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 흥천사(興天寺)와 왕실(王室) 발원(發願) 불화
2017.12.31
학술자료 학술지논문
돈암동
국문초록
수국사에는 1907년에 일괄 조성된 불화 6점과 1908년에 조성된 괘불화 등 7점의 불화가 전하고 있다. 현존하는 불화는 1907년에 제작된 6점과 1908년에 제작된 掛佛畵 등 총7점에 불과하지만, 1907년에 大雄殿 上壇幀ㆍ大寮 上壇幀ㆍ靈山幀ㆍ獨聖幀ㆍ七星幀ㆍ九品幀ㆍ中壇幀ㆍ甘露幀ㆍ山神幀ㆍ神衆幀(2)ㆍ現王幀ㆍ竈王幀 등 13점의 불화가 일괄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불화들은 조선 왕조 최말기 때의 작품들로서 왕실의 후원에 의해 皇帝와 皇太子, 皇太子妃, 皇貴妃, 義親王, 義親王妃, 英親王의 안녕과 천수를 기원하며 제작되어 왕실불화의 호화로운 양식을 잘 보여준다. 거대한 화폭에 그려진 불화는 그 규모 뿐 아니라 화려한 金泥의 사용과 뛰어난 양식 등으로 볼 때 가히 조선말기 불화를 대표한다. 도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수국사의 불화는 19세기말 서울, 경기지역 불화의 도상을 대부분 답습하고 있어 전통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기적 양식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특징은 비단 수국사 뿐 아니라 19세기후반 서울, 경기지역 불화의 대체적인 특성이기도 하지만, 수국사의 창건과 불화제작은 왕실에 의해 대규모로, 또 드물게 이루어진 불사였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화면을 2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보살과 제자 등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사천왕을 강조하여 그린 아미타여래도는 이 불화보다 한 달 늦게 조성된 불암사 대웅전 아미타불화(1907년)에 그대로 계승되었으며, 극락구품도의 구도는 興天寺 極樂九品圖(1885년), 興國寺 極樂九品圖(19세기말), 奉元寺 極樂九品圖(1905년) 등 19세기말~20세기초반 서울, 경기지역에서 유행한 구품도와 동일한 구도를 보여준다. 또 구품도와 같은 화면분할식 구도를 보여주는 16나한도는 1897년 慶船 應釋이 出草하고 普庵 肯法, 梵華 潤益 등이 함께 제작한 불암사 16나한도의 도상을 거의 따랐으며, 현왕도는 1905년에 제작된 봉원사 현왕도를 가로로 조금 넓게 확장하여 그렸다. 수국사 불화는 당시 서울, 경기지역에서 유행하던 불화양식을 충실하게 받아들여 그 위에 왕실발원 불화의 화려함과 정교함을 더하여 만들어졌다. 또한 수국사의 불화에서 주목되는 점은 구한말 가장 대표적인 불교후원자인 姜在喜와 그의 아버지 姜文煥이 주축이 되어 행한 불사였다는 점이다.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 1896년의 俄館播遷, 1897년 大韓帝國 성립, 1905년의 乙巳保護條約,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 등으로 이어진 숨 가쁜 조선말기의 정국 속에서 이루어진 수국사의 창건과 불사는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료들의 동참으로 이루어진 조선말기 최대의 불사였다. 거대한 화폭에 眞彩色과 金泥를 사용하여 호화로우면서도 뛰어난 양식을 보여주는 수국사의 불화는 전통불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자 불행한 국운을 불교에 의지하여 타개해 보고자 했던 조선왕실의 불사후원에 의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기본정보

생산정보

  • 생산유형: 기타
  • 입수처: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생산자 소속 및 이름: 한국불교미술사학회, 유경희
  • 생산자 유형: 저자

생산시기

  • 시대: 현대
  • 생산시기: 2017.12.31

생산지

  • 생산지: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생산지 유형: 발행처
  • 주소: 03052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30-10 (북촌로11길 4)

원문 공개사항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