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고려시대 개경과 조선시대 한양에서의 사찰 조성 계기와 변화 그리고 위상을 살펴보고 비교해 봄으로써 조선초 신왕조의 도읍인 한양에서의 사찰 건립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고려시대 개경의 사찰은 919년 개경 건립과 함께 조성되어 신앙의 구심점이자 궁궐, 관청 등과 함께 공적인 공간으로서 왕도 개경을 장엄하며 고려 문화와 사상의 중추가 되었고,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공간이었다. 개경의 사찰운영에는 불교가 국가를 운영하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던 고려사회의 관념이 반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에는 1394년 한양 천도가 결정된 이후 궁궐, 성곽, 종묘 등 주요 시설과 함께 한양 도성 안에 사찰을 세우거나 혹은 사찰 건립에 대해 고려했던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 불교를 비판하며 건국한 신왕조의 도성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1396년 정릉(貞陵)과 함께 그 능침사로 태조가 흥천사(興天寺)를 지으면서 한양 도성 안에 처음으로 절이 들어섰다. 흥천사는 애초 도성 계획에는 없었던 것으로 고려말 이래의 왕릉 제도의 영향을 받아 정릉의 부속시설로 조성된 것이었지만 이후 태조가 도성안에 사찰을 짓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전기 국왕이 세운 사찰이 도성에 운영되던 시발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과도기적 현상이자 구시대의 유습이었다.