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학 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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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자료
    성북동 일대 명승 사적을 노래한 한문학 유산
    이 논문은 성북동을 소개한 옛 문헌을 찾아 분석하고 소개한 것이다. 성북동은 도성에서 가까우면서 한적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갖춘 나들이 공간이다. 특히 봄철에는 복숭아꽃이 만개하여 도성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그만큼 많은 시인 묵객이 이곳을 찾았기에 적지 않은 한문학 창작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기대만큼 많은 시문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이곳이 창작 공간이 된 것은 분명하나, 곧장 창작 소재로 활용되지는 않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성북동 지역 문화 콘텐츠 개발에 한문학 유산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 성북동을 기록한 문헌 자료가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과거의 문헌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내어 소개할 필요가 제기된다. 이에 부족하나마 성북동 공간을 시문으로 구현한 한문학 유산을 발굴하여 소개하였다. 먼저 여러 문헌 자료를 분석하여 성북동 일대에 존재하는 명승 사적을 조사하여 인문 지리적 성격을 알아보았고, 이어서 관련 한문학 작품 몇 편을 찾아서 소개하였다. 먼저 蔡濟恭이 1784년 봄에 기록한 「遊北渚洞記」와 나들이에 동행한 睦萬中이 기록한 「與樊巖公會游北屯」을 소개하였다. 이를 통해 성북동이 봄철에 꽃을 즐기는 나들이 공간으로 인기가 높았던 사실을 알아보았다. 이어서 鄭士龍이 1552년에 창작한 시와 尹愭가 1793년에 창작한 시 「上巳遊北渚洞」을 통해 성북동이 修禊의 장소로 활용된 사실을 알아보았다. 아울러 金鑢가 1815년경에 창작한 「晩春游覽 絶句十二首」를 통해 성북동 주변의 여러 명소가 나들이 코스로 묶여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사실을 알아보았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를 토대로 관련 있는 소중한 역사 흔적들이 계속 발굴되고 그 속에 깃든 의미 있는 사연들이 복원되어 이 지역의 역사성이 더욱 강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다양한 지역 콘텐츠가 개발되어 현대의 시민들에게도 소중한 공간으로 추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학술자료
    이태준 단편소설 속 타자성 인식의 한계 — 「달밤」⋅「손거부」⋅「장마」⋅「패강랭」⋅「석양」을 중심으로
    성북동ㆍ평양ㆍ경주 등을 배경으로 ‘조선적인 것’을 추구한 이태준의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연구는 1인칭 서술자와 초점화자가 다른 등장인물을 폭력적으로 동일화하는 양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문학작품 감상에서의 타자성 인식 필요성을 고찰했다. 「달밤」ㆍ「손거부」에서 근대적 질서에 속한 ‘나’는 황수건과 손거부의 좌절과 실패에서 ‘조선의 순수함’을 추출하고, 그들의 ‘반근대성’ 을 ‘음미’한다. 하지만 그들의 근대적 욕망은 자신들을 탈역사화된시공간에 박제하려는 ‘나’의 서술에 균열을 낸다. 「패강랭」은 ‘조선의 순수함’을 관조하는 것이 어려워진 전시체제를 배경으로 한다. 현은 ‘대평양’(大平壤)이라는 구호 아래 진행된 평양의 근대화 대신 평양의 유적만을 보고, 영월의 실제 삶을 보는 대신 그녀를 ‘조선문화의 고유성의 화신’으로 만들려 한다. 현과 영월 사이의 어긋난 대화는 ‘현’이 자신이 직면한 가치체계의 위기 속에서 타자를 폭력적으로 동일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태평양전쟁 이후 조선어 글쓰기가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창작된 「석양」에는 이전 작품에 나타난 최소한의 현실성마저 사라지고, 매헌과 타옥의 관계는 철저히 매헌의욕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타자를 자신의 이항대립적 가치체계 속에 배치할 뿐, 그들과의 긴장관계에서 새로운 자기인식에도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체의 타자성 인식 실패로 읽을 수 있다. 문학교육에서 텍스트의 가치체계에서 벗어나 서술 대상인 ‘타자’를낯설게 보는 것은 학습자가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 학술자료
    재개발사업의 새로운 공공성 연구
    (전략) 뉴타운·재개발 해제지역 중에서도 기반시설 및 노후주택 비율이 높아 정비시급성이 강조되나,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 비례율이 57.17%에 불과해 사업의 추진동력이 매우 약하고, 2017년 해제된 이후로 관리계획이나 대안사업 등 후속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방치되어 온 성북3구역을 대상으로 공공-민간 협력 모델의 적용에 따른 효과를 실증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성북3구역 조합의 입장에는 공공-민간 협력 모델을 통해 사업수입이 증가 또는 사업비용이 절감되어 최소 1,307억 9,414만 원에서 최대 1,387억 1975만 원의 효과가 발생하고, 추산 사업비용의 약 32.8∼34.8%의 절감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 입장에서는 비용과 효과는 347억 0,494원의 재정적 지원이 투입되고, 재개발임대주택 117세대를 추가적으로 확보하는 효과를 가진다. 하지만 거시적 측면에서는 그동안 공공의 재원만으로는 추진하기 어려워 방치되어 온 노후·열악한 주거환경의 개선, 정비기반시설 및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등 재개발사업 공공성의 달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 학술자료
    서울 성북동 에코뮤지엄 조성방안 연구 : 지역정체성을 중심으로
    박물관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박물관을 주도하는 주체나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박물관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의 양상도 거듭 변해왔다. 국민주권이 실현되고 시민사회가 형성된 20세기 이후에는 박물관도 개인의 문화 향유와 또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안 제시라는 사회적 기능이 중요해 지면서 이를 신박물관학에서 다루게 되었고 에코뮤지엄은 이러 한 논의 속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박물관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에코뮤지엄에서 특히 두드러진 요소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박물관적 대안으로 등장한 ‘지역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삶과 사회 문제에 직면하며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을 변화시키는 매개체로서의 에코뮤지엄은 지역이란 공간을 범위로 하여 자연환경과 건축물을 비롯한 유형적 자산과 무형적 자산(역사와 풍습, 생활방식, 이야기 등)을 보존, 활용하며 지역 전체를 하나의 박물관 개념으로 조성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에코뮤지엄은 지역정체성을 기반으로 지역주민의 참여(Participation), 지역유산(Heritage), 박물관 활동(Museum)의 세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며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일체의 과정과 결과가 에코뮤지엄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정의한다. 본 연구는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이라는 지역을 대상으로 성북동의 지역정체성을 중심으로 에코뮤지엄 조성 방안을 논의해 본다. 성북동은 북악산과 연결된 봉우리인 구준봉과 응봉 아래 산자락에 위치하며 중심에 성북천이 흘러 빼어난 산수를 지닌 지역이었다. 역사 속에서 성북이라는 지역은 한양도성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인 혜화문 밖을 나서면 도보거리로 연결되는 지역으로 조선시대 전기에 국가의 중요한 제단(선잠단)이 설치된 곳이었고, 18세기에 본격적으로 인구가 유입된 이래 산과 물이 어우러진 수 려한 자연경관으로 가진 명승지로 각광을 받으며 문인들의 문학작품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기록된 지역이었다. 현재 성북동에는 한양도성(사적 제10호), 선잠단(사적 제83호), 서울 성북동 별서(명승 제118호) 등 조선시대의 역사문화 자원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서울의 많은 지역이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효율과 편의의 가치 위주로 원래의 모습을 잃은 채 획일적으로 변모되어 왔듯이 성북동 지역도 유사한 과정을 거치며 18-19세기 문헌이 증언하고 있는 역사성과는 단절된 채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잃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에 성북동의 변천과정과 현재 모습을 고찰해 보고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실시하여 성북동의 지역정체성을 분석해 본다. 나아가, 본고는 ‘지역정체성’ 을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지역주민의 자기 지역에 대한 인식’으로 정의하며 ‘지역정체성’의 현재적 의의를 살펴본다. 논의 방법은 크게 선행이론 및 문헌자료, 현장 조사와 더불어 서울시청과 성북구청의 정책자료 분석을 통해 성북동의 고유한 특성과 현재의 상황을 살펴본다. 아울러 성북동 주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성북동 지역 주민들의 성북동에 대한 인식을 분석해 보며, 성북동 주민센터 담당관과 주민자치위원회 자치위원, 전문가와 문화기관 담당자 및 지역 주민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성북동 에코뮤지엄의 조성방안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성북동의 지역정체성을 기반으로 지역 내에 현재 존재하지만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는 역사문화유산과 자연생태환경에 연결성과 확장성을 부여하고, ‘복원’하고 ‘재현’하는 방식으로 현재성을 부여하는 성북동 에코뮤지엄 의 모델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지역정체성과 공동체의식을 고취하며, 대외적으로는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며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학술자료
    돈암지구 소형필지의 도시한옥에 대한 연구
    본 연구는 서울 성북구의 돈암지구에 지어진 도시한옥을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소형필지 내부에 지어진 도시한옥을 대상으로 삼았다. 돈암지구는 일제에 의해 계획, 실행, 완료된 유일한 계획 주거지역이라는 독특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다. 또한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 역시 돈암지구의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돈암지구의 주거지 구조에 영향을 주어, 돈암지구 내 가구의 형태와 필지의 소형화로 나타났다. 또한 주거지 구조는 소형필지 내의 도시한옥에 영향을 주며, 이들의 채의 구성과 실의 구성에 있어 일관된 특징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본논문은 돈암지구 내 소형필지가 다수 분포하는 6곳을 선정하여 소형한옥의 배치, 실의 구성, 구조형식까지 연구하였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 째, 일제에 계획, 실행된 유일한 주거지역인 돈암지구는 이후에 조성된 다른 주거지구와 비교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런 특징은 돈암지구 내 개별 필지의 가구의 형태와 필지의 소형화로 나타난다. 둘 째, 돈암지구 내 소형필지의 면적과 세장비를 조사한 결과, 가로에 면하는 부분의 필지의 폭은 일정한 범위의 치수를 가진다. 소형필지의 면적은 45 ~ 90m² 까지 다양하게 분포하지만, 필지의 폭은 6 ~ 7.5m의 일정한 폭을 유지한다. 필지의 가로 폭이 6 ~ 7.5m로 정해져 있으므로 필지 면적이 커지려면 필지의 깊이방향이 길어져야 한다. 돈암지구 내 소형필지는 필지면적이 커질수록 세장해진다. 대상지역 6곳의 필지면적과 세장비를 조사해본 결과, ‘필지면적 90m²이하, 세장비 1.5 내외’의 좁고 세장한 소형 필지와 ‘필지면적 60m²이하, 세장비 1.2 내외’의 정방형 소형 필지가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 셋 째, 일정한 조건의 필지에서는 동일한 채의 구성이 이루어진다. ‘필지면적 60 m² 이하, 세장비 1.3내외’ 의 필지에는 ㄱ자형 도시한옥이 자리한다. 보문동에서 볼 수 있는 연립한옥은 위 유형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필지면적 90 m² 내외, 세장비 2내외’ 의 필지에는 가로에 문간채가 접하고 필지 안쪽에는 ㄱ자 안채가 있는 ㄷ자형 도시한옥이 자리한다. 삼선동5가에서 볼 수 있는 이층한옥은 이러한 유형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ㄷ자형 도시한옥에서 채의 구성은 필지로의 진입방향과 상관없는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에서는 대상지역 여섯 곳을 동서가로, 사선 가로로 나누어 채의 구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필지의 진입방향과 상관없이, 채의 구성은 일정하며 중정이 동쪽으로 열리는 경향이 강함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채의 구성은 좁고 세장한 필지 공간을 효율적으로 점유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넷 째, 소형 필지에 위치하는 ㄷ자형 도시한옥의 실의 구성이 일정한 경우가 많다. 중요한 실인 대청, 안방, 부엌의 구성을 살펴본 결과, 각 실은 방위와 상관없이 일정한 위치에 자리 잡는다. 즉 가로에 문간이 위치하고, 문간의 맞은편에는 부엌이 위치하며 그 사이에는 대청이 위치하는 구성이다. 필지의 진입방향과는 관계없이 이러한 구성이 반복됨으로써, 실이 관습적으로 꺼려지는 방위에 위치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작은 면적의 필지라는 조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실의 방위에 대한 중요성이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다섯 째, 같은 분류에 속하는 도시한옥이라도 목구조형식에서는 차이를 가진다. 성북동1가 105-10번지와 동소문동6가 75번지의 기둥과 보의 위치, 기둥상부 결구방식, 지붕 구성 방식을 통해 두 도시한옥의 목구조 구성의 차이를 비교하였다. 특히 동소문동6가 75번지에서, 좁고 세장한 필지에 대응하여 기둥과 보의 위치 변화, 기둥상부 결구방식에서의 볼 수 있는 목구조 형식의 간략화, 지붕구성 방식에서 편의에 따른 변형적인 구성을 확인하였다. 이는 소형화된 필지라는 특수한 조건과 건립 시기의 사회적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돈암지구 내 도시한옥의 채의 구성과 공간 구성, 구조형식을 살펴본 결과 일관된 특징들이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특징들은 채와 실의 구성에서 관습적 원리의 중요성 약화, 토지의 효율적 점유 추구, 구조형식에서 볼 수 있는 간략화와 편의에 따른 변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돈암지구 내 소형필지의 도시한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으로써, 돈암지구의 형성과정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돈암지구의 도시조직이 반영된 흔적들이다.
  • 학술자료
    현대문학 : 이태준, 김동리, 최정희 소설에 나타나는 성북동,낙산 일대의 공간 연구
    서사문학인 소설에서 공간 문제는 시간의 문제와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여기서 공간은 일반적인 장소의 개념을 넘어 작가의 주제의식 표현의 매개로 이해할 수 있다. 이태준, 김동리, 최정희는 각각 일제 강점기, 해방기, 6.25전쟁기 동안 성북동, 낙산 일대를 형상화한 소설을 발표했다. 세 명의 작가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는세 시기를, 일정 지역을 소설의 공간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즉 공간을 상수로 고정시킨 뒤 시대와 작가를 변수로 놓았을 때, 작가의 시대정신을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지정된 공간의 속성을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살펴볼 작품은 이태준의 < 달밤 >, < 손거부 >, < 색시 >, 김동리의 < 혈거부족 >, 최정희의 < 인정 >, < 정적일순 >, < 찬란한 대낮 >이다. 각각의 작품은 성북동 그리고 삼선교와 동숭동에 해당하는 낙산 일대를 소설의 공간으로 삼고있다. 이태준의 < 달밤 >, < 손거부 >, < 색시 >에서 성북동은 기본적으로 성 밖의 공간성을 지니고 있다. 작품의 핵심 인물인 황수건, 손거부, 색시는 모두성 밖의 공간적 속성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성 밖의 공간성은 성 안의 공간성이 침투함에 따라 변하게 되고 작품의 인물들은 외면받고 추방당하게 된다. 여기서 성 밖의 공간성은 반근대를, 성 안의 공간성의 침투는 근대화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성북동의 반근대적 속성이 근대화를 통해 사라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면서도작가 특유의 상고주의적 성향을 통해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김동리의 < 혈거부족 >에서 낙산은 해방 이후 귀국한 동포들과 극빈자들을 통해 형성된 달동네로 그려진다. 해방만 되면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다르게 해방 당시의 조선의 상황은 매우 비참했다. 해방이전 꿈꿔온 공간이 ‘고향’으로 나타난다면 해방 당시는 가난, 무지, 죽음이 뒤섞인 공간인 낙산으로 형상화된다. 최정희의 < 인정 >, < 정적일순 >, < 찬란한 대낮 >은 낙산 일대를 배경으로 6.25 전쟁기의 가족 상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최작가, 노파, 길수 어머니는 모두 여성 인물로 각각 전쟁통에 사라진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성 인물인 이들은 상대적 약자로서 비인간적인 다른 인물들의 횡포에 고통 받게 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낙산은 전쟁터도 피난처도 아닌 공간이며 작가는 이런 허공에 뜬 공간에서의 전쟁 체험을 소설화한다. 여성인물들의 고통은 점차 가중되며 낙산 일대는 죽음의 공간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파종이나 결혼 같은 행위를 통해 죽음의 공간에서 희망적 공간으로의 공간 치환을 시도하고 있다.
  • 학술자료
    한국 근현대소설에 나타난 성북동, 낙산 일대의 형상화 고찰
    한국 근현대 소설 가운데 서울 도심지가 배경인 소설이 상당수 있다. 그 가운데 성북동 낙산 일대가 배경으로 그려진 소설은 얼마나 있을까. 1936년 돈암지구로 형성된 성북천 일대는 한양도성의 동소문인 혜화문과 서울성곽의 동측에 있고 선잠단, 성락원 등 중요한 유적들이 있어서 현재는 역사문화 컨텐츠와 함께 한옥밀집지역으로 가치가 높다. 성북천과 이어진 삼청동이나 삼선교는 모두 도교적 명칭인데 이러한 신선 사상이 워낙 산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성북동 뒤의 북한산과 삼선동에서 이어지는 낙산이라는 지리적 환경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일대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살면서 당시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도 있는 만큼 이 일대, 즉 한성대학교 근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찾아 구체적으로 지역이 언급되어 있는 성북동 일대와 삼선교 일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중심으로 한성대 근처가 어떻게 형상화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성북동 일대를 배경으로 한 이태준의 소설과 삼선교 낙산 일대를 배경으로 한 최정희의 <인정> 연작, 김동리의 <혈거부족>이 대상이 되겠다. 이태준의 성북동이 배경인 소설들은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작품들로 1930년대 작가가 성북동에 살았던 시기가 그려져 있고, 낙산 일대가 배경인 김동리의 <혈거부족>은 해방 이후 정부 수립 전이 배경이며, 최정희의 <인정> <정적일순>은 6.25가 시대적 배경이다. 이태준은 성북동에 십여 년 이상 살면서 성북동을 배경으로 한 서민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 여러 편 있고 그의 대표작들이 대개 이때 쓰여졌다. 작가 이태준이 살았던 시절인 1930년대 성북동 일대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던 서민들이 살던 곳, 아직 인정이 남아있는 성 밖 마을이었고, 작가는 배우지 못해 어리석지만 악하지는 않은 하층민들에게 애정을 느끼면서 주로 자전적인 면들을 바탕으로 관찰자의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김동리의 <혈거부족>은 해방 후 삼선교 한성 여중 일대에 산 위에 뚫려 있는 굴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제목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이 굴은 일제말기에 미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 판 것으로, 작품 모두(冒頭) 에 공간적 배경이 삼선교 돈암교 일대라고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정희의 <인정>은 6.25 와중의 낙산이 배경이고, <정적 일순> 은 <인정>과 연작으로 보이는 작가의 자전적인 면이 그려져 있는데 낙산의 지형적 사회적 특징이 6.25의 혼란과 함께 잘 그려져 있다. 낙산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에서,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북악산(백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가운데 가장 지대가 낮아 산 주변에 서민 주거지가 쉽게 형성된 곳이다. 현재 성북동이나 낙산 일대는 과거와는 매우 다른 만큼 이곳의 변모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관련 작품을 찾아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 학술자료
    조선시대 선잠제(先蠶祭) 정비와 시행 의미
    선잠제는 양잠의 신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제사는 선잠단에서 지냈다. 그 시기는 매년 3월 첫 번째 巳日이었다. 선잠제는 제사의 대상이 여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선잠제를 지내는 것은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장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선잠제는 조선왕조에서 국가의 의례로 정비되었다. 조선의 의례는 크게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오례’라고 했다. 제사를 지내는 의례는 ‘길례’였다. 선잠제는 그 제사의 규모가 중간에 해당했고, 제사의 대상은 사람, 곧 인귀였다. 그러므로 길례의 중사로 정해졌다. 선잠제에 대한 논의는 태종대부터 시작되어 세종대 『세종실록』 「오례」에 정리되었다. 이후 수정을 하여 『국조오례의』로 법제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잠제의 의미와 의식은 강화되었다. 선잠제를 지냈던 선잠단의 위치는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논의되었다. 그렇지만 옮기지 않고 현재 성북동의 ‘先蠶壇址’에서 제사를 지냈다. 선잠제는 제사의 대상은 여성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주체는 국왕이었다. 그러나 제사의 규모가 중사였기 때문에 관료를 보내어 대신 지내게 하였다. 이런 것을 섭사라고 한다. 선잠제는 매년 지내야 하겠지만 기록을 보면 그렇지 못하였다. 다만 세조와 명종은 상대적으로 자주 선잠제를 지냈다. 세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에는 선잠제가 거의 매년 시행되었다. 왕권이 약한 대신에 의례를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선잠제 시행에서 큰 변화는 1767년(영조 43)에 있었다. 이 해에는 왕비가 친잠례를 치르게 되었다. 이때 영조는 왕비가 직접 선잠제를 치르도록하였다. 이것은 조선에서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때 왕비였던 정순왕후는 직접 술을 올리는 선잠작헌례를 시행하였다. 조선시대 선잠제는 백성을위하는 민본정치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의생활을 걱정하고 장려하였던 정책이 의식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 학술자료
    일제시기 도시문제와 지역주민운동 : 경성(京城)지역 성북동의 사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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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준의 성북동 : 이태준의 단편소설 및 『무서록』에 나타난 ‘교외’와 “구석진 곳”의 의미에 대하여
    이태준은 1930년대 성북동이라는 교외의 변화 및 인정세태와 풍속의 다양한 양상을 소재로 한 다수의 소설과 수필을 썼으며 그 구체적 재현의 질과 양에 있어서 독보적이었다. 그는 성북동에 거주하고 있는 어리숙한 빈민과 반편 등의 친밀한 주민이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도태될 운명에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편으로 그의 소설은 문화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속물적 인간상에 대한 냉소적 시각을 유지했다. 전자에 대한 애착은 고완품에 대한 이태준 자신의 각별한 의미 부여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몇몇의 수필에서 성북동의 풍경과 사물을 고완품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한 관점은 결국 단편 「장마」에서 수연산방에 거주하는 소설가 자신과 가족 전체로 향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소설가와 가족은 오랜 장마 속에 녹과 곰팡이 슬어가며 운무 속에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도시화․세속화의 시류로부터 낙오되거나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존재로 묘사된다. 스스로를 포함한 성북동의 주민들에 대한 이와 같은 관점은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대도시 경성으로 출퇴근하는 교외 주택민 즉 도시의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으로부터 연유한 위계질서와 미적 거리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시골이나 전원으로만 간주되던 성북동을 다양한 부류의 주민이 유입된 신흥 주거지로서의 변모에 주목하도록 했다. 이태준의 소설과 수필에서 성북동은 민간업자들에 의해 불수의적으로 조성된 시골이면서 도시이고, 도시도 시골도 아닌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의 공간으로 재발견된다. 이태준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것이 성북동이라는 교외에 복합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던 과거와 현재, 시골과 도시, 정지와 변화의 양쪽 모두 및 그 사이의 간극을 부지불식간 의식하도록 한다. 그리고 후자로부터 전자로 소급하고자 하는 상상적 단절과 거리가 시차(時差/視差)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이태준은 성북동의 “구석진 곳”에서 역사적 유효성을 상실했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것(죽음)임에 틀림없는 옛 도성에 비친 석양으로 비유되는 자기동일성의 세계에 천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 소멸과 파국의 운명을 내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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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락원(명승 제35호) 주변지역 필지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 - 성북동 문화재 주변을 중심으로 -
    본 연구는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을 대상으로 근대 이후 문화재와 주변 경관 변화과정 및 원인을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62년부터 2010년까지 사용한 폐쇄지적도를 이용하여 필지를 분석하고, 문헌자료를 참고하여 연구하였다. 시대별 변화과정 확인이 가능한 성락원, 마포최사영고택, 서울선잠단지, 서울한양도 성을 위주로 변화과정을 추적하였으며, 문화재의 소경관(素景觀)을 검토하고 필지 변화와 함께 경관변천을 분석하였다. 성락원은 1954년에 송석정과 연못이 조성된 모습을 소경관이라 볼 수 있으며, 마포최사영고택은 2003년 이후 성북동으로 이전·복원한 것, 서울선잠단지는 1960년대 개발로 현재의 터만 남게 된 모습을, 서울한양도성은 숙종30년에 석성으로 개축한 것을 각 문화재의 소경관으로 정의하였다. 성락원은 제도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겼고, 마포최사영고택과 주변 경관은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겼으며, 서울 선잠단지와 그 주변은 사회경제적·제도적 요인에 의해, 서울한양도성과 그 주변은 기술적·제도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성북동의 문화재와 그 주변경관은 대체로 제도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대 이후 서울의 도시계획이 성북동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예상되며, 자본주의 경제체제 확립이 그 배경이 된 것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문화자원으로서의 잠재적 가치를 인식한 바람직한 경관변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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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의 문화지형과 한용운의 삶
    본 논문은 서울이라는 특정한 공간과의 상관관계와 교우관계를 중심으로 한용운의 사회활동과 삶의 의미를 고찰했다. 정치적·사회적 지향이 강했던 한용운에게 서울은 사회적 실천의 무대이자 핵심적 공간이었다. 한용운의 서 울에서의 활동은 심우장 시기를 전후로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북촌시 대 한용운은『유심』이나『불교』발간을 통해 여러 방면의 저명인사와 교류하 면서 3·1운동 참여, 불교청년운동, 신간회 참여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 기간 동안 한용운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회활동에 매진했고, 그 결과 몸 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1933년 한용운은 결혼을 계기로 성북동 심우장이라는 곳에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명의로 삶의 공간을 소유하게 되었다. 심우장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한용운은 처음으로 주거공간과 사회활동(업무) 공간을 분리시킬 수 있었다. 불교도로서 초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참된 구도를 통해 사회적 실천을 이 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심우장 이사의 중요한 동기였다. 성북동 심우장은 한용운의 주활동 무대였던 북촌지역과 도보로 왕래가 가능할 정도로 서울 도 심과 가까우면서도 참선 수행이 가능한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한용 운은 지론인 생활선의 실천공간으로 안성마춤이었다. 심우장시대는 한용운의 자유로운 영혼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일제의 협박과 회유로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변절하고 전향했으나 한용운은 일제의 어떠한 유혹이나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지조를 지켰다. 한용운은 변절자들과 공개적으로 절교를 선언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동삼의 유해를 모셔와 장례를 지내는 등 소극적인 저항을 계속했다. 그런가 하면 일 제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민족의 지조를 지킨 소수의 지사들과 마음을 열 어놓고 교류하면서 엄혹한 시기 민족의 앞길에 희망을 던져주었다. 그런 의 미에서 심우장은‘전시총동원체제기’라고 불리는 일제의 마지막 수탈과 발 악의 시기에 민족지조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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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형 한옥의 내외부공간구성 변화에 관한 연구 :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 삼선동, 안암동을 중심으로
    1930년대 중반 이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제의 식량수탈정책으로 인해 농촌으로부터의 이농인구가 도시로 몰려들게 됨으로 당시 경성의 인구는 급격한 증가를 겪게 되고 주택문제가 심각히 대두되었다. 따라서 당시에 당면한 도시의 주택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새로운 도시주거지의 개발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때 등장한 것이 도시형 한옥이었다. 이런 역사를 갖고 등장한 도시형 한옥은 그 형식이 과거 우리나라의 주거문화를 지니고 있으면서 좁은 대지에 밀도를 높일 수 있도록 마련된 도시형 주거라는 점에서 그리고 새로이 근대화된 주거지 구조 체계 내에서 형성된 주거환경이란 측면에서, 이전의 전통한옥과 비교해서 도시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현재까지도 우리의 주거문화를 담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도시형한옥은 근대화와 도시화를 거쳐 많은 문화적․경제적 변화를 겪어왔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기존한옥은 변화하는 사회적 상황과 주거환경에 대응하여 증개축․신축을 통해 주공간 변형과 주생활변화가 이루어 졌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사회․경제적 요인과 물리적 환경요인에 의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거주자의 내적 요구뿐만 아니라 외부환경도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도시형 한옥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거주자들이 주공간을 개조하고 변형하는 요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첫째, 내부공간의 변화요인으로는 해방이후 서구식 주의식, 주생활의 도입으로 서구식 공간규범이 유입되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주생활양식이 변화하여 설비의 근대화, 주의식의 변화, 생활의 합리화 의식 고조로 주거공간을 크게 바꾸어 왔다. 또한 주생활양식이 점차 다양해져 다양한 주택평면유형이 생겨나고 이는 결국 주거형태의 개성화로 표출된다. 이런 변화를 수용하기에 공간이 부족하다면 거주자들은 공간확장을 통해 주요구를 실현시키려고 한다. 게다가 오랜 定住性으로 가족주기가 바뀌고 생활수준도 바뀌어 거주자의 욕구와 능력에 맞게 현주거공간을 적절히 융통성 있게 변화한다. 둘째, 외부공간의 변화요인은 공간과 생활방식 사이의 갈등으로 주공간에 대응하여 처마선이 있는 외부공간까지 실로 확장․활용하였다. 그리고 공간부족으로 마당을 내실화하는 적극적 개조행위가 이루어져 거실중심의 공간이 형성되어 주생활양식이 바뀌어 갔다. 또한 이런 변화로 인해 출입구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로 인해 단계적 영역흐름이 급진적 진입으로 형성되어 다소 불안한 주거입지를 갖고 있다. 또한 생활의 서구화로 인해 마루(거실)중심의 공간이 형성되고 각 실이 개실화됨에 따라 마당 중심의 기능이 축소되어 현재 마당은 동선통로 위주로 바뀌었으며 길과 향에 대응하여 공적공간에서 주거내 진입에 변화가 발생하여 대문이 이중화되거나 진입방향이 변경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게다가 경제적 사정으로 용도변경이나 부분적 공간 임대를 통해 출입방식의 변화가 발생한다. 셋째, 한옥의 증개축 등 주거조정행위가 골목형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일어났으므로 그 요인은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1) 필지면적에 따라 한옥의 증개축의 정도가 차이가 났는데 좁은 필지의 한옥은 적극적 증개축 행위가 많이 일어났고 좁은 주공간을 확장하는 방법이 벽을 따라 가는 확장과 마당을 실로 만드는 적극적 행위의 증개축 행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큰 필지의 한옥은 유지관리 및 보수행위가 더 많이 일어났다. 2) 길의 특성과 한옥의 증개축 행위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막힌 골목형과 루프형이 뚫린 골목형에 비해 더 활발한 증개축이 일어났다. 막힌 골목형과 루프형은 장소적 개방감이 커서 상호교류가 이루어져, 생활양식을 잘 알고 서로 비슷한 상황을 유지해나간다. 그에 반해 뚫린 골목형은 통과도로의 경향이 강해 개인화 및 집단적 영역성이 약해 밖으로 나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고 집안이나 마당에서 활동이 더 활발하였다. 이는 막힌형이나 루프보다 골목의 영역성이 보다 내부로 들어와 마당에서 개성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길의 물리적 특성이 이웃 간의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며 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공유된 기치관과 경험이 주택의 개보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나타난 도시형 한옥의 내외부공간과 주생활의 변화특성을 분석한 결과, 여러 가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되는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안방의 가족생활중심공간으로서 지속성, 마루공간의 생활기능의 지속성, 한옥의 실구성방식의 지속성, 향에 대한 선호, 외부공간으로부터 대문간의 단계적 접근의 지속성을 들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한옥주거공간의 변화특성과 지속성은 우리의 전통성을 반영한 주거계획시 그 특성을 반영할 수 있고 다양한 생활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주공간을 융통성 있게 변화해온 행위들은 주거공간의 적절한 사용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으며 주거지계획시 일괄적인 街區와 길의 계획보다는 거주자들에게 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도로의 특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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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이종석 별장 : 실측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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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양도성 성곽마을 창출에 관한 연구 : 서울시 성북구 북정마을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서울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계기로 주변 마을에 나타난 변화에 주목하고, 평범했던 주변 마을이 ‘살아있는 유산’인 성곽마을로 창출되는 양상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서울시 성북구 북정마을의 마을 만들기를 중심으로 새롭게 창출된 성곽마을로서 북정마을의 현재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 한양도성의 세계유산적 가치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 중 도성의 인문학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도성의 인문학적 가치를 대표하는 성곽마을은 1930~60년대 성곽 주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마을로, 도성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활문화로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곽마을의 가치는 유네스코 등재 추진 이후 새롭게 조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에는 해당 문화유산에 관한 법적・제도적 관리 정책이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는 해당 문화유산을 국가와 지자체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에 관한 부분이다. 따라서 등재 시점까지 성곽마을은 지속적인 보존・관리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성곽마을의 보존・관리에 있어 마을공동체는 대단히 중요한 기제로 활용된다. 서울시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활성화 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는 공동체의 참여와 지속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성곽마을의 성격과 관계가 있다. 북정마을은 서울 한양도성의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무허가 주거지로 최근 축제를 통한 마을 만들기를 시도하였다. 북정마을의 마을 만들기에 관계된 주체로는 북정마을 주민, 서울시,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 등이 있으며 각각의 주체를 중심으로 마을 만들기 전개 양상을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북정마을 마을 만들기의 실질적 주체인 주민들은 서울 한양도성과 성곽마을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마을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능동적 태도를 보인다. 서울시는 서울 한양도성과 성곽마을을 ‘역사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보존 및 관리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은 ‘역사문화’를 강조한 성북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역사문화자원으로서 이를 성북의 관광문화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필자는 북정마을이 마을 만들기를 통해 ‘살아있는 유산’인 성곽마을로 창출되었으며, 그 결과 보존 및 활용의 문제를 수반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성곽마을은 서울 한양도성과 함께 지속적인 보존・관리의 대상이자 관광자원화의 대상이 되었다. 성곽마을의 창출 과정에서 각기 다른 주체들은 북정마을과 주민들의 생활문화 일체를 객체화하였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유용하였다. 분명한 것은 마을 만들기를 통해 성곽마을로 창출된 북정마을이 현 시점에서 ‘살아있는 유산’이자 서울 한양도성을 둘러싼 ‘문화적 경관’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 연구는 북정마을의 마을 만들기에 관계된 다양한 주체들의 의도와 목적을 분석함으로써 새롭게 창출된 성곽마을로서 북정마을의 현재적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북정마을의 정체성은 고정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변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정마을의 사례를 통해 확인한 가변적 속성은 다른 성곽마을에도 적용될 수 있다. 향후 서울 한양도성 주변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성곽마을 창출 양상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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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이후 성북동 주거지역 건축물의 용도변화 특성 연구
    건축물의 용도 변화는 최근 국내의 저층 주거지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변화 중 하나다. 특히 저층 주거지의 용도 변화는 2000년대 이후 특정 주거 지역이 지나치게 상업화됨에 따라 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왔다. 하지만 성북동의 용도 변화는 상업화라는 부정적인 의미 외에도 도시의 다양성과 적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성북동은 한양 도성에 면하여 위치한 주거 지역으로 과거 사대문 밖으로 도시가 확장되면서 형성된 주거지다. 특히 1970년대 시행된 성북천 복개공사 이외의 대형 개발이 없고 일부 지역의 주택재개발사업이 무산되면서 도시형 한옥을 비롯한 지난 80여 년간의 도시조직과 구성원이 남아 있는 역사문화지역이다. 성북동은 1980년대부터 주거지의 용도 변화가 시작되었으며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서서히 진행되었다. 역사문화자원의 가치 상승으로 인한 상업화의 영향과 재개발구역 설정 등 물리적인 개발 제한 속에서도 변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대규모 개발 과정에서도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았으며 거주자 이탈, 무분별한 신축, 골목 상권 파괴 등의 일반적인 도시적 문제점 역시 두드러지게 발생하지 않았다. 건축물의 용도 변화는 성북동의 기존 물리적 환경을 유지한 채 다양한 업종으로의 변화를 수용하였고, 변화 과정에서 독특한 공간 활용 방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양상은 삼청동, 홍대 인근 등의 저층 주거 지역의 용도 변화가 지나친 상업화 혹은 문화 주도적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지역 고유의 매력 퇴색, 부작용 초래 등과는 다르다. 본 연구의 목표는 성북동 건축물 용도 변화의 물리적 특성을 도시 맥락적 특징과 건축정 특징으로 나누어 밝히는 것이다. 도시 맥락적인 특징은 용도 변경 건축물의 지역 내 균형적 분포현황, 상업화와 커뮤니티 밀착형 용도의 공존이다. 성북동 건축물의 용도 변경은 1980년대 초 이면가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상업가로변과 더불어 이면가로변에서도 54%가 진행되었다. 상권의 변화가 가장 활발한 성북로 30m 구간의 업종과 용도 변화 대상이 다양하여 가로환경에 다채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그중 지역 주민을 위한 생활근린업종이 상업시설 사이에 분포하여 남아 있는 것은 급진적인 상업화를 막고 지역 주민의 가로 이용률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북동 이면 가로는 대부분 4m의 보차혼용가로이며 입지 목적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개인적인 목적의 용도 변경은 종교시설, 고급주택 주변에서 진행되며 공통적인 특징이 없다. 골목상권 형성의 가능성이 있는 중고등학교 인접 가로변, 교차로와 한옥밀집구역에 용도 변화가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임차료가 저렴한 곳을 찾는 새로운 계층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구역이다. 성북동의 건축적 변용은 역사문화자원 주변의 개발 제한, 재개발구역으로 인해 신축, 증·개축이 제한되는 제도적 제어 아래 있었다. 이는 신축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건축물 단위 성북동의 공간적 특성으로는 총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유휴 공간의 활용이다. 성북동은 2010년부터 인근의 혜화동의 지가가 상승하면서 연극단이 유입되었다. 극단은 기존 창고로 쓰이거나 비어 있던 지하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한옥의 유휴 공간 활용이다. 한옥의 앞, 뒷마당 공간으로 수평 증축은 대부분의 개조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옆 건물과 다양한 형태의 민원 문제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인접 건축물과의 연계다. 이면거리에 위치한 오래된 목구조 주택, 한옥은 건물 간의 이격거리가 짧고 층수가 낮아 멸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개조 시 인접 건물과 연계하여 수평, 수직 증축을 하면서 특색 있는 공간을 연출하였다. 개조 과정에서 과소평가되었던 인접 공간을 연계하여 증축하는 방식은 저층 주거지의 이면가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80년대 이전의 목구조 주택을 유지하고 가치 상승 가능성을 보여준다. 셋째, 탄력적 공간 이용이다. 성북동의 2015년 일부 재개발구역이 해제되며 개발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신축 시 적용되는 건축법에 따른 면적 제한으로 인해 건축주가 개조방식을 선호하는 추세에 따라 이에 대한 세부 연구와 제도 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성북동은 오래된 목구조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고 개조를 통해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것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북동은 상업화의 속도가 급진적이지 않고 대형 개발이 없어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용도 변화가 진행된 대표적인 저층 주거지다. 그 물리적인 특징은 성북동과 유사한 골목, 구릉지 등을 가지고 있는 지역과 더불어 급격한 변화로 인해 지역의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 지역의 공간관리계획에 시사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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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지 변화를 통해 본 근대 이후 문화재 주변의 경관변화에 관한 연구 : 성북동 문화재 주변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근대이후 서울시 성북동의 문화재와 주변 경관 변화과정과 원인을 분석하고자 하였으며 시대별 폐쇄지적도를 이용한 필지 분석과 문헌자료를 참고하여 연구하였다. 경관은 대체로 제도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대 이후 서울의 도시계획이 성북동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예상되며자본주의 경제체제 확립이 그 배경이 된 것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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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사회 문화유산의 재조명과 새로운 도시경관의 창출-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을 사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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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준과 도자기 : 일본어 수필 「破片的な話(파편적인 이야기)」와 성북동을 중심으로
    본고는 이태준과 도자기의 관계를 새로 발굴된 일본어 수필 「파편적인 이야기」와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1930년대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한 이태준은 소설가인 동시에 편집자로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와 동시에 도자기를 중심으로 이태준을 조명할 필요가 있는데 본고는 그것을 발굴 자료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수필 「파편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이태준은 부친의 연적을 계기로 도자기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본고는 그것을 계기로 이태준이 쓴 도자기 관련 글을 세 편 확인하였다. 이 글에서는 또한 이태준이 1930년대 중반 이화여자전문학교 박물관 주임으로 수집 활동을 하였고 성북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집가 네트워크에도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도자기는 이태준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전기적 사실은 기존의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문학사와 미술사가 새롭게 마주치는 지점을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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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장(尋牛莊)의 정체성 확립과 보존관리 방안에 대한 연구
    서울의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화마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참사는 정부의 안일한 문화재 관리 의식과 태만이 빚은 결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문화재관리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점검과 방화뿐만 아니라 도난, 훼손 등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문화재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과 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 문화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민족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요 불교사상가이다. 그가 말년을 살았던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문화재로서의 소중한 가치가 있음에도 지금까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사실상 지금까지 만해 선사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주로 그의 문학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왔다. 만해 선사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는 것이 싫어 북향으로 집을 지어 생을 마감한 곳이 심우장이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 주체성 회복의 공간이요, 자존의 역사적인 의미가 내재된 공간이 심우장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심우장의 그 기능을 오늘날의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민족문화 창달의 공원으로 거듭나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간 심우장이 우리의 민족사에 있어 귀중한 문화재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우리의 관심 밖에 있어 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심우장이 단순한 문화유산의 한 부분일 뿐 우리의 내면세계를 움직이는 문화역량으로 살아 움직이지 못해 왔음을 반증해 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올곧은 정신으로 자유와 평등사상, 그리고 생명사랑을 실천한 만해 선사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치, 민족정신 고취의 공간으로서의 심우장의 의의와 현재의 보존관리 상황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향후 심우장의 보존관리방안과 그것의 성역화 사업을 통한 우리의 문화 창달의 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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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주변경관의 시각적 특성연구
    본 논문은 성북동의 역사문화자원 주변경관을 대상으로 경관 형용사 분석에 의한 시각적 특성을 분석하고, 시각적 특성과 선호도와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는 성북동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문화자원 주변 경관사진 30장을 선정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경관 선호요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16개 형용사를 척도화하여 요인분석을 실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미지 요인이 시각적 선호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하여 분산분석과 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성북동 내 역사문화자원이 분포하고 있는 주변에 나타나는 경관에 대한 30장의 사진을 대상으로 16개의 형용사 어휘에 대한 선호도 평균분석을 실시한 결과, 전체적인 선호도 평균치는 3.72로 분석되었는데, 이들 중 4.5점 이상의 사진은 VP8번, VP9번, VP10번, VP12번, VP15번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전체적으로 높은 선호를 보인 곳은 마포 최사영 고택과 성락원 주변경관으로, 이는 역사문화자원 주변에 대한 서울시 경관계획에 의해 고도를 제한함으로써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에서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북한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조망경관이 양호하게 확보되고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 판단된다. 둘째, 역사문화자원 주변경관에 대한 시각적 특성을 요인 분석한 결과, 요인 1(심미적 요인), 요인 2(문화적 요인), 요인 3(물리적 요인) 등 3가지 요인으로 요약되어 구분할 수 있었으며, 시각적 선호도와 이미지 요인에 대한 회귀분석 및 분산분석 결과는 심리적 요인이 성북동의 역사문화자원 주변경관에 대한 시각적 선호 이미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조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역사문화자원 주변에 위치한 주거지역에 대한 심미적 요인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 것이다. 셋째, 역사문화자원 중 정비되지 않은 주거지역 주변경관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의 인자가 부각되고 있으며, 역사문화자원과 조화될수록 물리적, 문화적, 심미적 특성의 3가지 영역에서 긍정적인 측면의 인자가 높게 부각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향후, 본 연구에서 표출된 인자에 대한 요인을 분석함으로써 역사문화자원 주변의 경관관리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인을 도출하기 위한 다각적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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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인물 문화재 가치창출을 위한 스토리텔링 방법 : 서울특별시 등록문화재 268호 최순우 옛집을 사례로
    본 연구는 서울시 등록문화재 268호 최순우 옛집을 사례로 하여 근대인물 문화재 가치창출을 목적으로 인물사와 문화재를 연계로 한 스토리텔링의 기초검토와 작성방법을 제시하였다. 문화재의 문화콘텐츠 가치 분석 결과,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미학사상이 옛집의 공간(사랑방 · 뒤뜰)과 유물 (현판 · 예술품 · 전통수목)에 핵심적으로 반영되어 있음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본고에서 제시한 스토리텔링 작성 5단계 즉, 취지 알리기, 인물 소개하기, 인물과 문화재 연결하기, 인물을 통해 문화재 보기, 문화재와 대중 연결하기 기법을 통해 ‘최순우의 한국미(美)를 통해 본 옛집’의 이미지를 창출하였다. 나아가 보존주체인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단체의 역사계승운동을 문화재 현대적 가치로 주목하여 스토리텔링에 반영, 이를 대중의 자발적 보존활동의 유도기제로 설정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는 한 문화재 사례를 통해 근대인물의 특징과 문화재인 문화콘텐츠 가치의 상관성을 효고적으로 추출한 점 그리고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가공하여 해당 문화재의 고유한 이미지를 창출하고 새로운 문화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한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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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곳 모르는 비둘기의 고장/성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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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 인접 노후주거지의 지역자산을 활용한 통합적 재생방안 연구 : 성북구 성북동 북정마을을 중심으로
    노후주거지에 대한 도시계획 패러다임은 공공주도의 전면철거 재개발 방식에서 지역의 사회·문화·역사·경제적 가치를 존중하는 재생방식으로 전환하였다. 기존 전면재개발 방식은 지역 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다양한 가치요소를 파괴시키는 문제점이 있다. 노후주거지의 재생을 위해서는 물적 환경 개선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통합적 재생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전면재개발에 대비되는 명확한 해결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에 대한 대안 중 하나로 ‘지역자산을 활용한 통합적 도시재생방안’을 모색하려는 취지에서 시작하였다. 본 연구는 지역자산을 유형화하고 발굴하여, 이를 활용한 통합적 도시재생 방안과 효과를 제시하고 단계별 전략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통합적 재생을 위해 활용 가능한 지역자산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한양도성 인접 노후주거지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세부 대상지로는 성북구 성북동 북정마을을 선정하였다. 북정마을은 낮은 재개발 사업성으로 인해 10년 동안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이며, 이 때문에 지역의 낙후화가 더욱 심화된 지역이다. 최근 서울시는 ‘한양도성 주변 성곽마을 조성 종합계획’의 수립을 통해 한양도성 인근 노후주거지를 보존하며 재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북정마을은 서울시가 제안하는 성곽마을 조성 주요 검토지역으로 선정되는 등 기존의 정비방식 보다는 재생을 통한 환경 개선이 시급한 지역이다. 지역자산의 선정은 대상지의 통합적 재생을 위해 활용 가능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였다. 북정마을 통합적 재생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물리적 측면에서의 재생 목표는 노후화된 거주환경을 개선하고 지역 고유의 장소성과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다. 사회적 측면에서의 재생 목표는 주민역량강화를 통해 주민참여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기존 커뮤니티를 보존하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재생 목표는 주거안정성 확보를 위해 지역주민의 경제적 자립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북정마을의 지역자산 유형을 사회적 자산, 장소자산, 역사자산, 관광자산으로 구분하였다. 각각의 지역자산은 보존 및 정비 방식을 통해 통합적 재생에 활용된다. 통합적 재생은 점진적 변화의 과정이 중시되며, 이러한 변화의 상태를 관리한다는 점에서 보존과 정비 방식이 동시에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였다. 보존과 정비라는 지역자산을 활용한 통합적 재생의 틀을 토대로 네 가지 유형의 지역자산 별로 실제적인 재생방안을 도출하였고, 이를 통해 발휘될 수 있는 물리·사회·경제를 포괄적으로 고려한 통합적 재생효과를 설명하였다. 통합적 재생의 점진적 측면을 고려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합적 재생을 위한 단계를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하고, 단계별 전략을 정리하였다. 1단계는 지금 당장 실현가능한 재생방안이고, 2단계는 마을의 통합적 재생을 위한 중간단계이며, 마지막 3단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마을의 지속가능한 유지 및 관리를 위해 필요한 단계이다. 재생 프로세스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져야 할 것은 지역의 역사·문화적 특성을 살린 관광콘텐츠 개발 및 지역 활성화이다. 북정마을은 우선적으로 마을 주민의 사회적·경제적 자립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고, 물리적으로는 지역의 장소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주민이 살기 좋은 쾌적한 환경으로 조성하여야 한다. 만약 선행조건들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채 관광적 측면에 집중하여 지역 활성화를 통한 경제적 재생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기존 거주민의 주거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본 연구는 지역자산을 유형화하고 발굴하는 과정을 통해 한양도성에 인접한 오래된 마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분석하고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출된 지역자산을 활용한 실제적인 통합적 재생방안과 효과 및 구체적 실현을 위한 단계적 전략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기존의 전면재개발에 대비되는 대안 중 하나로 ‘지역자산을 활용한 통합적 재생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이 연구의 의의라 할 수 있다. 또한 북정마을이라는 실제 공간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통합적 재생방안을 제시한 실증적 연구라는 점에서, 향후에 한양도성 인접 노후주거지 또는 지역자산이 풍부한 오래된 노후주거지의 지역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이 본 연구의 의의이다. 다만 연구기간이 충분하지 못하여 연구에서 제시한 재생방안의 효과를 검증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연구의 한계로 밝힌다. 또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현황에 대한 세세하고 구체적인 조사 및 분석이 충분하지 못하여, 연구에서 제시한 통합적 재생방안의 현실적인 실행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접근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본 연구가 가지는 한계점이다. 예를 들어, 마을기업을 조직할 때 지역의 어떤 주민이 리더 역할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마을기업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안까지 도출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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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 학습을 통한 역사 수업 지도 방안(성북동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 교육은 과거의 사실을 주로 학습자에게 가르치는 학문이다. 따라서 학습자가 쉽게 이해하거나 또는 흥미를 갖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있는 교수-학습방법이 체험학습을 통한 역사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체험학습을 통해 학습자가 교실을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과거의 사실을 직접 체험하면서 능동적인 학습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학습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역의 문화재를 활용한 역사수업은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교육현장에서의 역사수업은 교사의 주도 아래 주입식교육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중심으로 과도하게 지식암기위주의 수업을 하게 되면 학생들은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넘어서 역사의식을 배양하거나 역사적 사고력 신장을 하기 어렵게 된다. 게다가 역사교과서는 본래, 학습내용의 대부분이 현재 경험할 수 없는 과거의 내용이 중심이다. 그러다 보니 학습내용이 구체적이기 보다는 실감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용어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학생들이 역사 이해에 더 어려움을 갖게 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역사 체험학습을 고려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역사수업에서 실제적인 체험학습을 진행하기에는 교과시간의 제한이라는 시간상의 문제와 이동수단의 어려움이라는 공간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어 다양한 체험학습이 이루어지긴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시도되고 있는 다른 교과와의 통합수업 또는 방과후학교의 활성화 그리고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시간적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문화재를 활용한 체험학습은 공간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체험학습이 역사교육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역사 교수 학습 방법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논문에서는 필자가 재직 중인 한성여중 학생들을 중심으로 체험학습을 진행 하였다. 현재 한성여중은 성북구에 삼선동에 위치하고 있는 학교로서 가까이에는 한양도성부터 서울 시내의 근현대 유적까지 다양한 곳에 대한 역사 체험학습이 가능한 지역이다. 여기에서는 우선 첫 번째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성북동을 중심으로 크게 두 개의 주제를 정하여 역사 체험학습을 진행하였다. 첫째, 성북동의 유적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도록 계획하였다. 학생들의 선택한 두 곳인 심우장과 간송 미술관에 관련된 한용운과 전형필에 대해서 역사 체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둘째, 한양 도성 및 선잠 단지의 체험활동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위민(爲民)의 통치 이념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역사 체험활동을 통해서 보다 추상적인 역사 개념까지 확대하여 학습하는 시간이 되었다. 셋째, 역사 체험활동을 통해서 경험한 내용을 확대하기 위해 체험 장소와 관련된 가족의 역사를 조사해 보았다. 하지만 적합한 사례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가족의 역사를 듣고 조사해 오는 것으로 확대해 보았다. 이처럼 세 번의 역사 체험활동을 통해서 교실과 교과서 속의 역사수업에서 벋어나 학습자가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과거의 죽어 있는 역사가 아니라 학습자의 현재를 있게 한 진행형의 역사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앞서 거론된 것처럼 역사 체험학습은 지금까지 학습자에게 멀게만 느껴지고 지루하게 인식되던 역사교육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체험학습은 대부분 자신의 지역에서 먼 지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역의 문화재를 활용하여 교수-학습을 하면서 역사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에 대한 애향심 그리고 공동체 의식까지 함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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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개인 미술관 사례를 통한 미술관 건립계획에 관한 연구 : 윤중식과 성북지역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과거 신성시 되었던 예술은 현대에 와서 대중성을 지니게 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변화하였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문화 예술적 욕구는 과거 의식주와 같은 생명유지의 필연적 조건이 되었다. 문화강대국이란 말이 생겨날 만큼,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욕망과 경제의 교차점에 위치한 핵심 요소로서 자리매김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해방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계획 경제발전으로 인해 모든 문화 예술적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각 지역은 미술 전시, 공연과 같은 문화 예술 행사들을 지역이 지니고 있는 역사,문화와 어우러진 문화자본으로 개발하여 그 지역의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일반인들 역시 다양한 전시나 문화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그 지역 내에서 소통하고 문화 지식을 향유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흐름에서 지역 작가 미술관 역시 지역문화의 일환으로 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일반 대중들이 미술작품과 작가, 그리고 미술사적 지식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국내·외의 작가 미술관 가운데 지역을 대표하는 성공적인 작가 미술관 네 곳을 선정하여 미술관과 작가와의 연계성, 미술관 건축물과 지역성, 미술관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 조사하였다. 이 같은 조사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2세대 서양화가로서 중요한 위상에 있으나 연구가 미흡하여 미술사 연구에 하나의 잃어버린 고리와도 같은 화가 윤중식의 작가 미술관 건립 계획에 관한 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문화지리학적 장소성과 지역 작가 미술관 콘텐츠가 형성하는 공간의 문화자본 생산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제안하였다. 국내 작가 미술관은 지역자치단체가 설립·운영하거나 개인 및 재단이 설립·운영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개인이나 재단이 설립한 후에 지역자치단체에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본 연구에서 선정한 작가 미술관은 국내의 경우 서울 부암동에 있는 환기미술관과 경북 통영의 전혁림미술관이다. 이 두 곳 모두 사립 미술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운영방식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환기미술관은 재단과 미술관 내의 조직으로 많은 인원들이 분야별로 나뉘어서 활동하며 지원금이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전혁림미술관은 환기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유지를 이어서 설립되었지만 재단이 아닌 개인이 운영을 맡고 있다. 이 두 미술관은 운영체계나 규모 면에서 차이가 보이고 있지만, 특정 지역에 위치함으로써 지역 문화 기반에 구조를 형성하며 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서의 위상을 지닌다. 해외의 작가 미술관으로는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미술관과 뉴멕시코 산타페에 위치한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을 선정하였다.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워홀과 오키프가 현재 미술관이 있는 지역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며, 미술관의 운영 방안과 프로그램 등이 지역의 문화와 경제에 어떤 영향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러한 특정 지역에 위치한 작가 미술관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우선 윤중식 미술관의 부지로 계획된 작가 자택이 위치하고 있는 서울 성북동 지역의 장소성에 관해 고찰하였다. 성북 지역은 한국 근현대미술이 태동할 무렵부터 우리나라 미술계를 주도하는 많은 작가들이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전개해왔던 문화적으로 특이성을 갖는 공간이다.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성북동의 역사와 이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들, 그리고 미술관과 다양한 전시 공간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어 성북 지역에 6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거주하였던 윤중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고찰하였다. 이를 토대로 윤중식의 자택을 개조하여 작가 미술관의 설립 계획을 물리적 공간, 운영방식과 같은 시스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인 콘텐츠 등으로 나눠 살펴보았다. 계획의 핵심은 작가가 몸을 담아 살고 작업했던 공간을 그대로 전시공간으로 안배함으로써 문화를 몸으로 향유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통이다. 이것은 성북 지역의 특정한 장소성으로 인해 자연스레 문화자본의 생산과정으로 편입되며 미술관과 공간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사례 연구를 통하여 추출된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을 일반 대중들의 참여와 체험이 가능하도록 운용함으로써 지역 내의 중요한 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작가 미술관은 그 지역의 문화자원으로서 한 예술가의 생애를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윤중식미술관은 작가의 소장품, 유품, 그리고 다양한 자료 등을 활용하여 윤중식과 동시대의 미술가들의 입체적 전시와 연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윤중식미술관의 건립과 함께 그것이 우리나라 미술사 쓰기와 후대의 작가 발굴에 힘을 보탤 뿐 아니라, 성북 지역의 문화자본 생산에 하나의 결절점 혹은 변곡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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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 친잠의례 복식 연구
    친잠례는 왕비가 몸소 누에를 치고 실을 뽑아 의복을 만드는 노동의 모범을 보임으로서 백성들로 하여금 이를 따르게 하는 의식으로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이다. 3월중 길한 사일(巳日)을 택하여 거행되는 친잠의례는 조선왕조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주체가 되어 거행된 여성의례로 조선시대의 친잠의례와 친잠복식에 대해서 밝히고 친잠례의 변화된 모습과 재현현황을 살펴 문화컨텐츠로의 활용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를 위하여 조선시대를 초기, 중기, 후기, 말기로 구분하여 『朝鮮王朝實錄』과 『增補文獻備考』, 『親蠶儀軌』, 『春官通考』 등의 문헌을 살펴 친잠의례가 거행된 기록을 고찰한 결과, 친잠의례는 조선시대 전시기를 통해서 역대 27대 왕조 중 14대 왕조에서 친잠(親蠶)과 관련된 의례가 거행되었다. 그중 최초의 의례형식을 갖춘 성종기와 『親蠶儀軌』를 편찬한 영조기의 친잠의례를 중심으로 살펴 조선 초기와 후기의 친잠의례와 친잠복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왕비 친잠복인 국의의 중국 제도와 우리나라 제도에 대해 고찰하고 조선 초기 친잠의례복식과 조선 후기 친잠의례 복식을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친잠의례가 현대에서 변화된 양상과 현재 재현되고 있는 선잠제향과 친잠례에 대해 조사한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초기인 성종대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의례절차를 갖춘 친잠의례가 거행되었다. 성종 8년의 친잠의례를 위해 중국의 제도를 제고하여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도록 조정하였으며 이때의 기록을 바탕으로 후기의 영조이전까지의 친잠 의례에서는 큰 변화 없는 절차와 절목들로 친잠의례가 거행된 것으로 확인된다. 영조 43년(1767)에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의례절차뿐 아니라, 왕이 의례일부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로 규모가 큰 친잠의례가 거행되었다. 이것은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 양잠(養蠶)을 권장함과 동시에 왕실과 왕권의 건제함을 대내에 알리고자하는 간접적 표현수단으로 활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의 친잠의례는 선잠제, 채상례, 진하례의 절차로 거행되었고, 후기의 친잠의례는 선잠제, 친림작헌례, 채상례, 진하례, 조현례, 수견례의 절차로 거행되었다. 특히 왕비의 친림 작헌례는 황조의 고례를 따르고자하는 영조의 의지가 강하게 표출된 의례 절차이다. 조현례 또한 초기의 절차에는 보이지 않는 과정으로 이를 통해 왕실의 위엄과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친잠복 제도에 있어 중국의 국의제도를 고찰한 결과, 친잠복으로 착용된 국의의 색상은 고대 때부터 주로 황색이 사용되었다. 국의의 형태는 대수(大袖)형 우임 직령포와 심의형, 연거시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 원령(圓領)형 착수포의 형태가 있다. 우리나라의 친잠복으로 착용된 국의(鞠衣)는 중국의 친잠복 제도에서 ‘국화의 황색’, ‘뽕잎이 처음 돋아나는 색’, ‘국진(鞠塵)’ 등의 색상에 대한 내용을 참조하여 황색이 도는 색상을 친잠복(親蠶服)으로 착용하였다. 또한 국의의 형태는 중국 국의 제도 중 대수형 우임 직령포가 우리나라 왕비의 의대에서 기록과 도상자료로 확인해 보았을 때 장삼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따라서 왕비의 친잠복은 황색의 빛이 돌며 장삼(長衫)형태의 대수형 우임(右&#34941;)직령포로 추정한다. 초기 친잠의례 복식으로는 국의, 조잠복, 흑의, 여기복장 등이 확인된다. 후기 친잠의례 복식 중 여자복식으로는 예복과 상복이 확인되며 예복은 적의(翟衣)와 원삼(圓衫)으로, 상복(常服)은 친잠복인 국의와 조잠복으로 보인다. 초기와 후기의 국의와 조잠복은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후기에는 친잠의례의 각 의례 절차에 따라 복식을 달리하여 착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의 전시기를 거쳐 거행된 친잠례는 우리나라가 산업화, 현대화 되면서 변화를 가져 왔고 현대에 와서는 명칭과 성격이 달라졌지만 3명의 영부인에 의해 5회 진행 되었다. 수출증대, 양잠의 기술개발, 양잠산업의 발상 전환 등의 시기에 따라 각각 또 다른 의의를 가졌다. 또한 전통적인 친잠의례는 현대에 와서 재현행사로 바뀌어 성북구 지역자치단체의 축제와 연계하거나 개인의 역량에 따라 재현이 이루어지고 있다. 친잠의례는 의례가 가지는 성격뿐 아니라 볼거리도 풍부하므로 각종 문화 컨텐츠와의 결합을 통한 활성화로 우리문화의 우수성이나 다양성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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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을 위한 성북동 골목길 공동체 계획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흔적을 그리워한다. 추억은 누군가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되돌아 가보고 싶은, 이상향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거의 이야기 속에 공간을 본다. 그 속에서 지금은 사라져가는 장소를 생각한다. 골목길...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이웃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큰 일이 있을 때에는 작업장도 된다. 골목은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골목길은 정(情)이 넘치는 장소이다. 예전의 흔적이 묻어있는 골목길. 하지만 단지계획 개념의 계획들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집들과 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 흔적을 지워버리는 계획들을 좋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의 골목길을 본다. 예전에 우리가 말하던 골목길과는 스케일도, 느낌도 사뭇 다르다. 성북동. 예로부터 산세가 빼어나기로 유명했던 곳이다. 야트막한 구릉지에 저층 고밀도 주거지가 있다. 이곳의 골목을 보았다. 길이 먼저 생겼는지, 집이 먼저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빽빽이 들어찬 주택들 사이로 길이 보인다. 한사람이 지나가기 딱 좋을 만큼의 폭. 아이들이 모여 땅따먹기 하기에 딱 좋을 정도의 공터가 교차된다. 언덕을 따라 오르며 다양한 폭과, 길이와, 깊이의 골목을 느낀다. 평지와 오르막 경사, 다양한 입면의 담들, 조금씩 꺾이기도 하고, 다른 골목으로 연결되기도 하는 각도, 이런 것들은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골목에서는 예전처럼 아이들이 공을 차고, 딱지를 치고, 마주치는 이웃 주민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오버랩 되지만, 실재 골목길은 텅 비어있다. 골목길은 그저 외부와 집을 이어주는 길로 존재할 뿐이다. 예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억 속 장소처럼 기능하지 못하는 성북동 골목길이 본 작업의 싸이트이다. 성북동의 골목길은, 경사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긴 옹벽과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길의 경계를 만드는 것은 건물과 건물의 담과 옹벽, 그리고 옹벽과 반대로 땅을 파고들어가 영역을 형성하는 부분이다. 싸이트는 평지로, 언덕으로, 조금씩 꺾여 들어가며 지형을 안고있는 길과, 이런 길의 경계를 만들어 주고 있는 물리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싸이트의 물리적 조건들을 변화시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도 변화하지 않을까. 작업은 싸이트의 물리적 통합으로 소통을 이끌어 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즉, 골목길을 이루고 있는 하나 하나의 것들을 분리하여 각각을 요소화 하고, 그 요소들은 다른 요소로 대체하여 골목길에 보다 다양한 행위가 벌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업의 목표이다. 소통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하나의 장애로 간주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이콘화 된 요소들을 삽입하여 소통을 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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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섭의 시집 『성북동 비둘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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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재생을 위한 물리적, 사회적 제안 - 성북동 29-51번지 일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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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지 내 명승 주변지역 거주민의 의식 연구 - 명승 제35호 성락원(城樂園) 주변 역사문화환경 보전지역을 중심으로 -
    본 연구는 도심지에 위치한 명승과 그 주변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성북동에 위치한 성락원 주변 필지의 면적을 분류한 후, 주변 거주민을 대상으로 명승 지정구역에 대한 의식조사, 만족도를 분석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해당구역의 지적조사, 문헌조사, 현장조사, 설문조사를 각각 실시하였다. 설문조사에서 회수된 설문지는 문화재 인지도에 대한 빈도분석, 문화재 주변 만족도에 대한 신뢰도 분석, 필지 면적 별 만족도 분석, 전체만족도 관계에 대한 회귀분석, 필지 면적 별 차이검증을 위한 One-way ANOVA를 각각 실시하였다. 전체적인 문화재 인지도 분석 결과, 거주지 가까이에 위치한 서울선잠단지, 성락원, 만해한용운심우장, 상허이태준가옥, 서울한양도성 순으로 알고 있었으며 문화재에 대한 방문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방문목적은 휴식과 산책이 가장 많았으며 문화재 보존관리의 수준은 보통 수준으로 응답하였고 문화재로 인한 불편도 크게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규제강도에 대한 인식은 보통수준이었고 문화재가 성북동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긍정적 반응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문화재 자체가 마을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문화재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고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 주변 공간에 대한 전체만족도는 필지의 규모가 클수록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성북동 거주민 대부분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소규모 필지(150㎡ 미만) 거주자는 야간보행시 안전성, 재산 가치 상승, 사유재산권 행사, 주변 환경과의 조화, 건축물 외관 상태, 문화·예술·정신 등 비물리적 고유성에 대해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대규모 필지에 비해 소규모 필지의 주거환경의 질이 낮고, 성북동 일대의 재개발로 인한 타 지역 주민의 유입, 자유롭지 못한 사유재산권 행사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시설물(가로등, 안내판 등)의 조화에 대해서 대체로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도심지 내 명승 주변지역의 관리전략 수립 시, 문화재 안내판 시설 확충과 문화재 교육프로그램 도입 등 마을 문화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여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마을 고유성을 유지하는 것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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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섭 후기 시에 나타난 장소 이미지와 생태적 상상력
    본 논문은 인본주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가 창조한 '장소와 장소성(place and placelessness)'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김광섭의 후기시를 1970년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다. 김광섭은 『성북동 비둘기』, 『거대한 서울』, 『와우아파트』, 『교외』, 『산책』 등의 작품에서 산업화가 초래한 장소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보여주었다. 1968년에 발표된 『성북동 비둘기』는 평화로운 시골 성북동이 격렬하게 발전하면서 추상적이고 적대적인 공간이 되어 '무위'에 점령당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 산업화는 도시화 과정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전원지였던 성북동의 자연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원주민들의 생계를 빼앗았고, 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산과 백성을 잃은 『비둘기』는 더 이상 사랑을 품을 수 없고, 발전으로 쫓겨날 운명에 처한 성북동 원주민들에게 평화의 의미가 서려 있다. 그의 시 교외는 우리의 도시화가 얼마나 서울 변두리의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시의 『불』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반항적인 욕망, 즉 '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불'로 경고하는 파괴적인 불을 묘사하고 있다. 『와우 아파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압축 증가로 인한 부작용과 그림자를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 『산』은 관용과 관용, 배려와 겸손, 공생과 상생의 해결을 통해 비정상적인 징후와 장소성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적 장소, 진정한 장소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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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성북예술동, 현대도시의 대안 모델을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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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공공예술창작공간 방문객의 충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 : 서울시창작공간 성북예술창작센터를 중심으로
    본 논문은 예술창작센터의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방문객의 예술창작센터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고, 예술창작센터에 대한 충성도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규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하여 2010년에 개관된 성북예술창작센터를 사례로 설정하고, 방문객 230명(지역주민 1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사전 브랜드 인지도, 지역 활성화 가치 인식도, 체험 요인 인식 수준, 지각된 품질 만족도, 프로그램 만족도, 충성도 요인 등이 측정되었다. 분석결과, 방문객 및 지역주민들은 사전 브랜드 인지도를 제외한 다른 요인들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별, 연령별, 거주지별에 따라 방문객들의 예술창작센터 인식이 상이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방문경험 여부, 세부 프로그램 참여여부 또한 방문객들의 인식 차이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지역주민들과 예술창작센터의 지속적인 연계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신규 방문객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 논문에서는 예술창작센터는 지역주민들을 세분화하여 주민 특성에 적합한 맞춤형 서비스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점 또한 논의되었다. 또한 이 논문에서는 지역 활성화 가치 인식도, 체험 요인 인식도, 지각된 품질 만족도가 충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체험 인식 수준이 충성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되었다. 이것은 지역주민들이 예술창작센터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하여 지역주민들에게 정서적 체험과 관계적 체험을 제공받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지역주민들은 예술창작센터가 지역사회 맥락에서 지역을 활성화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 연구에서는 체험인식도가 사전 브랜드 인지도, 지역 활성화 가치, 지각된 품질 만족도, 프로그램 만족도를 매개로 하여, 방문객 충성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모형을 설정하고, 이러한 경로모형을 검증하였다. 분석결과, 체험 요인 인식도가 방문객 충성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검증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지역주민과 방문객들이 창작예술센터를 통해서 정서적, 관계적, 심미적 체험 욕구를 충족하고, 일상적 생활 속에서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생활문화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예술창작센터와 지역주민의 관계가 일시적인 관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형성, 발전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또한 앞으로 예술창작센터가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방안을 개발할 때 중요한 준거로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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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계발 활동을 통한 지역사 교육의 실제 : 성북동 지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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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커뮤니티 도서관 재계획 : 열린 공간 구성 방식의 적용을 통한 지역 도서관 제안
    현대에 이르러 정보 중심 사회로의 변화는 도서관을 근대적 형태에서 탈피하고 정보의 디지털화와 하이퍼텍스트로 대변되어 지는 정보 소통의 장으로서의 커뮤니티 시설로 변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단순히 정보매체를 저장하고 보관하던 시설에서 점차 공동체의 문화시설 그리고 교육시설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도서관 정책 위원회 역시 커뮤니티 시설로서 지역 도서관을 장려하고 있다. 도서관의 환경과 도서관의 콘텐츠가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의 물리적 공간 구성은 그 속도에 알맞게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 도서관은 커뮤니티 시설로서 지역 공동체 내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 존재하는 콘텐츠는 훌륭하지만 건축적 장치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대상지로 성북정보도서관을 선정하였다. 성북정보도서관의 건축적인 문제점들을 돌출하여 해결방안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논문은 전개된다. 프로그램의 면적당 비율이 적합하지 않은 점, 층간 위계가 너무 분명하여 답답하다는 점, 공공 공간이 부족한 점, 공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들이 기존 도서관의 문제점으로 돌출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목적실을 삽입함으로써 가변적 프로그램을 수용, 단위 공간의 병치적 배치를 통한 열린 공간 만들기, 외부 환경을 향한 소통, 재료를 통한 시각적 열림, 가변벽을 통한 열린 구조 등의 건축적 해결 방안을 찾았다. 이 방법들은 통틀어 열린 공간 구성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지역도서관이 도서관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역 공공시설로서 다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수용하는 공공 문화 공간으로서 적합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열린 공간 구성 방식을 통한 도서관의 재구성은 기존 도서관의 건축적 한계를 극복한 활성화 된 지역 커뮤니티 도서관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진행된다.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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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한용운의 문학을 활용한 문학체험 교육프로그램 개발 연구 : 문학체험 활동의 내용 구성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지식 전달식 문학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학습자 중심의 문학교육을 모색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교육 환경의 제약으로 교사의 설명이 중심이 되는 교실 안 문학 수업에서 벗어나 문학 텍스트를 활용할 수 있는 현장에서의 문학체험 교육프로그램을 설계하고자 한다. 단순 지식 암기 위주의 교수·학습이 아닌 학습자의 능동적 활동이 중심이 되는 문학체험 교육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문학적 이론과 지식을 암기하는 문학 수업이 아닌 학습자가 문학작품과 능동적으로 만나 문학을 향유하고 학습자의 삶에 융화할 수 있는 문학교육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작가의 생애와 업적을 기념하는 ‘작가 기념비적 장소’에서 작가의 삶과 시 텍스트를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만나는 문학체험 활동 통해 학습자의 문학능력을 신장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1926)을 집필하여 한국 현대문학사를 빛낸 인물이다. 또, 문학사적 업적 외에 독립운동가이자 승려로서 일제강점기를 지낸 전인적(全人的) 인물이며, 그의 업적과 사상을 기리는 장소가 서울, 경기, 강원, 충남에 고루 분포하고 있다. 기념비적 장소가 전국에 분포하고 있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다. 한용운의 기념비적 장소를 문학체험 활동의 현장으로 삼아 학습자 중심의 문학체험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한다. 문학체험은 학습자가 문학 텍스트를 매개로 하여 세계와 관계를 형성하고 재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습자는 문학문화와 언어문화를 성찰할 수 있게 된다. 학습자는 문학체험 활동을 통해 문학 텍스트를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세계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창의적인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다. 문학체험 활동을 통해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문학능력의 신장과 학습자의 전인적 발달을 목적으로 한다. 문학체험 활동의 내용은 박물관, 생애적 공간, 문화축제를 중심으로 구성할 수 있다. 박물관은 작가의 생애와 업적 및 문학작품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 교육시설로 활용하기에 적절하다. 생애적 공간은 작가의 생애를 추체험함으로써 작가의 작품세계 및 세계관을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화축제는 문학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문화 향유의 장(場)으로, 문화 향유 능력을 신장시키고 내면화를 촉진한다는 장점이 있다. 한용운은 그의 생애와 다방면적 업적을 기념하는 만해문학체험관(충남 홍성군)과 만해기념관(경기 광주시)이 있다. 그리고 생애적 공간으로 한용운이 노년에 기거했던 심우장(서울 성북구)이 있다. 문화축제로는 복합휴양시설인 만해마을(강원 인제군)에서 매년 8월에 개최되는 만해축전이 있다. 현대문학사의 작가 가운데 교육적으로 활용 가능한 기념비적 장소가 잘 갖추어진 사례이다. 한용운의 기념비적 장소에서의 박물관 중심, 생애적 공간 중심, 문화축제를 중심으로 한 문학체험 교육프로그램을 설계하였다. 학습자의 능동적 활동과 또래 협력적 교수·학습 방법으로 구성된 문학체험 교육프로그램으로, 국어과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학습자의 핵심역량 계발에 중점을 두었다. 국어과 하위 영역 간의 통합 교육(문학 영역-국어 활동 영역)을 비롯, 타 교과와의 융합 교육(국어-역사, 국어-음악, 국어-미술)을 시도하여 미래형 교육과정의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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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지의 고저차를 내부 공간에 적용한 성북동 도서관 계획안
    ◁그림 삽입▷(원문을 참조하세요) 건축가 렘 쿨하스는 프로그램의 감축(減縮)적인 해석은 프로젝트에 고통스런 명확성을 주고 결과는 충격적일 수 있다고 화두를 던진다. 오늘날 건축의 영역은 점점 축소되고, 간소화되어 단지 기능적인 효용성이나 경제성만이 강조되고 있으며, 또한 프로그램이 건축과 무관해지고, 건축도 프로그램과 상관없이 어떤 의미, 어떤 역할인지 주체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장소적인 관계도 상실되어 건축은 더욱 건조해지고 그에 담기는 프로그램도 건조해지기는 마찬가지인 상태이다. 현상학적 접근에 의해 프로그램과 대지의 해석이 다원화되어 다양한 가능성을 건축에 적용시키게 되었으나 단편적(斷片的)이고 피상적(皮相的)인 의미만을 받아들여 확대시킴으로써 본질을 약화시키고 변질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프로그램과 대지의 실체를 감축(減縮)시키고 난해(難解)하게 만듦으로써 고통스런 명확성(明確性)을 주게된다. 도서관 건축에서도 도서관이 ‘필요한 정보만을 유출할 수 있는 곳’으로만 이해할 뿐 프로그램과 대지에 의해 생성되는 다양한 체험적 공간으로 생각되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가능성이 열린 공간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림 삽입▷(원문을 참조하세요) 따라서 본 설계 연구에서는 ‘보여지고자 선별되는 것들은 그 순간 이미 어떤 맥락 속에 위치한다.’라는 말처럼 대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적용하여 대지 안에서 대지와 건물의 통합, 즉 대지가 곧 공간화로 되어지는 현상을 성북동이 가지는 대지의 고저(高低)차와 그에 의해서 생성, 확장, 한계 지어지는 도서관을 계획하고자한다. 본 설계 연구의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1. 대지가 주는 자연적 흐름과 대지의 고저(高低)차를 분석하여 부분적 형태가 모인 대지의 형태를 유추한다. 이것을 바탕으로하여 대지의 확장, 중첩, 한계 등의 현상들을 공간으로 번역한다. 2. 프로그램을 번역함과 동시에 대지분석의 번역을 공간의 기능, 성격으로 전환시키고 낮과 밤의 장소성에 대한 반응으로 나눈다. 3. 유추되고 적용된 아이디어를 설계과정에 연결하여 꼴라쥬, 볼륨스터디, 공간 구성, 동선, 디테일을 계획한다. 1.2.3.의 과정을 통해 골목길에서의 자연스러운 유입을 이끌어 대지 안에서 서고와 열람실의 주체적 행위와 각종 부대시설의 보조적 행위의 공간을 갖춘 도서관을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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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업의 작품형식에 관한 분석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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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섭의 시의 언어학적 분석 : 「성북동 비둘기」를 중심으로
    이 연구에서는 먼저 몇몇 문학 연구가나 평론가들이 그들의 글에서 인용한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를 원전과 비교하였을 때 나타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다음으로 원전에 나타나 있는 형식론적 문제점을 원전 비평적 견지에서 논의하여 「성북동 비둘기」를 수정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론적 분석을 한 「성북동 비둘기」를 언어학적 분석 방법을 이용하여 그 시의 의미를 해석하고, 아울러 작가의 정신과 태도를 밝히는 데에 연구의 주목적을 두었다. 이 연구에서 분석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원전 인용에 있어서 연구자들이 「성북동 비둘기」를 인용했을 때 문제점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형식론적 분석을 통해서, 「성북동 비둘기」의 원전을 문장 부호에 있어서 한 개, 띄어쓰기에 있어서 여섯 개 그리고 어휘 표기에 있어서 네 개 등 모두 열한 군데를 수정하여 새로 제시하였다. 또한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를 언어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시의 의미를 해석하고 시에 담겨 있는 작가의 정신을 파악하였다. 이 시의 첫째 연에서는 문명화로 인한 자연 파괴와 그로 인한 자연과의 단절에 관한 시인의 인식 및 자연 파괴와 삶의 터전 상실에 의한 서민의 두려움과 비극적 현실에 관한 시인의 비판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의 민중에 대한 사랑과 서민과의 일체감에 대한 정신이 드러나 있다. 이 시의 둘째 연에는 서민의 소외감과 문명화로 인한 자연 파괴의 심화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 있다. 또한 물질 문명의 비정성과 인간적이며 근원적인 것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의 정신 및 자연성을 옹호하는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이 시의 셋째 연에는 김광섭 시인의 사람간의 조화와 친밀감, 사랑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갈망의 태도가 드러나 있고, 시인의 사랑과 평화에 대한 희구와 현대 사회의 비정함에 대한 인식이 표출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과 평화의 상실에 따른 위기감의 인식이 나타나 있다. 결국,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에는 문명화와 자연 파괴로 인한 서민의 소외감과 삶의 터전 상실이 나타나 있고, 시인의 현실의 비정함과 사랑과 평화에 대한 갈망의 정신이 담겨 있음을 파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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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합개발 실행을 위한 각 주체간 역할에 관한 연구 : 성북2구역과 신월곡1구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 국토의 대부분은 산지로 되어 있다. 8∙15 광복과 6∙25전쟁의 일대 혼란기 이후 도시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팽창을 가져왔으며, 전후 난민들의 유입과 급격한 도시화로 무허가 불량주택들이 구릉지 지역에 우후준순 들어서게 되었다. 이들은 주거생활에 대한 기반시설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난립하였기 때문에 거주성이 열악한 불량주거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도심 무허가 건축물 철거와 철거민의 집단이주는 무허가 정착지의 재생산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였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자력재개발사업, 합동재개발사업 등 여러 가지 도시정비사업이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의 재정비사업은 기성 노후 시가지를 정비한다는 공공의 목적을 배경으로 구릉지 등 자연경관이 보호되어야 할 대상지들이 사업성 위주의 개발이 이루어지다 보니 재정비사업으로 도시경관이 훼손되는 또 다른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새로운 구릉지 개발방식인 결합개발제도가 2005년 12월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의 공포로 제도화 되었으며, 서울시의 제3차 뉴타운지구인 ‘이문∙휘경재정비촉진지구’에서 역세권인 이문3-1구역과 문화재와 인접하면서 구릉지인 이문3-2구역을 결합하여 하나의 촉진구역(이문3구역)으로 하는 재정비촉진계획이 결정됨으로써 결합개발의 효시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재정비촉진구역에 한하여 결합개발이 가능하였으나 사업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여 일반 정비구역과의 결합도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으로 문화재 인근이면서 구릉지인 대상지에서 재개발사업을 시행하는 서울시 성북2구역과 역세권지역에서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시행하는 신월곡1구역이 결합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본격적인 사업시행 단계에 이르렀다. 본 논문에서는 결합개발이 실행단계에 이른 성북2구역과 신월곡1구역이 협약을 체결하기까지의 과정을 분석하고 전문가, 과정에 참여한 조합관계자 및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여 결합개발 실행과정에서 각 주체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발생된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였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결합개발 실행을 위한 각 주체들의 역할을 정립함으로써 결합개발을 활성화하여 구릉지, 문화재보호구역 등 저밀개발이 필요한 지역의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경관 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함은 물론 사업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주민들에게도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동안 경관이 보호되어야 할 구릉지가 도시정비라는 명목으로 많은 훼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결합개발제도가 궤도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여러 가지 법령상의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본 연구를 통해 구릉지의 열악한 주거환경개선과 경관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 달성을 위해 각 주체들이 노력한다면 앞으로 결합개발 사업은 저밀관리가 필요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방식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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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을 위한 성북동 골목길 공동체 계획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흔적을 그리워한다. 추억은 누군가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되돌아 가보고 싶은, 이상향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거의 이야기 속에 공간을 본다. 그 속에서 지금은 사라져가는 장소를 생각한다. 골목길...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이웃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큰일이 있을 때에는 작업장도 된다. 골목은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골목길은 정(情)이 넘치는 장소이다. 예전의 흔적이 묻어있는 골목길. 하지만 단지계획 개념의 계획들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집들과 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 흔적을 지워버리는 계획들을 좋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의 골목길을 본다. 예전에 우리가 말하던 골목길과는 스케일도, 느낌도 사뭇 다르다. 성북동. 예로부터 산세가 빼어나기로 유명했던 곳이다. 야트막한 구릉지에 저층 고밀도 주거지가 있다. 이곳의 골목을 보았다. 길이 먼저 생겼는지, 집이 먼저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빽빽이 들어찬 주택들 사이로 길이 보인다. 한사람이 지나가기 딱 좋을 만큼의 폭. 아이들이 모여 땅따먹기 하기에 딱 좋을 정도의 공터가 교차된다. 언덕을 따라 오르며 다양한 폭과, 길이와, 깊이의 골목을 느낀다. 평지와 오르막 경사, 다양한 입면의 담들, 조금씩 꺾이기도 하고, 다른 골목으로 연결되기도 하는 각도, 이런 것들은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골목에서는 예전처럼 아이들이 공을 차고, 딱지를 치고, 마주치는 이웃 주민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오버랩 되지만, 실재 골목길은 텅 비어있다. 골목길은 그저 외부와 집을 이어주는 길로 존재할 뿐이다. 예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억 속 장소처럼 기능하지 못하는 성북동 골목길이 본 작업의 싸이트이다. 성북동의 골목길은, 경사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긴 옹벽과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길의 경계를 만드는 것은 건물과 건물의 담과 옹벽, 그리고 옹벽과 반대로 땅을 파고들어가 영역을 형성하는 부분이다. 싸이트는 평지로, 언덕으로, 조금씩 꺾여 들어가며 지형을 안고있는 길과, 이런 길의 경계를 만들어 주고 있는 물리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싸이트의 물리적 조건들을 변화시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도 변화하지 않을까. 작업은 싸이트의 물리적 통합으로 소통을 이끌어 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즉, 골목길을 이루고 있는 하나 하나의 것들을 분리하여 각각을 요소화 하고, 그 요소들은 다른 요소로 대체하여 골목길에 보다 다양한 행위가 벌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업의 목표이다. 소통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하나의 장애로 간주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이콘화 된 요소들을 삽입하여 소통을 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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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천 복원을 위한 근린형 개발 및 평지조성에 관한 연구
    본 논문은 서울시 성북천 복원 계획과 관련하여 ‘근린형 생태하천복원’을 목적으로 인근 주민들의 공동체적 교류와 편의를 제공하는 근린형 하천복원을 제안하기 위하여 ‘근린형 개발’과 ‘평지 조성’이라는 두 개의 계획 전략을 구상하였으며, ‘근린형 개발’ 측면에서는 성북천 일대의 주변 가로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차별화된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평지 조성’ 측면에서는 성북천 일대의 평지형 공개공지 조성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기존의 성북천 복 원 계획상에 평지 조성 방안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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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단독주거지의 입지 및 배치계획 특성에 관한 연구 : 서울 평창동, 성북동, 연희동 단독주거지 비교분석
    본 연구는 도심 단독주택의 입지 특성이 배치계획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고찰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단독주거의 유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는 주거지를 선정하여 풍수지리의 개념을 바탕으로 분석하였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구대상 주거지인 서울 평창동, 성북동 그리고 연희동의 입지는 하나의 자연지리체계에 의해서 형성되고 있다. 이 세 곳의 입지는 풍수적 형국을 잘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형국이 배치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대상주거지의 주택들은 남서향에서 남동방향의 범위 내에 방위를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나타난 방위의 특성은 입지가 지니고 있는 지형방위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 좌향을 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입지의 상세한 지형, 지세 흐름이 터를 정하고 배치계획을 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입지에 의해서 나타나는 방위, 주산에서 비롯되는 지형의 흐름이 어느 방향이냐에 따라 주택의 좌향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에서 입지가 지니는 전체적인 형국은 배치계획의 결정에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으며, 연구대상 주거지는 이러한 입지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배치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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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북악산 일원 암각문화 연구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수목과 바위가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수려한 곳에 명사(名士)들은 골짜기나 누각의 이름, 시문(時文)을 바위에 새겨놓았다. 바위에 그림과 문자를 남긴 것은 인류가 문화를 만들어간 증거이다. 암각화(岩刻花)는 원시인들이 풍요와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 서울은 북악산은 인왕산, 남산, 낙산과 더불어 내사산(內四山)으로 산이 거대한 바위처럼 연결되었으며, 사이에는 숲과 계곡이 있다. 옛문헌을 살펴보면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와 『용재총화(慵齋叢話)』에 한양 내 산수자연과 어우러진 경승지와 경승지에서 이루어지는 풍류문화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중 북악산과 인왕산은 풍광(風光)이 수려한 경승지가 많았음을 알 수 있으나, 산업발전으로 인한 도시화에 의해 건물은 헐려 없어지고 경승지의 계곡은 복개되어 도로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곳에는 암각이 남아 있어 선조의 풍류 문화가 행해진 과거의 장소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암각은 전통 공간 내 큰 바위나 대(臺)에 한시나 문장 등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암각과 관련된 사람의 사상이나 생활철학을 보여준다. 본 연구의 대상지인 북악산은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암각이 30개소가 현존하며,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북악산에 포함되어있는 암각의 내용과 의미를 해석하고, 위치적 특성과 그 장소에서 이루어진 풍류 적 행태의 관계를 분석 한다면 과거의 북악산의 공간특성에 대해서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 서울시에 위치해 있는 암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일이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 북악산에 새겨진 암각을 중심으로 그 곳에 이루어진 풍류적 행태와 암각의 내용분석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선비문화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여기에서 도출된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악산에 위치해 있는 암각은 총 30개소이며, 위치한 장소는 산의 정상부가 아닌 계곡, 기슭 부근, 주택가 등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둘째, 암각의 내용은 지리적 명칭, 수려한 풍광, 건물, 수신을 위한 구절, 조상과 학덕이 높은 사람을 추모하는 시구, 소원 염원, 길지 등이 있다. 셋째, 암각이 있는 장소는 대부분이 경승지로 풍류문화와 연계되어 있는데, 현재 북악산에 풍류 적 행태, 산수자연을 즐기는 개인은 물론 문인들의 모임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보인다. 위항시인의 시회와 산수취미를 포함한 시로 당시의 풍류를 알 수 있으며, 자연과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에서 선조의 멋스러움과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넷째, 북악산의 속해있는 암각 중 현재 성락원은 명승 35호로 지정되었고, 백석동천은 명승 제 36호로 지정되어있다. 그러나 북악산뿐만 아니라 일부 바위들은 시가지에 방치되어있고 뚜렷한 보존대책이 없어 원형을 잃어가고 개발의 위협에 처해있는 바위들도 많다. 또한 보안지역에 있거나 사유지 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정확한 보존 상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섯째, 보안지역의 암각들은 향후 남북통일과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와 교육적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개방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여섯째, 암각은 우리에게 있어 서울이 가진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인식이 필요하다. 서울이 가진 훌륭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음을 인식하여야 하며, 우리가 보존하고 후세에게 전해주어야 할 또 하나의 자산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문화자원인 암각의 보존대책 마련이 시급하며, 훼손우려가 있는 암각을 파악하여 하나씩 사라지는 우리 역사문화를 보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암각과 관련한 문화재를 스토리텔링으로 풀고 관람코스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홍보하여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서울 북악산을 중심으로 한 암각문화의 현황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배경과 행태 등을 분석하며 의미론적 해석을 함으로써 조선시대 암각문화에 대한 중요성과 문화재지정에 대한 준거를 제시하였다는데 의의를 두며 보다 정밀한 연구는 추후과제로 남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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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기 회화에 내재된 전통성과 자연주의 미의식에 관한 연구 : 1933~1963년 작품을 중심으로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 1913∼1974)의 예술세계는 1940∼50년대 한국적인 미감과 자연적 소재인 산, 달, 구름, 매화, 사슴, 달항아리 등을 회화에 적극적으로 담아내던 시기부터 1963년 도미(渡美) 후, 십자구도·사방구도 등의 실험적 단계를 거쳐 1970년대 순수 추상 양식으로 색면점화를 완성한 시기까지 자연의 순수성과 영원성이라는 조형미가 전(全) 시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 논문은 한국 근·현대회화사에 있어 민족의 정취를 추상이라는 정제된 조형언어로 담아낸 김환기 회화의 ‘전통성과 자연주의 미의식’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우선 김환기의 1930년대 선보인 기하학적 구성회화가 1940∼50년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연과 한국의 미로 소재를 양식화하여 전개하게 된 사유(事由)에 집중하였고, 이에 따른 주요원인을 1939년에서 41년까지 이어온 ‘『문장』지의 신문인화 정신’의 계승, 1944년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환도 이후까지 이어진 ‘성북동 수향산방에서의 고완품의 개안과 민족주의자들과의 교류’, 1940년대 일제 식민지와 1950년 한국전쟁을 통해 문화·예술인들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다방에서의 활동을 통해 체득한 문학적 시정신(詩精神)’이란 세요소로 규정하여 심층 고찰하였다. 첫 번째, 민족문화를 주창한 ‘『문장』에서의 활동과 교류’는 신문인화 정신의 사상과 이념에 일정부분 영향을 받고, ‘조선시대 문화와 선비정신을 체득하면서 예술에 대한 깊이를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두 번째, ‘성북동 수향산방’에서의 생활은 한국의 자연정취를 만끽하면서 고완품(古翫品)에 대한 관심, 민족과 전통에 대한 애정과 심미안을 가진 예술인과의 교류 등을 통해 작업의 맥을 다져주며 한국의 ‘자연’과 ‘전통’ 테마를 반추상적 회화로 담아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세 번째, 문화 예술 커뮤니티였던 ‘다방’에서의 활동은 문인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인들과 교분을 쌓으며 예술적 영감, 취향 등을 서로 공유하였고, 이는 김환기의 예술세계에 ‘시정신(詩精神)’과 ‘문학적 서정성’을 체득하게 되는 동기를 마련해주었다. 본 연구를 통해 1940년대를 김환기에게 있어 한국 ‘전통미의 개안’과 ‘자연에 대한 미의식’이 확립된 중요한 시기로 보고, 당대를 전후로 하여 시대적·환경적 배경과 김환기의 재야활동에 집중하면서 1933∼63년 작품을 일상풍경, 산수, 백자대호, 십장생, 기타로 세분화하여 분석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당시 김환기가 추구했던 핵심 사상과 회화에 담겨진 정서를 이해하고, 서구의 모더니즘을 적극 활용한 김환기에게 있어 한국을 대표하는 화백으로 명성을 갖춘 연유(緣由)를 재확인하며, 나아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민족의 주체성’이라는 가치 있는 지표를 마련해줄 것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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