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간원조 기구인 아시아재단은 1953년부터 한국 영화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찰스 태너(Charles Tanner)는 1953년과 1954년에 각각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아시아재단의 지원 계획안을 작성했으며, 1955년에는 아시아재단 도쿄 사무소에서 영화를 담당하고 있던 존 밀러(John Miller)가 한국을 방문하여 산업의 현황을 조사하고 계획안을 제출했다. 찰스 태너와 존 밀러는 전후 한국의 영화산업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첫째, 영화를 제작할 물적 기반의 파괴, 둘째, 영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배를 지적한다. 이와 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아시아재단은 민간의 비영리, 비정치 조직으로서 한국영화문화협회를 설립했다. 아시아재단이 총 50,000달러를 들여 마련한 영화 제작 장비를 맡아 운영하면서 한국영화문화협회는 1950년대 말 한국 영화산업이 활성화되는 데는 기여하였다. 하지만 정부가 영화를 지배하는 상황을 타개한다는 아시아재단의 애초 목표는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는 공보와 선전의 수단으로 영화를 중시했던 한국 정부에 대규모의 원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글에서는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 인스티튜션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는 아시아재단의 영화 프로그램 관련 파일들을 검토하여 한국영화문화협회의 설립과 활동 과정을 재구성함으로써 전후 한국의 상황과 영화에 미친 미국의 구조적인 영향을 밝히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