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잠제(先蠶祭) 정비와 시행 의미
2015.03.31
학술자료 학술지논문
Ⅰ. 머리말 Ⅱ. 조선의 吉禮정비와 선잠의례 구성 Ⅲ. 선잠단 논의와 ‘享先蠶儀’의 시행 Ⅳ. 선잠제의 시행과 변천 Ⅴ. 맺음말 참고문헌
성북동
국문초록
선잠제는 양잠의 신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제사는 선잠단에서 지냈다. 그 시기는 매년 3월 첫 번째 巳日이었다. 선잠제는 제사의 대상이 여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선잠제를 지내는 것은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장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선잠제는 조선왕조에서 국가의 의례로 정비되었다. 조선의 의례는 크게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오례’라고 했다. 제사를 지내는 의례는 ‘길례’였다. 선잠제는 그 제사의 규모가 중간에 해당했고, 제사의 대상은 사람, 곧 인귀였다. 그러므로 길례의 중사로 정해졌다. 선잠제에 대한 논의는 태종대부터 시작되어 세종대 『세종실록』 「오례」에 정리되었다. 이후 수정을 하여 『국조오례의』로 법제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잠제의 의미와 의식은 강화되었다. 선잠제를 지냈던 선잠단의 위치는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논의되었다. 그렇지만 옮기지 않고 현재 성북동의 ‘先蠶壇址’에서 제사를 지냈다. 선잠제는 제사의 대상은 여성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주체는 국왕이었다. 그러나 제사의 규모가 중사였기 때문에 관료를 보내어 대신 지내게 하였다. 이런 것을 섭사라고 한다. 선잠제는 매년 지내야 하겠지만 기록을 보면 그렇지 못하였다. 다만 세조와 명종은 상대적으로 자주 선잠제를 지냈다. 세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에는 선잠제가 거의 매년 시행되었다. 왕권이 약한 대신에 의례를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선잠제 시행에서 큰 변화는 1767년(영조 43)에 있었다. 이 해에는 왕비가 친잠례를 치르게 되었다. 이때 영조는 왕비가 직접 선잠제를 치르도록하였다. 이것은 조선에서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때 왕비였던 정순왕후는 직접 술을 올리는 선잠작헌례를 시행하였다. 조선시대 선잠제는 백성을위하는 민본정치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의생활을 걱정하고 장려하였던 정책이 의식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기본정보

생산정보

  • 생산유형: 기타
  • 입수처: 한국사상문화학회
  • 생산자 소속 및 이름: 임혜련
  • 생산자 유형: 저자

생산시기

  • 시대: 현대
  • 생산시기: 2015.03.31

생산지

  • 생산지: 한국사상문화학회
  • 생산지 유형: 발행처
  • 주소: 02228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604-29 (사가정로 385)

원문 공개사항

기술통제

  • 작성자: 이민경
  • 작성일: 202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