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비 神德王后 貞陵의 조성과 封陵 고찰
2016.08.31
학술자료 학술지논문
국문초록 1. 머리말 2. 太祖의 정릉 조성과 조선초기 山陵制度 3. 顯宗의 정릉 封陵과 조선후기 山陵制度의 변화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정릉동
국문초록
본 논문은 신덕왕후 정릉을 중심으로 조선초기~후기에 이르는 산릉제도의 형성과 변화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아울러 정릉의 실질적인 능제로서의 승격과정을 담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통해 왕실 원 · 묘제와의 관련성, 조선후기 산릉역사에 있어 추봉릉으로서 정릉이 갖는 위상을 함께 파악하고자 하였다. 정릉은 조선이 개국한 후 가장 먼저 건설된 능인만큼 고려 말 공민왕릉[玄陵 · 正陵]에서 유래한 초기 왕릉 산릉제도의 기원뿐 아니라 17세기 封陵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통해 산릉제도의 변화와 그 배경요인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409년 태종에 의해 민묘로 강등되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조선초기 왕릉조영과 관련한 논고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어 왔을 뿐, 후대 신덕왕후의 위상 변화에 따른 조선후기 능제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1397년 처음 조성 당시의 정릉 체제는 고려 말 공민왕릉에서 유래한 산릉제도에 기초하여 건설되었다. 이는 공민왕릉 공사를 담당했던 金師幸이 정릉 공역의 책임자였단 사실과 이성계가 등극 후 실시한 함경도 지역에 조성된 4대조 무덤의 능역 공사를 공민왕릉 형식을 따라 진행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을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릉의 최초 모습은 함경도 4대조 왕릉이나 태조 계비 신의왕후 齊陵처럼 공민왕릉을 충실하게 계승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1409년 태종에 의해 遷葬된 후 원형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후 1669년 현종에 의해 왕후의 지위가 복권되고 묘소 역시 封陵되면서 조선후기 추봉릉 제도라는 아주 새로운 기준에 의해 정비되었다. 이로써 정릉은 덕종 敬陵의 선례를 따라 추봉릉 제도로 조성된 최초의 왕후릉이자 이후 조성된 단경왕후 온릉, 단의왕후 혜릉 등에 영향을 주면서 조선후기 추봉릉 상설제도의 선구적인 예시가 되었다. 이처럼 정릉은 조선 개국 후 가장 먼저 조성된 능으로서 조선초기 능제 형성의 경향이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후기 추존 陵園의 조영에 있어 중요한 범본이 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산릉제도의 형성과 변화를 동시에 담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기본정보

생산정보

  • 생산유형: 기타
  • 입수처: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생산자 소속 및 이름: 황정연
  • 생산자 유형: 저자

생산시기

  • 시대: 현대
  • 생산시기: 2016.08.31

생산지

  • 생산지: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생산지 유형: 발행처
  • 주소: 04107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1-1 (백범로 35 정하상관 613호)

원문 공개사항

기술통제

  • 작성자: 이민경
  • 작성일: 202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