수변 공공성 회복에 대해
    역사도심 서울의 경관적 특성은 내산과 외산으로 둘러쌓여 골짜기마다 흘러내린 물줄기가 큰물줄기를 형성하는 자연적인측면이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졌다.(治山治水) 인구가 차차 많아지면서 도시 내의 자연적 하계는 우수(雨水)와 오수(汚水)를 배출시키는 하수도의 기능으로 바뀌게 된다. 더욱이 현대와 같은 도시교통의 폭주, 토지이용의 집약화로 이들 하천들이 복개되어 도저히 그 원상태를 알기 어렵게 되었다. 사대문 안 서울의 하천은 상류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복개되었고, 1959년 청계천의 대부분이 복개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개발과 경제성장만을 위한 도시성장의 결과 공공 공간 부족의 도시문제를 야기 시켰다. 도시 서울에서 공공 공간의 확충은 시민의식의 고양과 더불어 역사성을 회복하고, 도시 서울의 고유한 서울성을 만들어 가는 장소를 확보하는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개방화 시대의 대외적 얼굴에 불과한 도시모습일 뿐 아직도 도시민의 일상에 공공성은 결여되어 있다. 역사도심 서울이 확장되면서 도심은 개발논리에 의해 고층화 되어가고 녹지공간의 부족으로 삭막해져 갔다. 사람들은 도시주변으로 빠져나가 도심은 공동화(空洞化)현상 - 인구 증감의 분포가 도넛처럼 된다는 뜻으로 이런 말이 생겼다. 공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도심의 소음, 대기오염, 교통혼잡, 땅값 상승 등의 여러 문제가 도심의 주거환경을 악화시키고 인구의 교회유출, 도심인구의 감소라는 결과가 초래되었고, 주간에는 인파가 집중하면서도 야간거주자가 감소하여 이웃이 없어지고 도심의 빈곤화를 초래하여 행정구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저소득층 거주지역 문제를 야기하는 등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공동화 되고, 도시민은 이중생활이 일상이 되어졌다. �曆뮐樗�Nomadic City -도시 유랑민 출퇴근 시간 때의 교통 혼잡과 오염된 도시의 공기는 도시민을 도시 밖으로 내몰았다. 우리 일상속에 공공이 살아 숨쉬는 장소성과 자연이 어우러질 때 도시민은 도시에서 정주한다. 정릉천 상류는 미복개 지역으로 북한산 자락의 험한 지리적 조건과 교통 불편에 의한 저 개발 지역이다. 이곳에 남겨진 수변공간과 주변지역의 주택가, 쌈지 공원, 자연 녹지, 다리와 소규모 길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생활 속에 잊혀진 수변공간의 활용을 위한 건축적 해결안과 방법을 모색하였다. 공유지 수변의 자연 경관적 공공성을 회복함으로서 장소성과 지역성을 회복코자 한다. 본 연구는 정릉천 수변을 통해 도시민의 일상에서, 도시공간의 공공성을 회복시키고 장소성을 구현하기 위한 계획안이다. 이를 위한 단계적 분류와 사이트에 대한 물리적, 지리적, 자연적, 현상적 이해가 필요했으며, 또한 정릉천 주택지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일상과 행태를 통해, 복개 지역과 미 복개 지역의 공공공간을 회복하고, 정릉천을 도시조직으로 재생시키고자 하였다. 도시는 단조롭고, 파편화되어 인지와 구성에 있어 위계와 규칙이 없다. 하지만 정릉천 상류의 본 설계대지는 단계적 변화와 구성을 통해 위계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또한 지류와 만나는 결절부와 하천의 만곡된 흐름을 통해 변화와 다양성을 인지한다. 이러한 특성은 정릉천을 도시 하천으로서, 일상에서 경험을 통해 공공 공간으로 인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것은 도시하천과 근접한 도시 구조와의 다양한 타입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길과 필지 패턴, 수로의 방향과 경관, 밀집주거 건물과 수로와의 관계, 등고, 다리, 나무, 바위, 사람들의 행태 모두 공공 공간 활용방안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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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량주택재개발지역 지역사회 주민조직 활성화방안 : 삼양·정릉지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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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정릉계곡의 식물종다양성 변화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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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est Recreation 이용자의 이용행태 및 의식구조를 통한 휴양림 관리 개선에 관한 연구 : 북한산 국립공원 우이동,정릉지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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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정릉(貞陵) 사각 장명등(四角長明燈) 양식의 원류와 전개 : 사찰 석등과의 비교를 통해
    장명등은 능묘의 능침 앞 중앙에 놓여 사자(死者)를 지키고 밝혀주는 상징적인 기능과 함께 뛰어난 조형성으로 능역을 장식하는 역할도 담당했던 중요한 석물로서, 석등의 한 범주에 속한다. 정릉 장명등은 조선왕릉 장명등 중 최초로 조성된 장명등이며, 조선 전·중기 왕릉 장명등 가운데 유일한 사각 장명등(四角長明燈) 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석, 화사석, 옥개석 형식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어 팔각 장명등 (八角長明燈)형식과는 완연하게 구분된다. 하대석, 간주석, 상대석을 1매의 통석으로 마련하고, 화사석은 1매의 통석 으로 전후로 화창을 표현하였다. 정릉 장명등은 고려 현·정릉 장명등의 전통을 그대로 따랐으나, 이보다 뛰어난 조형성을 보이고 있어 조선 개 국 이후 최초로 조성되었던 왕릉 장명등으로서의 격조를 무리없이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정릉 사각 장명등 양식의 원류를 파악하는 데 연구 목적을 두고 고려 왕릉 장명등과 더불어 사각 장 명등의 연원이 되는 사찰 사각 석등과의 비교 고찰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고려 말 회암사지 지공선사 석등 및 나옹화상 석등, 조선 초 회암사지 무학선사 석등 및 청룡사 보각국 사 정혜원융탑석등과 다음의 공통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대석, 화사석, 옥개석 등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는 점, 둘째, 간주석이 낮아지면서 대석부분이 안 정적인 형태를 이루는 점, 셋째, 화사석의 경우 대석 위에 양측으로 석재를 세워 자연스럽게 전후로 화창을 구성하 는 방법, 넷째, 옥개석이 사모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 점 등이다. 한편 정릉 장명등에는 불교적 요소가 다분히 내제되어 있는데, 간주석의 삼주문(三珠文)표현이 그것이다. 삼주 문은 밀교와 관련된 상징물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불화 및 조선 초기 보살상의 보관에 표현된 예가 확 인된다. 정릉 장명등은 이후 묘 사각 장명등 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15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점차로 정릉 장 명등의 영향에서 벗어나 팔각 장명등 형식이 보다 많이 가미된 경향으로 변모해 나간다. 정릉 사각 장명등은 고려왕릉에서 조선왕릉으로의 능제 계승, 사찰 사각 석등 양식의 수용, 그 시대 불교사상의 반영 등 당대의 시대상과 문화의 흐름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담겨진 산 증거물로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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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천 복원에 따른 물리화학적 수질 변화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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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정릉(貞陵) 재실(齋室)에 대한 소고
    서울 정릉은 문헌기록에 의하면 태조6년(1397)에 황화방 언덕(지금의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태종 9년(1409)에 도성 안에 있는 것이 논란이 되어 지금의 정릉으로 옮겨지면서 묘로 격하시키고 관리가 되지 않았다. 춘관통고에 재실은 6칸이고 홍전문 남쪽 250보 되는 곳에 있으며, 연지는 재실 동남쪽에 있고 길이는 20척, 너비는 10척이라는 기록이 있다. 위치적으로 지금의 홍살문의 남쪽에 재실이 위치하고 연지의 위치도 기록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재실의 축조시기와 관련하여 초축은 출토된 유물로 볼 때 18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고 초촉과 관련된 건물지는 윗채의 연도와 축대 일부만 확인되었고 여러 번에 걸쳐 보수, 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기와, 자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기와의 문양은 거미문으로 궁궐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판단되며, 자기는 ‘福’자, ‘壽’자 명문과 굽이 높은 형태로 볼 때 제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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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정릉천과 곡릉천에 서식하는 수서곤충의 계절적 군집구조와 생물학적 수질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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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정릉계곡의 자연환경훼손에 관한 연구 -등산로와 휴식처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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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내 소하천의 생태적 특성 및 관리방안 연구 -서울시 정릉천을 사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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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조선왕릉 역사문화경관림 자원조사 연구 보고서 : 태릉·강릉, 정릉, 선릉·정릉, 의릉, 영휘원·숭인원, 연산군묘, 안빈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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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상복합주택 시장 동향분석과 변화요인에 관한 조사연구 : 성북구 정릉2동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2동의 주상복합주택의 시장 동향 분석과 변화 전망을 예측하고, 이러한 시장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을 도출해 내기 위해 실증적 조사연구를 수행하였다. 우선, 기 발표된 공식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추이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주택수요자 주거환경, 주거 현황, 주거만족도 등을 설문지 면담방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수집하였다. 이를 토대로 향후 정릉2동의 주상복합시장 변화 예측하고 그 주된 변화유발요인을 규명하였다. 조사연구결과 정릉2동 지역 주상복합주택시장에서는 수요 요인인 인구수는 향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저량으로서의 공급인 주상복합주택수은 향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정릉2동 주상복합주택의 변화유발요인에 대해 살펴본 결과, 정릉2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거주 주민의 불편을 느끼는 주거환경과 교통여건 개선의 정책적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본 논문은 성북구 정릉2동에 있는 주상복합 시장에 대한 미시적 연구로서, 연구결과를 전체 주상복합시장에 관한 내용으로 확대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좀 더 심층적인 실증분석 연구로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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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상복합주택 시장 동향분석과 변화요인에 관한 조사연구 : 성북구 정릉1동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1동의 주상복합주택의 시장 동향 분석과 변화 전망을 예측하고, 이러한 시장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을 도출해 내기 위해 실증적 조사연구를 수행하였다. 우선, 기 발표된 공식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추이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주택수요자 주거환경, 주거 현황, 주거만족도 등을 설문지 면담방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수집하였다. 이를 토대로 향후 정릉1동의 주상복합시장 변화 예측하고 그 주된 변화유발요인을 규명하였다. 조사연구결과 정릉1동 지역 주상복합주택시장에서는 수요 요인인 인구수는 향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저량으로서의 공급인 주상복합주택수 역시 향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정릉1동 주상복합주택의 변화유발요인에 대해 살펴본 결과, 정릉1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거주 주민의 감소를 가져오는 주상복합주택 시장 유발요인인 '주거환경' 측면에서의 정책적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본 논문은 성북구 정릉1동에 있는 주상복합 시장에 대한 미시적 연구로서, 연구결과를 전체 주상복합시장에 관한 내용으로 확대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좀 더 심층적인 실증분석 연구로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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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상복합 부동산시장 동향과 전망에 관한 조사연구 : 성북구 정릉3동을 중심으로
    본 조사연구의 목적은 정릉3동 부동산시장을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성북구 내지 강북지역의 부동산시장의 이해하여 효율적인 투자가치로 부동산을 이해하고 그 동안 조사연구는 지역적으로 세부적 지역단위(읍, 면, 동)의 분석이 거의 없었기에 지역적 세부 부동산시장의 형성요인에 분석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부동산 시장 분석은 특정 지역 내 특정한 부동산의 수요와 특정 부동산에 대한 경쟁적인 공급,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정보를 획득하여 현재의 시장 조건을 평가하고 장래의 시장 조건을 예측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의 주상복합주택시장에 관하여 변화유발요인을 도출하기위해, 대상지역의 시장 현황을 조사·분석하고 연구 대상 시장에서의 과거와 현재의 수요와 공급 추이 및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 추이를 분석하였으며, 또한 연구대상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중 주요 변화유발요인을 도출하고 시장 현황을 분석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정릉3동 주상복합주택에 대한 수요결정요인으로서 인구와 가구(세대수)의 장래 변동 전망을 예측한 결과, 인구 예측치를 기준으로 볼 때는 주택에 대한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나, 가구(세대수)의 예측치를 기준으로 볼 때는 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2가지 상반된 수요결정요인 중 상기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가구(세대수)를 기준으로 한 예측치는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가구 예측치를 기준으로 수요변화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정릉3동 주상복합주택지역에서는 향후 가구의 증가에 따른 수요 증가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향후 정릉3동 지역의 주상복합주택시장에서 저량으로서의 공급량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며, 이러한 공급 증가 추세는 주상복합주택가격의 상승과 거래량의 증가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정릉3동 주상복합주택의 경우 일부가 재개발 및 도시계획시설 편입으로 인하여 향후 주상복합주택의 공급 저량이 감소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일부 단독주택이 주상복합주택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어 공급 저량이 소폭이나마 증가할 것 같다. 앞에서 분석한 수요와 공급의 변화 전망을 보면 정릉3동 지역 주상복합주택시장에서는 수요 요인인 인구수는 향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세대수는 증가 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저량으로서의 공급인 주상복합주택수 역시 향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와 같은 경우 수요 증가와 공급증가는 가격의 안정세가 될 것으로 예측이 가능하나, 향후 3년간에 걸친 정릉3동 주상복합주택용지 가격변화 전망치는 향후 소폭으로나마 지속적으로 상승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수요 증가폭이 공급증가상승폭 보다 크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릉3동 주상복합주택의 변화유발요인에 대해 살펴본 결과, 수요와 공급측면에서 "생활의편의" 즉 사회기반시설의 충족요건이 주요 가격형성요인으로 나타났다. 정릉3동지역은 서민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상권형성이 미약하고 아직도 개발의 여지가 많은 지역이지만 공급과 수요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은 시장논리에 의해 수요와 공급에 의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치적인 요소가 많이 내포되어 있다. 향후 정릉3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세재개편, 사회기반시설의 확충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특히 설문조사 결과 주거자연환경은 좋으나 교통수단 및 생활기반 시설이 빈약하여 이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된다. 정릉3동은 인근 뉴타운과는 다르게 재개발 1개소와 재건축지역이 2개소에 불과하고 자연녹지지대가 많아 인구의 증감폭은 서울시나 성북구 감소분과 거의 동일 수준에서 이루어 질 것 같다. 또한 설문지 조사결과 거주지 선호요건 중 자연주거환경에 우선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향후 주택재건축 및 재개발은 양의 문제가 아닌 질의 문제에서 접근함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인근 뉴타운지역의 개발이 계속됨에 따라 다소 인구의 증가는 있을 수 있으나 거시적으로 볼 때는 소폭 감소될 것으로 예상되고 주상복합시장은 설문지 내용으로 보아 주로 이용하는 시장이 정릉시장이지만 대형마트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근 길음역 부근의 상권이 커지면서 동시에 정릉3동 주상복합시장은 중소형규모로 공급량이 소폭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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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거환경 침해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 : 정릉동 일조,조망권 침해 사례를 중심으로
    최근 우리사회는 토지 공급의 제한성에 따라 토지 이용효율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저층 건물을 고층 건물로 재건축 또는 재개발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축되는 고층 건물의 북측에 위치한 기존의 단독주택 또는 공동주택은 소음, 진동, 사생활 등의 주거환경 침해는 물론 사업완료 후에도 일조권 및 조망권은 주택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고 각종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과거 큰 의미가 없던 일조권과 조망권 등 의 사생활권은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고 권리의식과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중요한 재산적 권리의 하나로서 자리잡아 가는 추세에 있다. 특히 ‘뉴타운 사업’으로 대표되는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고층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조, 조망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각종 분쟁들이 발생하였으며, 법원 판례를 통해 주택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러한 주거환경에 대한 권리 혹은 기존 주거환경에 대한 침해의 가치를 일조권을 중심으로 분석함으로 향후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충족과 주거선택에 있어 효과적인 예측자료를 제공하고, 주거환경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연구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서울시 정릉동 일대 재개발 고층아파트로 인한 기존 주택의 환경권 침해를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자료에 대한 분석은 일반적인을 이용하였고, 사례분석 결과 대상지역 일조침해에 의한 시가하락률은 8.0%, 조망 침해에 의한 시가하락률 3.0%, 일조․ 조망 동시침해에 의한 시가하락률은 11.0%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다양한 환경요소 중 특정 요소에 한정하여 일정한 지역 범위내에서 조사 분석된 만큼 특정한 값을 얻기보다 일정한 범위를 추정하는데 목적이 있었고, 현실적으로 본 연구조건과 비슷한 침해가 발생된다면 본 연구결과의 범위내에 근접할 것으로 사료된다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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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립주택 시장 동향분석과 변화요인에 관한 조사연구 : 성북구 정릉2동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2동의 연립주택의 시장 동향 분석과 변화 전망을 예측하고, 이러한 시장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을 도출해 내기 위해 실증적 조사연구를 수행하였다. 우선, 기발표된 공식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추이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주택수요자 주거환경, 주거 현황, 주거만족도 등을 설문지 면담방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수집하였다. 이를 토대로 향후 정릉2동의 주상복합시장 변화 예측하고 그 주된 변화유발요인을 규명하였다. 조사연구결과 정릉2동 지역 연립주택시장에서는 수요 요인인 인구수는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저량으로서의 공급인 연립주택수는 향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정릉2동 연립주택의 변화유발요인에 대해 살펴본 결과, 정릉2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급의 감소를 가져오는 연립주택 시장 유발요인인 '생활편의시설' 측면에서의 정책적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본 논문은 성북구 정릉2동에 있는 연립주택시장에 대한 미시적 연구로서, 연구결과를 전체 연립시장에 관한 내용으로 확대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좀 더 심층적인 실증분석 연구로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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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립주택 시장 동향분석과 변화요인에 관한 조사연구 : 성북구 정릉1동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1동의 연립주택의 시장 동향 분석과 변화 전망을 예측하고, 이러한 시장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을 도출해 내기 위해 실증적 조사연구를 수행하였다. 우선, 기발표된 공식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추이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주택수요자 주거환경, 주거 현황, 주거만족도 등을 설문지 면담방식를 통해 직접적으로 수집하였다. 이를 토대로 향후 정릉1동의 주상복합시장 변화 예측하고 그 주된 변화유발요인을 규명하였다. 조사연구결과 정릉1동 지역 연립주택시장에서는 수요 요인인 인구수는 향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저량으로서의 공급인 연립주택수는 향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정릉1동 연립주택의 변화유발요인에 대해 살펴본 결과, 정릉1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거주 주민의 감소를 가져오는 연립주택 시장 유발요인인 '주거환경' 측면에서의 정책적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본 논문은 성북구 정릉1동에 있는 연립주택 시장에 대한 미시적 연구로서, 연구결과를 전체 연립주택시장에 관한 내용으로 확대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좀 더 심층적인 실증분석 연구로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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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시장 동향분석과 변화요인에 관한 조사연구 : 성북구 정릉2동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2동의 아파트 시장 동향 분석과 변화 전망을 예측하고, 이러한 시장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을 도출해 내기 위해 실증적 조사연구를 수행하였다. 우선, 기 발표된 공식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추이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주택수요자 주거환경, 주거 현황, 주거만족도 등을 설문지로 작성하여 면담 방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수집하였다. 이를 토대로 향후 정릉2동의 주상복합시장 변화 예측하고 그 주된 변화유발요인을 규명하였다. 조사연구결과 정릉2동 지역 아파트시장에서는 수요 요인인 인구수는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저량으로서의 공급인 아파트수 역시 향후 증가 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정릉2동 아파트의 변화유발요인에 대해 살펴본 결과, 정릉2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거주 주민의 주거 복지증진(교통, 교육, 생활 편의시설등)의 정책적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본 논문은 성북구 정릉2동에 있는 아파트 시장에 대한 미시적 연구로서, 연구결과를 전체 아파트 시장에 관한 내용으로 확대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좀 더 심층적인 실증분석 연구로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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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시장 동향분석과 변화요인에 관한 조사연구 : 성북구 정릉1동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1동의 아파트시장 동향 분석과 변화 전망을 예측하고, 이러한 시장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을 도출해 내기 위해 실증적 조사연구를 수행하였다. 우선, 이미 발표된 공식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추이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주택수요자 주거환경, 주거 현황, 주거만족도 등을 설문지 면담방식을 통해 수집하였다. 이를 토대로 향후 정릉1동의 아파트시장 변화를 예측하고 그 주된 변화유발요인을 규명하였다. 조사연구결과 정릉1동 지역 아파트시장에서는 수요 요인인 인구수는 향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저량으로서의 공급인 아파트수는 노후화된 단독주택·다세대주택·연립주택·주상복합주택 등의 재건축·재개발요인으로 인해 향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정릉1동 아파트시장의 변화유발요인에 대해 살펴본 결과, 정릉1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거주 주민의 감소를 가져오는 아파트시장 유발요인인 ‘생활편의시설’ 측면에서의 정책적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본 논문은 성북구 정릉1동에 있는 아파트시장에 대한 미시적 연구로서, 연구결과를 전체 아파트시장에 관한 내용으로 확대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좀 더 심층적인 실증분석 연구로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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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구 정릉3동 소재 아파트 부동산의 변화추이 연구
    본 논문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의 아파트 시장의 동향 분석과 변화 전망을 예측하고, 이러한 시장현화를 유발하는 요인을 도출해 내기 위해 실증적 조사연구를 수행하였다. 우선, 기 발표된 공식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추이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주택 수요자 주거환경, 주거 현황, 주거만족도 등을 설문지로 작성하여 면담 방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수집하였다. 이를 토대로 향후 정릉3동의 아파트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 주된 변화유발요인을 규명하였다. 조사연구결과 정릉3동 지역아파트 시장에서는 수요 요인인 인구와 가구(세대수)는 향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 반면, 저량으로서의 공급인 아파트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아파트 가격은 소폭이지만 상승추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정릉3동 아파트의 변화유발요인에 대해 살펴본 결과, 정릉3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거주 주민의 감소를 가져오는 아파트 시장 변화유발요인인 '교통여건'과 '생활편의시설' 측면에서의 정책적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본 논문은 성북구 정릉3동에 있는 아파트 시장에 대한 미시적 연구로서, 연구결과를 전체 아파트 시장에 관한 내용으로 확대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좀 더 심층적인 실증분석 연구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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